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샹다메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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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립니다, 포병대 여러분!”
“맡겨 주세요. 어려운 길 가시는데, 축포 정도는 끝내주게 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지빌링엔 반 연대 지휘관, 에르만 슈피리는 전방으로 포를 밀어 움직이는 포병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전투준비를 갖춘 330여 명의 부하들이 보인다.
“각자 역할은 잘 숙지했나!”
“옛, 대장님!”
“그래, 이제 와서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에르만은 잠시 말을 멈추고 부하들을 둘러본다. 대부분이 고향 친구들이다. 산골 영지 뮈다켄. 찢어지게 가난한 고향 마을이 생각난다. 특산물이라고는 사지 튼튼한 용병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척박한 지역. 그래도 에르만과 동료들이 최근 보낸 봉급으로 조금은 상황이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약하다! 정규 연대와 싸우면 잠시도 버틸 수 없겠지!”
정규 연대를 편성할 만큼 규모가 안된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이 때문에 어중이떠중이로 남의 부대에 끌려가 궂은일이나 해야 했고, 옛 지빌링엔 용병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피 흘리는 흑곰의 명성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새로운 승리의 쐐기를 박는, 우리밖에 못 하는 일이다! 모두 알고 있지?”
“옛!”
“피 흘리는 흑곰을 위해서! 뮈다켄을 위해서 싸우자!”
“알겠습니다!”
“그럼 전선으로 가자!”
지금까지 2선에서 머물러 있던 지빌링엔 용병들이 돌격을 위한 위치로 이동한다. 그들의 무기를 잡은 손, 단단한 땅을 딛는 발걸음에 힘이 넘친다. 트랑카벨 군 후위대들이 그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다.
“잘 하고 와라!”
“꼭 살아서 돌아와!”
“적 별거 아니라고!”
동맹군 병사들의 환호와 격려를 들으며, 지빌링엔 용병들이 대열을 갖추었다.
트랑카벨 군 소속의 제15 델레망드 보병 연대와 제22 몽세나 보병 연대의 전투 지경선이 있는 부근, 지빌링엔 용병들의 가늘고 긴 대열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의 앞에는 4문의 야포가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포격을 준비하고 있다.
포술장들과 트랑카벨군 보병 장교들이 무언가 논의하고 있었다. 아마도 길을 열어줄 적절한 시기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공격이 시작된다. 지빌링엔 용병들은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장교들이 뭔가 부하들에게 손으로 신호하더니 좌우로 비켜선다. 포병들은 반대로 그들이 다루는 대포에 바짝 붙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제 드디어···.
“지금이야!”
누군가의 외침이다. 장교들 중 하나겠지, 그 직후, 선형 대형으로 대열을 지키고 있던 트랑카벨군 대열이 휙 하고 좌우로 밀려난다. 결국 밀집대형을 갖춘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니 마술처럼 갑자기 사라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치열하게 창대를 얽고 있던 적병들이 당황해서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는 매우 빨랐다.
갑자기 눈앞의 적이 사라지자, 성전군 병사들은 잠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적을 밀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적이 사라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전진하나? 아니면 여전히 전투 중인 주변의 아군과 보조를 맞춰야 하나? 그보다 지금 정면에는···.
“으하아악!”
뻐버벙!
모습을 드러낸 4문의 야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중앙의 2문은 통상적인 주먹만 한 철제 탄, 그리고 좌우에 비스듬히 배치된 2문은 산탄이다. 2개의 커다란 쇠구슬과 수십 개의 보다 작은 납구슬이 성전군 보병 대열에 선명한 피빛 균열을 만들었다.
명령이 필요 없었다.
포성이 신호였다. 포격의 반동으로 뒤로 밀려난 대포가 미처 멈추기도 전에, 지빌링엔 용병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공간이 좁은데 방해물인 발사 후의 대포까지 있다. 조심스럽게 줄을 맞춰 달려 나간다. 뜨겁게 달구어져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대포를 지나, 조금 전까지 창병간의 전투에서 반쯤 무너져내린 돌 담벼락을 뛰어넘는다.
“으아아아아!”
“끄으윽!”
