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30화 (130/556)

20-28. 샹다메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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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 완벽한 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음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는 혼란 통, 지빌링엔 반 연대의 지휘관 에르만 슈피리는 또 다른 판단을 강요받고 있었다.

"기병? 우익 쪽에서?"

"예, 천 명 이상으로 보입니다!"

"미쳤구만... 국왕이 보낸 군대라서 그런가? 그렇게 싸웠는데 저만한 병력이 어디서 또 튀어나온 거야!"

"정말 병력을 찍어 내기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정말 병력을 찍어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저들은 어딘가에 배치된 병력이며, 지빌링엔 연대나 슈토르히 연대 등, 갑작스럽게 돌출된 반격을 막기 위해 서둘러 불려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측익에서 기병대를 불러들였다는 것은 적도 슬슬 판돈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이겠지? 우리는 아군으로서는 잔돈이니까, 잘해 나가고 있다는 증거야."

"만약에 적 판돈이 충분하면 어떡합니까?"

"도박꾼이 상대 판돈 파악도 못 하면 죽는 수밖에 없지!"

"대장님 도박 잘하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지난주에 분명 저한테 다 털리셨지 말입니다."

"아, 이제 딸 때 됐다고!"

주변의 병사들이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고향에서부터 힘든 시간을 함께해온 동지들이다. 신분의 차이와 계급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서로 간의 신뢰는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이다.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서로 믿고 웃는다.

"포를 돌려 기병을 쏩니까?"

"아니, 포는 돌리지 않는다. 알골과 포수들은 지금도 바쁘니까 방해하지 말자고."

"그렇죠, 저희가 기병 막는 건 또 선수 아닙니까. 언제부터 포격 지원 받았다고."

"그래, 기병전을 준비한다!"

"기병전을 준비하라!"

그나마 조달 가능한 장대 무기를 최대한 조달한다. 장창부대는 물론이고,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거나 예비용으로 쌓여 있던 장전봉을 가져와서 단검을 칭칭 묶는다. 뾰족한 날붙이를 눈 앞에 들이미는 것만으로도 군마를 겁먹게 하므로 상당한 효과가 있다.

조금 전까지 임시 포술장 알골과 임시 포수들은 죽을 고생을 해서 겨우 6문을 포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고, 어설프게나마 포격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성전군의 포로 성전군 보병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있으니까, 방해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어차피 이제 와서 포를 돌리기는 늦었다. 죽어라 고생해서 포를 돌려 봤자, 초탄 발사부터 다시 해야 하는 풋내기 포수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적 기병들에게 유효한 화력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하는 거나 잘하는 게 낫기도 하다.

게다가 에르만은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반격의 `보조`이며, 슈토르히는 반격의 `중심`임을. 궂은일은 최대한 자신들이 하고, 맛있는 부분은 슈토르히에게 몰아준다. 적어도 자신들은 포병 진지라는 최소한의 방벽은 있다. 기병이든 보병이든, 덤벼오면 모조리 붙잡아 넘어뜨릴 뿐이다. 이대로 다른 부대가 활동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얼마만큼? 물론 필요한 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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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군 아퀴오슈 보병 연대의 절반, 후위 보병 연대는 중앙을 돌파해온 슈토르히 연대를 상대하기 위해 접근하고 있었다. 적진 한가운데라 그런지 유난히 똘똘 뭉친 슈토르히 연대의 진형에 맞춰, 좁고 종심이 깊은 대형을 갖춘 약 1천 명의 보병들이 창끝을 나란히 하여 천천히 접근한다.

"발사!"

타타타타탕!

성전군 거대한 대열의 측면에 배치된 총병들이 보다 먼 거리에서 사격을 시작했다. 대열을 교대하면서 조금씩 전진하며 사격을 반복한다.

지금 이들, 아퀴오슈 후위 연대는 위기에 빠져 있다. 다만 그들 자신도, 에티엔 드 크레이를 비롯한 지휘부도, 심지어 상대하는 슈토르히 연대도 이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크으윽!"

"맞은 놈은 뒤로 빠져!"

"대열을 유지해! 조금만 버텨라!"

아퀴오슈 연대가 하나의 거대한 창병 대열을 중심으로 측면에 총병들을 배치했다면, 슈토르히 연대는 보다 작은 중대급 창병대열을 바둑판 형식으로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 총병들이 배치된 형태였다. 에트가 중요하게 여기는 조합 배치가 반영된 결과였으며, 한 번에 훨씬 많은 총병들이 사격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발사!"

타타타타탕!

"으아아악!"

"커헉!"

"흐이이익!"

"발사!"

타타타탕! 타탕!

"흐윽...."

"악!"

