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14화 (114/556)

20-12. 샹다메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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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을 유지해라! 어차피 기병은 창벽 안으로 못 들어오니까!”

모리츠 디트마르 폰 뮌타우젠, 슈토르히 연대의 선임 중대장, 트랑카벨 영지군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의 연대장 대리인 근육질의 남자가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격려한다. 물론 그 역시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대기병전을 상정한 철통같은 사각 대형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상대는 천지를 진동시키며 달려오는 무려 3천 기의 엘랑키아 기병이다. 솔직히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섭다.

이만한 전력이라면, 피해를 감수하고 달려들면 아무리 대기병 진형을 준비했더라도 1개 연대쯤은 순식간에 밀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모리츠는 슈토르히 연대 소속으로 나우데사 편으로 북방 전쟁에 참여했었기 때문에, 이미 엘랑키아 기병대의 위력은 이가 갈리도록 잘 알고 있었다. 평지에서 하도 시달리다 보니, 나우데사 민병대는 엘랑키아 기사들에게 돌격을 당하면 공포에 질려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정도로 엘랑키아 기사들의 압박은 무서웠다.

물론 슈토르히 연대는 그런 거 없었다. 엘랑키아 기병이든 보병이든, 왕실군이든 귀족군이든 접근하는 족족 갈아버렸으니까. 하지만 기동성이 부족한 용병 연대 하나가 전장의 승패를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도 곁에 슈토르히 연대 동료들이 있었다면 든든했을 텐데. 모리츠 자신이 훈련시켰고, 오랫동안 연대장 대리로 지휘해온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는 아주 훌륭한 부대이다. 물론 애착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전투력 면에서 슈토르히에 비하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콘도티에레의 지시였다. 굉장히 중요한 전선의 왼쪽 끝을, 자신과 제10 연대에게 맡겼다는 것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모리츠가 아는 한, 이럴 때 콘도티에레의 판단은 틀린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전투에 함께 나섰는데, 기왕이면 콘도티에레 곁에서 싸우고 싶었지만··· 이것도 다 신뢰받은 덕분이겠지. 현재 슈토르히 출신 중, 독립된 부대 지휘를 맡은 것은 모리츠뿐이라는 생각이 자부심이 되어 절로 힘이 난다.

“온다! 적이 온다!”

“명령 전에는 절대로 쏘지 않는다!”

“방아쇠에서 손 떼!”

창벽에 보호를 받는 총병들이 불안한 모습으로 멀리 보이는 적 기병들을 바라본다. 아직 적이 제10 연대를 향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많은 부대 중, 누가 자신들을 향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침착해라!”

모리츠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파앙! 하고 힘껏 박수를 치자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흠칫 놀란 병사 일부가 이쪽을 바라볼 정도였다. 윽, 너무 크게 소리를 낸 모양이다. 그래도 병사들이 조금쯤은 긴장이 풀린 것 같다. ...부디 그렇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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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랑키아의 기사들은 마지막 돌격 위치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함성을 지르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기병대의 이동에는 말발굽 소리만이 울릴 뿐이다.

부대 단위로 각자 달리고 있을 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 지정된 목표와 순서가 있었다. 각 기병 부대의 지휘관 및 핵심 병력은 오랫동안 엘랑키아 군의 전장에서 싸워온 베테랑들이며 자신들의 역할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특히 기병대의 각급 지휘관들은 막강한 자율권을 행사한다. 사령관이 문제를 인식하고, 거기 맞춰서 지시내리며, 그 지시가 전방 부대에 이르는 시간이 도저히 기병의 반응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찰나의 판단이 생사를 가르는 전장에서 가뜩이나 ‘유리로 만든 검’인 기병대를 그저 명령만 기다리게 묶어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

그 때문에 현재 다렘 드 모르뷔셀 공작의 행위는 월권과 그렇지 않음의 영역 사이에 미묘하게 걸쳐져 있었다. 총사령관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의 선제공격 금지 지시를 지키려고는 했다. 그리고 기병대가 포격에 노출됐는데 그걸 손만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도 분명 문제이긴 하다.

만약에 다렘의 이 ‘판단’을 막을 기회가 있다면, 우익 지휘관인 다렘 연대장의 권위를 따르고는 있으나 실질적으로 동격의 기병 연대장인, 모트랭 드 블레르봉 소 백작이 반발하는 것이다. 아무리 지휘 체계상 우위를 인정받았고, 귀족 위계상 더 높다고는 해도 병력의 절반을 지휘하는 동료 연대장의 반발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트랭 연대장은 반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명령을 기꺼이 따라, 블레르봉 가문 가신들의 선두에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연대장의 중책을 맡은 청년 귀족인 이 백작 가문의 후계자 역시 전공에 목말라 있었다. 전방에 보이는 얼마 되지 않는 적 기병대를 돌파하고, 적의 핵심부를 타격하는 전장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심지어 다렘은 이 젊은 후배 지휘관을 배려하여 주공의 역할을 맡겼다. 블레르봉 연대는 보조 전력을 합쳐서 1500기에 가까운 숫자이다. 이미 그 전력으로만 해도 약 1천 기 정도로 보이는 적 측면 기병대를 압도한다. 게다가 전력이 부족해 견인포와 기마 총병 따위에 낭비하는 반쪽 전력이다. 실로 기병의 수치, 진정한 전장의 주인인 엘랑키아 기사단이 처단할 일만 남았다.

