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33화 (133/556)

20-31. 샹다메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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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콜록!”

신병 하나가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고참병들도 그런 신병을 제지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도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제8 벨모제 기병 연대 소속의 제7 용기병 중대장 로용 드 말리크 남작은 이런 광경을 처음 봤다. 이런 냄새도 처음 맡아본다.

피와 오물, 그리고 매캐한 화약 연기가 뒤섞인 냄새.

죽음과 공포의 냄새.

참호와 흙벽이라는 좁고 제한된 장소에서 치열한 육탄전이 벌어진 결과 발생한 참상도 평소보다 조금 더 심하다. 한 곳에 과도하게 많은 희생자가 쌓이고, 많이 훼손되었으며, 한 발 이상의 총을 맞은 경우도 많다. 게다가 전투가 격화되어 전진과 후퇴가 반복될수록 의도하지 않더라도 마구 짓밟혀 훼손된다. 훼손된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참호 바닥의 흙과 뒤섞여 소름이 끼치는 진흙탕을 만든다.

로용과 고참 중대원들이 경험했던 다브농 방앗간에서의 치열한 전장과도 달랐다. 그 곳은 협소했지만 적어도 열려있는 장소였으니까.

“전원 화승을 확인해라!”

“예, 대장님!”

낯선 전장,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환경이지만 할 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방어선을 넘어오는 적을 쏴 죽인다. 때로는 총 이외의 무기라도 써서 쓰러뜨리고 아군을 돕는다.

다브농 방앗간에서 한 번은 성공한 바 있으니, 두 번째도 마찬가지이기를 기도한다. 로용은 그렇게 생각하며 부대를 참호를 따라 이동시켰다. 조금 전 까지 말을 탄 상태로 대기하던 샹다메리의 평원 지역과 비교하면 마치 인간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거기 누구야!”

처음 마주친 병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다급하게 외친다.

“아군이다! 트랑카벨 제8 기병 연대에서 왔다!”

“오, 지원하러 온다던 기병 양반들이구먼. 이리 오시게.”

네그라타 용병단 소속의 총병 하나가 지원이 반가운 듯 웃으며 트랑카벨 용기병들을 맞이했다. 총을 어찌나 쏴댔는지 탄약 연기로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서는 이빨만 하얗게 보이는 게 섬뜩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변두리에 산다는 그림자 종족들이 이렇게 생겼을까 싶다.

“제 이름은 바스쿠 브레네르입니다. 네그라타의 병장이지요. 따라오세요."

"로용 드 말리크요. 제8 기병 연대 제7 중대장이오."

"그러시구먼. 초면에 미안하지만, 여분이 있다면 탄약을 빌릴 수 있을까요?"

"따로 여분은 없지만 몇 개 필요하시오?"

"두 개. 어차피 세 발째 쏘기 전에 적이 먼저 덮치더라고요."

"...여기 받으시오."

"고맙습니다! 다음 전투는 걱정이 없겠네요."

바스쿠는 씨익 웃으며 탄약포 두 개를 탄약 가방에 갈무리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고 기뻐 보여서, 로용에게는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소년처럼도 보였다.

"전번에는 적 시체나 아군 부상자들에게서 회수해서 썼는데, 이번에는 경비를 서느라 회수할 틈이 없었네요."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탄약이 떨어진 지 꽤 지난 모양이었다. 후방에 예비 탄약은 있지만, 제때 전방 부대까지 전달이 되질 않은 것인지. 중대 단위로 여분의 탄약을 가지고 배치되었을 텐데 전투가 얼마나 격렬한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의 말 이외에도, 방어 진지 여기저기에서 쉬고 있는 병사들의 표정을 보면 전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 피와 진흙투성이가 되어 휴식 중인 병사들.

게다가 난전 속에 무기를 잃어버린 병사들이 많은지, 특이하게 생긴 임시 무기가 꽤 많이 보인다. 자루가 부러져 한 손 무기처럼 짧아진 미늘창부터 해서, 모서리가 철로 보강된 삽을 들고 있는 경우도 많다. 분명히 이 방어 진지를 건설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장비겠지. 삽으로 흙 대신 사람 머리통을 펐는지, 삽에는 찐득찐득한 핏덩어리와 머리카락이 잔뜩 묻어있다. 그런 병사들일수록, 유난히 눈빛이 사납다는 것은 착각만은 아닌 것 같다. 로용은 부하 병사들이 긴장하여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방어 진지에 들어온 지 몇 분 지났다고, 조금 전의 지독했던 피와 화약이 뒤섞인 죽음의 냄새는 어느새 익숙해져 크게 악취로 느껴지지 않는다.

"중대장님 지원군이 왔습니다. 트랑카벨의 용기병분들이라고 합니다."

"오 정말? 고마운 일이네."

