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샹다메리 전투
복수심으로 가득한 엘랑키아 기병의 별동대가 우리 포병을 향해 달려왔을 때, 그들을 첫 번째로 맞이한 것은 이제는 레퍼토리와도 같은 대기병 산탄이었다. 벌써 몇 번째 산탄 사격이지. 뭐, 당하는 입장에서야 첫 번째 산탄이겠지만.
“발사!”
퍼펑! 펑!
파파파파파팍!
다소 먼 거리에서 발사한 산탄 사격이 기병대를 덮쳤다. 엘랑키아 기병대는 이걸 감안하고 밀집 대형을 풀었기에, 생각보다 큰 피해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운 나쁜 소수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훨씬 많은 숫자가 더더욱 커진 분노를 안고 돌격을 계속했다.
“우와아아아아!”
“엘랑키아에 영광을!”
“엘랑키아!”
가장 위험한 공격을 피해낸 엘랑키아 기사들이 말에 박차를 가해 속도를 올린다. 창과 검, 권총 등 각자가 가장 자신이 있는 무기를 치켜들며 함성을 지른다. 불확실한 적진 한가운데의 기동, 무시무시한 산탄 사격을 이겨낸 그들이다. 감히 하늘이 낸 질서를 거역하려 한 이단자들을 단죄하는 것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리라.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무력하게 도망치는 농민병 따위가 아니었다.
“발사!”
첼레스티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평소에 조용하고 낮게, 가끔은 어리광을 부리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익숙한 사람은 깜짝 놀랄 법한 여장부의 목소리다. 그녀는 현재 포술장이다. 명령의 대상은 당연히, 마지막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대포의 곁에 남은 포병들이다.
꽈과광!
여섯 문뿐이다. 최후의 최후까지 기다리고 있던 장전 완료인 대포의 숫자는.
그리고 여섯 문으로 충분했다. 이미 맞을 사격은 다 맞았다고 생각하여 안심한 기병대를 찢어 놓는 것에는.
푸확.
코앞에서 쏟아져 나간 쇠구슬의 세례가 방심한 엘랑키아 기사들을 쏟아 놓았다. 근거리에서 발사한 산탄의 효과는 실로 끔찍하다.
어디까지가 말이었고, 어디까지가 인간이었나. 어디까지가 생물이었고, 어디까지가 무생물이었나. 어디까지가 피부 안쪽이었고, 어디까지가 피부 바깥쪽이었나.
가까이에서 발사된 산탄은 신체를 관통해버리기 때문에, 말 그대로 육체 뒤편으로 피와 살점의 비를 뿌려 버린다. 필연적으로 뒤에 따라오는 병력은 선두 기병들의 신체 일부가 쏟아지는 끔찍한 폭풍우에 직면한다.
이 상태에서 용기? 복수? 분노?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지금 내 몸에 흐르는 게 내 피인가, 남의 피인가. 내 몸에 구멍 뚫린 곳은 없나 더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방금 전 내가 하던게 돌격인지 도망인지는 상관이 없어진다.
한편 이 무시무시한 사격의 원흉이 되는 포병들은 자신들의 전과를 확인할 틈이 없었다. 불을 댕기자마자 장전봉이고 뭐고 팽개치고 포를 버려두고 달렸기 때문이다. 이건 물론 나와 첼레스티나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대포는 고치면 된다, 억지로 지키려고 하지 마라’라는. 사실 엘랑키아 기병대가 코앞까지 쇄도하는 와중에 자리를 지키며 마지막 사격에 불을 놓은 것만 해도 충분히 용감한 행동이고!
“엎드려! 엎드려!”
죽어라 달아난 포병들은 반은 구르고 반은 미끄러지며 지킴이들 사이로 대피했다.
“겨누어 창!”
“하압!”
공포와 희열이 뒤섞인 기이한 흥분, 자신의 역할은 일단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가 뒤섞여 헐떡대는 포병들을 보호하듯, 그들의 머리 위로 장창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마침 포병대를 지키기 위해 서둘러 달려온 또 하나의 예비대, 지빌링엔 용병들이 창벽을 만들고 있었다. 최근 트랑카벨 가문에 고용된 ‘피 흘리는 흑곰’들은 정말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포병들을 보호했다.
이러자 기병들 처지에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일단 방열 된 그대로 방치된 대포들이 돌격에 방해가 된다. 방해물이 없다고 해도, 여기까지 급하게 달려온 데가 연거푸 산탄 사격에 당해 대열이 완전히 무너진 수백 기 정도의 병력으로 이미 창벽을 친 보병 대열을 뚫기는 어려웠다.
온갖 피해를 입고 여기까지 왔다.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가기는 억울하다.