모트랭 드 블레르봉의 부대가 트랑카벨 기병의 정면을 공격하는 동안, 다렘은 그 왼쪽에서 나란히 달린다. 트랑카벨 군의 제7 카르카냑 기병 연대와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 사이를 빠져나가듯 달리는 것이다.

다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멋진 기동이었다. 트랑카벨의 기병대는 블레르봉 연대와 충돌할 예정이며, 기병의 기세에 눌려 기동성이 크게 떨어지는 사각 대형을 취한 트랑카벨 보병대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측면에서 사격을 당한다면 다소 피해가 발생하겠으나, 일단 적 한가운데로 뛰어들면 그의 기병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해진다. 적 기병의 측후면을 공격할 수도 있고, 주 전선에서 싸우는 적 보병의 후방을 위협할 수도 있다. 혹은 역겨운 포병대를 쓸어버리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다.

“돌겨억!”

“이야아아아!”

크게 세 부대로 나누어진 블레르봉 연대가 함성을 지르며 속도를 올린다. 적 기병은 겁이 나서 그런 건지, 대포를 한 발이라도 더 쏘려는 건지 움직이지 않는다. 이래서는 이미 승패는 난 것이나 다름없다.

“속도를 올린다!”

“예, 공작님!”

다렘이 지휘하는 모르뷔셀 연대 역시 속도를 올린다. 이제 곧 적 보병대의 측면을 지나가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피해지만,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 좋았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적의 핵심부를 타격할 수 있다!

콰쾅!

콰콰콰콱!

하지만, 한창 기세를 올리던 기병대의 앞에 벼락이 떨어졌다. 그것도 여러 개. 이번 벼락은 주먹만 한 쇳덩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끄아아악!”

말의 목을 찢고 들어온 포탄이 선두에서 달리던 기사의 흉갑을 부수고, 갈비뼈와 등뼈를 함께 으깨버렸다. 그대로 허공으로 떠올라 뒤에서 따라오던 동료의 말에 부딪히는 바람에, 놀란 말이 진저리를 치며 투레질을 한다.

서둘러 위험한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각 기병 사이의 간격이 좁았던 것도 문제였다. 포탄에 맞아 죽거나 다친 말과 멀쩡한 말이 부딪히고, 때로는 두 명의 기병이 동시에 관통당하기도 했다. 열 두개의 포탄이 블레르봉 연대를 훑고 지나가면서 수십 개의 비극을 새로이 만들어냈다. 말과 인간이 내는 구슬픈 비명이 사방을 채웠다.

“이게 무슨 일이냐!”

다렘 드 모르뷔셀 공작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완전히 허를 찔렸다. 적 기병과 보병 사이, 절묘한 틈새를 뚫고 적 후방을 노린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은 적이 포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사지였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부터 비스듬한 포격에 당한 그의 선두 기병대는 막대한 손해를 입고 지리멸렬해 버렸다.

이럴 수가 없었다! 그의 부하들은 상당수가 한 번 이상의 전쟁에 참여한 숙련병들이다. 당연히 포화도, 총화도 어지간히 뒤집어써 봤고, 그만큼 포병도 총병도 많이 죽였었다. 예상한 포격이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멈추지 마! 적의 포격이 떨어진다! 전진! 전진!”

“공작님 명령 들었지! 전원 전진하라!”

지금 이동하는 것은 분명 무리한 요구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 멈춰있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어쨌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잠깐 부대가 쪼개지더라도, 다시 집결시키면 된다. 일단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한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린 기병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동해! 우선 이 자리를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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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

타타타탕! 타타탕!

얀 고티에,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 소속의 총병 소대장인 그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평소와 다른 중화승총이었다.

“으윽!”

Y자 형태의 받침대로 받쳤는데도 평소에 비해 반동이 무지막지해 어깨뼈가 온통 뻐근하게 울린다. 화약 연기도 평소보다 배는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방아쇠 방식도, 평소의 ‘손가락만 대면’ 격철이 당겨져 점화되는 방식이 아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당기는 만큼 화승과 화문이 가까워져 점화가 되는 방식이라, 방아쇠 압력이 평소보다 강한 완발식 방아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당연히 위력이었다. 훨씬 큰 탄환을, 더 강한 위력으로, 더 멀리, 더 안정된 탄도로 쏠 수 있었다. 얀 고티에 역시, 100미터 언저리에서의 훈련 사격에서도 생각보다 명중률이 높아서 깜짝 놀랐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와 다른 점은, 주변에 있는 것이 동료 보병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수고했다, 총병!”

