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39화 (139/556)

20-37. 샹다메리 전투

현재 성전군의 우익 쪽 상태는 안 좋고, 심지어 반포위를 당할 지경이다. 그러나 좌익 쪽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수적으로도 열세는 아니다. 적이 함부로 접근하기 전에 새로운 방어선을 설정하여 물러서도록 하자.

전투가 패했다고 전군에 후퇴 명령을 내리고 무질서하게 도망칠 수는 없다. 여전히 병사들에게 전투가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병력을 살려 전장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한 명이라도 병력을 살려서··· 다고베르 2세 형님 폐하께 돌려드려야 한다. 그게 패장이 된 에티엔의 마지막 임무였다.

루블랭 연대의 지휘관 프레니히 드 루블랭 백작은 말 그대로 백전노장이다.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레스펜스 연대와 아퀴오슈 연대에 전령! 루블랭 연대를 축으로 새로운 방어선을 설정 중! 질서를 최대한 유지하여 병력을 후퇴시킬 것!”

“루, 루블랭 연대를 축으로 한 방어선으로 질서를 유지해 후퇴시킬 것!”

“좋아, 서둘러라! 위험한 상황이나 각각 세 명의 전령을 파견한다!”

“알겠습니다. 공작님!”

적과 아군이 뒤섞인 혼란한 전장을 전령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현재 가장 큰 위기는 우측에 배치된 레스펜스 연대와 아퀴오슈 연대이다.

아퀴오슈 연대는 우회해온 적에게 밀려 붕괴 직전이었으며, 만약 그렇게 되면 레스펜스 연대는 퇴로를 잃고 완벽히 고립될 것이다. 병사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도망병들이 생기고 있다.

“우익 쪽에서는 소식이 없는가?”

“기병 쪽 말씀이십니까? 예···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대체 우익 기병을 지휘하는 마렘 드 모르뷔셀 공작은 뭘 하고 있는가? 보병 부대가 우회하지는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해도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야속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명령을 내린 상태에서, 에티엔은 이 모든 패배의 원인이 된 적 보병 부대, 슈토르히 연대를 노려보았다.

아퀴오슈 후위 연대 절반과 퐁투베 기병 연대를 날려 버린 저 악마같은 부대는 별로 피해를 입은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마치 살아있는 요새처럼, 굳건히 서서 전장을 고고히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더 많은 병력이 마련되어서 다시 공격한들 무너뜨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역사 속의 지휘관이 생각난다. 한 번 위기에 처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병력을 던져대다가 스스로 파멸에 빠져버리는.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어리석은 지휘관이 되고 말았다.

“서둘러라! 새 방어선 너머로 탈출해오는 아군을 재편성해서 적의 추격에 대비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길 수 없다면, 하다못해 잘 지기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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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겼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상황을 파악하고, 내릴 수 있는 명령을 다 내렸다. 갑자기 어깨가 당기고 허리가 아파졌다. 온종일 안장 위에 있었더니 엉덩이가 쑤신다. 당장 아무 데나 걸터앉아, 아니 드러눕고 싶다.

하지만 아직 이르다. 조금 다른 뉘앙스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지. 그래서 아직은 쉴 수 없다.

서쪽에 배치된 적들이 무너져 혼란스럽게 도망치고 있다. 동쪽에 배치된 적들은 여전히 굳건한 상태이기는 하나, 천천히 수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대로 전장에서 이탈하려는 것이겠지.

서쪽의 적들 또한 물론 무너졌다고는 해도 완전한 패닉 상태는 아니다. 나름 지휘관의 지시하에 목적을 가지고 도망치는 것이다.

창병과 총병 등 여러 병종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보병 대열은 외부의 공세에 강하다. 동시에 매우 느리다. 그 때문에 보병 대열과 보병 대열 사이의 전투는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일단 서로가 공력력에 비해서 방어력이 강력하기에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다. 꽤 오랜 시간 교전을 거듭해도 생각보다 사상자가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양측의 기량이나 화력 격차가 크지 않다면 결국 서로가 진이 빠지도록 싸워봤자 승부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승부가 나서 한쪽이 도망치게 된다면, 밀집 대형을 포기하고 도망치게 된다면? 승리한 쪽은 도저히 추격할 수 없다. 밀집 대형으로는 작정하고 도망치는 적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심지어 슈토르히 연대나 그 이상으로 숙련된 정예 부대조차도 말이다.

나는 고민했다.

일단 승리는 확고해 보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더 잘 이긴’ 것이 될까?

적의 절반, 아니 삼 분의 이 이상은 아직 건재하다. 전과를 확대하려면 아직 건재한 적 보병 밀집 대형을 부숴야 한다.

