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샹다메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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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개시 명령? 콘도티에레께서 직접? 알았어요.”
수석 포술장을 맡고 있던 첼레스티나 델 캄포브레소는 전령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있던 트랑카벨 군 및 드 누아 군 보병 장교들도, 다른 포대를 지휘하던 포술장들도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한다. 사실 진작부터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근본적으로 조금 전 지빌링엔 용병들이 했던 결사적인 돌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규모만 조금 더 클 뿐. 전방에서 싸우던 트랑카벨과 드 누아의 보병 연대들이 문을 열어준다. 적이 그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든, 놀라서 어리둥절해하든, 코앞에 포병들을 늘어놓고 일제사격, 물리적으로 대열을 뚫어버린다.
그다음으로 기다리던 슈토르히 연대가 그 틈으로 뚫고 들어간다.
아, 물론 다소 다른 점도 없지는 않다.
“이제 드디어 슈토르히 차례가 왔네?”
“그래, 첼레스티나.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네. 부럽지?”
“응응, 아니야. 나는 콘도티에레 곁이 더 좋은걸.”
“총병 녀석들이 그리워하고 있던데 말이야.”
“아까 보니까 나 없이도 잘하고 있던 데 뭘. 역시 내 부하들이야!”
첼레스티나와 크레시미르 두브람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킥킥댄다. 두 사람은 모두 슈토르히 연대의 선임 중대장들이다. 첼레스티나는 총병대를, 크레시미르는 돌격대를 총괄한다. 첼레스티나는 오랫동안 부대를 떠나있었지만, 여전히 슈토르히 소속임을 잊은 적은 없었다. 콘도티에레의 직속 부하들이라는 자부심을 잊은 적도 없었고.
곧 트랑카벨과 드 누아 장교들이 각자 부대의 보고를 듣더니, 두 사람에게 전달한다. 모두 긴장으로 굳은 표정이다.
“슈토르히 연대 분들, 저희는 준비가 다 됐습니다.”
“아, 고마워요. 크레시미르, 너도 얼른 돌아가!”
“알았어.”
크레시미르가 슈토르히 연대의 대열로 돌아간다. 슈토르히의 선두는 창병들이다. 이동을 위해 전원이 창을 수직으로 들고 있다.
“제가 신호해도 될까요?”
“옛, 수석 포술장님.”
“네에, 그럼 셋을 세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첼레스티나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손을 들었다.
“셋!”
트랑카벨 장교와 드 누아 장교가 긴장한 얼굴로 옆으로 비켜선다. 이제 둘의 명령은 릴레이 형식으로 최선두를 지휘하는 전방 장교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혹시라도 알아듣지 못해서 이동이 늦어지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둘!”
포병들은 평소보다 포에 가까이 붙어있다. 이건 안전상 피해야 할 일이지만, 이번 작전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한가운데 2문은 적진에 대해 수직으로, 좌우에 각각 2문은 부채꼴 모양으로 중앙을 향해 꺾여 있다. 즉, 양쪽 끝 대포들의 사선은 적진 한가운데에서 교차하게 된다. 만약에라도 아군에 대한 오사를 줄이고 중앙의 적에게 철저한 지옥을 보여주기 위한 배치였다. 장갑을 낀 포수들이 점화구를 손으로 막고 있었다. 앞에 배치된 아군이 비키기 전에 발사하면 끔찍한 일이 생기니까, 이를 막으려는 조치였다.
좁은 장소에 포병들을 배치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밀집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사고로 인한 자폭이라도 생기면 끔찍한 일이 생기겠지만, 가장 상태가 좋은 포에 실력 좋은 포수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사격 이후 충분히 쉬었기에, 완전히 식은 상태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
“하나!”
이제 정말 시작이다. 돌이킬 수 없다. 아군에게도, 적군에게도.
“지금이에요!”
장교에게서 전령에게, 다시금 전방 장교에게 명령이 전해진다. 트랑카벨과 드 누아의 보병 대열이 마치 커튼이라도 열리듯이 좌우로 벌어진다. 일부 병력은 뒤로 빠지고, 일부 병력은 측면으로 움직이면서 다른 아군과 아군 사이로 파고드는 복잡한 기동이다. 게다가 긴 창이 자리하고 있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훈련을 충분히 받은 트랑카벨 군이 더 많이 움직였고, 드 누아 군은 조금만 움직였다. 그렇게 갑자기 공간이 생겨난다.