심각한 상처를 입고 피 칠갑을 하여 고통에 몸부림치는 적병은 상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할 일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바로 앞에서 발사되었던 포탄들은 아주 일을 잘했다. 종심이 깊은 대열 깊이까지 파고들었고, 복부나 가슴에 무시무시한 관통상을 입은 성전군 병사들의 시체가 겹겹이 누워있었다. 좌우로 쏟아진 산탄에 당한 끔찍한 시체들이 잔뜩 보이는 건 물론이었다.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셔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철퍽철퍽 소리가 난다. 피와 진흙 이외에 다른 뭔가가 섞여 있는 것도 같지만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선두에서 달려가던 에르만 슈피리는 갑자기 눈앞의 동료 ‘십여 명’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창병을 발견하고 검을 양손으로 잡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동료의 피가 점점이 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만 바들바들 떨고 있던 적병이 고함을 지르며 장창을 겨눈다. 그대로 양손으로 창대를 내려친다. 탄력 있는 창대가 흙바닥에 튕기자, 재빠르게 창대를 밀쳐내고 거리를 좁힌다. 4미터가 넘는 장창이다. 무게중심도 좋지 않아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이 고작으로, 기민하게 움직여 적을 겨누고 찌르는 등의 행동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다수가 밀집대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장창 한두 개는 피할 수 있으나, 세 개 네 개, 그것도 열 개 이상씩 겹치면 어지간해서는 뚫고 지나갈 수 없다. 게다가 좌우에 그 이상으로 수많은 뾰족한 쇠붙이가 나를 겨누고 있다면 위축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을 다 잃고, 그들이 흘린 피바다 속에 홀로 선 창병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서둘러 창을 던져버리고 검을 뽑으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커허억, 끄으으윽!”
에르만이 그대로 적병을 밀쳤다. 덜커덕하며 서로의 흉갑이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낸다. 바로 다음 순간, 에르만의 칼끝이 적병의 빗장뼈 바로 위쪽에 꽂혀 있었다.
“이야아아아!”
“크으윽! 이 새끼들 뭐야!”
“막아! 막아라!”
서로의 무기가 뒤얽힌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만큼은, 숫자나 기세나 지빌링엔 병사들이 우세하다.
“막기는 뭘 막아 시발!”
“허어억!”
포격에 이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피 흘리는 흑곰, 지빌링엔 용병들은 완벽한 ‘정면 기습’에 성공했다. 포격으로 발생한 균열에 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쐐기처럼 뚫고 들어가 오히려 더 넓게 벌리고 있다. 갑자기 뛰쳐나온 330명의 성난 흑곰들의 기세에, 무너져내린 대열을 복구하려던 예비대가 밀려난다.
하지만 이게 목표가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더 뒤에 있는 ‘저것’이다.
에르만은 허공에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낸 후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거칠게 돌파해온 부하들은 어깨로 숨을 몰아쉬고는 있었으나 지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 산골짜기에서 평생을 살았던 청년들이 이 정도로 지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승리를 위해 피를 흘려라!”
“피를 흘려라!”
여전히 함성만은 쩌렁쩌렁하다.
“으아아아아아!”
“돌겨억!”
“이야아아아!”
지빌링엔 용병들의 2차 돌격이 시작된다. 적을 뚫어낸 그 지점에서 더 안쪽, 적의 핵심부로 돌진하는 것이다.
목표는 바로 전방의 적.
성전군의 포병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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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오슈 연대에 전령을! 최우선 명령이다!”
“후, 후위의 아퀴오슈 연대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우익의 적과 싸우는 부대이겠나!”
성전군 사령관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은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참모 장교가 움찔하며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난다.
역겨웠다. 자기 제어도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른 자신이 못 견디게 역겨웠다. 이런 ‘꼰대’ 귀족들이 싫었는데. 지금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에 저 불쌍한 참모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인가. 그런다고 화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참모의 태도만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안좋은 영향을 미칠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적이 갑자기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 하필이면 예비대의 일부가 자리를 벗어난 사이에··· 만약에 아퀴오슈 연대 전체가 언덕에서 내려온 적을 막기 위해 갔으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길 뻔 했다.
아니다··· ‘하필이면’이 아니다. 분명 적장이 이걸 유도했겠지. 굳이 말하자면 성동격서, 언덕에서 내려오며
전장에 우연은 없다고 생각하자. 다 적이 유도한 것이고, 예측하지 못한 자기 잘못이다.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도 잘못까지는 아니다. 대응만 하면 된다.
“아퀴오슈 후위 연대가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알겠다.”
