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34화 (134/556)

20-32. 샹다메리 전투

###

탱!

철판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지빌링엔 용병의 머리가 옆으로 훽 돌아간다.

“끄으으윽!”

머리에 총을 맞은 병사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머리에 총을 맞고도 신음 정도로 끝날 수 있는 것은 적 기병이 쏜 권총탄이 생각보다 먼 거리에서, 절묘한 각도로 투구를 때렸기 때문이다. 두 개의 반구 형태의 철판을 연결해 붙인 투박하지만 단단한 투구가 병사의 목숨을 살렸다.

“괜찮아?”

“머,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그래도 대가리에 빵꾸는 안 났어! 자리 바꿔줄까?”

“아니! 이 시팔놈들 내가 모조리 찔러 죽인다!”

“좋은 투구 덕에 살았네! 어디서 산 거야?”

“산 내려올 때 무기 팔러 온 그룬발트 늙은이한테 산 거야. 돈값은 했네.”

이미 죽음의 공포 따위는 초월했다는 듯, 최전방에서 엘랑키아 기병들과 힘 싸움 중인 지빌링엔 용병들은 시답잖은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눈다.

현재 양측이 적극적으로 무기를 부딪치는 백병전을 하는 중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언제보다도 치열한 전투 중이다. 어느 한쪽이라도 방심했다가는 끔찍한 꼴을 당한다.

성전군은 자신들의 후방으로 파고 든 슈토르히와 지빌링엔 부대를 격퇴하기 위한 해결사로, 좌익에서 최정예 기병 부대인 퐁투베 연대를 불러왔다. 이 퐁투베 연대에서 파견된, 디타레 드 카울이 이끄는 300여기의 기병대가 포병 진지를 지키는 지빌링엔 반 연대를 포위해 공격하고 있었다.

포위 공격이라고 해도 정말로 사방을 틀어막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다. 몇 개 부대로 나뉘어 재빠르게 일격 이탈을 하며 적을 괴롭히는 것이다. 빠르게 기동하는 기병들은 때로는 방어선의 면을, 때로는 모서리를 공격하며 수비하는 지빌링엔 용병들을 괴롭혔다. 기병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므로 수동적으로 싸워야 하는 보병들은 죽을 맛이다.

기병은 기동성을 살려 약하다고 생각된 특정 지점을 집중해서 공격할 수 있지만, 보병은 좋든 싫든 방어선 전체를 지켜야만 했다. 결국 전투가 벌어지는 지점에서는 수적 열세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지빌링엔의 총병들도 열심히 대응하고는 있었지만 한데 뭉치지 않으며 빠르게 이동하는 기병들을 명중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

한편 멀리 떨어지지 않은 슈토르히 연대와, 퐁투베 기병 연대 주력과의 교전은 조금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타타탕! 타탕!

탕탕! 탕! 탕!

“이 새끼들 모서리만 노리고 있어!”

“사격 각도가 나오질 않아!”

“명사수들 창병 대열 안쪽으로!”

엘랑키아 기병들은 용의주도했다. 절대로 큰 사각 대형을 갖춘 슈토르히 연대의 ‘면’ 쪽으로는 접근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작은 규모의 습격대로 ‘꼭지점’ 부분만 노린다. 빠른 장전과 정확한 사격을 자랑하는 숙련 총병들도, 아퀴오슈 후위 연대를 10분도 안 되어 무너뜨렸던 엄청난 창병들도 그 장점을 발휘할 수 없었다.

소수의 유격 기병으로 사격을 낭비하게 하려 하는 적과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면을 지키는 대부분의 총병들은 사격을 봉인한 상태로, 소수의 베테랑 사수들만 창병 대열에 섞여 대응 사격하고는 있다. 하지만 로테이션 방식으로 접근해 화력을 쏟아붓고 퇴각하는 엘랑키아 기병들에 비하면 열세일 수밖에 없다.

“...모서리에 총병 비율을 늘릴까?”

“안 돼! 자칫하면 모서리부터 무너진다!”

선임 중대장 크레시미르 두브람의 건의에 현재 지휘를 맡은 루트비히 아린 폰 자이트리츠가 단호하게 거부했다. 엘랑키아 기병들은 철저하게 안전 위주로 가고 있었다. 절대로 욕심 부리지 않는다. 약 30미터 정도 거리에서 사격하고 이탈한다. 그 때문에 총열이 짧은 권총의 위력이나 명중률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로 인해서 슈토르히 연대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현재 사각 대형의 네 개의 모서리 중 세 곳이 집중 공격받고 있었다. 다행하게도 바로 직전에 점거한 포병 진지가 한쪽 모서리를 보호해주고 있었기에, 엄폐물에 의지해 총병을 충분히 배치한 이쪽으로는 적 기병들이 얼씬도 못 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지금은 버티는 수밖에 없어. 적이 실수하기를 기다린다.”

