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29화 (129/556)

20-27. 샹다메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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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적이 물러납니다!”

“무슨 일이지?”

지빌링엔 반 연대의 지휘관 에르만 슈피리는 갑작스럽게 적이 물러나자 당황했다. 이를 악물고 허세를 부리기는 했지만 적은 최소 세 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직접적인 교전은 시작하기 직전이었지만, 서로 첫 일제사격의 총탄이 오고 가면서 서로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금 양군 사이에 쓰러진 운 없는 병사들의 시체는 아직 식지도 않았다. 아직 서로 선두 전열의 창 끝이 부딪힐 정도의 거리, 이제 곧 달려들어 올 적을 상대할 각오를 마친 참인데···.

“추, 추격은··· 할까요?”

“지금 여기서 나갔다가는 다 죽을걸. 절대 안 돼!”

다가올 때처럼, 적은 천천히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지빌링엔 역시 아무도 다가가거나 적을 도발하지 않았다. 양측 사이에는 주춤주춤 물러서는 발걸음 소리와 전투를 각오하며 흥분한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장전을 마무리했어도 먼저 쏘지 않는다. 언제 더 필요한 상황이 올지 모르니까. 지금 누군가 먼저 쏜다면 엄청난 난장판이 되겠지. 그래서 긴장은 팽팽하다. 하지만, 쏘지 않는다.

“후우우··· 시팔, 십년감수했네.”

“왜지? 왜 오지 않고 그냥 가지?”

“나중에 머릿수 더 몰아서 오는 거 아냐? 불안하게.”

갑자기 긴장이 풀린 지빌링엔들이 떠든다. 방금 더한 포화 지옥도 뚫고 달려온 이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이 상황은 견디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확실히 이미 온 위기보다도 올지도 모르는 위기가 더 두려운 법이다.

“모두 5문이 포격 준비가 되었습니다. 대장님.”

“어어, 그래···.”

“어떻게 하죠? 물러가는 적에게 쏠까요?”

“아니, 아니 멈춰! 일단 보류하게.”

힘들게 점령한 포의 일부 포격 준비를 마친 알골 딘다르트가 보고 했으나, 에르만은 포격을 중지시켰다. 사실 에르만도, 알골도 확신이 없었다. 지금 물러가는 적에게 포격을 하는 게 유리한 일인지 말이다.

확실한 것은, 에르만과 지빌링엔 반 연대는 적진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에르만 대장님, 여기서 얼만큼 버티면 되는 겁니까?”

“더 버티지 않아도 될 때까지 아니겠나?”

“아하, 명쾌하군요!”

“그렇지.”

알골은 에르만의 대답을 듣더니 오히려 표정이 풀어졌다. 자신의 넓은 이마를 짝 소리가 나게 손바닥으로 쳤다. 오히려 망설임을 털어 버리고 평소의 유쾌함을 되찾은 것 같다.

“그럼 더 살릴 수 있는 포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래 주게.”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여기를 완전히 요새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포위당해도 그냥 죽을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대장님. 저희도 돕겠습니다.”

에르만은 절반은 경비를 세우고, 나머지 절반은 포병 진지를 좀 더 방어에 유리하게 옮기기로 했다. 흙을 담은 바구니와 통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엎어지거나 흙이 쏟아진 통에 다시 흙을 담는다. 네 방향 어디에서 와도 막을 수 있도록 적당히 배치한다. 몇 명은 근처에 있던 삽을 잡아 땅을 파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포병 진지는 전방에서 날아오는 포탄이나 총탄을 막는 데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밀도는 줄어들지만 조금이라도 버티는 데 유리해질 것이다.

예비 화약도 중심부에 조심스럽게 모아 뚜껑으로 덮어놓았다. 본래 실화 위험 때문에 화승총병은 포병 진지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은 섞여서 지킬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한꺼번에 점화되어 날아가면 그거야말로 어쩔 수 없고.

“기병이 오면 어떻게 합니까?”

“후··· 골치 아프네.”

