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98화 (98/556)

19-1. 신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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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룬발트 동쪽 변경 너머, 작은 왕국이나 제후국들 건너편에는 아직 ‘인간화’가 되지 않은, 주신의 축복이 내려지지 않은 땅이 있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불경한 방식을 통해 부정한 신을 섬기는 사교를 믿는다. 이 사교도들은 감히 주신의 신성한 말씀을 전하는 주신의 사도들을 배격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런 어리석고 포학한 사교도들을 토벌하고, 주신의 참된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서, 변경지대에 특수한 목적을 가진 수도회들이 설립되었다. 모두 6개의 요새수도원에 거점을 둔 이 수도회들은 요새수도회 혹은 전투수도회라고 불렸다. 임무는 모든 변경 주민들의 종교를 사교, 즉 사악한 존재의 영향을 받은 그릇된 종교로 간주하고 토벌 및 교화의 대상으로 하는 것.

모스탈 요새수도회는 그 치열한 ‘교화의 성전’ 와중에 가장 많은 사교도를 토벌하고 교화시키며 주신의 은총을 알리는 데 성공한 이름 높은 집단이다.

이번에는 법황 성하의 명령을 받아, 그 이름 높은 정예 전투수도사들과 무장 이단심문관들을 블랑독으로 파견했다. 우선 선두로 수도원장인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가 소수의 측근 수도사들을 이끌고 도착한 것이고.

그리고 이제, 그 나머지 주력이 타비뇽에 도착했다.

블랑독 정순파 이단의 섬멸을 위해서. 어리석은 신도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변방의 성녀’의 지휘를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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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으··· 그으으으···.”

상처입은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상당히 커다란 침대에는 근육질의 거한,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가 누워있었다.

단순히 누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죽끈으로 몇 겹이나 칭칭 묶여있었다. 반쯤 벌거벗은 몸은 거의 빈틈 없이 피가 배어 나온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고, 여기저기 부러진 부분을 고정했는지 몇 개나 되는 부목을 감아놓은 부분도 보인다.

“그어어어··· 트랑··· 트랑카베엘···!”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는 수도사들은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다. 그들의 상태도 영 좋지 않다. 한쪽 눈이 시커멓게 멍이 든 자가 있는가 하면, 왼팔이 부러져서 부목을 대고 있는 자도 있다. 눈에 띄는 상처는 아니지만 역시 얻어맞았는지 턱을 쓰다듬는 자도 있다. 모두가 발작을 일으킨 네부카디를 진정시키다가 생긴 상처들이다.

“트랑카벨의··· 탕녀! 그아아아! 트랑카벨의 탕녀!”

네부카디는 지난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광란 상태에 빠져서는 ‘트랑카벨’과 ‘트랑카벨의 탕녀’를 반복해서 부르짖고 있었다. 설마 저 덩치를 저런 상처투성이로 만든 것이 트랑카벨의 탕녀라는 말인가. 블랑독에서 오래 지낸 성직자에게 물어도 트랑카벨의 탕녀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본다고 하지만.

장막으로 겹겹이 둘러친 의료용 천막의 밖에서는 용병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이곳 천막 경비는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용병들 사이에서는 꺼려지는 일이었다. 바로 안에서 들리는 끔찍한 소리 때문이었다. 너무 놀라서 경비를 한 번 서고 오면 악몽을 꾸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바로 어제만 해도, 경비를 섰던 용병들 사이에서는 장막이 잔뜩 쳐진 천막 내부에서 무슨 짓을 하느냐에 대해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었다. 좀 더 우세한 쪽은 ‘수도사들이 악마를 봉인하려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지만, ‘수도사들이 악마를 지옥에서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안타깝게도 소리를 내는 괴이한 존재가 악마가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다.

“아 시발 소리 들어보니까, 내일쯤에는 악마가 소환 되겠는데?”

“멍청아, 수도사들이 악마를 소환 할 리가 있냐? 트랑카벨 가문이 부리던 악마를 잡아와서 봉인하는 중이라니까?”

“트랑카벨의 탕녀가 악마를 부리는 술사라는 말이 있어! 내 사촌의 친구가 상인인데 블랑독에서 장사를 했거든.”

“아니 내가 듣기로는 탕녀 자체가 지옥의 여왕이라카던데? 가슴 크기가 도저히 인간 사이즈가 아니라 하더라고!”

