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91화 (91/556)

17-11. 뤼나메르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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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 몽세나 정찰 연대 지휘관 로베르 드 나뵈프는 불안함으로 몸이 달아 있었다.

전령의 연락을 조금 늦게 받았다. 전령을 파견하는 시점과 전령이 도착할 시점의 위치는 많이 달라져 있을 수밖에 없으니,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나마 어디 적이 있을지 모르며 반은 적지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제31 연대를 찾아다닌 전령 덕분에 빨리 전달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전령을 받은 직후도 문제이다. 블랑독 북부는 인구밀도가 낮고 개발이 덜 된 초원지대이다. 깨끗한 평야지대도 아니다. 게다가 초행길, 최단 거리로 가는 일이 오히려 어렵다. 결국 주변에 정찰을 보내 동서로 향하는 큰길을 찾아냈고, 부대 전체가 이 길을 따라서 교차로로 향하게 된 것이다.

혼란한 와중, 다행히도 정확하게 판단한 것이었으나 전령을 받은 시점에서 뤼나메르 교차로의 전투는 이미 시작된 이후였다. 서둘러 달려가는 와중에 다른 적을 만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대 아란 제국 시절에 포장된 큰길을 따라 달리는 가운데 멀리서 포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장을 찾았다.

그렇게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는 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대 정지!"

"정지!"

"대열을 정돈한다. 정면에 총기병, 양 측면에 용기병, 정찰 기병은 후위로!"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급히 달려오느라 흐트러진 대열을 정돈하는 한편, 짧게라도 말과 병사들에게 휴식 시간을 준다. 그사이, 로베르는 좀 더 앞으로 나와 전장을 살핀다.

남쪽으로 향하는 길 좌우에는 언덕이 있다. 그가 보는 방향에서 언덕 왼쪽에는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지키는 보병부대를 언덕 아래에서 숫자가 더 많은 보병이 공격하고 있었다.

양측 모두 트랑카벨의 보병들은 아니다. 그 때문에 잠시 망설여졌다. 만에 하나, 아군을 잘못 공격하기라도 하면 농담이 아니게 된다. 통일된 군복이 없는 시대에 서로를 적으로 오인하고 전투를 벌이거나 사격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긴장으로 예민해져 있던 전방 병사들의 실수로, 연대장이 판단을 잘못해서 부대 단위로 엉뚱한 상대를 적으로 오인하는 것은 규모가 다른 문제이다.

물론 위치상, 북쪽에서 남쪽으로 공격하고 있는 언덕 아래의 상대가 적군일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마지막으로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아, 확인했다.

언덕을 오르고 있는 군세 후방에서 무언가 외치고 있는 남자. 멀어서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탑처럼 우뚝 선 큰 키와 당당한 체구. 기다린 천을 주렁주렁 늘어뜨린 일상적이지 않은 복장. 쩌렁쩌렁 외쳐대는 그럴듯해 보이는 언사. 항상 옆구리에 끼고 있는 거대한 책.

...그리고 역겨움.

로베르는 이 특유의 역겨움을 성전군에서 독전하는 성직자 이외에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블랑독에서 살면서, 그리고 트랑카벨 영지군에 합류한 이후 그런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블랑독의 주민들이 모두 정순파 신도인 것은 아니다. 당연히 주신교 신도가 오히려 더 많고, 주신교 교단 소속의 사제들도 많이 남아있다. 로베르 자신도 별 관심은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주신교 신자일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러셨고, 자신도 어릴 때는 주신교 예배당에 나가 기도를 한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저런 역겨움을 전혀 느낀 적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도 삶의 일부가 종교였고, 신앙이 버팀목이었다. 종교가 삶의 잣대가 되고 동반자가 될지언정, 거기에 삶이 휘둘리거나 심지어 타인에게 옳고 그름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성전을 종용하는 자들의 악취는 아주 멀리서도 맡을 수 있었다.

확인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다.

"돌격, 나를 따르라!"

로베르를 선두로 제31 연대가 돌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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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사역 중에 후퇴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후퇴라니!"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는 역정을 내고 있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외모와, 갑자기 내뿜는 분노의 오오라에 깜짝 놀란 전령이 어깨를 움츠린다.

"아니··· 저는 울터 코린스 경의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가서 전하시오! 신실한 주신의 신도로서 해야 할 역할을 다 하라고!"

"아, 예··· 뭐 전하기는 하겠습니다. 그래도 수도원장님도 혹시 모르니 준비를···."

"어서 가기나 하시오!"

"아 갑니다, 갈게요. 건투하십쇼, 수도원장님!"

