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08화 (108/556)

20-6. 샹다메리 전투

화약 점화의 첫 단계는 의외로 요란하지 않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장약이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알갱이가 거칠고 큼직한 화약이다. 화약 입자에 불이 일더니, 하나하나 불이 옮겨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 압력이 포신을 막고 있는 포탄을 밀어 올린다.

알갱이가 거친 화약을 쓰는 이유는 산화 속도를 느리게 조절하기 위함이며, 구경 대비 길고 튼튼한 황동제 포신은 느리게 폭발하는 폭발력을 쇠로 된 포탄에 충분하게 전달한다. 물론 느린 폭발이라고 해도 사람 눈으로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폭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격발 이후부터 포신을 지나 포구에 이를 때까지, 폭발력을 받아 기세가 한계에 이른 포탄이 허공을 향해 쏘아져 나가고, 뒤이어 엄청난 화염과 연기, 그리고 포성이 뒤따른다.

뻥!

포구를 벗어난 완전한 구형의 포탄은 목측이 불가능할 정도의 속력으로 날아간다. 한참을 날아간 포탄은 블랑독 초원의 바닥에 착지해서는 맹렬하게 회전한다. 그 아주 짧은 순간, 바닥을 긁어대며 사방으로 잔돌과 먼지를 날린다. 포탄이 되 튕겨 지면을 떠난 순간, 건조한 표층도 함께 날아가 축축한 흙바닥 일부가 세로로 시커먼 자국을 남긴다.

바닥을 한 번 튕긴 쇳덩이는 그대로 날아가서, 눈앞의 탄착을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눈이 커진 병사의 얼굴에 직격한다. 한 번 바닥에 튕겼으면서도 여전히 무서운 회전력을 가진 탄이 병사의 얼굴 피부 일부를 찢는다. 그러나 찢긴 상처가 더 벌어지지는 않는다. 포탄 자체가 병사의 안면을 부수며 전진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부수고 들어간 포탄이 투구 뒷면에 부딪히며 회전한다. 피부과 두개골 조각, 혈액과 뇌수, 기타 병사의 신체를 이루던 일부가 뒤섞인 소름이 끼치게 질척질척한 무언가가 끝이 뾰족한 철제 투구를 가득 채운다. 투구는 그 ‘소름이 끼치게 질척질척한 무언가’를 가득 채운 상태로 허공을 날아올라 회전한다. 그리고 끔찍한 먹구름이 되어 원래 주인의 동료들에게 피의 비를 흩뿌린다.

동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기겁하여 호들갑을 떠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긴장한 눈으로 쳐다보긴 하지만 흘러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참는 자들도 있고, 적지 않은 숫자는 일부러 외면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한다. 그나마 동료들에게는 행운이다. 이번 포격은 단 한 명만 쓰러뜨리는 것으로 끝났으니까.

양군이 대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랑카벨 포병대의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적을 더 끌어들이려 했으나, 적이 더 이상 다가오지 않자 역으로 ‘더욱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포격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둘러 방열 중이던 국왕군 측 포병도 포격을 시작했다.

양측의 포격이 교차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서로 어디를 노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듯, 지리멸렬하게 사방을 때려댔다. 물론 적절한 위치에 떨어진 포탄은 비명과 피 보라를 불러왔다. 운이 좋다면 화승총의 탄환은 막을 수 있다는 갑옷이나 투구도 포탄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포탄의 크기 자체는 생각보다 별 차이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차츰, 포화의 밀도가 짙어지자, 양측 포병대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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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도 낮춰, 그래 잘했어! 그대로, 발사!”

뻐엉!

평소에는 듣기 어려운 첼레스티나의 외침과 함께 포탄이 발사되었다. 오늘의 첼레스티나는 내 부관이 아니라, 진형 중앙에 집결한 트랑카벨 포병대의 수석 포술장이다. 최초 포격 개시 명령만 이쪽에서 내릴 뿐 포병대의 운용은 완전히 맡겼다.

평소의 격의 없는 모습만 보아서 가끔 나도 까먹지만, 첼레스티나는 눈대중으로 거리 재기의 천재이다. 터무니없는 길치인 점을 생각하면, 길 찾는 능력을 제물로 거리 재는 능력을 소환한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이고. 슈토르히 연대에서도 원래 총병을 지휘하던 선임 중대장이다. 아, 물론 슈토르히에서 포술장은 루트비히지만, 항상 철두철미한 그 녀석조차도 첼레스티나의 천부적인 능력은 인정했다.

“각 연대에 전령! 포병 전력은 아군이 압도적 우세, 경거망동하지 말고 차례를 기다릴 것!”

“각 연대에 전령! 포병 전력은 아군이 압도적 우세, 경거망동하지 말고 차례를 기다릴 것!”