“와 지리네 그거 진짜냐? 우리도 볼 기회가 있을까?”

“무리야 무리. 보는 순간 홀려서 악마 소환의 제물이 된다카더라!”

“아니 시발, 그럼 보고 살아남은 새끼가 없는데 인간 사이즈가 아닌지는 어떻게 알어?”

“...그건 또 그렇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하는 경비 일이 심심한데다 안에서 자꾸 들리는 괴상한 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병사들은 일부러라도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음담패설을 주고받던 병사들은 갑자기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리자 기겁하며 차렷 자세로 돌아온다. 이런 병영, 그것도 중심부의 특별한 천막 주변에서 여자 목소리라면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안에 제 오랜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경비를 서던 용병들의 눈이 커졌다. 갑작스럽게 병영 한가운데 나타난 검은 머리의 미녀. 그런데 그 미녀가 강철 흉갑과 검은 수녀복을 입고, 마찬가지로 철판을 덧댄 수녀용 베일을 쓰고 있다. 게다가 그 뒤로 거대한 덩치의 남자들을 8명이나 데리고 있다. 수도복인지 전투복인지 모를 복장을 한 이 남자들은··· 하나같이 섬뜩한 가면인지 투구인지 모를 것들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무엇 하나 놀라지 않을 요소가 없었다. 오히려 눈만 커진 것이 상당히 침착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어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경험 많은 용병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어질 정도이다. 용병 중 한 명이 간신히 입을 열어 신분을 묻는다.

“누, 누구십니까?”

“...글쎄요. 악마를 소환하려는 트랑카벨의 탕녀는 아니겠지요?”

“아··· 죄송합니다. 들으시라고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도 장난이 심했네요. 저는 랑시아 아스트로메다, 모스탈 수도회에 신세를 지고 있는 주신의 구도자 중 한 명입니다. 라모리 스텐던 경의 허락을 받았으니 들어가도 될까요?”

“드, 들어가시죠.”

랑시아 아스트로메다, 법황청이 시성한 유일한 ‘진짜 성녀’이며, 동부 변경의 성처녀라는 이명이 있었고, 모스탈 요새수도회의 이단심판소장인 그녀는 망설임 없이 어두컴컴한 의료용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천막 안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눅눅하고 후끈한 공기로 가득했으며, 피 냄새와 약 냄새가 뒤섞인 독특하고도 자극적인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크으으··· 트랑카아베엘!”

철컥철컥, 가죽끈으로 묶여있는 네부카디가 몸부림을 치면 침대가 부서져라 요동을 치고, 가죽끈이 팽팽하게 늘어난다. 연결부는 지금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수도원장님···.”

성녀 랑시아의 단아하지만 차가운 얼굴에 당혹감이 서린다.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모습이다.

“대체··· 네부카디 수도원장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지난 전투에 참여하셨을 때, 복부에 총을 맞는 심각한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간신히 전장에서 발견해 후송하기는 했지만··· 기병의 전투에 휘말리셔서 이런 위중한 상처가···.”

“하아··· 그 잠깐 사이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는 하지만, 표정에 큰 변화는 없었다. 랑시아는 몇 걸음 다가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네부카디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아니, 원래 일그러진 얼굴인가, 원래의 얼굴이 어떤 형태였는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구속을 풀어주세요.”

“네? 아··· 지금은 상태가 조금 진정되었지만,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의료수도사가 진저리를 치며 말한다. 그는 자신의 퉁퉁 부어오른 뺨을 보여준다. 발작하는 네부카디를 진정시키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무언의 표시이다.

“괜찮아요. 풀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성녀님. 저희가 곁에 있겠지만 부디 조심하시기를···.”

다시 철컥철컥 소리가 나며, 네부카디를 구속하고 있던 가죽끈의 고리들이 풀려난다. 온몸을 붕대로 감은 그가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트랑카베엘의··· 탕녀!”

아까와 똑같은 소리를 외치며, 사방을 둘러본다. 불균형한 두 눈에서는 형형한 눈빛이 뿜어져 나오며, 어금니를 악문 입가에서는 침과 피가 함께 흐른다.

“네부카디 수도원장님.”

의료수도사들이 겁을 내며 움찔거리며, 성녀를 호위해온 모스탈의 전투수도사들도 걱정이 되는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는 와중에도, 랑시아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다.

