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뤼나메르 교차로
모스탈 수도회의 원장인 네부카디 델 카스트로소는 최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의 행동하는 신자들, 즉 성전군의 선발대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하나하나는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주신의 사역을 돕기 위해서 일상을 놓고 떨쳐 일어난 자들이다. 네부카디에게는 소중한 수족이다.
처음 타비뇽에서 소집해 출발한 선발대의 숫자는 대략 4천 명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파악되는 숫자는 2천 명 정도로,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모양이다. 물론 통제에 따르지 않거나 탈영하는 등, 기록이 되지 않았을 뿐 블랑독 어딘가에 있는 자들도 분명 있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전투가 이어지면서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다브농 슾지에서 이단자들을 추격하다가 남쪽에서 올라온 이단의 군대와 대적하게 되어 목숨을 잃은 이들도 많았고, 포르망제 성에서의 싸움에서도 상당한 숫자가 거룩한 성전에 목숨을 바쳤다.
무도한 이단자들! 저주받을 탕녀를 따르는 어리석은 불신자들! 실로 지옥에서 그림자 악마들을 따라 올라온 사냥개들이나 다름없도다! 저 남쪽에 있다는 트랑카벨이라 불리는 영토에 사는 자들의 현실이다. 자신들이 등진 주신이 얼마나 거룩한 존재인지도 모르면서! 자신들이 따르는 탕녀가 얼마나 음험하고 사악한 존재인지도 모르면서! 그 무거불측한 삶을 끝내고, 가엾은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만이 진정한 주신을 따르는 사도들의 의무이리라.
그 때문에 모스탈 수도회 형제들의 업무는 나무나도 과중했다. 아직 수도회 대부분이 도착하지 않아서, 현재 블랑독에서 주신의 사역에 함께하고 있는 이단심판관 형제들의 숫자는 채 스물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단순히 주신의 사역에 동참하는 기쁨만으로 버티기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단 혐의자를 찾으면 추적하여 체포하고, 압송하여 재판하게 된다. 참된 신앙을 입증하고 회개하면 석방하며, 회개하지 않고 죄가 인정되면 처벌한다.
이 반복되는 업무 때문에 수도회 형제들은 과로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물론 대단한 열정으로 이겨내고는 있지만··· 빨리 요새수도원 본원에서 파견한 지원이 도착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다.
이렇게 이단심판관들이 모든 별건에 관여하지 못하다 보니, 행동하는 신자들 사이에서 사적 제재가 발생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포르망제 성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아르누아 루케 추기경이 대단히 분노하였다는 소식도 있었다. 휴우, 때로 행동하는 신자 동지들의 과한 열정은 통제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감히 주신의 지상 대리인이 이끄는 신의 사역에 거역하는 것은 신자로서 용서받기 어려운 중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학살하고 불태우는 것이 용납되는 것 또한 아니다. 전투 중에는 어쩔 수 없지만, 전투가 끝난 후에는 불신자들은 정당한 재판 과정을 통해 그들의 운명을 결정받아야 한다. 이는 의무나 권리 따위가 엮이지 않는, 신성한 신의 섭리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이단자와 불신자들을 잡아 신의 앞에 무릎 꿇리고, 신성한 경전의 교리에 입각하여 그들의 언행을 단죄해야 한다. 물론 죄과가 밝혀지면 그들의 재산이 교단에 귀속됨은 물론이다. 이렇게 모인 재산은 주신의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서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행동하는 신자들이 너무 흥분한 탓에, 전투가 끝난 직후에 너무 많은 이단자와 불신자들을 학살했고, 거리에도 불이 붙어 성안이 깡그리 불타버렸다. 이들을 이끄는 목자로서 똑바로 하지 못한 네부카디의 실수가 분명하므로 가슴이 아팠다.
특히나 불신자들의 수괴, 포르망제 가문의 주인인 로이작 드 포르망제를 잡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포르망제 함락의 마무리가 되어야 할 의식이 바로 로이작 남작과 그 가신들에 대한 이단심판이었어야 했는데··· 현실은 완전히 불타 잿더미만 남아 버린 성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주신께서는 다 안배하고 계셨다.
