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샹다메리 전투
###
“레, 레뮤즈로 진군하신다고 하셨소이까!?”
“아, 정말로 라몽 백작님의 영토를 침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 그, 제스쳐를 취하는 것이죠. 적이 속을 만한 페이크입니다.”
“허, 허어··· 알아들었소이다.”
가스텔 드 누아 백작은 정말로 놀란 것 같았다. 역시, 이 능구렁이 같은 아저씨, 라몽 드 레뮤즈 백작과 뭔가가 있긴 한 모양이다. 서로 싸우는 것을 꺼린다면 내 쪽도 뭐 나쁠 것 있나. 트랑카벨 가문도 미쳤다고 적을 늘리고 싶겠나. 심지어 드 레뮤즈는 명목상 트랑카벨 가문의 상위 군주인데.
으··· 저쪽도 싸움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생각해보니 라몽 백작도 죽을 맛이겠네. 말하자면 참전을 위장한 중립을 하고 있다는 건데 말이지. 제일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 적도 아군도 애매한 상황이다. 당장 적이 아니니 덮어놓고 적대할 수도 없는데, 갑자기 적이 될지도 모르니 방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의 스트레스는 말도 못 한다.
일단 나는 가스텔 백작에게 간단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네그라타 연대가 획득한 정보와, 국왕군의 행군로 변경 등도 포함해서. 포로로 잡힌 도르다쥬 자작의 사촌이 말한 정보는 검토한 결과 사실인 것 같았다.
“그렇군··· 라몽 백작에게 심리적 부채를 안고 있는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으로 하여금 구하러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거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작전이오.”
“네, 저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라몽 백작님이 화를 많이 내실까요?”
“푸후훗, 뭐, 그 친구라면 그렇겠지. 분명 노발대발할 것이오. 어떻게 자기 영토를 그렇게 위험에 노출할 수 있냐고 말이오.”
“...너무 깊이 들어가서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네요.”
가스텔은 뭐가 그리 좋은지 킥킥 거리며 계속 웃는다.
“전쟁 중이니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그럼 선전포고를 하질 말든가! 이쪽에서 전쟁을 건 것도 아니고 말이오.”
“하하··· 그래도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긴 합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나저나, 국왕군은 출정하자마자 동맹국 영토를 약탈하다니, 제정신이란 것이오? 생각보다 오합지졸인 모양인데.”
“아군의 포로가 된 기사가 있습니다. 도르다쥬 자작의 사촌이라는 사람인데, 귀족이 보낸 병력 말고 지원한 떠돌이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합니다.”
“...잘도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구려. 정말 부끄럽지 않나 모르겠소.”
나도 완전히, 절대적으로, 100퍼센트 동의한다. 무슨 동네 양아치들도 아니고 이놈 저놈 다 긁어모아서는 남의 영토 침공하는 놈들이 성전은 무슨, 쯧쯧.
“그럼··· 어디서 싸울지는 정해두셨소?”
“아니요. 이제부터 정해야 합니다. 계획이 완전히 달라져서, 이번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올 적을 영격해야 하니까요.”
“그럼 그것과도 연관이 되겠구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소이다. 원래라면 연맹의 맹주인 트랑카벨 가문과 상의해야 하겠으나, 콘도티에레라면 결정하실 수 있겠지.”
“무슨 일이신가요?”
“지금부터 레뮤즈 성에 다녀오려고 하오만.”
“네? 레뮤즈에 말입니까?”
이건 또 무슨 의도일까. 잠시 고민해본다. 갑자기 적 편에 붙을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안 한다. 드 누아의 정예들만 모아 놓은 3개 연대가 죄다 이쪽에 있는데 농담으로도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모종의 이유가 있는 것일까?
“물론 필요하시다면 다녀오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트랑카벨 가문에는 뭐라고 보고할까요?”
“오호, 그렇게 편의를 봐주셔도 괜찮으신 거요?”
“작전 회의에서 드 레뮤즈 가문 일은 백작님께 맡기기로 했으니까요.”
“허허, 그거 고맙구먼. 가는 길에 전장으로 괜찮아 보이는 장소가 있다면 따로 기록해서 전달하도록 하겠소.”
“아! 그거 정말 감사하네요.”
진짜다. 나는 가능하면 싸울 장소는 미리 가서 봐두는 편인데··· 드 레뮤즈 백작령 안에 들어가서 보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지도 보면서 상상하거나, 전투 직전에 가서야 찾아봐야 하는데 후보군을 다른 사람이 추려주면 엄청 고마운 일이다.
