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22화 (122/556)

20-20. 샹다메리 전투

성전군 우익 기병 지휘관, 마렘 드 모르뷔셀 공작은 적군이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샹다메리 언덕 바로 아래쪽에 배치된 적 보병의 일부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배치되어 있던 적 보병 연대가 그걸 커버하려는 듯, 사각 대형을 취하고 돌출되어 나와 있었다.

“자네, 저기··· 으윽!”

무의식적으로 왼팔을 뻗으려다가 움찔하며 상체를 수그린다. 마렘 공작의 팔뼈에는 금이 가서 막대를 감아 응급처치를 한 상황이다. 실수로 그 팔을 뻗었으니 통증이 심할 수 밖에 없다.

마렘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살면서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기사들이 지배하는 땅, 엘랑키아의 최고위 귀족 중 하나로 태어나서 평생을 전장에서, 말 위에서 보냈다. 그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일단 돌격하면 무너지지 않는 적은 거의 없었고, 종종 힘이 부족해 퇴각하더라도 적에게는 그 이상의 깊은 상처를 입히지 못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적 부대와 부대 사이의 간격을 노려, 비집고 들어간 것은 나쁘지 않았다. 설령 중간에 아군이 집결하는 틈을 노린 포격에 당했다고 해도 말이다. 1천 기가 넘는 강력한 엘랑키아 기사단이 적 후방에 돌입한 것이다. 거기서 좌충우돌하는 것만으로, 적의 혼을 빼놓을 수 있었다. 솔직히 거의 반은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공을 누가 세우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을 뿐.

하지만 전투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적의 화력이 생각보다 강하다고 생각한 마렘은 적 예비 보병 연대에 돌격을 결심했다. 보병들과 어울려 싸우는 동안은 사격에 덜 노출되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통제 안 되는 예비대라고 생각했던 적은··· 총이 빈 것처럼 행세하며 자신을 속였다. 그 결과는 코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병 밀집대형의 일제사격이었다.

솔직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충실한 가신들이 몸으로 막아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분명 죽었을 것이다. 적군과 거리가 얼마나 가까웠는지, 가신들의 몸을 관통한 총탄이 뿌린 피와 쇳조각이 후두두둑 쏟아지는 기괴한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 마렘의 휘하 기병들도 반격했지만, 화력전에서 기선을 제압당한 이상 큰 의미는 없었다.

그 와중에 총에 맞은 말을 진정시키다 낙마한 마렘의 왼팔이 부러졌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방금처럼 계속 판단을 방해하고 있었다. 부하들이 후방으로 가서 치료받으라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그랬다가는 이번 전투에서 마렘의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총사령관인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이 선제공격을 자제하라고 했음에도, 자의적으로 공격했다가 실패했다. 그 결과, 우익 병력의 삼 분의 일을 잃었다. 그 상당수는 대체하기도 쉽지 않은 엘랑키아의 기사들이다. 후퇴하는 과정에서 동료 연대장인 모트랭 드 블레르봉 소 백작을 잃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실치 않다.

여기서 전장을 떠난다면, 기병 지휘관으로서의 커리어는 끝장이 날 것이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런 압박감이 마렘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기병은 특이한 존재로, 설령 돌격에 실패하고 병력을 좀 잃더라도 편제만 유지하고 있으면 의외로 그 돌파력은 유지된다. 마지막 결정적인 돌격, 단 한 번의 교전만 성공해도 결국 승장으로 기록된다. 그 때문에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는 아직 2천 기에 가까운 기병대의 지휘관이다. 삐끗하기는 했어도 자칫 산산조각이 날 뻔한 병력을 재수습한 것은 굉장히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멀쩡한 오른팔을 뻗어 샹다메리 언덕 쪽을 가리킨다.

“저기 보병들이 언덕을 오르고 있지 않은가?”

“맞습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일까? 언덕의 면적은 꽤 좁지 않나?”

“아마 200명에서 300명 이상은 올라가도 운신이 힘들 것입니다. 특히 언덕 위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군의 포격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으윽!”

빌어먹을, 또 왼팔이 쑤신다. 이대로는 고삐를 제대로 당기지 못해서 자유롭게 말을 타는 것도 불가능했다. 정말 이빨로 고삐를 물고 탈 수도 없고 말이다. 마렘이 얼굴을 찡그리자, 살아남은 소수의 가신 중 하나가 안됐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어째서 보병들이 언덕으로 오르고 있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군의 공세가 강해진 것은 아닐까요?”

“흠, 동쪽에서 아군 보병들이 공격 중인가?”

“그렇습니다, 공작님. 정규 보병 연대들 외의 ‘순례자 보병’들이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잠깐··· 보병들이 언덕 동편에서 꼭대기를 향해 공격하고 있다면···.

“언덕 아래의 보병들이 언덕 위를 향해 오를 수 있다면,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겠지?”

