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샹다메리 전투
통상적으로 야전에서 포병이 포병을 노리지 않는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포의 명중률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데, 적 포병을 노리면 표적의 면적이 좁아진다. 당연히 허공에 뿌리는 포탄의 숫자가 많아지게 된다. 그에 비해서 밀집 대형을 취한 보병이나 기병은 근처를 목표로 쏘기만 해도 확률적으로 어느 정도의 전과를 보장할 수 있으니 당연히 편한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하다.
둘째, 적도 바보가 아닌 이상, 최소한의 포병 진지는 구축하게 마련이다. 특별히 철저한 야전 축성은 아니더라도, 흙을 담은 통이나 바구니를 늘어놓는 것만 해도 어느 정도 재장전하는 포병들을 보호할 수 있다. 특히 소구경의 야포로는 이런 포병 진지를 뚫고 큰 피해를 주기 어렵다.
셋째, 이 시기 화포의 사거리가 그렇게 길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화승총 등 개인 화기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길지만, 상대적으로 길다는 것이지 몇백 미터 정도라 전장 끝에서 끝까지 닿는 정도는 절대 아니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애초에 대포병 사격할 수 없어지는 경우가 꽤 많다.
다만 이번 전투의 경우에는, 둘로 나뉘어 배치된 적 포병의 거리가 아군 포병 진지와 마주 보고 있기에 서로 사거리가 닿는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투에서 나나 첼레스티나가 대포병 사격을 결심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 포병들은 신병이지만, 훈련도는 어지간한 중견 포병들 이상이다. 물론 트랑카벨 가문이 통 크게 배정해 준 훈련용 화약 비용 덕분이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이렇게나 실사격 훈련을 경험해본 신병은 대륙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실전 경험이 부족해 임기응변이나 센스가 필요한 부분은 나름대로 경험이 많은 첼레스티나가 보충한다.
게다가 처음부터 ‘대포 크기의 작은 표적’을 노리는 훈련을 꾸준히 해 왔다. 포성만 들어도 탄착 지점이 대략 예상이 간다는 ‘완전 고인물’ 베테랑들에게 비하면 당연히 못 미치겠지만. 대체로 포병의 표적은 큰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거대한 보병 밀집 대형이라거나 거대한 요새의 경우가 그렇다. 대체로 포병의 장점이란 정확하고 빠른 장전, 즉 연사가 첫 번째이지 명중률은 그다음으로 평가받으니까. 아무래도 실제 사격 경험이 많더라도 큰 표적을 목표로 할 때는 탄착 지점 관측을 빡빡하게 하지 않으니까 경험이 잘 쌓이지 않는다.
물론 고인물들은 그 단계를 뛰어넘은 괴물들이니 일단 논외다. 다행히 적 중에 그런 고인물은 없어 보인다. 아마 북방 전쟁에 참여했던 포병 부대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공성전 전문일 가능성이 크겠지.
둘째, 적도 공격에 나선 입장이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보니, 포병 진지 구축이 부실한 상태이다. 아군의 포병 사격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다. 어설픈 진지를 부수고 적 포병 대열에 타격을 입히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샹다메리 언덕 위에 배치된 8문의 기마 견인포는 더 높은 곳에서 쏜다. 또한 정면이 아닌 비스듬한 측면에서 포탄이 떨어지므로 방어를 위해 배치한 흙을 담은 통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적의 포병 진지 두 곳, 특히 언덕 위의 포격에 노출된 북쪽 포병 진지는 눈에 띄게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작지만 연사가 빠른 포탄들이 연이어 낙하하자, 방어용으로 세워 놓은 흙 담긴 통이 밀리거나 부서지기 시작했다. 물을 담아 놓은 장전용 물통이 굴러가던 쇳덩이, 즉 포탄에 맞아 산산조각이 난다. 대포 장전 과정에서 물은 매우 중요하다. 사격 직후 포신 내부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탄약 찌꺼기를 녹여 닦아내는 한편 뜨겁게 달아오른 포신을 식히는 냉각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물통을 잃은 포병이 후방의 예비 물통을 가져오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간다.