“우리에게 맡겨!”

사격을 마친 10명의 총병들이 다닥다닥 붙어섰다. 혹시라도 화승의 불이 서로에게 닿으면 안 되기에, 총기는 수직으로 바닥에 세우고 지그재그로 선다. 그리고 총병들이 만들어준 공간으로···.

제7 카르카냑 기병 연대의 총기병들이 육중한 갑주를 덜컥거리며 달려 나간다.

“힘내라!”

“가서 없애버려!”

사격을 마치고 잠시 방관자가 된 총병들이 스쳐 지나가는 기병대를 응원한다. 이윽고 기병의 무리가 모두 스쳐 지나가자, 주변에는 총병들만 남았다. 얀과 다른 9명의 동료 처럼, 모두 100명의 총병들이 모두 10곳에 나뉘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를테면 파견 근무였다. 원래 제10 보병 연대 소속인 총병 중대 하나가, 제7 기병 연대의 전열에 섞여 있었다. 처음 명령받았을 때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고 매우 놀랐었지만, 무려 콘도티에레가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고 했다.

남들보다 한 치수 큰 중화승총으로 무장 전환한 얀과 동료 중대원들은 평지에 대열을 갖춘 기병대의 한 가운데 숨어 있었다. 아마 외부에서는 기병 사이에 보병이 섞여 있는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에 얀 역시 외부를 볼 수 없었다. 뭔가 엄청난 포성이 멀리서 들렸다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하는데, 불안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다가 방금, 적 기병이 돌격해온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전방으로 달려가 10초도 걸리지 않아 사격 준비를 마쳤다. 이어서 적이 80~100미터 구간에 다가오자 발사했다. 그리고 현재.

“장전해 장전!”

“근데 중화승총 위력이 끝내주네요! 무거운 값을 하는 것 같아요!”

부지런히 손을 놀려 재장전하면서, 얀은 콘도티에레가 왜 이런 변칙 편성을 지시했는지 알 것 같았다. 흩날리는 연기 속에서, 적과 맞서기 위해 달려 나가는 기병들 사이로 자신들이 올린 전과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수가 더 많은 적 기병대는 충격력으로 완전히 밀어 버릴 작정인지, 옆 사람과 등자가 닿을 정도로 빽빽한 밀집대형을 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최고 속력에 도달하기 직전에 중화승총 중대의 납탄 100발이 그들을 덮쳤다. 많은 숫자의 기병들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죽거나 다치거나, 혹은 기수가 낙마한 말들이 날뛰면서 후속하는 기병들을 방해한 것이다. 인간, 말, 그리고 강철로 이루어진 장벽이 순식간에 분쇄되고 기세를 잃었다. 얀의 중대가 발사한 100발의 사격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렇게 혼란한 적에게 제7 기병 연대의 총기병들이 역으로 돌격한 것이 현재 상황이다.

“장전 다 했으면 마차로 이동해!”

“옛!”

중대장의 명령에 100명의 총병들은 근처에 있는 4대의 보급 마차 주변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마차는 비어 있었고 말도 매여 있지 않았다. 대신 총병들은 마차 주변에 똘똘 뭉쳐서 방어를 준비한다. 몇 명은 마차 위에 올라가 사격 각을 잡는다. 참 없어 보이는 진형이지만, 마차를 등지고 있으니 기병의 돌격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창병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인 방어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4대의 마차 사이에는 4문의 기마 견인포가 있었다. 100명의 총병과 4문의 가죽포, 거기에 나무로 된 장벽이다.

“사, 사방이 기병이다!”

누군가가 탄식하듯 말했다. 딱 그 말대로이다. 사방에 아군과 적군 기병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치열하게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경우도 있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용기병들은 아예 전력으로 도망치면서 몸을 뒤로 돌려서 쫓아오는 적 기사들을 저격하고 있었다. 화승총을 타고 말을 달리면 화승 불이 꺼져서 사격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얀은 생각났다는 듯 자기 총의 화승을 입으로 불어 약해진 불을 되살렸다.

“여기가 우리 요새다! 여기서 아군 기병들을 지원한다!”

“옛!”

“신중하게 쏴라! 아군을 맞추면 안 돼!”

중대장의 외침에, 총병들이 바닥에 받침대를 설치하고 중화승총을 얹었다. 얀도 조심스럽게 받침대를 바닥에 박았다. 모리츠 연대장은 더 큰 총도 맨손으로 들고 쏘던데, 역시 그냥 쏘기에 중화승총은 너무 무겁고 반동도 강했다. 순박한 동네 농부들과 별 차이 없던 총병들의 눈에 갑자기 예리한 기운이 어리기 시작한다. 모두가 사냥꾼의 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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