“젠장! 적도 드디어 싸울 줄 아는 녀석들을 파견한 모양이네. 시원하게 창벽에 박아 주면 단번에 끝장낼 수 있는데.”

크레시미르는 용의주도한 적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런 어정쩡한 공격은 하루 종일 해도 슈토르히를 무너뜨릴 수 없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이변이 발생하기를 기다려야 해.”

그에 비해서 루트비히는 차분하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엘랑키아 기병의 집요한 견제 공격은 나우데사의 북방 전쟁에서 여러 차례 겪어보았다. 슈토르히는 항상 이겼고 살아남았다.

이런 전투는 오래 이어질 수 없다. 반드시 이변이 일어난다. 피로가 누적되고 우쭐해진 엘랑키아 기병이 실수하거나 무모한 짓을 저지른다. 외부에서 다른 아군이 지원하러 와서 적의 계획이 틀어진다. 적 기병의 체력을 소모시킨 후 슈토르히가 자력으로 극복한다 등등.

서로 접촉 면적이 적다는 것은 교전에 참여하는 병사의 수가 적고, 사상자도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30미터 밖에서 쏘는 권총의 위력은 보병이 쏘는 소총의 위력과 비교가 되질 않는다.

아직은 견딜 수 있다. 아직은.

###

“대단한 전술입니다, 자작님!”

“무서운 기세의 적 보병 연대를 이렇게 묶어 버리시는군요!”

퐁투베 연대의 연대장이자, 엘랑키아 왕실 근위기병대장인 베리브 드 퐁투베 자작은 주변에서 들리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급 귀족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국왕의 신임을 받는 근위기병대장이다. 이미 자작위를 받았으며, 조만간 백작위를 받아 명실상부한 ‘대귀족’의 반열에 오를 것이 확실하다. 엘랑키아의 귀족은 건국 이래 전통적으로 군사 귀족 성향이 강하다. 그 때문에 작위가 낮다는 이유로 그를 함부로 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그의 휘하에 편성된 귀족 기사들이 칭찬을 거듭한다면 한 번쯤 우쭐할 법도 하건만, 베리브의 얼굴은 굳은 상태 그대로이다. 딱히 원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점잖은 척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걱정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겼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네? 그, 그야··· 아직 적 보병 부대가 건재하긴 합니다만, 시간이 흐르면 차츰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그만큼의 시간이··· 아군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군요.”

“그··· 그럴 수가!”

“너무 걱정을 깊게 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주변의 귀족 참모들이 연극배우라도 되는 양, 놀랐다는 표현을 상당히 과장된 모습으로 표출한다. 짜증이 나는지 베리브의 눈가가 꿈틀 했지만, 참기로 한다. 최소한 이 귀족들은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이며, 진심으로 베리브 드 퐁투베를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굳이 불쾌해할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다만 베리브가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위협적인 적 보병은 잡아 놓았다. 다행히 적은 좁은 면적대비 강력한 위력을 보여줄 대포를 보유하지 않고 있었다. 성전군의 포병 진지를 방금 점령하기는 했지만, 여기 배치된 포들은 모두 거대한 공성포이다. 쉽게 방향을 돌리기도 어려웠고, 기민하게 보병 대열 가운데 섞어서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엘랑키아 기병들의 견제 공격이 꾸준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끌어서 이길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숫적으로 우세했던 전투 초반이라면, 자잘한 전술 따위 없이 꾸준히 소모전에 가까운 힘 싸움만 해도 필승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주 전선의 전과는 아직도 지지부진, 측방에서 지엽적으로 벌어진 작은 충돌에서도 큰 이득을 보지 못한 채, 후방에 적이 침투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적을 협공할 예정이었던 아군 보병 부대는 적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까지 했다! 저 멀리서 장교들이 재집결시켜 대열을 정돈하고는 있지만, 이미 마음이 꺾인 부대가 제 역할을 못 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건 자칫하면 시간을 버는 것이 독이 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적을 단기간에 무너뜨릴 방법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평범한 적 보병 연대라면 피해를 감수하고 백병전으로 몰고 가는 방법이 있겠으나··· 이 부대는 안 된다. 오랜 전투 경험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적의 배치를 보면, 부분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느슨하다. 중대급 창병 부대들의 연계에는 빈틈이 있으며, 보병들의 배치도 어딘가 약점이 보인다. 숙련된 기병이라면 누구나 이 약점이 보일 것이다. 실제로 여러 차례 공격 건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래서 무섭다. 저 절묘한 약점을 공격하고 싶다. 이를 발견한 기병 지휘관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공격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다. 너무나도 의뭉스럽게 보여서 오히려 함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라리 병력이라도 더 있었으면··· 동료 연대인 가티 드 리네콩테 연대장의 엘랑드르 기병 연대와 함께 왔다면 위험을 각오하고 더 많은 시도를 해 보았을 텐데. 적과 거의 동수인 병력으로는 과감한 시도는 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잘하고 있는가?