빠각!
“으아아악!”
“시발, 물러나! 물러나!”
정확하게 포병 진지로 떨어진 쇳덩이가 포가와 바퀴 사이를 때리고 지나갔다. 사방으로 나무 조각이 튀는 바람에 탄약을 옮기고 있던 포병의 얼굴과 오른팔에 고슴도치처럼 나뭇조각이 박힌다. 포신을 받치는 포가는 발사 시의 반동을 견디기 위해서 밀도가 높은 나무로 견고하게 만들고 쇠로 모서리를 보강한다. 하지만 포탄의 직격을 견딜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 공성용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성포이다. 결국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우뚱하며 옆으로 쓰러진다.
“아실 경, 어째서 아군 포병이 유리한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좋은 교육 타이밍이다. 앞으로 트랑카벨 영지군의 기둥이 될 아실에게 현장 교육이다. 아실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한다.
“수, 숫자가 많아서 아닐까요?”
“그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음··· 우리 포병들이 더 정확해서?”
“그것도 이유는 맞네요. 한 가지만 더!”
“으으으··· 음, 우리 포병들이 연사 속도가 더 빨라서인가요···?”
“맞습니다, 정답입니다.”
포탄이 오가는 치열한 전장의 와중이지만, 사령부에서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상황은 원래 간부 후보생 교육 시간이다. 사관학교 따위가 없는 세상에서 신임 장교 교육을 무슨 수로 하겠나, 다 이런 식이지. 사실 기사가 종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하던 것의 연장이다. 현실에서 사관학교가 생긴 것도, 이런 현장 교육 커리큘럼을 체계화해서 만들었다고 하니까. 옆에서 보조 부관 에밀리아 역시 눈을 빛내며 듣고 있다. 모리츠에게도 군사학을 많이 배웠다 하더니, 이런 데 관심을 가지는 여자아이는 오랜만이네.
“적의 대포가 훨씬 큽니다. 그만큼 위력이 있지만 평지에서는 적당한 크기로 연사가 바른 것이 최고입니다.”
“그렇군요!”
“물론 포가 크면 사거리가 길고, 야전 축성과 같은 방어 수단을 부숴 버릴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네요.”
공성포는 주먹을 두 개 합친 것만큼 거대한 포탄을 쏠 수 있는 강력한 화포이다. 그게 훨씬 작지만, 무수히 쏟아지는 경야포의 집중사격에 무력화된 것이다. 요새나 방어시설과 같은 대형 표적용인 공성포는 야전에서는 쥐약이다. 어차피 작은 쇳덩이든 큰 쇳덩이든 사람이 맞으면 죽는다. 과도하게 큰 구경의 발사는 화려하기는 하지만 연사도 느린데다가 화약만 많이 쓰는 애물단지가 되는 것이다.
콰앙!
“우와앗!”
멀리서 굉음과 함께 작은 불기둥이 치솟았다. 대포였던 나무와 쇳조각, 포병이었던 신체와 의복 조각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너울거리며 쏟아진다. 어떤 일인지 몰라도 적 대포 하나가 자폭했다. 아군이 쏘는 포탄들은 기본적으로 쇠구슬이다. 가공한 운동에너지를 품고 스치는 모든 것을 뜯어 발기는 무기이지만 폭발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대포가 폭발한 것은 다른 이유일 것이다. 포격으로 혼란한 가운데 화약통 부근에서 불씨를 가진 포병이 점화봉을 놓쳤을 수도 있다. 어쩌면 유난히 뜨겁게 달구어진 포탄이 화약통을 뚫고 들어가면서 점화되었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거듭되는 포격에 정신적으로 압박 받은 누군가가 화약을 두 번 넣고 점화했을 수도 있다! 총병은 혼자 장전하지만, 대포는 여러 명이 보고 있는데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가끔 벌어지는 일이다.