공세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병사들에게 때때로, 갑자기 도취한 승리감은 걷잡을 수 없는 패닉보다도 위험할 때가 있다. 샴페인을 너무 빠르게 터뜨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상황이 된다.

하물며 참혹한 전투를 견뎌내고, 많은 동료들이 한순간에 시체로 변하는 것을 보며 얻어낸 승리이다. 갑작스러운 승리감, 해방감에 이어 닥쳐오는 보상심리가 다른 형태의 패닉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막강한 기병 돌격과 집요한 포화를 버텨냈던 보병 대열이 승리감에 도취해 무너지는 것을 실제로 보았다. 남들보다 빨리 전리품을 약탈하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다 이긴 전투에 패했을 뿐 아니라 상당수가 전리품은커녕 목숨까지 잃어버렸다.

“콘도티에레! 제22 연대에서 전령이 왔어요!”

보조 부관 에밀리아의 목소리가 나를 생각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제22 연대가 공세를 취해도 되냐는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드 누아 북부 연대에서도 보고가 왔습니다! 내용은 동일합니다!”

“으으음···.”

부관들의 보고를 들은 나는 고민 또 고민했다.

이대로 강하게 공격해서 적에게 끝까지 따라붙을까? 추가로 피를 더 흘릴 가치가 있는가? 전방의 장병들은 전과를 확대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는 그들의 목숨이 될지도 모른다. 전쟁하는 이상, 희생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면 최소한 그 희생이 가치 있는 희생이어야 하는데.

“아니, 공세는 금지한다. 대신 200미터 전진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로 확보에 주력할 것.”

“아, 알겠습니다! 공세는 금지, 대신 200미터 전진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로 확보에 주력할 것!”

설령 여기서 아군 병사 한 명을 잃고 적 둘을 쓰러뜨리더라도 이득이라 볼 수 없다. 트랑카벨과 드 누아의 인적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력 온존을 선택하도록 하자.

“절대 무리하지 말도록! 적을 추격하고 포로를 최대한 잡되, 대열이 유지되는 적은 상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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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는 거냐!”

성전군 퐁투베 기병 연대의 지휘관, 베리브 드 퐁투베 자작의 명령을 받아 분견대를 지휘하고 있던 디타레 드 카울은 도망치는 기병들의 앞을 가로막아 세우며 외쳤다.

“엘랑키아 기사의 긍지는 어디 갔나! 아직 전투는 끝난 게 아니란 말이다!”

디타레가 피를 토하듯 외치자, 도망치던 기병의 일부는 부끄러운 듯 멈춰섰다. 원래 패닉이란 이렇게 작은 반작용에도 빠르게 수습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졌어! 졌다고! 베리브 경도 죽었어!”

하지만 뒤따라 달려온 귀족 장교 하나의 외침에 가라앉을 뻔했던 패닉은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 연대 간부 회의에서 몇번 본 적 있는 귀족 가문 출신의 기사였다. 분노한 디타레는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지른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베리브 경은 선두에서 함정에 빠졌고 적 사격에 휘말려서 죽었어!”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이라고? 그럼 직접 가서 확인해보든가! 귀관이 여기서 별 것 아닌 적 하나 몰아내지 못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포탄을 뒤집어 쓰면서 무리한 공격을 강요받았다고!”

“크윽!”

할 말이 없었다. 디타레 자신도 금방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다 틀렸어! 우익의 보병 부대도 전부 무너졌다.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퇴각하는 아군을 엄호해야지! 엘랑키아 기사의 긍지는 어디로 갔는가!”

“저 지옥을 다시 들어가라고? 사양하겠네! 이번에는 귀관이 가 보시지!”

말을 마친 장교는 그대로 말을 몰아 달아나버렸다. 눈치를 보던 다른 기병들도 슬금슬금 그 뒤를 따른다. 어느새 붕괴는 전면적으로 번지고 있었다. 기사 몇 명의 열정과 고함으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다.

“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하 장교들이 디타레에게 묻는다. 그들의 눈동자와 목소리도 불안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모두 오랫동안 베리브 자작을 섬겨오며 출세한 유능한 기병 장교들이다. 그들조차도 공포에 질려있었다.

“더 이상 이런 쭉정이 포대를 공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계속 공격하면 함락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불필요한 희생만 늘어날 뿐이지.

“하지만 이대로 아군을 버리고 달아날 수도 없다! 아군이 최대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알겠습니다!”

엘랑키아의 기사로서 마지막 의무까지 팽개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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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 벨모제 기병 연대 소속 제7 용기병 중대의 지휘관, 로용 드 말리크 남작은 총을 바닥에 세우고 몸을 슬쩍 기댔다. 장갑 너머로 방금까지도 납탄을 쏟아낸 총구가 뜨겁게 느껴졌지만, 그조차도 왠지 안심되는 느낌을 준다.