창을 수직으로 세운 채, 서둘러 남동쪽으로 달려간다. 갑자기 튀어나온 소수의 적을 막기 위해서. 어차피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다. 지금 포병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모양이지만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아퀴오슈 연대에 의해서 금방 진압당할 것이다. 게다가 포병대는 현재 적절한 표적이 없어서 대기중이었다. 잠시 함락당하고, 대포가 파손당하더라도 나중에 수리하면 된다.
오히려 적의 다음 수가 걱정되었다. 뭔가를 하려고 할 텐데, 그게 무엇일지.
“전진, 전진!”
보병들이 사령부 바로 근처를 지나간다. 힘찬 호령 소리가 이어진다. 전투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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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써버린 화승총을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달려가던 지빌링엔 용병이 몸이 반쯤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화승총이 흙바닥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덜어진다. 왼 다리 무릎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방금 바닥을 치고 날아간 포탄이 쓸고 지나간 흔적이다.
“크흐으윽, 크악!”
병사가 엎드려 무릎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지만,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아니, 도울 수 없다. 여기는 지금 적진의 한 가운데, 심지어 적 포대의 정면이다.
“으아아아아! 달려! 달려!”
“개새끼들아아!”
“흐이익!”
모두가 제각각의 고함과 비명을 지르며, 얼마 되지 않는 포대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악을 쓰며 달린다.
탕! 탕!
“윽!”
포대를 지키던 소수의 보병이 사격을 시작한다.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맞아줄 수 있었다. 어차피 조준도 부정확했다. 이제 몇십 미터 안 남았다. 에르만 슈피리 역시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검을 더 높이 치켜들고 붕붕 돌렸다.
“가자! 가자고!”
“뮈다켄!”
헐떡대면서도 에르만의 호령에 응답한다.
“여기···.”
쾅!
촤자자자작!
순간 에르만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의 귀에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호수 위에 세찬 비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
넓적한 철판을 쇠망치로 깡깡 두드리는 듯한 소리.
한겨울의 마른 나뭇가지가 꺾이는 듯한 소리.
이 모든 소리가 동시에 들리고, 뜨거운 바람이 확 하고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쩐지 오른쪽 뺨과 어깨가 따갑고 화끈했다.
“아 이게 무슨···.”
산탄이었다. 쏘는 걸 보기만 했지, 이런 꼴이 나는 줄은 몰랐다.
무수히 많은 쇠구슬이 흙바닥을 두드린다.
무수히 많은 흉갑을 뚫어 버린다.
흉갑으로 보호되던 몸통에 박힌 구술들은 뼈를 꺾어버린다.
이 모든 소리가 동시에 폭발적으로 들리자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것 같았다. 이게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광경인가!
“으으, 으어아아아!”
오른팔이 없어지고, 오른 다리의 바지 부분이 피로 축축하게 젖은 병사가 포효한다. 그 상태로도 걸어보려고 발걸음을 옮기지만, 그대로 피로 적셔진 바닥에 얼굴을 떨구고 만다. 피와 침, 흙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적진을 보고 울부짖으며 다시 일어서려 안간힘을 쓴다. 에르만은 자신도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
“대장 멈추지 마십쇼! 가야됩니다!”
“비, 빌어먹을!”
“가서 복수를 합시다!”
“젠장! 시바알!”
동료들을 독려하기 위한 외침도, 용기와 호전성을 보여주기 위한 외침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공포에 질린 자신을 보이기 싫다는 데서 억지로 나오는 발악에 가까웠다. 전투 함성이라기보다 차라리 정신이 나간 인간이 지를 법한 기성.
“죽여버린다 개새끼들!”
에르만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2초 정도 멈췄었나, 이미 다른 병사들이 앞서나가고 있었다. 이제 적의 포병 진지까지는 20미터도 남지 않았다. 얼굴이 시커먼 매연에 절여져,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이쪽을 보며 악을 쓰는 얼굴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제 정말 도착했다. 쏠 테면 쏴 봐라! 배 속에서 나오는 분노가 말이 되지 않는 괴상한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온다.
“흐아아아아!”
적의 포격을 막고자 하는 흙으로 담긴 바구니는 돌격해오는 보병을 막는 데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대로 포대를 타고 넘는다. 고함을 지르고, 검을 치켜든 채로.
경악한 적병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