신에게 맹세코, 로용은 시체인 줄 알았다. 반쯤 부서진 보급품 상자에 걸터앉아 흙벽에 기대어 미동도 하지 않고 있던 창백한 `시체처럼 보이던 것`이 갑자기 움직이며 말하기 시작한다.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악한 꼭두각시 술사의 주술에 걸려 되살아난 시체 일꾼을 보는 느낌이었다.

"트랑카벨군, 제8 연대 소속의 제7 용기병 연대장, 로용 드 말리크입니다. 연대장님의 명령을 받아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네그라타의 선임 중대장 알론소 요페로 페레데즈입니다. 마침 다들 지쳐있었는데 다행입니다. 미안하지만 곧바로... 윽!"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알론소가 다시 신음과 함께 주저앉는다. 자세히 보니 알론소의 흉갑에는 손가락 몇 개가 드나들 만한 구멍이 뚫려 있다.

"아니, 총에 맞으신 겁니까!"

"어어, 아뇨. 운이 좋았는지, 갑옷만 부수고 관통은 안 됐습니다. 피가 좀 났지만, 붕대로 감아 두었으니 괜찮습니다."

라고 가만히 있으면 시체로 보이는 사람이 말하니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완전히 튕겨냈으면 모를까, 일단 갑옷을 깨고 들어간 탄환이 경미한 상처만 입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부서진 흉갑 조각도 마치 작은 칼날처럼 피부를 찢어 놓았을 것이다. 이런 상처는 치명상은 아니더라도 피가 많이 나는 상처이다. 심지어 심장에서 가까운 상처인데.

문득 과거에 모셨던 중대장이 생각난다. 첫 전투를 훌륭히 지휘했으며, 결국 승리하는 모습은 보지 못하고 전몰한 그웬넬 드 리스바쥬 중대장. 그 역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마지막까지 누가 쏠지도 모를 총을 장전해놓고 잠들듯 사망했었다.

"알론소 중대장, 일단 치료받고 오시죠. 야전 병원이 방어 진지 밖으로 몇십 미터만 걸어가면 있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지금은...."

"솔직히 처음 보고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지금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총상은 겉으로 보기에 별것 아니더라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아니 지금은...."

네그라타 연대 소속의 부하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나도 대장 얼굴 볼 때마다 죽은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랐지, 솔직히."

"가서 치료받고 오라니까요!"

"솔직히 부상병이 버티는 게 민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부하들이 난리를 부리자 알론소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뭐 말은 그렇게 해도 제가 정말로 자리를 떠나면...."

"우리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얼른 다녀와요!"

"민폐라니까 진짜!"

"돌아보면 죽어 있을까 봐 전투에 집중이 안 돼!"

"이 자식들이...."

아우성은 한 층 커졌다.

"아랫사람들의 소리는 하늘의 소리라 하지요. 저희 트랑카벨 용기병들이 잠시 버티고 있을 테니 다녀오시죠."

"...일단 알겠습니다."

"혼자 가실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부축을...."

"그건 정말 괜찮습... 으흡... 괜찮... 습니다."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알론소는 창백한 얼굴로 일어섰다. 그리고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한다.

"바스쿠 병장이라고 했나? 후방 경비를 설 겸 중대장님을 모시는 게 좋겠네."

"알겠습니다. 갑시다 대장."

"으으...."

상처를 입은 알론소를 병원으로 보낸 후, 로용 드 말리크는 휘하 병력을 재배치한다. 주변 장교들에게 물으니, 심한 압박을 받는 방어지점이 네 곳 있었다.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각 지점에 파견될 소대를 지정한다.

"모두 살아서 보자!"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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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카벨 가문의 장녀이자, 현재 공식적으로 트랑카벨 군 의무대장 직함을 가지고 있는 아쥬흐 트랑카벨은 약과 붕대 등 의료품이 담긴 상자를 내려놓고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아롱드 트랑카벨을 도와 상단의 업무를 도왔기에 물자의 수집과 보관, 유통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사람을 다루고 조직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의무대의 편성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델로나 대학 동문들 중심으로 의료 인력을 고용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분명 의무대장 역할도 문제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전장이라고는 하지만, 안전한 후방이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어려웠다. 자신이 상황을 너무 쉽게 보았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전장에서는 대부분은 극단적이었다. 전혀 필요가 없거나, 매우 부족하거나. 모든 예상과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새삼스럽게 콘도티에레 에트의 대단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후방 지원 업무인 자신은 잠깐 판단을 실수하더라도 문제를 바로잡을 시간은 주어진다. 하지만 최전방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판단을 실수하는 순간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기울어져 버린 전황은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단 한 문제도 틀리면 안 되는 시험지를 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지 자체의 어려움도 어려움이겠지만 단 한 문제라도 틀리면 끝이라는 부담감이 신경을 갉아 먹을 것이다. 콘도티에레 에트는 대체 이런 긴장을 어떻게 매번 견디고 있는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 알았다니까!"