포르망제 성에서 놓치고 아쉬워했던 로이작 남작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가신들까지 이끌고 말이다!
그것도 바로 네부카디의 앞에.
감히 주신의 군대 앞에서 문을 닫아걸고 적대한 포르망제 가문의 어리석고도 무도한 후손.
자신들이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누구의 은혜인지도 모르며 모독적인 무기를 휘두르는 에크테인의 광부.
블랑독의 탕녀에게 속았는지, 선동당해 반역의 전선에 합류한 게으른 무지렁이 농부들.
그저 돈에 정신이 묶여, 신성모독자들이 지불한 은화에 팔린 일군의 용병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감히 주신에게 거역한 천벌 받아야 하는 자들이로다!
네부카디는 확신했다. 이번 이단심판은 주신 교단의 역사에 남을 아름답고도 진솔하며 거대한 규모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가십시오, 주신의 행동하는 신자들이여! 주신께서 원하신다!”
“주신께서 원하신다!”
“우와아아아!”
함성소리가 초원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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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첼레스티나와 소식을 전해준 전령, 그리고 소수의 호위병들만 이끌고 달리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북쪽을 향해서. 적지 한복판일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데 그러면 안된다며 주변에서 펄쩍 뛰며 말렸지만, 어차피 이 지역은 우리 기병들이 완전히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다.
“위치가 어디라고 했지?”
“네에, 뤼나메르! 뤼나메르 교차로라고 해요!”
“왜 교차로야?”
“네에··· 에에, 에크테인 산맥에서 동쪽 바닷가로 향하는 도로와, 블랑독에서 타비뇽으로 향하는 도로가 만나는 지점이라 그렇다고 하네요?”
“아 맞다 그랬지. 확실히 교통의 요지였어.”
기억이 난다. 블랑독의 북쪽 끝에 가까워서 설마 여기서 전투가 벌어지겠어 했었는데··· 이렇게 전투가 벌어지는 일도 생기는구나. 그런데 정말 누가 싸우고 있는 거지?
“대체 누가 싸우는 걸까?”
“인근 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싸우고 있는 게 아닐까요?”
“...무리를 하는구나.”
나는 거듭거듭 느끼지만, 전장에 전문적이지 않은 민간인들이 휘말리는 것이 싫다. 하지만 또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터전을 침입해온 자들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드 포르망제 가문과 그 가신들이 고향을 떠나는 것을 거부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에크테인 산맥이나 그 주변 습지와 숲에 살던 거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거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성격도 거치니까, 싸움 한번 없이 고향을 내주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것 같다.
“전령! 전령!”
“콘도티에레, 전령이에요! 저 색깔은··· 제8 기병 연대, 마브리엘 경이 보낸 전령이네요!”
말을 타고 달려온 전령은 우리를 확인하더니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차 충돌은 이미 끝났다는 모양이다. 그럼 대치 중인가? 말을 타고 가면서 대화하려니 좀 숨차고 소리를 지르느라 목이 아프기는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제8 벨모제 기병 연대의 마브리엘 연대장은 북쪽에서 내려온 성전군을 적군, 뤼나메르 교차로를 점거하고 지키는 병력을 아군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콘도티에레!”
“그건 잘했네. 하지만 설령 아군에 가깝다고 할지라도 전투 중에 갑자기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데···.”
“그래서 적의 측면을 공격하려는 듯한 진로로 접근하셨습니다!”
“오호, 멋진데 마브리엘!”