“그,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건 어째서 물어보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적이 이상한 수를 쓰려는 것 같다. 전령! 본대에 전령을 보낸다!”

“아, 알겠습니다.”

단순한 걱정으로 끝날 수도 있다. 어쩌면 첫 공격에서 실패하고 팔을 부러뜨려 먹은 얼간이가 괜히 헛소리한다고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속이 좀 쓰리기도 했다. 하지만 측익 지휘관으로서 이상 정황은 보고해야만 한다.

마렘이 생각하기에, 적은 본대의 측면을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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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앙!

샹다메리 언덕을 지키고 있던 드 누아 남부 연대의 엽병대장, 메르클랑 나브룰은 방아쇠를 당기고 총기를 수직으로 세웠다. 눈앞을 일시적으로 하얀 연기가 가리고 있었다.

“맞았나! 맞았어?”

“명중입니다!”

“오오!”

표적 확인이 필요한 경우, 사수에게서 몇 미터쯤 떨어진 위치에서 관측을 맡긴다. 정작 화승총 사수는 눈 바로 앞에서 격발시 터지는 점화 불꽃,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큰 반동 등으로 적이 맞았는지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부하 병사가 명중을 알려줬다.

말을 타고 달리던 적 기병 하나가 메르클랑이 쏜 총탄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거리가 100미터가 좀 넘어서 솔직히 자신이 없었는데 다행히 한 번에 맞췄다. 서둘러 달려가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전령이었는데··· 방심한 나머지 언덕에서 너무 가까이, 일정한 속도로 달리다가 저격당하고 말았다. 우익의 기병대에서 본대로 어떤 정보를 가져가고 있었을까. 지금 여기서는 확인할 방법은 없다.

확실한 것은 적의 정보 전달 속도를 좀 늦추는 데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설마 우리 계획을 눈치를 챈 것은 아니겠지?”

메르클랑은 고개를 돌려 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남부 연대의 총병 및 창병들을 바라보았다. 적 포병대가 때려 부숴놓은 건물 잔해에 조심스럽게 숨어있는 보병들 덕분에 언덕 위가 좁아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지금 포격이 재개되면··· 큰일이다.

“에이, 설마··· 아니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니까.”

정작 자신이 정확하게 예상했다는 사실을 메르클랑은 몰랐다. 전투 초반에 끈질기게 공격해오던 적 경보병들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자 지쳤는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언덕 아래에서 가끔 총을 쏠 뿐인데, 이쪽에서는 굳이 고개를 내밀지 않으면 총을 맞을 일도 없었다. 그 때문에 반대편을 감시하다가 지나가는 적 기병이 있길래 쐈을 뿐이었다.

메르클랑이 알기로, 콘도티에레의 새로운 반격 계획의 핵심은 드 누아 남부 연대, 그가 속한 부대였다.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괜히 어깨가 으쓱거렸다.

알코라즈 토벌전 당시가 생각이 났다. 당시만 해도 메르클랑을 비롯한 드 누아의 기사와 병사들은 이웃인 트랑카벨 가문에 대해 썩 좋은 감정을 품지는 않았었다. 동맹군이라 하니 받아 주기는 했지만, 트랑카벨의 콘도티에레라는 자가 이것저것 계획을 내놓을 때만 해도 솔직히 불신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명백하게 그가 틀렸었다. 이스키비르 강가에서의 기가 막힌 매복 공격. 뒤 이은 숲 지역에서의 지연전. 그리고 드 누아의 남자라면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브롱보카쥬에서의 대 승리까지.

그건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다. 실로 마법이었다. 마법에 걸려 함정에 빠진 것은 적군뿐이 아니었다. 동료인 드 누아 군대도, 어딘가 홀린 듯이 싸웠다. 정신을 차려보면 적의 약점이 눈앞에 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적이 포위되어 있었다. 이게 마법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걸 경험해본 메르클랑은 이곳, 샹다메리에서도 새로운 마법이,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걸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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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셨어요, 형님!”

“어어, 그래. 알골을 불러줄래?”

“네, 형님!”

‘피 흘리는 흑곰’ 지빌링엔 반 연대의 지휘관인 에르만 슈피리가 부대로 돌아왔다. 그러자 에르만의 친동생이자 종자인 스테펜 슈피리가 반갑게 맞아준다. 스테펜은 알골 딘다르트를 부르기 위해 달려간다.

잠시 부하들이 집합하는 사이, 에르만은 생각을 정리한다. 이번 전투에서, 지빌링엔 용병들은 아직 별다른 역할을 못 했다. 아까 적 기병들이 트랑카벨 포병대를 공격해왔을 때 잠시 나가서 방어선을 구성한 것이 전부였다. 그것 말고는 정말 구경꾼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어쩔 수 없었다. 통상적인 트랑카벨 정규 보병 연대는 1200명 정원으로 되어 있었고, 드 누아나 슈토르히 연대도 비슷한 규모이다. 심지어 용병대인 네그라타 연대는 1.5배인 1800명이다.