“좋습니다! 자작님.”

첼레스티나가 포병대 지휘를 맡은 지금, 내 곁에서 부관 역할을 하는 것은··· 놀랍게도 아실 트랑카벨, 내가 섬기는 주군이다. 모리츠와 함께하면서 지휘 훈련받을 때, 일부러 자진해서 참모 훈련도 받았다나. 원래도 총명한 소년이었다 보니, 실제로 부관 업무를 잘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이론상 아실이 트랑카벨 영지군의 총사령관인데, 고용 용병대장인 내가 부관으로 두고 막 부려 먹는 게 좀 그렇기는 하다.

“어휴, 콘도티에레. 존댓말 하시면 안 돼요. 한시가 급한 명령인데, 지금 저는 콘도티에레의 부관이라구요.”

“...알겠습니다 자작님.”

“자작님도 안 돼요.”

“...알았다, 아실 부관.”

기어이 나에게 대답을 들은 아실은 뭐가 그렇게 기쁜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와 나란히 섰다.

확실히 사람이 많이 변했다. 이전에도 분명 똑똑하고 강한 책임감을 가진 소년이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부끄러움이 많아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어려워하는 면이 있어서 안타깝게 여겼었다. 그런데 제10 연대와 슈토르히 연대를 맡기고, 모리츠를 붙여서 실전을 몇 번 치루더니··· 정말 확 변했다.

잠시 못 보는 사이에 아실이 눈에 띄게 늠름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태도뿐 아니라··· 아니, 이거 키도 좀 큰 것 같은데? 소규모 전투 몇 번 경험했다고 듣기는 했지만, 사람이 이 단시간에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내가 선물한 나폴레옹 모자를 멋지게 쓴 아실은 여전히 선이 고운 미소년이었지만, 어딘가 당당하게 자란 청년의 느낌이 완연이 나고 있었다.

‘별일 없으셨죠? 위험하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모리츠 경과 슈토르히 연대와 함께 있었으니까요!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정말 그러신 것 같습니다’

샹다메리에서 오랜만에 합류했을 때의 대화가 기억난다. 이게 괄목상대인가. 아니, 원래 이 또래 소년들은 성장이 빠르긴 하다. 신체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리츠의 보고를 통해서 작은 교전에서 여러 차례 승리했다는 말은 들었었다. 내가 너무 과보호했던 것인지 반성하게 되는걸.

그리고 귀여운 보조 부관이 한 명 더 있다.

“콘도티에레! 샹다메리 언덕에 배치된, 드 누아 남부 연대에서 전령입니다!”

“음, 무슨 일이지?”

“적 기병의 일부가 우회를 시도하는 듯 접근, 숫자가 약 1천 명이라고 합니다!”

“그래, 예상대로네. 실제로 우회를 시도할 때까지 대기하라고 전달!”

“네, 콘도티에레!”

등 뒤로 기병용의 짤막한 화승총을 매단 소녀가 달려간다. 아넥시에서 아쥬흐가 거두어 피후견인이 된 에밀리아이다. 모리츠를 스승으로 모시며 계속 군속으로 지내왔다. 모리츠와 사이도 좋고, 아마 적성에 맞나 보다. 아무튼 저 단축 총신의 화승총으로 다람쥐와 토끼를 사냥할 정도니까··· 솜씨가 보통이 아니기도 하고.

첼레스티나가 빠진 빈자리는 아실과 에밀리아 두 사람이 훌륭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모 장교 양성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모리츠, 나중에는 첼레스티나가 자연스럽게도 곁에 있었으니까. 너무 안일했다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참모 장교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이 전투에서 이기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가면 미래를 생각해보자.

“좋아! 모두 현재의 포각을 유지해!”

첼레스티나의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포성을 뚫고 들려온다. 그녀가 보기에 조준이 썩 좋지 않다고 생각된 포들을 재조준하고 있는 과정이다. 조준선 정렬이나 호형 가늠자 따위의 도구로 대략적인 조준은 할 수 있지만, 이 시대의 포병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경험이다. 실전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포병들의 명중률을 첼레스티나가 보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는 트랑카벨 정규 보병 연대 6개가 보유한 24문의 야포가 집결하여 번갈아 가며 불을 뿜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화포의 숫자로는 적보다 많았다.

뻐버벙!

한편 북서쪽 끝에서도 호응하듯 포성이 울린다. 완벽한 포병 진지, 샹다메리 언덕 위에는 제8 벨모제 기병 연대가 보유한 8문의 기마 견인포가 배치되어 있다. 뤼나메르 교차로 전투에서 활약했던 바로 그 대포들이다. 상대적으로 보병 연대의 화포에 비해서 구경은 작지만 그만큼 예리한 친구들이지.