아무튼 이렇게 대포 하나가 ‘원인 모를 폭발’을 겪고 나면 그 포대는 급격하게 약해진다. 온몸에 부서진 나뭇조각이 꽂히고 동료들의 뼛조각을 맞으면서 평소처럼 효율을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 게다가 수시로 주먹만 한 쇳덩이가 사람과 장비를 치고 지나가기까지. 국왕군의 포병 진지가 차츰 침묵해간다. 포격전이 계속될수록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콘도티에레! 적 보병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보조 부관 에밀리아가 외친다. 좋아, 첫 목표는 완수했다. 화력이 우세한 상황을 유지하면서 적 주력 보병을 끌어내는 것.
“에밀리아, 첼레스티나에게 전령!”
“네엣, 콘도티에레!”
“일단 포격 중지, 계획대로 표적을 변경할 것!”
“일단 포격 중지, 계획대로 표적 변경!”
“좋아, 부탁한다!”
에밀리아가 등 뒤로 단단히 고정한 화승총을 흔들며 전장을 가로질러 달려가기 시작한다.
###
“대체··· 무슨 일이···.”
엘랑키아 국왕이 임명한 성전군 사령관,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은 눈앞의 참상을 확인하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계속된 포격전 동안, 적의 화력이 집중되었던 북쪽 포병 진지는 아비규환의 상황이다. 대포 2문이 반파, 1문이 폭발하였으며, 다수의 병사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잠시 적의 포격이 잦아든 틈을 타서, 포병들을 재배치하고 목표를 변경하기 위해 끙끙대고 있었다.
“끄으으으···.”
왼쪽 팔뚝에 크게 화상을 입은 포술장 하나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종군 의사가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다.
“자네 괜찮나?”
“고, 공작님!”
“앉아 있게. 화상이 심하군.”
“어리석은 녀석 하나가 화약통을 잘못 다루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휴우··· 고생했네. 생명에는 지장 없겠지?”
“네, 공작님! 상처만 다 나으면 전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말을 걸었으나, 전투가 한창인 가운데 사령관이 할 일은 아니다. 포병대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는 눈으로 확인했으니 됐다. 에티엔은 말을 돌려 전선의 중앙으로 돌아온다. 천천히 적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보병 대열의 한 가운데로.
초전은 여지없는 참패였다.
작전 회의에서, 에티엔의 성전군은 포격을 통해 적의 방어력을 어느 정도 분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우데사에서 활약했던 왕실군의 중포들이 트랑카벨 보병 진형을 대각선으로 쓸고 지나가며 엄청난 사상자를 내면 적진이 흔들릴 것이라 보았으니까. 게다가 화포의 숫자는 적이 더 많지만, 구경이 훨씬 거대한 아군이 유리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성전군의 포격은 생각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프레니히 공, 아군의 포격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으흠, 우선 적이 종심이 깊은 밀집 대형이 아니라, 카드 형태로 얇은 선형 진형을 취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프레니히 드 루블랭이 다소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수염이 인상적인 이 노장은 엘랑키아 군의 역사 그 자체였다. 10대 중반 이후로 평생을 전장에서 살았으며, 선대 국왕과 현 국왕에게 원수로 임명받아 전장에서 엘랑키아 군을 지휘했었다. 본래 영토도 없는 최하급 귀족이었으나 자력으로 백작위에 이른 것만 보아도 대단한 사람이다. 어쩌면 에티엔 자신보다 사령관으로 더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프레니히조차, 초전의 참패는 의외인 모양이다.
“더불어서··· 적의 전방에 있는 돌담이 생각보다 포탄을 잘 튕겨냈습니다. 아마도 단순히 돌로 쌓은 것 외에, 뒤편을 흙으로 보강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후반부에 아군 포병들도 적 포병에게 반격해보려 했으나, 포병 진지 앞에는 참호를 완만하게 파 놓아 또 화력이 낭비되었습니다.”