“그어어억! 탕녀여어!”

마침내 그녀를 발견한 네부카디가 달려들기 시작한다. 기겁한 수도사들이 앞을 가로막으나, 한 명은 던져지고, 나머지들이 달려들어 붙잡지만, 그 기세를 줄일 뿐이다.

“끄으으··· 크아아아아!”

네부카디의 흉악하게 생긴 화상투성이 얼굴이 움찔거리며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랑시아는 그대로 손을 뻗어,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 화상을 감싼다.

“진정하세요, 나의 투사여.”

그 순간, 화악 하고 하얀빛이 그녀의 손끝을 감싼다.

기프트의 발동을 알리는 분명한 증거.

그 지속시간은 길어야 2, 3초. 그다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짐승의 눈이나 다름없었던 네부카디의 눈에 이성이 돌아온다.

“이, 이건···.”

“수도원장님!”

“정신을 차리셨습니까?”

“이··· 이 몸, 이 상처!”

네부카디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기 몸을 살핀다. 그리고 이윽고 랑시아의 얼굴을 발견한다.

“서, 성녀님!”

“덩치는 크지만, 항상 어린아이 같으신 분이네요.”

“성녀님··· 설마, 설마 제가?”

“아니에요, 나의 투사님. 이제 함께 싸울 수 있겠네요.”

“크흑··· 죄송합니다.”

네부카디는 성녀의 앞에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 없이 오열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사이가 대체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하는 수도사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이 언밸런스한 조합을 지켜본다.

랑시아는 말 없이 떨리는 네부카디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단단한 상처투성이 근육을 통해 느껴지는 떨림에, 그녀의 입가가 살짝 일그러진다. 트랑카벨의 탕녀,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칭 성녀 때문에 그녀가 신뢰하는 대리 투사가 이런 꼴이 되었다. 아무리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려 노력하는 그녀 입장에서도 미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교단의 질서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 성녀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신 교단의 성녀란, 엄격하고도 적합한 교단의 선별과정을 통해서, 오로지 법황 성하와 휘하 추기경단의 협의를 통해서만 시성될 수 있다.

특히 살아있는 성녀는 큰 책임과 권한이 따르는 만큼, 검증 과정도 까다롭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사망해 역사 속의 존재가 되어버린 성녀들은 상관없지만 살아있는 성녀는 동시대에 단 한 명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법황청 공인의 유일한 성녀, 랑시아 아스트로메다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거짓된 성녀를 찾아내 처벌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녀이기에 참칭 성녀를 처벌할 수 있다.

그러니, 트랑카벨의 탕녀, 아니 트랑카벨의 참칭 성녀 역시 마땅히 그녀가 대적해 토벌해야 할 대상이다. 엄격한 검증 과정을 통해서 성녀가 아님을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이며, 감히 주신의 유일한 간택자를 참칭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녀의 대리 투사 네부카디는 물론 그 선봉이 될 것이고, 모스탈의 전투수도사들이 이단자들을 분쇄할 것이다.

아아, 이 땅에는 너무도 많은 이들이 잘못된 이끎으로 생기는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었다. 실로 비극,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주신의 위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종종 가혹한 시련이 필요하다.

그 시련을 극복했을 때, 비로소 블랑독은 다시 주신의 축복을 받아 태초에 주어진 신성함을 회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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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티에레, 전령! 전령이 또 왔어요!”

“으흠, 올 때가 됐지.”

“네에, 이번에는 북동쪽, 타비뇽 방향에서 온 서신이네요, 콘도티에레!”

“그래, 고마워.”

정말 올 때가 됐다. 오히려 안 왔으면 이상할 일이다. 당연히 날짜를 정해서 함께 움직이려고 했겠지.

보고는 하루 차이로 도착하기는 했으나, 북서쪽 브와이유 방향의 국왕이 보낸 성전군, 그리고 북동쪽 타비뇽 방향의 법황이 보낸 성전군 양측은 같은 날 주둔지를 떠나 출격했다. 이제 곧 블랑독 경계를 넘어 진격해오겠지.

내가 이끄는 트랑카벨 영지군을 주축으로 한 블랑독 연맹군은 블랑독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대이다.

문제는 현재 블랑독을 침공하고 있는 성전의 대군세 역시 블랑독을 침공한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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