이틀 전, 적군 주력부대가 샹다메리에 도착하기 직전에 한발 먼저 집결한 아군은 서둘러 방어대형을 완성했다.

먼저 전선의 북서쪽 끝은 샹다메리 언덕이다. 적이 절대로 넘지 못할 자연의 요새나 다름없으니 든든하다. 그리고 남동쪽 끝은 작은 농장 폐허이다. 원래 이 부근에서 양을 키우던 벨로통이라는 농부 집안이 살던 곳이라는데, 다른 곳으로 이주해 반쯤 폐허가 되어 있었다. 폐허라고는 해도 돌벽으로 된 건물과 돌담이 있으니 나름 유용하게 방어용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샹다메리 언덕으로부터 남동쪽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서 선을 긋고 주 전선으로 삼는다. 트랑카벨의 보병 연대 5개를 나란히 배치했다. 명실상부한 주 방어선이다. 좌측으로부터 21, 16, 22, 15, 11 연대 순서이다. 잘 준비된 트랑카벨 정규 연대가 뿜어내는 정면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지금까지 수 차례의 전투에서 증명됐었다. 길을 따라 난 돌벽을 따라 엄폐까지 되어 있다. 대활약을 기대한다.

또한 제16 연대와 제22 연대의 사이에는 24문의 야포를 몰아서 배치했다. 연대 단위로 분산해서 배치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직 포병들의 전투 경험이 많지 않다. 그 때문에 집중해서 배치하고 첼레스티나를 수석 포술장으로 삼았다.

주 전선의 후방에는 슈토르히 연대, 드 누아 북부 연대, 마지막으로 지빌링엔 반 연대가 배치된다. 그러고 보니 트랑카벨 가문에 고용된 이후, 슈토르히 연대와 함께하는 첫 실전이네. 겨울 동안 천천히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 슈토르히 연대는··· 어디까지 강할지 사실 나도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중앙의 북부 연대는 포병대 바로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만약 적이 중앙으로 접근해 온다면 포병들을 보호하는 위치이다. 지빌링엔, ‘피 흘리는 흑곰’들은 아직 숫자가 적어 반 연대 상태이지만, 근접 전투력은 뤼나메르 교차로에서 증명해 보인 친구들이다.

다음으로 좌측, 샹다메리 언덕에는 드 누아 남부 연대의 엽병들과 함께 8문의 기마 견인포가 배치된다. 전장 전체에서 가장 시야가 좋은 장소이니 크게 활약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기서 이어지는 좌측 날개에는 드 누아 남부 연대의 나머지 병력과, 트랑카벨 영지군 최선임 부대인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가 배치된다. 더 안쪽으로 제7 트랑카벨 기병 연대와 드 누아 기병 연대가 배치된다. 이렇듯 소극적으로 날개를 접은 대형을 취한 이유는 당연히 적 기병이 무서워서이다···. 이번에는 최소한 기병전에서는 절대로 선공을 나서면 안 된다.

마지막 우측, 벨로통 농장을 낀 쪽에는 단일 연대로서는 가장 숫자가 많은 네그라타 용병 연대를 배치했다. 아무래도 트랑카벨 정규 연대들에 비해서 정면 화력은 부족하지만, 경험 많은 용병들이 많으므로 취약할 수 있는 측면을 잘 보호해줄 것이다. 서로 첫 만남이 그리 살갑지는 않았지만, 미카토 연대장의 지휘 아래서 얼마나 잘 싸우는지는 적으로 확인했었으니까.

그 뒤로 제8 벨모제 기병 연대가 네그라타 용병단 소속의 중기병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소극적인 날개를 접은 대형이다.

최후방에는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가 예비대로 배치되어 있다. 내 생각에, 이 전투는 압도적인 엘랑키아 중장기병들을 어떻게 깎아 먹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상대적으로 근접 전투력이 부족한 정찰 연대는 열세에 처한 아군 기병을 위한 중요한 카드가 될 테니 함부로 쓸 수 없다.

전체적으로 좌측에 힘을 줬고, 우측이 상대적으로 약한 진형이기는 하다. 부디 적도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적을 최대한 끌어들여야 한다. 적을 우리 화망 안에 깊숙하게 끌어들여 최대한 피해를 강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리한 상황에서 교전 벌여 각 부대의 기동성도 빼앗아야 승산이 있었다.

나는 그 수단으로 포병을 사용하기로 했다.

초반의 지리멸렬한 포격전 이후, 첼레스티나는 미리 계획한 대로 적 포병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적군은 가까운 아군 보병 전열을 노리고 있다. 이 시대에는 대포병 사격이 결코 일반적인 전술은 아니다. 나도 알고 있고, 첼레스티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 포병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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