오히려 적이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 차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금 베리브의 연대가 유리한 점이 없지는 않다. 서로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사상자 교환비에서 조금이라도 우세하다는 점. 그리고 위협적이던 적 보병을 고립시켰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만한 규모의 기병대가 주변에서 빈틈만 노리고 있는데 함부로 이동할 간 큰 보병 지휘관은 없을 것이다.

하필 두 개의 포대를 모두 적에게 점령당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나라도 남아 있었다면, 각도를 내린 직사 사격으로 보병 대열을 부술 수 있었을 것이다. 베리브는 평생을 기병으로 살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이 포병이며 가장 고마운 것도 포병이었다.

생각해보면 적은 운도 좋았다. 하필이면 이런 위치로 돌입해 왔으니까 말이다.

뻐엉! 뻥! 콰앙!

"으아아악!"

"어디지? 어디에서 온 거지?"

갑자기 공격을 위해 대기하던 기병대의 예비 대열에 포탄이 떨어졌다. 베리브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언덕 위의 적 포병은 의식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교묘하게 움직여 실수하면 아군 보병을 쏠 수도 있는 각도로만 배치했기 때문에 큰 위협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포격은 반대편에서 로테이션 공격을 준비하던 예비 기병대가 당했다.

"적이 점령한 포대에서 날아온 포격입니다, 자작님!"

"점령한 포대? 그 거대한 공성포를 기어이 돌려서 쐈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디타레 경이 공격하고 있는 인접한 포대에서 날아왔습니다!"

"...뭐?"

베리브는 말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보고대로였다.

그가 파견한 분견대, 디타레 드 카울 경이 이끄는 300기의 기병대가 공격하고 있는 포대에서 날아온 포탄이 정확하게, 인근에서 다른 적을 포위하고 있는 자신의 기병대를 헤집어 놓은 것이다.

"대체 어떻게? 자신들이 공격당하면서도 멀리 떨어진 아군을 돕는다고?"

"설마... 아마도 디타레 경의 기병을 공격하려다가 눈먼 포탄이 이리 날아온 것이 아닐지...."

"흐음, 피해가 얼마나 되지?"

"...여섯 명이 당했습니다."

"입지 않아도 될 희생이었는데. 아쉽군."

전장에서 우연은 항시 일어난다. 생각도 못 한 자잘한 피해도 항상 수반된다. 언제까지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어서는 지휘할 수 없다.

콰쾅!

"뭔가? 설마 또!"

"그렇습니다, 자작님! 또 같은 포대에서 포격입니다!"

"정신이 나간 건가! 공격을 당하면서 포격을 지속한다고?"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들이 포위당한 위기에서 가지고 있는 화포를 다른 부대를 지원하는 데 쓴다? 소총탄이나, 자갈이라도 쑤셔 넣고 산탄으로 쏘면 어떻게든 방어에 도움이 될 일인데.

이에 따라서 퐁투베 연대는 배치와 기동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어버렸다. 포격 한 번 한 번에 입는 피해는 적을지 몰라도 그걸 방치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 포대를 공격하고 있는 디타레 경에게 주의를 기울이라는 전령을 보내겠습니다!"

"아니, 됐습니다."

분노해서 분견대 지휘관을 비난하려는 휘하 귀족을 뜯어말린다. 전투 지휘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디타레 경이 무능한 인물이라면 모를까,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가장 분노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일 테니까. 거기 채찍질을 가해봤자 더 나아질 리 없다.

믿고 맡겼으니 디타레 드 카울의 승리를 기다리자. 만약 포대를 무사히 재탈환한다면, 탈환한 포를 이용해 적 밀집 대형을 공격할 수 있다. 설령 적이 최후의 발악으로 포를 모두 망가뜨렸다고 해도 그렇다. 외부의 변수 없이 분견대를 집중할 수 있다면 좀 더 유리한 포지션에서 싸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사자 본인이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다.

"베리브 자작님, 외람되오나... 공세를 더 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드로스타니의 기사들은 승리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오, 그럼 드디어!"

다소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인 공격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적이 이상한 짓을 하려 한다면, 그걸 막는 방법은 아무것도 못하게 바쁘게 만드는 것이니까. 적 보병 대열에 가끔씩 생기는 약점을 주의 깊게 살핀다. 모서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측면이 약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고민하다가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