기병이 가장 큰 문제였다. 창이 충분하면 똘똘 뭉쳐서 사각 대형을 짜면 될 텐데, 지금 창의 숫자가 100자루도 되지 않는다. 사면을 다 지키기에는 터무니없이 양이 적었다. 특성상 오히려 띄엄띄엄 배치하면 안 배치하느니 못하다. 당장 조금 전에도 에르만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적 창병을 쉽게 제압하지 않았던가.

“일단 망가진 포가라도 세워 두면 엄폐물이 되겠지”

“알겠습니다.”

일단 뭐라도 말이 부딪힐 만한 거리가 있으면, 그 앞에 있든 뒤에 있든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다. 아니, 최소한 말에 치이는 것은 피할 수 있다. 말이나 기수나 부딪히는 것은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와서 창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는 것까지 막지는 못하겠지만.

“시팔, 여기서 살아 돌아가면 우리 다 영웅 되는 거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너희도 알지? 우리 계약서 트랑카벨 여자 영주님이 써 주신 거.”

“죽은 놈한테도 석 달 치 월급 주신다는 그거 말입니까?”

“그래. 죽은 놈한테도 위로금이라고 석 달 치 주는데, 여기서 어떻게든 버텨서 이기면 보너스는 확실하겠지?”

“뒤져도 돈 받고 뒤지는 게 낫긴 하죠!”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어차피 용병, 목숨을 내어놓고 사는 자들이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도 이상하게 분위기가 밝다. 모두 방어 진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도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대장님! 잠깐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지금 갈게.”

경계를 서던 병사 중 하나가 에르만을 부르러 왔다. 진지 외곽으로 가 보니, 경계를 서던 장교가 손가락으로 저 멀리, 그들과 싸우다 물러선 적 보병 부대를 가리킨다. 그들은 방향을 바꿔 재정렬하고 있었다.

“저기, 아군이 적진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걸 막으려고 적이 후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뭐? 저게 아군이야? 무슨 수로 뚫고 나왔지!”

“저도 어이가 없습니다만 확실합니다. 저기 하얀 새 깃발 보이십니까?”

“슈토르히였나··· 콘도티에레의 정예 용병대로군.”

“저희가···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에르만은 고민에 빠졌다. 하긴 자신들도 기습적으로 적 대열을 뚫고 나왔으니, 슈토르히 연대 역시 돌파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무튼 콘도티에레의 신묘한 지휘니까 뭔가 했겠지. 확실한 것은, 저들이 자신들에게 올 적군을 끌어들였기에 안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의적으로라도 도와야 하지 않을까. 숫자가 적어 정면 승부는 어려워도 측면 공격이라면···.

‘적 한가운데에 돌입해서 포대를 점거한다. 그리고 포를 돌려 적을 저격하며, 역으로 아군이 점거한 포대를 지킨다.’

하지만 또 다른 임무도 있다. 하지만 포를 돌려 저격할 수는 있겠다.

“...우리 임무는 이 포병 진지를 지키는 것이다. 포를 돌려서 지원한다! 알골 경을 불러주게!”

“알겠습니다. 대장님.”

적의 포대를 점거, 적의 포를 돌려서 적을 쏜다. 가능하면 실행하기로 했지만, 실제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자마자 적의 대포들을 망가뜨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포격 준비해 주게, 알골!”

“알겠습니다!”

경계병들이 자리를 비키고, 그 방향을 향해 포들이 방열하기 시작했다. 모두 여섯 문, 포수 역할을 맡은 지빌링엔 용병들이 끙끙거리며 밀고 당긴 끝에, 모든 포가 사격 위치에 도달했다. 임시 포술장인 알골을 포함하여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부분 포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야 했지만, 제대로 쏴 보는 것은 몇 년 만인 것이다.

“초, 초탄을 관측해야 하니, 1번 포부터 발사한다!”

“예!”

“1번포, 발사!”

콰앙!

성전군의 대포가, 성전군 보병 대열을 향해 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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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전장에 띄엄띄엄 들리는 낯선 포성이 추가되었다. 게다가 포성이 그리 멀지 않았다. 성전군 사령관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은 깜짝 놀랐다.

“뭐지? 누가 쏘는 건가?”

“점령당한 포대! 점령당한 포대가 발포했습니다!”

“뭐라고? 대체 누가! 설마 적 보병들이?”

“그,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포수들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아···.”

