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76화 (76/556)

16-1. 다브농 방앗간 조우전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은 간혹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무모한 인간은 아닙니다.”

가스텔 드 누아의 말은 느릿하고 차분하다. 나 역시, 가스텔 백작이 라몽 백작과 나름 특별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두 가문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라몽 공은 트랑카벨 군대의 무서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드 레뮤즈에 대한 대처는 저에게 맡겨주시기를 바랍니다.”

흐음···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분명 생각이 있다는 것이겠지. 사실 브롱보카쥬 전투 이후로, 아쥬흐가 판을 깔아줬다고는 해도 엄청난 속도로 이스키비르 강 건너의 영주들을 다루며 세력 확장하는 모습을 보면 가스텔의 수완이 보통은 아니다. 나는 아실과 마주 보고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믿고 맡기겠습니다, 백작님.”

“못난 늙은이의 호언장담입니다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실 경.”

“못났다니요··· 가스텔 백작님은 블랑독 연맹군의 가장 큰 어른이시니, 모두가 의지하고 있는걸요?”

“하하··· 이거 책임이 막중하군요.”

아실이 기프트가 있다면, 남이 하면 빈정거림으로 들릴 법 한 말을 진심으로 들리게 한다는 것이겠지. 실제로 아실이 누군가를 칭찬할 때는 한 점 가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설명해 드린 동북면과 서북면 방면에는 네 개의 요새가 있습니다. 지도의 위치를 표시해보면···.”

나는 붉은색으로 머리가 칠해진 핀을 지도 위 네 군데에 꽂는다.

가장 서쪽, 에크테인 산맥 남부의 타바브르.

에크테인 산맥에서 시작되는 에크테인 강의 상류에 있는 포르망제.

북 로데브 강 북쪽에 위치한 아넥시.

가장 동쪽, 바닷가에 위치한 아스쿠.

이 네 개의 요새는 트랑카벨 가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후퇴도, 저항 포기도 거부한 지역들이다. 규모가 작고 천혜의 요지에 위치한 타바브르나 아스쿠는 둘째치고, 평지에 있는 성채 도시인 포르망제와 아넥시는 상당히 걱정된다.

포르망제는 드 포르망제 남작의 영토인데,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방어 준비가 잘 되어 있고 규모도 상당했다. 게다가 주변의 소영주들이 집결한 병력도 상당하며 강물을 끌어오는 등 수성전 준비를 잘해놨기 때문에 적이 대규모의 공성포를 동원하지 않는 한, 정면 공격으로는 쉽게 함락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에크테인 산맥에 있는 은광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트랑카벨 가문에 각종 군수물자를 팔아줄 것을 제안하기도 하는 등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마 블랑독 연맹군의 가장 북쪽에 있는 요새로서, 초장부터 치열한 전투가 예상되지만, 이 또한 감수할 각오인 모양이었고.

그래서 내 첫 계획은 포르망제 부근이다. 여길 점령하겠다고 달려드는 적들을 견제해서 우선 잡아먹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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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 벨모제 기병 연대 소속의 용기병 소대장, 로용 드 말리크는 부대의 선봉을 맡아 습지대를 수색하며 행군하고 있었다. 제8 기병 연대는 로용이 속한 용기병 중대를 선두로 내보내고 있었고, 연대 자체는 동북면으로 천천히 행군하고 있는 트랑카벨 주력군의 선두였으니 로용은 전군의 선두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은 이른 아침으로, 시야도 좋지 않은 데다가 혹시라도 말이 발을 헛디디어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므로 느릿느릿 나아가고 있었다. 서늘하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아직 이 주변에 적이 있다는 소식은 없었으므로 부대는 그다지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

이 지역은 에크테인 산맥에서 내려오는 지류들이 어지러이 지나는 지역으로, 초원이라기보다는 늪지대에 가까웠다. 키가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수풀, 복잡한 지형을 제멋대로 흐르는 좁고 빠른 개울, 나지막한 언덕과 축축한 습지가 반복되는 복잡한 지형이다. 이 지역은 개간만 한다면 괜찮은 농지가 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행군 속도를 늦추는 고약한 지형일 뿐이다.

“소대장, 저 앞에 건물이 보입니다.”

부하의 말에 안개 너머를 살핀다. 정말로 상당히 큰 건물이 저 멀리 보인다. 단층 오두막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지역에 저 큰 건물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잠시 본대를 기다렸다가 수색한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쉬어간다!”

20명의 용기병들이 잠시 말에서 내린다. 두 명은 양 끝에서 감시를 늦추지 않고, 나머지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팔다리를 푸는 병사들도 있고 노상 방뇨를 하는 병사들도 있다. 그리고 다들 공통으로 화승의 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로용 역시 손가락 사이에 끼운 예비 화승의 끝을 입으로 불어 사그라들던 불씨를 살린다. 전투가 시작됐는데 불이 죄다 꺼져서 사격할 수 없다면 그런 추태가 또 없다.