"...온 김에 제대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네그라타 용병대 소속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간호사들과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를 하고 왔는지, 용병들의 몰골은 안타까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미안하지만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소."

"잠깐 기다리시면 군의관님이 오실 거예요. 용병님 상처는 지금 중상이에요! 당장 조각을 제거하지 않으면 점점 파고들어서 출혈이...."

"더 심한 상처도 입은 적 있소! 붕대로 감아 두고 전투 후에 다시 오겠소."

"아 지금 피 흐르는 거 안 보이세요?"

무리해서 전장으로 돌아가려는 환자가 있는 모양이다. 불쌍한 사람들. 억지로라도 용맹하게 굴지 않으면 사회가 그들을 겁쟁이로 분류할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가슴이 아팠다. 아쥬흐가 팔을 걷으며 앞으로 나선다.

"무슨 일이죠?"

"아쥬흐 의무대장님! 여기 이분이 치료를 거부하셔서!"

"군의관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않소! 전장을 오래 비울 수 없으니...."

"의사라면 여기 하나 있네요."

"...에?"

"앉으세요."

아쥬흐는 나머지 소매를 마저 걷으며 의자를 가리킨다.

"하지만...."

"네그라타는 아쥬흐 트랑카벨의 명령은 따를 수 없다는 것인가요?"

"아, 아쥬흐 성녀님? 아니, 여자 영주님! 제가 무, 무례를...."

"이름이 뭔가요?"

"알론소 요페로 페레데즈, 중대장입니다!"

아쥬흐는 간호사가 준 뜨거운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아쉬운 대로 최소한의 오물은 닦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섬세하게 환부 주변을 살핀다. 보기에도 끔찍한 상처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끔찍하게 아플 텐데.

"빨리 돌아가야 한다니 서두를게요. 많이 아플 거예요."

"넵!"

"단검 집 입에 물어요."

경고하자, 알론소 중대장은 긴장했는지 흐읍 하고 숨을 들이쉰다. 이런 큰 상처를 입고, 허장성세를 부리면서도, 역시 아픈 건 싫은 모양이다. 오히려 다행이다. 인간다우니까.

아쥬흐의 어깨와 팔이 하얗게 빛을 내기 시작한다. 기프트 발동 반응이다. 하얀빛에 감싸인 아쥬흐의 손이 다른 도구도 없이 부서진 흉갑 조각을 뽑아내기 시작한다. 손이 닿을 때마다 알론소의 마른 근육이 움찔움찔 수축한다. 많이 아프기는 한지 이마에서 땀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반쪽 난 납탄 조각도 피부 안쪽에 박혀있었네요.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흐읍... 후우... 감사합니다, 아쥬흐 여자 영주님!"

"바늘 주세요."

"네, 의무대장님."

그녀의 손가락이 엄청난 속도로 실과 바늘을 이용해 상처를 봉합해 나간다. 순식간에 상처 부위가 막힌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탄성을 낼 정도로 엄청난 솜씨이다.

"많이 아팠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칼집에 이빨 자국이 났는데요."

"아니 이건...."

"붕대 주세요. 알론소 중대장님은 팔 들어주시고요."

환부에 붕대를 감는 모습도 거침이 없다. 순식간에, 탄탄하고 낭비 없이 붕대가 상처를 감싼다.

"여러분을 위험한 장소로 보낸 트랑카벨의 인간이 이런 말을 하는 게 가식적일 수도 있지만...."

아쥬흐는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연다.

"블랑독의 모두는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여러분도 부디 살아남아 주세요."

"명령 받들겠습니다!"

"명령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요청이에요."

"요청 받들겠습니다!"

알론소는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소리 높여 대답한다.

"다 됐어요. 이제 가셔서... 블랑독을 지켜주세요."

"옛, 아쥬흐 여자 영주님!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알론소는 각 잡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붕대 위로 누더기가 된 군복 상의를 입고, 구멍 뚫린 흉갑을 집어 들더니 방어 진지로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부축해서 왔던 바스쿠가 헐레벌떡 따라간다. 상처를 치료하고 붕대로 잘 드레싱된 것만으로도 한결 움직임이 편해진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힘을 얻은 모양이다.

"아니 성녀님한테 직접 치료를 받으신 겁니까... 아 내가 총을 맞았어야 했는데."

"재수 없는 소리 마라. 얼른 가자. 앞장서."

"알겠습니다, 중대장!"

그 순간, 전장 반대편에서 엄청난 총성과 포격음이 들린다. 이어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지르는 듯한 함성도 들린다. 이미 각종 소음으로 가득한 전장에서 똑똑하게 들릴 정도이니, 분명 엄청난 규모의 부대가 새로이 격돌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뭔가 시작된 것 같군요!"

"빨리 가서 우리 일을 마저 하자. 버티고 있으면 다른 아군들이 이겨 줄 테니."

"알겠습니다, 중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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