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78화 (78/556)

16-3. 다브농 방앗간 조우전

로용 드 말리크는 형언하기 어려운 기묘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경험한 ‘실탄 사격’은 전부 명중했던 것이다. 훈련 중의 30미터 사격과 50미터 사격, 80미터 사격. 실전으로는 방앗간에서의 최초 조우 당시 근접 사격, 조금 전 지휘를 하는 것으로 보였던 적병의 흉갑을 깨부순 사격까지. 어찌 됐든 모든 사격이 표적을 뚫었다. 실감도 나지 않는 상황에서 두 명의 인간을 죽였다.

아, 어쩌면 마지막, 흉갑 입은 적병을 쐈던 것은 로용 자신의 사격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다른 아군이 쏜 탄환에 명중했을 가능성도 있겠지.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에게 생긴 자신감을 깎아내는 일은 아니었다.

비슷한 현상이 지붕에 배치된 다른 ‘명사수’들에게도 발생하고 있었다.

신병의 첫 출전.

당연히 모든 신병에게 엄청난 중압감과 긴장이 되어 어깨를 내리누른다.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청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고 평소에 잘하던 행동도 잘 안 되며 머릿속은 하얗게 변한다.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자극에는 과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어떤 자극은 기이할 정도로 뇌에 가서 닿지 않는다. 진흙탕처럼 축축하고 끈적끈적하게 변해버린 머릿속으로 간신히 사격 준비를 해 놓고도, 다음 발사하는 탄환이 과연 제대로 나갈지 확신이 가지 않는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었다.

하지만 그 단계는 벗어났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은 잘 발사되었다.

종종 실수는 했지만, 치명적인 실수는 없었다. 어쩌다 화승 끝부분을 만져서 손가락 끝을 데인 정도의 작은 실수 정도. 장전하다 말고 방아쇠를 당겨서 꽂을대를 허공에 발사하거나, 최악의 경우 이중 장전으로 총열이 파열하는 따위의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발사한 총알은 적의 방어구와 육체를 찢고 유혈사태를 불러일으켰으며, 적의 용기를 산산이 부수어 놓았다. 비명을 지르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모습과, 아우성치며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추태는 그대로 자신감이 되어 제8 연대 제7 용기병 중대 병사들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손에 들린, 철과 나무로 된 생소한 무기가 적의 앞에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기다려! 방아쇠에서 손 떼!”

로용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숙여라! 굳이 적에게 표적이 되어주지 마!”

아까와 달리, 병사들은 떨지 않는다. 표정이 한결 안정되어 있었다. 로용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아까는 솔직히··· 너무 긴장돼서 턱이 덜덜거리며 흉갑에 부딪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부디 주변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를.

그러고 보니 적의 표정이 똑똑히 보인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투구에 가려서 눈은 보이지 않으나, 험악하게 일그러진 입술에서 거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우어어어어!”

“이단자들을 때려죽여라! 태워 죽여라!”

“주신의 이름으로! 주신의 이름으로!”

주신의 이름이라니! 갑자기 발끈하게 된다. 그의 가문, 말리크 남작가는 나름 독실한 주신교 신자들이었다. 특히 그의 아버지, 메세 드 말리크는 젊은 시절 성전군에 참여해 바다 건너 그림자 종족들의 영토에서 싸운 적도 있다고 들었다! 로용 역시 형과 함께 사제가 이끄는 성사에 참여해 경전을 읽고 주신의 뜻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로용의 가족들을 박살 냈던 약탈자들은 그 행동을 ‘주신의 정의’라 외치고 있었다. 정순파 신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블랑독에 그 특이한 믿음을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니까. 하지만 말리크 남작의 친족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영민은 그렇지 않았다. 평생 주신을 따르며 살았던 이들을 학살하고, 주신을 섬기던 장소가 되었던 가문의 성소를 파괴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신의 뜻을 행하는 군대’로 자칭하는 자들이었다.

빌어먹을 놈들, 용서할 수 없다.

“사격 준비!”

창고 아래에 배치된 아군에게 명령이 내려진다. 탕탕! 타타탕! 아군이 발사하기 전에, 적진에서 먼저 성급한 사격이 이어진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하얀 연기를 뚫고 적들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발사!”

타타타탕!

창고 아래의 바리케이드에 배치된 아군이 먼저 발사한다.

“흐윽!”

“커어억!”

선두에 적들 몇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피가 튀고 조각난 금속 파편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지붕 위에서도 보인다. 타탕! 탕! 적진에서 산발적인 사격이 이어진다. 적의 사격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쏘지 않는다. 선두의 적은 거의 30미터 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조금 기다린다.

“소, 소대장님?”