"맞았어! 시발 맞았어!"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압도적인 밀도로 발사된 두 차례의 일제사격이 성전군 창병 대열을 뒤흔들었다. 슈토르히 총병들은 약 35미터까지 적을 끌어들여 비로소 사격했다. 사격에는 항상 진심인 첼레스티나가 가려 뽑아 혹독하게 훈련했던 숙련 총병들의 지근거리 일제사격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 것은 물론이었다.

밀집대형을 이루고 백병전을 준비하던 수많은 성전군 창병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후열의 창병들이 운 없는 동료들의 빈 자리를 채웠지만, 불과 몇 초간의 일제사격에서 발생한 대량의 사상자, 이동에 방해가 될 정도로 전열에 잔뜩 쌓인 사망자들, 부상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 무엇보다 조금 전까지 살아서 함께하던 수많은 동료가 순식간에 사망한 상황 그 자체가 무거운 부담이 되어 성전군 병사들의 어깨를 내리누른다.

게다가 현재 그들은 양쪽에서 쏴대는 포격에 완벽히 노출되어 있었다. 자신들의 보호를 포기한 지빌링엔 연대가 쏘아대는 6문의 포격 외에도, 샹다메리 언덕 위에 배치된 8문의 기마 견인포 역시 아퀴오슈 후위 연대를 노리고 있었다.

누가 집중 포격을 명령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측의 지휘관들, 포술장들이 본능적으로 `여기가 적군의 급소다!`라고 합의한 것 같았다. 지빌링엔의 임시 포수들은 실력이 부족해 연사속도가 느리고 명중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언덕 위의 기마 포병들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애초에 포격 성능보다 가벼운 무게나 운용 편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기마 견인포들이라, 거리가 멀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명중률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도 양방향 합쳐서 무려 14문,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화포가 1천 명 정도의 반쪽짜리 성전군 보병 연대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명중률이 형편없어 포탄 대부분이 성전군 보병 대열에 미치지 못하거나, 아예 넘어가 버린다. 운 좋게 대열에 명중시킨다고 해도 각도가 좋지 않거나 포탄이 운동 에너지를 많이 잃어버린 상태라 큰 피해는 입히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멀리서 보는 객관적인 시각일 경우에나 그렇다.

당사자인 아퀴오슈 후위 연대의 보병들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양측 합쳐 수만의 대군이 격돌하는 전장, 거기에 배치된 수많은 야포 중 절반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 심지어 그 중 여섯 문은 원래 아군의 포병 진지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더 중요한 다른 위협에 대처하게 위해서이기는 하지만, 이대로 포격을 뒤집어쓰며 견디는 것 말고는 대응할 방법도 없다.

아퀴오슈 후위 연대는 명백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상자가 늘어만 간다. 게다가 포탄에 맞은 사상자는 끔찍한 꼴이 된다. 대열에 빈자리가 생겨 채우려고 이동하다 보면, 어김없이 끔찍한 피투성이 시체가 발에 걸린다. 가뜩이나 포탄에 대열이 한꺼번에 쓸려 나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여 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끔찍한 시체, 공포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중상자, 버려지거나 부러진 무기 조각 따위가 발걸음을 늦춰 갈수록 대열 복구가 늦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살아있는 병사들의 갑옷에 튄 동료들의 피도 점점 늘어나 마치 무시무시한 모자이크 그림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언제 자신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생각에 병사들의 신경이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뭉쳐! 밀집대형이다!"

"창으로 벽을 쌓는다! 틈을 내 주지 마!"

성전군 장교들이 악을 쓰며 반쯤 정신이 나간 병사들을 다그친다. 그에 비해 슈토르히 연대의 대열은 고요하다. 그저 가지런히 창을 겨누고 기다릴 뿐.

아퀴오슈 후위 연대와 슈토르히 연대, 양측의 창병이 드디어 마주 선다. 슈토르히 총병들이 아군 창병들의 대열 사이로 빠져나가고, 빈자리는 후방에서 대기하던 창병 부대가 마치 블럭 쌓기를 하듯 딱 맞춰 보강했기 때문에 무작정 밀고 들어갈 빈 공간도 없었다. 양측의 창벽들이 딱 맞물려 서로를 밀쳐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슈토르히 연대의 선두 전열에는 몇 개의 `숙련병 조직`이 있다. 3인 1조의 창병들로 이루어진, 다른 연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직이다.

보통 창병의 미덕은 완벽한 제식 동작과 대열 유지, 그리고 쏟아지는 적의 화력에 아군 동료들이 쓰러지는 와중에서도 대열을 벗어나지 않는 강철과도 같은 배짱이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성전군의 창병도, 슈토르히의 창병도 제법 훌륭한 창병들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는 상식을 벗어나는 `장인`이라 불리는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슈토르히의 숙련병 조직은 바로 이런 `장창의 장인`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창벽에 섞여 적의 창벽을 맞이한다. 서로의 장창이 어지러이 얽히고 창대와 창대가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에 귀가 아프기 시작할 무렵에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랜 실전 경험으로 인해, 창끝의 흔들림만 봐도 상대의 숙련도가 짐작이 가는 눈. 그리고 창병에게는 상식이라고 할 수 있는, `장창은 무겁고 무게 중심이 불안해서 정교한 조작이 불가능하다`를 극복하고 창을 들고 고정한다, 밀치듯 내밀어 찌른다. 이상의 동작이 가능해지는 괴물과도 같은 손아귀 힘.