전령이 무례한 태도를 보이며 떠나버리자, 네부카디는 마땅찮은 마음에 혀를 찼다. 정의는 이쪽에 있다. 게다가 주신의 사역을 행한다는 기쁨에 가득한 병사들의 의지 또한 훌륭하다. 이런 상황이거늘, 다소 전술적으로 불리한 지세나 훈련과 장비의 열악함이 결정적인 패배의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리도 당연한 주신의 섭리를, 주신이 창조한 세상에 사는 자들이 몰라서야···.

"원장님, 적입니다!"

마음속으로 섬김이 부족한 이들을 용서해주시고, 가호를 내려달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방해한다. 네부카디와 행동을 함께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던 보좌 수사의 찢어지는 목소리였다.

"여기가 전장인데 적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그게 아닙니다! 뒤! 뒤를 보시라는... 으아앗!"

"뒤라니 무슨···."

무심히 고개를 돌린 네부카디의 좌우 비대칭 눈이 커졌다.

눈앞에 과거 경전에서 보았던 지옥의 광경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주신의 대리인이 지상에 이르기 전.

기프트라는 신의 선물이 인간들에게 깃들기 전.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들이 지상을 횡행하던 시기를 그렸던 광경이었다.

그 그림에는 앞발을 치켜올리며 포효하는 불을 내뿜는 검은 말에 탄, 검은 갑옷을 입은 지옥에서 올라온 기사가 그려져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은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며, 유난히 작은 눈동자는 그 비인간성을 도드라지게 했다. 그런 격렬한 상황임에도 굳게 일자로 다문 입과 가느다란 입술 역시 살아있는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지옥에서 온 악마 기사가 검을 치켜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저 경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그림에 불과했으나, 아직 어렸던 네부카디는 그 그림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혹시라도 지옥에서 보낸 사자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지, 두려워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으며 잠을 청하던 나날이 있었다.

"이 악마의 사도야!"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는 자신의 무력함이 한스러워 힘을 키웠다. 진실한 신앙의 갑옷으로 무장했다. 수많은 이단과 사교도들을 쳐 죽였으며 주신의 뜻을 사방에 전했다.

이제는 악마의 그림 한 장에 두려워하던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이 악마의 두려움이 된다면 모를까.

"주신의 두려움을 알라!"

네부카디는 피하거나 움츠러드는 대신, 사슬에 감겨 허리에 연결된 거대한 책, 성스러운 경전을 휘둘렀다. 두꺼운 가죽으로 표지를 만들고 모서리를 놋쇠로 보강한 경전은 거대한 흉기나 다름없었다.

"큭!"

네부카디의 눈에 지옥에서 온 악마 기사로 보였던 자는 다름 아닌 로베르 드 나뵈프였다. 로베르의 검이 거세게 휘둘러진 경전에 튕겨 나왔다. 칼날이 잘라낸 가죽과 종잇조각 몇 개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설마 경전을 휘둘러 막아낼 줄은 몰랐기에, 로베르는 급히 말고삐를 당겨 쥐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일격의 충격을 받아낸 역시 네부카디 역시 비틀거리며 자세를 바로 한다.

"크크크 네 이놈! 악마의 형상을 하고는 있으나 인간이구나. 분명 트랑카벨의 탕녀가 보낸 자객이 분명하구나!"

"......."

로베르로서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악마의 형상이라니, 자신은 그저 평소대로의 복장을 했을 뿐이다. 며칠 동안 야지에서 지내 다소 외모가 흐트러졌을지는 몰라도, 악마로 보일 정도는 아닐 텐데.

뭐 그건 아무래도 좋다. 그다음에 한 말이 문제다.

탕녀? 트랑카벨의 탕녀? 갑자기 뜨거워진 피가 뇌혈관을 달리고 눈에서 불꽃이 튄다. 탕녀라니, 설마 로베르가 언제나, 하지만 조용히 마음속에서 섬기고 있는 자신만의 성녀 아쥬흐 트랑카벨을 말한 것인가? 로베르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적의를 보이며 이를 드러냈다. 그 자신도 놀랄 정도의 분노가 전신을 휘감았다.

"크하하하, 탕녀의 기사여! 표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역시 인간이구나! 화가 나는가? 아니면 탕녀의 몸뚱어리를 생각하니 정욕이라도 치솟았는가? 무엇이라도 좋다! 이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 모스탈의 필두가 상대해 주··· 크악!"

헛소리의 대가는 뜨거운 납탄이었다. 로베르는 푸르륵 거리는 말을 진정시키더니, 왼손에 고삐와 함께 들고 있던 권총으로 쏴 버렸다. 감히 성녀를 모욕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개인적인 결투였다면 그 모욕에 어울리는 잔혹한 최후를 만들어 주었겠지만, 지휘관 입장에서 너무 흥분하면 안 된다, 적을 개인으로 미워하면 안 된다고 콘도티에레에게 몇 번이나 교육받았었다. 아쉽지만 빨리 끝내고 다음으로 가야 한다. 그의 부대는 지각했으니 할 일이 많다.