불안함에 빠진 병사 한 명이 확인을 위해서인지, 재촉을 위해서인지 그를 부른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기다릴 수 있지?”

“네, 넵, 소대장님!”

“우리는 지붕 위라서 각도 상 안전하다. 15명이니까, 5명씩 번갈아 가면서 지붕 끄트머리 쪽으로 가서 적의 심장부를 쏜다! 알았지?”

“알겠습니다!”

역시 ‘명사수’로 선발된 병사들,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에도 바로 응해준다. 행동이 말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믿어본다.

적이 계속 다가와서 선두의 끝이 거의 창고의 외벽에 도달했다.

“사격 준비!”

그제야 로용이 외친다. 찰칵, 찰칵. 일제히 격철이 뒤로 젖혀진다. 첫 열이 지붕 가장자리 쪽으로 나아가 총을 겨눈다. 그 중의 한 명은 로용이다.

“발사! 죽여버려!”

타타타탕! 탕!

‘죽여버려’를 외치는 바람에 사격이 한 타이밍 늦었다. 5명의 일제사격, 하얀 연기가 확 하고 퍼지기 전에 분명하게 몇 명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갑작스러운 측면에서의 사격에 놀라서 고개를 치켜든 적의 얼굴도. 부러진 앞 이빨 사이로 목젖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2열 발사!”

타타타탕!

재빨리 자리를 교대한 다음 줄이 사격을 퍼붓는다. 로용의 꽂을대가 총구의 입구를 쑤시고 들어간다.

“3열 발사!”

마지막 줄이 사격을 퍼붓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격을 마친 병사들은 다음 총알을 장전하기 위해 꽂을대를 뽑아낸다. 역시 몇 발 쏘고 놨더니, 총열 내에 찌꺼기가 끼어서 꽂을대가 쑥쑥 잘 들어가질 않는다.

“자율 사격! 각자 장전 되는 대로 발사해! 허투르게 쏘지 말고 확실하게 한 발에 한 명씩 대가리 날려라!”

“알겠습니다!”

이제는 총 쏘는 기계가 된다. 적어도 남은 화약을 다 써버릴 때까지는 뒈질 수 없다.

“로용 소대장님!”

갑자기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반대 방향, 적이 오지 않는 방향을 보니 투구를 쓴 얼굴 하나가 삐죽이 나와 있다.

“무슨 일이야?”

“중대장께서 병력을 절반으로 나눠서, 후방 쪽 바리케이드를 지원하라고 하십니다! 적이 우회하고 있습니다!”

“알았다고 전해라!”

전투는 이제 막 시작이다. 적도 이제 모든 수단을 다 쓰려고 하겠지. 부하 중 7명을 추려 지붕 반대편으로 향한다.

물론 장전하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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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북방에 적이 나타났다고?”

“그렇습니다, 선두의 제15 연대가 직행하고 있습니다. 드 누아 북부 연대에는 그 후방으로 직행하여 제15 연대를 지원하라는 명령입니다!”

“알았네, 콘도티에레 각하께는 드 누아의 아들들이 목숨을 걸고 명령을 수행할 것이라 전하게!”

“알겠습니다, 모콜리 경!”

모콜리 드 디망투완 남작, 드 누아 가신단의 우두머리이자, 연맹군 북부 연대의 연대장은 전령이 돌아가자 휘하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북쪽에서 교전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내리는 명령은 모든 명령에 우선한다. 우리 연대는 지금 시간부로 전투가 벌어진 지점으로 행군해, 트랑카벨 제15 연대를 지원한다. 목표 지역은 뭐라고 부르지?”

“다브농 습지 입니다.”

“습지! 보송보송한 땅에서만 살았던 트랑카벨 친구들이 고생할 법한 장소구만!”

“저희가 도와주면 어떨까요?”

“허허!”

모콜리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자신감을 내비치는 젊은 중대장, 메르클랑 나브룰을 바라보았다. 작년 겨울, 알코라즈 남작과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던 산지기 경보병들을 이끌었던 청년 지휘관이다. 강을 건너는 적을 공격할 때도, 이후 진격하는 적을 숲속에서 야금야금 잘라먹을 때도, 브롱보카쥬에서 벌어졌던 결전에서도 크게 활약했었다.

“숲은 없지만, 습지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저희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거야 그렇지! 체력들은 괜찮겠나?”

“이스키비르 강가의 아름답지만, 고약한 땅을 달리던 친구들 아닙니까. 블랑독 초원지대는 눈 감고도 달릴 수 있습니다.”

“좋다! 2개 중대를 이끌고 제15 연대장에게 먼저 달려가게! 적이 알지 못하는 길을 자네들은 찾아낼 수 있다고 전하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모콜리 경. 전령! 엽병 중대를 소집해라!”