한계까지 한 가지 일을 반복, 숙달한 장인의 기술은 간혹 마법과도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평범한 창병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행동을, 이들은 태연하게 저질러 버린다. 창끝의 움직임을 보고 `호구`를 찾아낸 이들이 움직임을 시작한다.

3명의 조합 중, 2명이 각각 밀집된 2~3개의 창을 한꺼번에 쳐서 밀어낸다. 아무리 밀집대형이라고는 하지만, 물리적으로 사람 한 명 정도가 차지하는 공간에 뻗어질 수 있는 선두 창의 개수는 5개 안팎이다. 이렇게 2~3개의 창을 두 명이 걷어내면, 사람 한 명이 한 걸음은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마지막 한 명은 이 공간을 이용한다. 정확한 장인의 손길로 창을 뻗어 적병의 얼굴, 팔, 목과 같은 노출된 부위를 찌르는 것이다. 치명상이든 그렇지 않든, 정확하게 찔린 적병은 대열에서 탈락하게 된다. 또 다른 적이 그 자리를 채우면,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진다.

느리지만 이게 반복되면, 대열에 균열이 발생한다. 특정 지점에 시체와 부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후열이 느슨해지고, 공포에 질린 다음 병사는 전방에 나서기를 꺼리게 된다. 그렇게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좌우 동료들과의 균형이 깨진다. 그렇게 균열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마침 타이밍 좋게, 대열 중앙에 정확하게 포탄이 낙하한다. 비스듬한 측면에서의 사격이기에 한 번에 너무 많은 병사가 희생된다. 쇠로 된 구형 포탄이 튀고 구르며 병사들의 뼈를 부수고 살을 찢는다. 포탄이 근처를 쓸고 지나가기만 해도 병사들은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두려움으로 몸이 굳는다. 몸이 굳은 병사들이 전열의 공간을 채우는 게 늦어진다.

적 대열의 약화를 눈치챈 슈토르히의 창병 지휘관들이 조금씩 부대를 전진시킨다. 처음에는 반걸음, 다음에는 한 걸음이다. 겨우 한 걸음 반의 전진이 팽팽하던 균형을 완전히 부숴 버린다. 이미 사방에서의 스트레스로 한계에 도달해 있었던 아퀴오슈 후위 연대는 이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전열이 주춤주춤 물러나는 통에 대열이 어그러져 병사 간의 간격이 엉망이 된다. 심지어 아군의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무, 물러난다! 거리를 둔다!"

"각자 사이의 거리를 유지해!"

결국 견디지 못한 전위 중대장들이 후퇴 명령을 내린다. 그들이라고 후퇴를 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병사가 무단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대열 자체가 붕괴한다! 차라리 부대 자체가 물러나서 전열을 위한 공간을 주는 편이 나았다. 적의 공격에 부대가 붕괴하느니, 차라리 공간을 주고 부대 유지를 선택한 것이다.

어찌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지휘관들도, 그 명령에 따라 물러나서 간신히 한숨을 돌린 선두의 병사들도 알고 있다.

이것은 패배해서 도망치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병사들도, 지휘하는 장교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양측의 명백한 기량의 차이를 말이다. 양쪽 창벽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자 그 차이는 명백해진다. 방금 그들이 교전했던 좁은 공간에는 불과 몇 분간의 창병 방진 교전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은 숫자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게다가 그 절대다수는 성전군의 병사이다.

일방적.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어서, 슈토르히 연대의 대열에 변화가 생긴다. 마치 백병전이 벌어지기 직전처럼, 창벽의 일부가 뒤로 물러나 바둑판 형태로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후방에서 자전을 마친 총병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빛나는 총 끝이 가지런히 성전군을 향한다.

"으으으... 으아아!"

"히이이익!"

아직 총을 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양측의 창벽이 교전하기 직전, 두 차례의 일제사격.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던 트라우마가 아퀴오슈 후위 연대 병사들의 머릿속에 가득하였다.

두 달 간의 고된 훈련, 대륙 최강 엘랑키아 국왕군의 일원이라는 자부심, 신의 뜻을 위해 이단을 벌한다는 신앙심. 모두 소용 없었다. 한 번 적의 총구로부터 멀어지는 것 말고는 생각하는 게 없어진 병사들에게는 어떤 통제도 통하지 않는다. 성전군 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대열을 무너뜨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전 도주.

샹다메리 전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대열이 붕괴한 부대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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