하지만 대포를 무력화시킬 수가 없다. 대포를 무력화 시키는 방법은 포 자체를 부수거나, 화약을 비롯한 장비들을 못 쓰게 만들거나, 결정적으로 장약에 불을 댕기는 점화구에 못을 박아 점화를 막는 등이 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지금 상황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몇몇 기병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권총을 쏴대며 주변을 맴돌았으나 지빌링엔 총병들이 산발적으로 반격했다. 게다가 창벽이 천천히 대포 사이로 전진해오자 포기하고 말머리를 돌린다. 좋은 판단이다. 억지로 말에서 내려서 대포를 부수려고 해봤자, 그 전에 지빌링엔 용병의 손에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더 컸으니까. 차라리 숫자라도 더 많아 피해를 감수하고 질량으로 밀어 붙였으면 모를까.
그렇게 포병 코 앞까지 비집고 들어온 별동대를 쫓아내면서, 후방의 적 기병들을 완벽히 퇴치하는데 성공했다. 기세 좋게 몰려올 때에 비해서 병력이 삼 분의 일 정도는 줄어 보인다. 아군 후방에 빼곡하게 누워있는 말과 기사들의 시체만 보아도···. 어쩐지 ‘우리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많이 죽여버리는 바람에’ 죽은 기사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성사를 집전했다던 라솔 국왕의 기분도 이해는 간다. 내가 해 줄 생각은 물론 없지만. 우리 병사들 챙기기도 바쁜데.
이제 좌익 쪽에서 남은 병력은 제7 카르카냑 기병 연대와 교전하고 있는 적군뿐이다. 어떻게 도와야 하나 손에 가진 카드를 확인해 본다.
제7 기병 연대장, 파스칼 드 뒤랑은 아슬아슬한 상황을 몇 번이나 넘기며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정말 쓸 수 있는 건 다 쓰고 있다는 말이 딱 맞았다. 힘든 임무를 맡겼지만 노련하게 잘 해나가고 있다.
초전은 나쁘지 않았다. 기병 사이에 중화승총으로 무장한 보병 중대를 하나 숨겨놓는 작전은 잘 먹혀 들었다. 역시 사기를 치지 않고는 싸울 수가 없다. 전투 자체가 사기의 연속이다. 아, 생각해보니 내가 슈토르히한테 가르쳤구나. 그러니까 왜 전쟁을 해 전쟁을.
적이 예상하지 못하고 기병과 기병의 충돌을 위해 돌격해올 때 퍼부어진 중화승총의 일제사격은 적진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어정쩡한 위치에서 돌격력을 잃어버린 적에게 파스칼의 총기병이 역으로 돌격, 우세를 점하고 시작할 수 있었다.
신무기로 무장한 용기병들도 대활약했다. 부싯돌을 이용해 점화하는 신형 총기인 수석총은 제7 연대의 용기병들에게 우선 지급되었었다.
트랑카벨 영지군의 지휘관들을 포함해, 대부분은 수석총을 받은 용기병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를 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도 실물을 보기는 했지만, 총기병들이 쓰는 치륜식 구조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장전하고 쏘는 방법이야 충분히 익혔지만 실제로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까지 알 필요는 없을 테니.
하지만 용기병들은 정말 좋아했다. 기뻐서 날뛰던 모습이 기억난다. 신무기를 받을 정도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물론 기쁘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화승총을 들고 말을 타기 위해 온갖 난리를 다 부려야 했던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크겠다. 실제로 팔에 화승을 둘둘 감고 불씨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던 적이 있으니까···. 손목에 팔에 손가락 사이에 불씨를 바리바리 싸들고 달려왔는데 죄다 꺼져있으면 그 허탈감은 정말.
신무기를 이용해 불씨가 꺼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마구 달릴 수 있게 된 용기병들은 밥값, 아니 무깃값을 톡톡히 했다. 아까만 해도, 적의 측익 병력을 유인해서는 꽁무니에 달고 수백 미터를 도망치더라. 그냥 도망만 친 게 아니냐고? 아니다! 거의 비슷한 숫자의 적 기병을 그 시간 동안 무력화 시킨 것이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쫓아가고 나면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좀 그렇다. 말 머리 돌리면 저 새끼들이 또 장전해서 우리 쏠 텐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고.
초전에 기병 틈에 섞여서 적을 저격했던 중화승총병들도 의외의 활약을 했다. 내가 기병 후방에 빈 마차들을 가져다 놓았던 것은 그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피난처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기병전이 시작되면 곧 주변이 아군과 적군의 기병들로 가득하게 될 것을 알았으니까. 거기서 말에 치일 위험 없이 전투 끝날 때까지 무사히 버텼으면 했을 뿐이지, 마차 위에 올라가서 저격하고 포를 쏴대며 어그로를 끌어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런 지시도 안 했고!