“무슨 일이지!”
“전진입니까? 전진합니까?”
얽혀있던 눈앞의 창벽이 갑자기 사라지자 이번에도 성전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싸워야 하는데 싸울 상대가 사라져 버렸다! 명백하게 자기들이 밀어내서 도망친 것도 아니다. 그냥 눈앞의 수십 명이 그냥 없어진 것이다.
“앞에 포병이다!”
“쏴! 쏴버려!”
탕! 타탕!
창병들 사이에 끼어있던 소수 총병들이 사격했다. 하지만 미리 이 상황을 위해 준비했던 것이 아닌지라 장전된 상태인 총병은 많지 않았다. 총알이 몇 발 스치고 지나갔지만 첼레스티나와 포병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점화구 개방!”
장갑 낀 손으로 점화구를 막고 있던 포수들이 손을 떼었다. 일부러 시간을 들여 촘촘한 밀도로 화약을 재어 놓았다. 평소보다 양은 조금 적을지 몰라도 점화 속도도 빠르고 위력은 확실할 것이다.
눈앞을 보호해주던 창병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앞이 확 트였다. 적이 뿜어내는 열기, 악의와 살의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포병으로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가까운 거리의 적 얼굴. 안녕, 반가워. 놀랐니? 이제부터 너희에게 끔찍한 짓을 할 거란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생각을 하며, 첼레스티나의 손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발사!”
뻐버벙!
여섯 문의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조금 전까지 트여 있던 눈앞이 뿌연 연기로 가득해 시야가 막혔다. 당연히 표적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사치 따위는 부릴 틈이 없다. 물론 표적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겠지. 안 봐도 알 수는 있지만. 포격 직후 반동으로 덜커덩하고 밀린 포가가 운동에너지를 낭비하고 멈추자마자, 포수들이 다시 달라붙어 붙잡는다.
“움직여!”
포수들이 포가 끄트머리의 손잡이를 붙잡고 끌어당긴다. 이후 뛰쳐 나갈 슈토르히의 진격로에서 치우려는 것이다. 미리 훈련받은 대로, 양쪽 모서리의 대포부터 차례대로 비스듬히 뒤편으로 빠져나간다. 다행히 소형 경량의 야포였기에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슈토르히이~ 맡길게! 출동, 출도옹!”
“전진!”
첼레스티나의 날카롭고 높은 외침에 이어, 전방을 살피던 크레시미르가 신호하자, 슈토르히 연대가 힘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는다. 달리지 않는다. 그저 아군들이 고생고생하며 그들을 위해 열어준 길을 통해 굳건한 발걸음을 옮기며 나아간다.
포격 직후, 포를 치우지도 않고 뛰쳐나갔던 조금 전의 지빌링엔 용병들과는 다르다. 단순히 슈토르히가 점잖거나 숫자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바로 역할이 다른 것이다.
“전진! 가자!”
“하아!”
굳건하게 발소리도 맞춰가며 전진한 슈토르히 창병의 선두 전열이 나지막한 돌담을 넘는다. 이 샹다메리 언덕에서부터 벨로통 농장에까지 이어진 돌담은 마치 아군과 적군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선과도 같았다. 언덕을 넘은 창병 전열이 수직으로 세워진 장창을 수평으로 겨눈다. 마치 한 명이 하는 것 같은, 허공에 줄이라도 붙잡아 놓은 것 같은 완벽한 동작.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일부러 저것만을 위해 무의미한 연습을 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완벽한 동작이다.
그대로 규칙적인 발소리를 내며 전진해 나간다. 대포 여섯 문의 일제사격에 찢겨나간 적병들의 흔적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아직 살아있는 적병들을 위협해 쫓아내면서.
좁고 세로로 긴 창병 대열이 지나가자, 그 뒤를 잇는 것은 총병들이다. 창병들과 완벽하게 같은 보조를 맞추며 대열을 이루어 뒤를 따른다. 대놓고 적진 한가운데를 행군하는 것이다. 선두의 창병들이 창을 겨누고 정면과 측면을 위협하면서 나아갔다고는 해도, 적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반응하지 못한다.