그런데 지빌링엔 반 연대는, 연대 앞에 절반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겨우 300명 남짓의 소규모 부대이다. 전투력이나 무장도 중요하지만, 숫자도 중요한 보병 간의 힘 싸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되는 것이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에르만은 너무 아쉬웠다. 분명 그가 알기로 주디칼리 북부에는 구직 중인 동향 출신 용병들이 꽤 있었다. 그들에게 편지로 알렸으니 시간만 있으면 합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콘도티에레는 나름 자신들을 활용할 좋은 방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따를 수밖에 없는 명령이었다.

“대장님, 부르셨습니까.”

에르만의 휘하에서 가장 젊은 전방 지휘관인 알골 딘다르트가 달려왔다.

“콘도티에레께서 명령을 내려 주셨네. 알골 자네, 분명 포를 다룰 수 있었지?”

“포? 대포 말입니까?”

“그래.”

“네 뭐··· 외부에서 용병 생활하면 대개 배우게 됩니다. 그래도 말 그대로 다룰 줄만 알지 쏴서 뭘 맞추거나 하는 건 확신은 없습니다.”

알골이 넓은 이마를 쓰다듬으며 쑥스러워한다. 지빌링엔 자체 용병대들이 다시 구성되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외부에서 용병 생활을 하던 이들이 꽤 많았다.

“그 정도면 됐네. 자네처럼 포를 다룰 줄 아는 부하들을 좀 선발해 주겠나?”

“알겠습니다. 저희가 포를 다루는 것입니까?”

“으음, 그렇게 됐네. 콘도티에레께서 명령을 내리셨으니까.”

“허어··· 설마! 트랑카벨의 포병들이 큰 피해를 보았던 것입니까?”

“아, 그건 아니네. 시간이 없으니 우선 포수 경험자들을 좀 모아 주게나. 그 후에 설명하지.”

“알겠습니다, 대장님.”

알골이 서둘러 대열로 돌아간다. 언제 콘도티에레가 작전 신호를 줄지 모른다.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분명, 이 작전의 성패는 지빌링엔 병사들이 어떻게 활약하느냐에 달려있었다. 에르만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분명하게 수행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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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 돌아왔어?”

선임 중대장 루트비히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선임 중대장인 크레시미르 두브람이 반갑게 맞이한다. 루트비히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콘도티에레가 뭐래? 우리 돌격대 존재를 잊어버리신 건 아닐까?”

크레시미르는 반은 장난이지만, 반은 진지하게 말한다. 요즘 슈토르히 연대는 콘도티에레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물론 트랑카벨 영지군, 더 나아가 블랑독 연맹군 전체를 관리하는 중요한 위치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나마 방금 적 기병대가 후방에 난입했을 때 기가 막힌 낚시 작전으로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었지만··· 크레시미르가 이끄는 돌격대는 그저 구경꾼으로 사각 대형 한가운데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을 뿐이다. 포수들이 대포 밀어 올리고 각종 보급 물자 나르는 데에만 힘을 썼을 뿐이다.

“콘도티에레께서 너희를 잊을 리가 없잖아.”

언제나 진지한 루트비히는 농담을 쉽게 받아 주지 않는다. 다소 짜증이 나는 투로 말한다.

“그야 그렇지, 그냥 걱정돼서 그렇지.”

“걱정하지 마라. 드디어 나설 일이 생긴 것 같아.”

“어, 정말인가? 우리도?”

“그래. 돌파 임무가 될 것 같다.”

“오오오오오! 드디어!”

크레시미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돌파 임무라. 슈토르히 연대는 그동안 계속 예비대로만 있었다. 분명 막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증명해 보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콘도티에레께서 신호를 내리실 거야. 그때까지 부대를 재편하고 공격 준비를 해야 해.”

“물론이지! 맡겨 두라고. 그런데 돌파라니, 어디로?”

루트비히가 손가락을 뻗어, 북동쪽을 바라본다. 크레시미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 쪽에는 전방에서 싸우는 트랑카벨 영지군 병사들의 뒤통수가 있었다. 양군 보병 주력이 격돌하고 있는 주 전선인 것이다.

“정면 돌파라··· 보통 임무는 아니겠군. 좋았어, 완벽하게 준비해 주지.”

크레시미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간다. 루트비히 역시 다른 장교들을 불러, 몇가지 사항을 지시 내리고 병력을 파악한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지만, 루트비히 역시 제법 흥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콘도티에레와 함께 싸우는 전장, 게다가 직접 지시한 특수 임무이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 크게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도 완벽하게 해 낼 것이다. 슈토르히 연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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