하지만 그들은 고맙게도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주었다. 꾸준히 주변을 달리던 적 기병들의 시선을 끌었으며, 저격을 견디다 못해 무리를 지어 달려들면 치열하게 저항해 적의 병력과 체력을 깎아 먹었다. 마치 서부 영화에서 악역 인디언들의 습격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이주민들처럼 말이다. 이런 작은 노력과 공헌들이 쌓이고 쌓여, 혼란이 소용돌이치는 후방 전선에 빛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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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누아 영지군 소속의 기병대장, 브라소 드 마르지엘 남작은 미칠 것 같았다. 적이 강해서, 상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바로 전투가 한창인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소 남작은 가스텔 드 누아 백작에게 가장 신임받는 기병 지휘관이었다. 드 누아 가문과 트랑카벨 가문이 처음으로 연합하여 함께 싸웠던 전투에서도 싸웠었다. 라솔에서 이스키비르 강을 건너온 네그라타 용병단에 맞섰던 브롱보카쥬 전투에서도 기병을 지휘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었다.
성전군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도 쭈욱 드 누아의 기병대를 이끌고 있었으며, 이번 전투에도 트랑카벨의 제7 기병 연대와 함께 전장에 배치되었다. 게다가 다수의 적 기병이 돌격해왔기 때문에 바로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브라소 남작과 그 부하 약 200여 명은 아직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딱 하나. 총이 없어서.
실제로 두 자루의 권총으로 무장한 트랑카벨의 총기병들은 이 전투의 주역이 되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으며, 드 누아 기병 연대 소속의 동료 중에서도 절반 이상은 ‘총을 가지고 있어서’ 우회하는 적을 막아내는 반격 작전에 투입되어 있었다.
드 누아 백작가의 충실한 가신인 드 마르지엘 남작가는 특별히 부유하지는 않지만, 당연히 총 몇 자루 정도는 얼마든지 살 돈은 있었다! 하지만 먼저 부하들을 무장시키고 하다 보니 좀 늦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마침 전쟁 통에 수입품인 치륜식 권총 재고가 부족해져서, 돈이 있어도 권총을 살 수가 없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냥 무기 하나 도입이 조금 늦었을 뿐인데, 이렇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돌아 버릴 지경이다. 주변의 비슷한 상황인 누아 출신 기사들도 표정이 매우 좋지 않다.
물론 콘도티에레나 트랑카벨 군 연대장이 총 없다고 모욕을 줬다거나 괴롭힌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전투 직전 에트라는 이름의 콘도티에레는 조심스럽게 ‘어째서 화기로 무장한 기병대에게 화기가 없는 기병이 덤비면 안 되는지’를 설명해주며 예비 병력으로 대기해 달라고 말했었다. 머리로는 그게 옳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방금... 트랑카벨 군과 콘도티에레의 직속 용병들이라는 부대가 총과 화포로 엘랑키아 기사단을 격퇴하는 모습을 보았다. 총기가 지배하는 전장에서 무작정 날뛰다가는 그렇게 된다는 것을 콘도티에레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겠지. 배려를 해주는 것이고,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가문의 저택을 팔아서라도 총을 샀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며 이를 북북 간다.
제7 카르카냑 기병 연대의 주력, 총기병들의 바로 후방. 현재 샹다메리 부근에서 가장 안전할지도 모르는 장소이다. 거기서 일이 없어 초조한 날품팔이마냥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때, 전방에서 전령이 달려온다.
“전령! 전령!”
“드, 드디어! 무슨 일인가?”
“제7 연대의 파스칼 연대장께서 드 누아의 브라소 연대장께 전령!”
“내가 브라소일세!”
“브라소 경에게 즉시 출격 요청, 목표는···.”
전령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가락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양측의 기병대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 너머.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화려한 깃발의 숲이다.
“...적의 기병 지휘관의 본대, 이상입니다!”
“잘 들었다고 파스칼 경에게 전하게!”
“알겠습니다!”
브라소는 말머리를 휙 돌려, 부하들을 바라본다. 모두가 기대감으로 가득한 표정이다.
“모두 짧은 휴가는 즐거웠나?”
“아 지겨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거 총 얼마나 합니까?”
“이제 가는 겁니까?”
반은 불만으로, 나머지 반은 자신감으로 아우성치는 부하들을 보는 브라소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좋은 소식이 있다! 지금 우리가 잡으러 가는 적들은 이름은 모르겠다만, 저기 북쪽의 끝내주는 부잣집 도련님들이다!”
“우우우우우!”
“부잣집 도련님이니까, 다들 총 몇 자루는 가지고 다니겠지?”
“오오오오오!”
“행군 대형으로!”
브라소는 다시 말을 돌려 선두에 선다. 기다림에 지쳐있던 드 누아 기병대가 곧바로 질서 정연하게 대열을 갖춘다.
일단 가 보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콘도티에레의 계획이니까, 믿어 보는 거지. 브롱보카쥬 벌판에서도 시킨대로 하다보니 어느새 적을 포위하고 있고, 꽁무니를 잡게 되지 않았던가. 좋은 집안에서 잘 먹고 잘 살아서 빤들빤들한 엉덩이에 기병창 한 번 콱 꽂아주면 이 기분도 풀리겠지.
“자, 총을 가지러 가자!”
“와아아아아아!”
마지막까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던 200기의 기병대가 달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