산지기와 사냥꾼, 벌목꾼 등, 드 누아의 미개발지 출신들로 이루어진 경보병들은 브롱보카쥬 전투 직후 ‘엽병’이라는 새로운 병종 이름을 받았다. 숲을 지키든, 사냥감을 쫓든, 나무를 베든 숲에서 사는 사나이들의 특징은 남달리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강인한 다리에는 연맹군의 편성에 고심하던 트랑카벨의 콘도티에레조차 감탄했었다.

지난 전쟁 이후 충분히 보급된 화승총으로 전원 무장한 엽병 2개 중대가 메르클랑의 지휘하에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누아의 기개를 적에게도 보여주게나! 우리도 곧 따라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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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뒈져 이 새끼야!”

“끄아악! 히익!”

처마 너머로 고개를 내민 적병의 투구를 화승총의 개머리판으로 후려갈기자 그대로 뒤로 넘어가 동료들의 바닷속으로 떨어진다.

이제 로용과 그가 지휘하는 용기병들은 안전한 장소에서 저격만 할 수는 없었다. 창고 사방이 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미리 후방에 바리케이드를 쌓아놓지 않았다면 분명 완전히 포위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창고 주변을 가득 채운 적들은 무슨 수를 썼는지 창고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올라오는 것을 보면 사다리는 아니고 아마 뭘 쌓아놓고 올라오는 것 같은데··· 저격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가끔 지붕 가장자리에 고개를 내미는 적이 있으면 두더지 잡기 하듯 되밀어 떨어뜨리고 있다.

성벽처럼 거림막이 없는 상황에서 처마 가장자리까지 나가는 것은 창고 아래쪽에서 이쪽을 노리고 있을지 모르는 적 총병에게 몸을 노출하는 위험한 행위였다.

“으으으!”

탕!

허벅지를 맞아 응급처치만 하고 한쪽 다리를 편 상태에서 앉아서 연달아 사격하고 있는 병사의 얼굴이 창백하다. 최대한 강하게 묶어 놓기는 했지만,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지붕의 통나무 사이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 정도로 출혈이 심했다.

“야, 그만 쏘고 상처나 꾹 누르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여기 붕대 있다! 위아래로 꽉 묶어!”

상처를 입었다고 쉬고만 있을 만큼 상황이 만만하지 않았다. 그 병사가 피투성이 손으로 총을 든 이유가 있었다. 아군은 너무 적고, 적은 너무도 많았다.

아까 갑옷을 입고 몰려오던 제2파의 적들은 완강하기는 했지만 어정쩡한 위치에서 꾸준히 사격에 노출돼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한 50명 이상은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로 거지 떼나 다름없는 몰골의 후속부대가 몰려들어 그 후방을 가득 채우자, 더도 덜도 없이 숫자가 가지는 힘이 피로라는 형태로 수비 중인 용기병들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병력의 절반이 바리케이드에서 계속 넘어 오는 적들을 밀어 내느라 재장전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만큼 살상력이 줄어든 틈을 타 적이 끈질기게 몰려온다. 총을 쏴서 한 명 쓰러뜨려도 곧바로 뒤에서 적이 달라붙는다.

“로용 소대장! 지붕 위는 좀 어떤가?”

“엉망입니다!”

후방 바리케이드 쪽을 살피던 로용을 발견한 그웬넬 중대장이 묻는다. 그 역시 피투성이가 된 채로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중대장이 백병전을 벌여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몇 명 내려보내 주게! 지금 절반이 상처를 입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으으,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지붕 위도 여유롭지는 않지만, 바리케이드가 한 곳이라도 뚫리면 정말 끝장이었다. 로용은 병사 중 넷을 뽑아 창고 뒤편으로 내려간다. 지붕 위의 15명 중 2명이 죽고 1명이 중상이었다. 로용 자신을 포함해 5명이 내려가면 8명밖에 남지 않는다. 아마 간신히 모서리를 지키며 간간이 방해받지 않은 저격을 쏠 수 있을 것이다.

내려가면서 잠시 적 방향을 보니, 숲속까지 적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못해도 수천은 되어 보인다! 그냥 피난민들 괴롭히는 별동부대 공격하는 일인 줄 알았더니 상황은 최악이다.

“앗!”

지붕에서 내려가 막 땅에 발을 디디던 순간, 총소리와 함께 중대장 그웬넬의 몸이 휘청한다.

“중대장님!”

정면에서의 공격에 정신이 팔려, 바리케이드의 모서리를 따라 기어코 우회해온 적의 손에 들린 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총을 쏜 적병이 씨익 웃으며 치열이 엉망진창인 이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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