아무리 기병들이 정찰한다고 해도 이런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냥 경계선 역할을 하는 돌만 쌓아 올린 담이라면 포격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자칫하면 돌조각들이 흩날리며 산탄 효과를 내는 수도 있었다. 적군은 그걸 예상해서 뒤편을 흙으로 보강한 것이다.
포격으로 보병 대열을 공격하는 가장 흔한 케이스는 적 바로 앞에 떨어지도록 쏘는 것이다. 그럼 그 포탄은 운동에너지를 가진 상태로 튕기고 구르면서 적에게 지옥을 선사하게 된다. 그런데 그 가장 흔한 공격 방식이 돌담에 막혀 버렸으니··· 운 좋게 적 한가운데 떨어지거나, 튕긴 포탄이 돌담을 넘어가 적 보병을 찢어발기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화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포병 진지 앞에 파 놓은 참호도 마찬가지다. 완만한 각도 때문에 상당수의 포탄이 그대로 굴러 부드러운 흙 속에 파묻혀 버렸다. 이래서야 적진에 흙먼지를 뿌리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이쪽의 대포병 사격은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채 목표를 재배치하느라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부끄럽습니다. 적군에는 분명 대단한 야전 포병 전문가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외람되지만 전쟁이 끝나면 아군으로 영입하고 싶어질 정도군요.”
“이해합니다, 프레니히 공.”
이 노장 프레니히는 대포 활용 경험은 많았으나, 대부분의 경험이 공성전이었다. 압도적인 기병 전력을 강점으로 하는 엘랑키아 군에게 야전 포병은 큰 고려사항은 아닌 경우가 많았으니까. 굳건한 창병과 총병으로 적을 몰아붙이고, 드러난 약점으로 기병이 돌격하면 적은 무너진다. 포병은 아무래도 조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저의 장기입니다. 적의 선형 진형은 포격에 강했을지 모르나, 아군 보병의 종심 깊은 대형에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믿겠습니다, 백작님.”
“선봉을 맡겨주신 영광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멋지게 경례한 노장은 말을 돌려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다. 선봉으로 나선 3개의 보병 연대의 한 가운데가 프레니히 백작이 지휘를 맡은 루블랭 연대였다.
총 6개 보병연대 중, 전열을 맡은 3개 연대가 전진을 개시한다. 중앙의 루블랭 연대의 좌, 우에는 각각 돌로뉴와 레스펜스 연대가 나란히 진격하고 있었다. 최소 2500명, 최대 3000명에 이르는 거대한 보병 집단이다. 적진의 어느 지점에 도달해도 뚫어버릴 수 있는 깊은 종심의 사각 대형.
그리고 각 연대의 측면은 느슨한 대형을 갖춘 ‘성전 순례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개인 자격이나 소수 집단으로 지원한 종군자들이다. 제대로 된 훈련은 받지 않았으나, 천국행 티켓을 얻고야 말겠다는 그 열정과 신앙심, 그리고 욕망은 투철한 자들이다. 그 수는 상당해서 수천 명에 이른다.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서 드 레뮤즈 영지에서는 약탈하다가 성전군을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유용한 보조 전력이 될 것이다.
나머지 3개 연대는 아직 후방에서 기다린다. 정찰과 유인을 위해 내보낸 소수의 경기병을 제외한 나머지 기병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전방으로 공격에 나선 병력만 해도 1만이 훌쩍 넘는다. 숫적으로 적을 압도하고도 남을 병력이다. 게다가 측면의 기병 공격을 두려워한 트랑카벨 군은 측면 방어에도 보병들을 배치했기에 전면에 노출된 보병의 수는 더더욱 적다. 에티엔은 이 일시적 수적 우세를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