“뭐, 내 눈썰미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찾아보겠소. 그럼,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 가신들을 잘 부탁드리오. 전장에서 합류하게 되겠군.”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아마도, ‘아마도’ 추측이지만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가스텔 백작이 이렇게까지나 신경을 써 주는데, 나는 다른 방향의 문제나 해결하러 가자.
###
요 며칠 동안, 블랑독 전역으로 트랑카벨 가문의 전령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병력을 소집하고, 주둔지를 변경하며, 전방이 될 각 도시는 나름의 준비를 마쳐야 했으니까.
이번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될 주력 야전군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트랑카벨 정규 기병 2650
제7 카르카냑 기병연대
- 약 1000명
- 총기병 8중대, 용기병 2중대
제8 벨모제 기병연대
- 약 950명
- 총기병 6중대, 용기병 4중대
제31 몽세나 정찰연대
- 약 700명
- 총기병 2중대, 추격기병 3중대, 용기병 2중대
>>트랑카벨 정규 보병 7200
제10 카르카냑 보병연대
- 약 1200명
제11 벨모제 보병연대
- 약 1200명
제15 델레망드 보병연대
- 약 1200명
제16 몽세나 보병연대
- 약 1200명
제21 카르카냑 보병연대
- 약 1200명
제22 몽세나 보병연대
- 약 1200명
>>트랑카벨 산하 용병 보병 3170, 기병 100
슈토르히 연대
- 약 1140명
네그라타 연대
- 보병 약 1700명, 기병 약 100명
지빌링엔 연대
- 약 330명
>>드 누아 보병 2300, 기병 480
드 누아 기병 연대
- 약 480명
드 누아 북부 연대
- 약 1100명
드 누아 남부 연대
- 약 1200명
다소 결원이 있겠지만, 보병, 총 12670명, 기병, 총 3230명의 엄청난 병력이다.
물론 실전에 나서면 배치 등의 문제로 전투에 직접 참여 못하는 인원은 늘어나겠지만, 다소 숫자가 많은 것으로 생각되는 국왕군과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전력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일하게 전력 면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기병의 숫자이다. 수적으로 밀리는 것도 그렇지만, 엘랑키아 중장기병의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좀 얼간이 같은 귀족 연합군 나부랭이들만 상대해 왔지만··· 실제로 엘랑키아는 손꼽히는 기병 강국이다. 보통 대륙 최강의 기병이라 하면, 엘랑키아나 그룬발트 북부의 중장기병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까.
무기도 제멋대로에 지휘체계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기사도 연합인지 뭔지와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북방 전쟁에서 싸웠던 베테랑 기병 지휘관들이 조련한 부대이니 무시무시하겠지.
정면으로 싸워서는 절대 안 되고, 항상 보병 밀집 대형의 엄호를 받으며 대기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해 줘야 한다.
으으, 이래서 일부러 바다 건너에서 기마 전문 용병대를 고용했는데,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금방 도착할 것처럼 하더니만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하긴 그런 큰 규모의 말들을 옮길 수단은 쉽게 구하기 어렵기는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시기에 육로로 올 수도 없을 테니.
어쩔 수 없이, 이번 전투는 기병 활용은 다소 소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화력 면에서는 비슷한 엘랑키아 보병대를 무조건 압도할 수 있도록 화력을 중시했던 것이기도 하니까. 기병과 보병이 협력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물론 이 결전을 위한 야전군이 블랑독 연맹군의 전군은 아니다. 각 지역 수비군을 제외한 연대 단위 병력 또한 적지는 않았다.
제18 벨모제 보병연대
- 약 1200명
제19 델레망드 보병연대
- 약 1200명
제51 포르망제 의용보병연대
- 보병 약 1400명, 기병 약 200명
제18 및 19 연대는 벨모제부터 델레망드에 이르는 로데브 강 유역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만약에 도시가 공격당하게 된다면 합류하여 전투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동쪽의 법황군이 속도를 붙여 내려오면 각 도시 수비군과 이 2개 연대가 막아줘야 하는데···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저 요새와 자연 방어선인 로데브 강 믿고 배를 째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쟁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아주 최근에 새로 편성된, 제51 포르망제 의용보병연대는 이름과 달리 소수의 기병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뤼나메르 교차로에서 싸웠던 블랑독 북부 출신의 병사들을 포함해서 최근에 합류한 지원병들이다. 이들은 여울목 남쪽에 주둔하면서 예비대 역할을 하는 한편, 향후 중요한 전력이 될 수 있도록 병종 전환 훈련받을 예정이다.