이럴 줄은 몰랐다. 적이 포대를 빼앗았다면, 되찾으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적은 아마 포를 못 쓰게 만들기 위해서 못을 박아 망가뜨렸을 테니 그 이상의 위협은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귀신같이 포 몇 문을 남겼던 모양이다. 이 포성은 다섯 문··· 여섯 문인가?

“좌익의 기병, 베리브 드 퐁투베 경의 소식은 아직인가?”

“바, 방금 농장을 돌아 나타났습니다! 저, 저쪽의 모래 먼지입니다.”

“좋아, 전령을 보낸다!”

“어, 어떻게 보낼까요?”

“적에게 점거당한 포대를 재탈환하라! 가능하다면 포대를 재가동하라!”

“알겠습니다!”

지금 복귀하고 있는 기병대, 퐁투베 연대는 1500기의 기병으로 이루어진 정예군이다. 게다가 지휘관인 베리브 드 퐁투베 자작은 다름 아닌 다고베르 2세 국왕을 직접 모시는 왕실 근위기병연대의 연대장이다. 한마디로 엘랑키아 최고의 기병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우익의 마렘 드 모르뷔셀 공작도 대단한 기병 지휘관이지만, 단일 연대의 전투력으로는 퐁투베 연대를 최고로 생각하고 있었다.

“고, 공작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대단히 망설임과 떨림으로 가득하였지만,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한 마디였다. 의외의 목소리. 다름 아닌 에티엔 공작의 부관 마셸 드 라글랑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지? 뭐든 말해도 좋아.”

“가, 감사합니다, 공작님.”

그러고 보면, 자료 준비 등 보조 업무에만 치중했기에, 전투가 시작되고 마셸의 역할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그만큼 큰 결심이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아군 포대를 점거한 적 보병 말입니다. 생각만큼 위협적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군.”

“모두 여섯 발의 포성이 있었고, 그러니까··· 각 포성 사이의 간격이 고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 포대의 야포들은 비교적 소형, 제대로 된 포병이라면 지금쯤은 두 번째 발이 발사되었어야 합니다!”

“흐음···.”

“또한, 발사된 여섯 발도 거의 다 빗나갔습니다.”

마셸의 말을 알 것 같았다. 적은 포를 다루고는 있지만, 말 그대로 간신히 다루기만 할 뿐이다. 포에 익숙한 진짜 포병은 아니라는 이야기겠지.

“저,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아군 포대가 점령당했던 심리적 충격에 비해서 실질 화력은 적은 편입니다! 그, 그러니···.”

“음, 말해 보게! 듣고 있으니.”

“지원하러 오시는 베리브 경의 기병대는 일부만 포대 탈환에 투입하시고, 나머지는 적 보병의 제압에 나서면 어떨까 하고···.”

“...좋은 생각이군. 그렇게 떨지 말거라.”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확실히 마셸의 말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포대를 점거한 적 보병의 숫자는 200에서 300명 정도이다. 하지만 나름 강한 결의와 방어 진지를 이용해 저항할 테니, 한동안 1500기의 기병 전체가 묶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일부만 떼어 이들이 포격을 못 할 정도로만 방해하면서 나머지 병력으로 방어선을 돌파해 새로 튀어나온 적 보병을 공격시킨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다.

“마셸, 네 의견을 채택하겠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직접 전령에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겠나?”

“예? 옛!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령을 불러주자, 마셸이 방금 에티엔에게 설명한 내용을 간결하게 다시 설명한다. 전령이 곧 정정 명령을 가지고 새로 지원오는 기병, 퐁투베 연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저희 형님, 드 라글랑 소 후작은 기병과 보병 운영을 공부하고 계십니다. 그럼 못난 동생이지만 형님의 도움이 되고 싶어서 베르마유의 포병 교관에게 잠시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인가! 그건 몰랐군.”

“수,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관 역할에 도움이 되는 경험은 아니라서···.”

부끄러워하는 부관을 보며, 에티엘은 자신도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오죽하면, 이 소년 귀족이 용기를 내어 자기 의견을 말하게 되었겠는가. 자신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렇겠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소년 부관의 의견이 채택되어, 성전군 후방에 있는 두 부대의 입지가 더 위험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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