타타탕! 탕! 탕!

"뒤에서 적이다! 으아! 뒤! 뒤야!"

"으윽, 신이시여!"

"끄으윽!"

탕탕! 탕!

"대열을 떠나지 마라! 혼자 추격하지 마!"

"적을 쫓아버리고 집결한다!"

"트랑카벨! 몽세나!"

"트랑카베엘!"

전장에 새로운 소음과 비극이 추가된다.

가볍게 무장한 데다가 통제도 잘 안되는, 기이한 종교적 열정이라는 끈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던 경보병 집단이 막 전장에 도착한 중무장 기병대의 돌진을 견딜 수 있을리 없다.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의 돌진이 네부카디가 이끄는 ‘행동하는 신실한 자’들의 후방을 휩쓸고 있었다. 네부카디의 희망과는 달리, 주입 당한 종교적 열정도 거의 빠져버렸고, 지지부진한 공격에 지쳐있던 ‘행동하는 신실한 자’의 무리는 후방에 기병 돌격이 꽂히자 바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고착되어 있던 전장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원군이 왔다아아아!"

언덕 위에서는 힘든 전투 끝에 지원군이 도착하자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 보병들의 외침이 메아리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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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에르만 형님!"

"에··· 무슨 일이야, 스테페네... 엣! 콘도티에레의 부관님?"

전선을 지켜보고 있던 지빌링엔의 지휘관 에르만 슈피리는 동생이나 종자인 스테펜 슈피리가 가까이에서 자신을 부르자 깜짝 놀랐고, 그 옆에 총지휘관이 보낸 미녀 부관이 서있다는 것을 알자 더더욱 깜짝 놀랐다.

"네에, 콘도티에레께서 급하게 명령을 내리셨어요."

"드, 듣겠습니다!"

"전령! 곧 적 기병들이 후퇴한다, 그러면 지빌링엔 보병대는 절대 추격하지 말 것, 그 자리에 전투 대형을 만들어서 대기! 이상이에요."

"엇, 알겠습니다! 적이 후퇴하면 추격하지 않고, 새롭게 전투 대형을 준비하겠습니다."

"네에, 콘도티에레께서는 이후 반격을 하게 되면 지빌링엔 부대가 선두를 맡아 주시길 바라셔요."

"오오, 영광입니다, 부관님!"

에르만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찬다. 이번 전투를 겪으면서 확신을 가진 것이 있다. 그를 지휘하는 에트라는 이름의 콘도티에레는 ‘이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몸을 의탁했던 고용주들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행동이나 말이나, 승리한다는 확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배우지 못하면 훔치기라도 해야 한다. 이기고 살아남아서, 피 흘리는 흑곰을 재건하고 고향으로 돈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콘도티에레에게 지빌링엔의 싸움 방식이 인정받은 모양이다. 반격의 선봉, 위험하고 힘들겠지.

하지만 기꺼이 받겠다. 자신들이 목숨을 내놓더라도, 신생 지빌링엔 연대가 받은 인정과 쌓아 올린 경험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어머나, 귀여운 종자님이네요오, 이름이 뭔가요?"

"저, 저는 스테, 스테펜 슈피리 입니다!"

"아하, 슈피리라면 에르만 슈피리 대장님의 여동생이신 거네요? 고생이 많아요, 우리 마지막까지 힘내요!"

"아, 감사합니다, 부관님···."

"제 이름은 첼레스티나예요."

첼레스티나가 본진으로 떠나자, 어린 종자는 울상을 지으며 에르만을 올려다본다.

"형님··· 어떡하죠? 부관님께서 여동생이라고··· 들켰어요."

"엇!"

에르만과 스테펜, 아니 스테페네트 슈피리는 철렁한 표정으로 마주 본다. 어째서 들켰을까··· 머리도 짧게 깎고 완벽하게 위장하고 있었는데.

"괜찮아··· 부관님이시니까, 함부로 이야기하시지는 않겠지.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네에··· 형님."

에르만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의 눈에 적 기병이 후퇴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정확히 지시대로였다! 혹시라도 추격하려 드는 부하들을 수습하고 명령을 따르면 된다!

"대열을 벗어나지 마라!"

혹시 모를 반격을 준비하자.

다만 첼레스티나는 스테펜이 남자로 위장한 여동생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냥 평범하게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지빌링엔의 다른 병사들 역시, 대장의 종자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슈피리 오누이뿐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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