로이작 드 포르망제 남작은 자신도 전투 부대에 합류하고 싶어 했지만. 조금만 재훈련받으면 훨씬 강력해질 병력이라고 설득했다. 기병들 역시 최대한 빨리 화약 무기에 익숙해지도록 전환 훈련받지 않으면 안 된다.
아 여기 부대가 하나 더 추가된다.
트랑카벨 의무대
- 총인원 약 400명
소수의 의사 자격이 있는 전문 군의관과 다수의 급히 훈련받은 비전문 간호사들로 이루어진 특수한 부대였다. 그리고 이 부대의 지휘관은 바로···.
“잘 부탁드려요, 콘도티에레 에트. 이제는 후방에서 기다리면서, 열심히 싸우는 병사들에게 미안해하기만 할 필요가 없겠네요.”
다름 아닌 아쥬흐 트랑카벨 본인이다.
“으··· 걱정됩니다. 전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요즘 블랑독에서 위험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어요. 콘도티에레 에트를 믿고 저희 역할을 다할 뿐이죠.”
“카르카냑은 괜찮을까요? 아롱드 영감님 혼자 계시기에는···.”
“후후, 벌써 50년 이상 축적된 트랑카벨의 관료 조직인데요. 믿을 만한 분들께 맡겨두고 왔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아으으, 그래도 솔직히 걱정된다.
어쩐지 아쥬흐가 군 의료 조직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라. 솔직히 이 세계의 군 의료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냥 최소한의 상비약과 붕대라도 넉넉하면 양반이고, 수천 명 규모의 용병단에 전문 군의관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행일 정도. 가까이 있는 도시에 요행히 의사가 있으면 치료받는 거고, 아니면 죽는 상황이 너무나 많다.
더 문제는 다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쥬흐가 델로나 대학에서 의학 전공하는 것을 어깨너머로라도 살펴봤고, 전장에서 수 많은 부상병 치료 현장을 봐서 알지만 기프트가 존재하는 이 세계의 의학 수준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칼에 베인 상처나 부러진 상처에 대한 치료는 이전 생 보다도 더 나은 점이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역시,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의사가 존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다.
나도 전부터 고민하던 점이라 슈토르히 연대에 기초적인 위무병 시스템을 도입했었고, 트랑카벨 가문에 와서는 카르카냑에 군 병원을 세우는 등 진전이 있었다.
...그런데 아쥬흐가 자기 인맥 의사들 불러다가 이 정도로 그럴듯하게 의무대를 만들어 버릴 줄은 몰랐지. 역시 의대 출신이라, 선후배 인맥을 통해 군의관들을 모은 모양이다. 아쥬흐의 선배라는, 의무대 책임자는 나도 만나봤는데 골 때리는 사람이더라.
아무튼 계속 걱정은 되지만, 장기적으로 트랑카벨 영지군에는 좋은 일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콘도티에레! 제21 카르카냑 보병 연대가 이동 준비를 끝나가는 모양이네요. 10분 후 출발한다고 보고가 올라왔어요!”
“그래, 고마워.”
“네에, 에헤헤. 아쥬흐 양, 안녕하세요! 앗, 이제 아쥬흐 양이 아닌가··· 아쥬흐 의무대장님이신가요오?”
“의무대장··· 그 어감도 나쁘지는 않지만, 첼레스티나는 그냥 아쥬흐라고 불러주시면 좋겠네요.”
“저도 아쥬흐 양이 좋아요, 왠지 서로 더 잘 아는 것 같아서요! 에헤헤, 아쥬흐 양이라고 부를게요.”
첼레스티나는 유독 아쥬흐에게 친밀감을 보인다. 좋은 일이지, 그게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이다 보니 서로 신뢰도 확실하고.
“그럼 우리 사령부도 슬슬 이동 준비를 시작하자. 가능하면 일찍 도착해서 지형을 보고 싶거든.”
“네에, 역시 콘도티에레!”
“콘도티에레 에트는 항상 열심이시네요. 보기 좋아요.”
두 미녀에게 칭찬을 듣고 있으니 어딘가 쑥스럽지만 옆구리가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귀찮은 일은 빨리 끝내 둬야지. 앞으로 갈 길이 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