미리 이야기되지 않고, 서로 존재나 위치도 모른 상태에서 갑자기 전장에 난입하면 정말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안개 심하게 꼈다고 같은 부대 내부에서도 적으로 오인한 오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는, 구원군으로 온 병력을 적의 기습으로 생각해 그대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현실의 전투에서는 미니맵도, 3인칭 시점의 넓은 시야도 없다. 오로지 지휘관이 직접 보는 시야와 부하들의 보고에만 의지해 전투를 지휘해야 한다. 정보와 명령이 오가는 시간차 까지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직관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미처 지휘관이 대응하기 전에 예민해진 전방의 병사나 하급 장교들이 아군을 적으로 오인하는 것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오인 전투가 최악인 점은,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병사도 물론 전투력을 상실하지만, 죽인 쪽도 아군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사실상 전투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몇 배의 적을 상대로도 용감히 싸우던 부대가, 후방의 아군 실수로 단 한 번의 오인사격을 받고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장면도 본 적이 있다.
때문에 마브리엘은 ‘아군을 지원하는 형세’가 아니라 ‘적을 공격하는 형세’로 접근했다. 그럼 적이 아군으로 생각해서 멍청하게 후방을 내주든, 적군으로 생각해서 전투력을 나누든 강요할 수 있으니까. 또한 그 모습을 본 ‘전장의 다른 아군’은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 이런 건 딱히 지휘관 교육에서도 가르친 적이 없는데 훌륭한 판단력이다.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
“그래서 교전에 들어갔나?”
“아닙니다. 측면을 노리는 것처럼 기동하기만 했으나, 적군은 위축되었고, 이내 전투를 포기하고 물러났습니다.”
“최선의 결과네! 그러면 거기서 싸우던 ‘아군’은 누구지?”
“드 포르망제 가문의 생존자들과 인근 주민들, 그리고 에크테인 산맥의 광부들이라 합니다!”
“허어··· 포르망제 성은 역시 함락된 것이고?”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에크테인 산맥의 광부들이라··· 그러고 보니 드 포르망제 가문의 주 수입원 중 하나가 에크테인의 은광이라고 했었지. 트랑카벨에 은을 지불하고 총과 화약을 추가로 사 갔었다. 왠지 광부라고 하니, 전문 전투원은 아니겠지만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설마 곡괭이를 들고 싸우려나···.
“현재는 대치 중?”
“그렇습니다, 콘도티에레! 적 또한 500미터 정도 물러나서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장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설마··· 그쪽에도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아직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양측의 병력은 어느 정도인지 혹시 확인했나?”
“남쪽에 있는 ‘아군’의 숫자는 1천 명이 되지 않았으며, 적군은 2천 명이 넘어 보였습니다.”
병력이 생각보다 엄청 많은데. 드 포르망제 수비군은 몇백 명 안되지 않았던가. 아무튼 적군 쪽도 지원군이 있다면 복잡해지는데··· 일단 후퇴시키고 다음 기회를 노려보는 게 좋겠지만, 세상이 냉정한 판단만으로 흘러가지는 않겠지. 마브리엘이 이끄는 기병대의 지원이 있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두 배의 적을 상대로 싸웠던 ‘북부 블랑독의 거친 영혼들’이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후퇴하자는 내 지시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못 한다, 그런 것 아니겠나.
“최대한 빨리 가야겠네··· 다음 충돌이 있기 전에 도착하면 좋겠는데.”
대충 거리를 가늠해 보아도··· 남쪽에서 열심히 우리를 따라 행군 중인 보병 연대들이 오늘 내로 전장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의 지원군이 있다면 어느 정도 거리에 어느 정도 병력일지··· 으으, 머리가 복잡해진다.
“속도를 올릴까요, 콘도티에레?”
“중간에 너무 지쳐도 곤란해! 아직 제31 정찰 연대는 도착하지 않았나?”
“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군··· 누가 먼저 교차로에 집합하는가의 싸움이 되는가···.”
마음이 급해진다. 지금은 약 1천 명에, 제8 기병 연대가 함께 있으니 병력 면에서 호각이지만 적의 지원군이 만약에 도착한다면 기세가 밀릴 수 있다. 부디 늦지 않기를!
"로베르 경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나?"
"네에! 콘도티에레, 확인을 위해서 전령을 보내도록 할게요!"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부족하고, 대응하기에는 카드가 부족하다. 나는 말 없이 말 등에 몸을 바짝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