성전군 보병 중에는 신병들이 많았지만, 신병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장교 중에는 일부러 왕실군에서 파견해 온 베테랑 장교들이 많았다. 태생 신분은 낮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국왕을 섬기며 전장에서 싸워왔고, 그 충성심과 실력을 증명해 신분을 보장받은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슈토르히의 대담무쌍한 기동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헷갈리는 것 같았다.
보통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보병 대열이 충분한 깊이와 공간을 두고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사방 어느 쪽에서의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으며, 다소 사상자가 발생하더라도 대열이 약해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심지어 한쪽에 사상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해 결원이 늘어나도 대열의 나머지 부분에서 보충하여 유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일부만 돌출되어서는 의미가 없다! 비상식적이다! 잠시 기세를 올리더라도, 제대로 된 대열을 만들기 전에 예비대에 두들겨 맞아 패퇴할 것이다. 대열을 만들기 전에 예비대로 누르고, 좌우의 성전군 보병 연대들이 누르면 돌파구를 통해 나온 실처럼 가느다란, 대열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현재의 대열은 곧바로 붕괴할 것이다. 성전군 보병 연대는 트랑카벨 군의 정규 연대에 비해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전방의 전선을 유지하면서도 병력을 뺄 여력이 충분히 있다.
예비대로 대열을 갖추는 것을 방해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포위망이 형성된다. 무모하게 튀어나온 적군을 포위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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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오슈, 아퀴오슈 후위 연대에 전령을! 포대는 무시하고 정면에서 돌출된 적 보병을 공격해라!”
“아, 알겠습니다 공작님!”
성전군 사령관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막 마지막 예비대를 보낸 직후에, 반드시 예비대가 필요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했지? 아퀴오슈 연대를 쪼개 썼어야 했나? 좌익에 너무 많은 병력을 집중했나? 기병 활용에 너무 소극적이었나?
애초에 전방 보병 연대들이 두 군데나 적의 돌파를 방치한 것이 문제였다. 애초에 적에 비해 적어도 1.5배에서 2배에 가까운 전력을 가진 보병 연대들이 전투 지경선을 공격당했다고 적을 내보내 버리다니! 이건 그들 잘못이기도 했다. 답답하지만 그래도 지휘관들을 불러다 혼낼 수도 없는 문제다. 우선은 해결해야지.
물론 적이 대열을 돌파해서 아군 후방에 나타났다는 것은 문제이기는 하나, 아직 승패가 갈릴 정도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다. 성전군 각 보병 연대는 충분히 훈련받아 모든 방향에서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 설령 일시적으로 전방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선형으로 변경한 상태일지라 해도 상황에 맞게 대열을 변경하면 후방 압박에 대응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수적으로 우세라는 점은 이런 외부 공격에 대응하기 쉽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공성포 포대에도 전령을! 전방에 새로 포진하기 시작한 적군을 새로운 목표로 포격!”
“알겠습니다 공작님!”
쓸 수 있는 카드는 모조리 쓴다. 적이 또 다른 카드가 남아있으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분명 적도 한계일 것이다. 여기서는 비슷하게만 싸워주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만 시간을 벌면 좌익에 집중된 아군 주력 보병이 분명 성과를 낼 테고, 기병대가 귀환해서 적을 압도할 것이다!
현재의 혼란은 적이 의도한바, 휘말리면 안 된다. 종합적으로는 아군 전력이 우위이다. 혼란 속에 병력과 체력을 잃어가는 것은 양쪽이 마찬가지이다. 특히 수적으로 열세인 적들은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
휘말리지 말자.
포대를 점령한 적은 아마 포를 못 쓰게 만들기 위해서 못을 박아 망가뜨렸을 것이다. 포대를 점거한 적군은 이대로 방치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기습적인 공격에 선수를 빼앗겨 버렸지만, 그 숫자는 겨우 200에서 300정도. 평원으로 나와서 보병 대열 간의 힘 싸움을 한다면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전방의 새로 등장한 적에 비하면 위협도는 낮다. 차례대로 처리하자.
에티엔 드 크레이는 진정하고 상황을 하나씩 해결하기로 했다. 이제 곧 기병들이 도착한다. 그것도 국왕 다고베르 2세 형님 폐하가 인정한 근위대장이 이끄는 엘랑키아 기사들이다. 비슷한 수의 보병들이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어도 얼마든지 밀어버릴 수 있다. 시간은 성전군의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