“무, 물러나는 건가?”

“다시 올지도 몰라! 탄약을 재분배해!”

“다친 녀석은 뒤로 빠져라!”

벌써 몇 번이나 거듭해서 적의 공격을 상대해온 네그라타 용병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이며 다시 올지도 모르는 공격을 준비한다.

“알론소 경! 이제는 정말 끝난 것 같소!”

로용이 흙으로 쌓아 올린 방벽 위로 올라가 멀리 적진을 가리키며 외쳤다.

“적 본대가 멀어지고 있소!”

“뭐 정말?”

“진짜네! 우리가 이긴 것 같습니다!”

“이겼어? 이겼다고!”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로용 역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전투 동안 목숨처럼 다뤄온 가문의 보검은 옆에 대충 꽂아 놓았다. 열심히 관리했던 칼날을 피와 진흙이 뒤덮고 있었다. 뼈와 갑옷에 자꾸 부딪혀서 그런지 슬슬 이빨이 나간 자리가 늘고 있었다.

“하아··· 시팔···.”

자기도 모르게,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린 욕설이 입에서 나왔다. 훈련소에서 동료들이 말하던 게 이제 이해가 간다. 화가 나도 욕을 하고, 기뻐도 욕을 하고, 안심되어도 욕을 한다는 것. 긴장이 풀리고 후련해지자 욕이 자동으로 나온다.

지휘관이니까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남은 병력도 추려야 하고, 부상자가 있으면 챙겨서 후송시켜야 한다.

그래도 조금만 쉬자. 1분, 아니 30초만.

잠시 뻣뻣해진 목을 젖히고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본다. 솜털 같은 작은 구름 몇 개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파란 하늘이다. 고개를 조금만 내리면 온통 참호와 흙벽, 피와 진흙, 시체와 버려진 무기로 가득한 생지옥이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고 벌떡 일어섰다.

“일단 남은 인원부터 점검하자! 부상자 있으면 우선 모으고!”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전방에 네그라타 병사들 피해가 크니까, 부상자 옮기는 것 좀 도와줘!”

“옙!”

잠깐의 휴식을 끝낸 로용은 칼날을 대충 닦아 칼집에 넣은 후, 전방 참호로 이동했다. 자신 휘하의 용기병들 역시 치열한 전투를 거치며 사상자가 적지 않았지만 네그라타 용병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특히 전투 초반부터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싸워온 알론소와 그 부하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부하들에게 뭔가 명령을 내리고 있다가, 로용의 얼굴을 확인한 네그라타 중대장, 알론소 요페로 페레데즈가 씨익 웃었다.

“다행히 무사하셨군요!”

“귀군의 활약 덕이오.”

네그라타와 트랑카벨의 두 중대장은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서로 도우며, 함께 사선을 거쳐온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뜨거운 악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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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르히 연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인간 울타리를 쳤다. 동쪽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적 보병들을 가로막는 형태로 대열을 연장한다.

“무기 버려! 무기 버려!”

“전투는 끝났다! 목숨 걸지 마!”

이미 오랫동안 전투를 계속해왔고 공포에 질려 도망치느라 정신력도 체력도 한계에 도달한 자들이 많다.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차라리 잘 됐다는 듯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는 자포자기한 듯,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둑과 같은 보드 게임과 실전은 다르다. 바둑의 경우 포위하면 포위당한 돌은 바로 죽는다. 하지만 실전은 그렇지 않다. 물론 포위한 순간 우위를 점하게 되기는 하지만 승리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멍청한 새끼 멈추라고!”

“으아아아아!”

탕!

“...시발!”

그 와중에도 기어코 무기를 들고 달려들다가 총구멍이 나는 놈들이 있었다. 귀족의 자존심인지, 지휘관에 대한 의리인지, 그도 아니면 왕국에 대한 충성심인지.

“너희들도 덤빌 거야?”

“아, 아뇨 항복, 항복합니다!”

“살려주세요!”

사살당한 장교가 지휘하던 병사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열심히 고개를 젓는다.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엎드리는 병사들도 있다. 아무리 무장하고 훈련을 받았어도, 대부분은 그냥 소집령을 받고 입대한 농부들일 테니.

“항복해! 항복하면 죽이지 않는다!”

“저쪽에 아군입니다. 드 누아 군으로 보이네요?”

“이걸로 포위망은 완성됐군.”

북쪽의 슈토르히 연대와, 남쪽의 드 누아 북부 연대가 만났다는 것은, 포위망이 완벽히 형성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완전히 대열이 무너진 상태인 적들은 더 이상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다.

“자 항복해 이 녀석들!”

“안 죽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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