“로용 경.”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이윽고 후방에서 나머지 중대가 도착한다. 중대장 그웬넬 드 리스바쥬에게 저 앞에 건물이 있으니 수색하겠다고 전달한다.

“알겠네. 나머지 중대는 도착하는 대로 여기서 지원하도록 하지.”

“예, 그럼, 말을 부탁드립니다.”

용기병의 정의는 말 탄 보병, 그래서 그들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도보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말들을 나머지 중대원들에게 맡긴 채, 로용을 선두로 조용히 접근한다.

“여기 지명이 뭔지 아는 사람 있나?”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다. 로용은 축축한 바닥을 가능한 한 피해서 솟아오른 단단한 땅을 따라서 이동한다. 문제의 건물은 마치 섬처럼 사방이 습지로 둘러싸인 모양이었다. 조심조심 길을 찾아 다가가자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썩철썩하는 물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라··· 여기 물레방아네?”

“이게 곡물 창고인 모양입니다.”

어쩐지 특이한 곳에 커다란 통나무 건물이 있더라 싶었다. 두 개의 커다란 통나무 건물과 물가의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작은 건물에는 커다란 나무 바퀴가 달려있었다. 덜그럭거리고 철썩거리는 물결 부딪히는 소리는 물레방아가 내는 소리였다. 사람이 뛰어서 넘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개울들이 모여서 갑자기 넓고 깊어지는 지점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규모가 큰 걸 보니 주변 곡물들을 다 모아다가 처리하는 지역인 모양이네.”

나무 바퀴에 연결된 방아는 상당히 거대했다. 빠른 물결에 의지해서 방아를 찧는 용도인 모양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한꺼번에 곡물을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쪽이 확실히 유리해 보인다. 가난한 남작 가문 출신인 로용은 이런 큰 규모의 방앗간에서 은근히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의 영지에는 이런 거대한 물레방아도, 찧을 곡물도 없었으니까. 뭐 있었어도 전부 불타버렸겠지만.

“그나저나 이런 큰 시설이 지도에는 없다니. 뭐라 부르는지도 모르겠군.”

“지도에는 군사시설만 있나 봅니다.”

“아냐, 여기 마을 같은 경우는 나와 있잖아?”

“어라, 그건 그렇네요.”

로용은 창고의 전체 규모와 구조를 알아보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창고 입구는 어디지?”

“반대편 아닐까요?”

통나무를 이용해 잘 짜인 창고의 모서리를 드는 순간.

...어라?

눈앞에 누가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지저분하고 구깃구깃한 셔츠 위에는 한때는 화려한 원색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 같은, 지금은 낡은 데다 관리가 되지 않아 겉면이 다 떨어져 나간 조끼를 걸치고 있다. 머리에는 녹이 잔뜩 슨 투구를 쓰고 있으며, 지저분한 수염 아래로 칼자국이 비스듬히 난 입술이 보였다.

로용의 부하 중에는 이런 차림을 하고 다니는 인간은 없었다. 놀라움으로 남자의 입이 벌어지면서 누런 뻐드렁니가 드러난다.

“이런 시발!”

다행히 반응은 로용이 가장 빨랐다. 상대가 왠지 들고 있던 양동이를 팽개치며 허리에 찬 폭이 넓은 외날 검을 뽑아 드는 순간, 로용이 먼저 격철을 당기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끄읍!”

당연하지만 낡아빠진 가죽조끼는 코앞에서 발사된 화승총의 탄환을 막을 정도로 튼튼하지 않았다. 가슴 가운데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불컥 불컥 쏟아지더니, 적병이 몸을 앞으로 수그리며 쓰러졌다.

“용기병 집결! 전투 준비!”

반사적으로 꽂을대를 꺼내 장전을 시작하면서 뒤를 향해 외친다. 옆에 서 있던 병사도 화들짝 놀라 총을 들고 화승을 확인한다.

탕! 탕!

안개로 침침한 반대편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로용은 바로 근처로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는 진저리를 치며 창고 뒤편으로 숨는다.

“여기 적이 없는 것 아니었습니까?”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우리가 찾았네! 시발!”

이빨로 종이로 된 탄약포를 찢으며, 찌꺼기와 함께 욕설을 같이 뱉어냈다. 시발이라니··· 아버지인 메세 드 말리크가 살아있던 시절이라면 이런 욕설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형도 상스러운 욕설 따위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겨울 동안 훈련소에서 평민 출신 병사들과 함께 구르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입에 뱄다.

"으아아아!"

아직 장전이 끝나지 않았는데, 모서리에서 세 명의 적이 튀어나왔다. 재장전이 미처 끝나지 않았다. 상대가 치켜든 양날 검이 로용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타앙!"

다행히, 아직 장전된 상태였던 동료 병사가 대신 쏴 주었다. 맨 앞의 적이 휘청거리며 얼굴부터 흙바닥에 처박는다. 뒤이어 오던 적병들이 움찔한 것 같으나, 총병이 둘 있는데 한 명은 아직 총구에 꽂을대가 박힌 상태이고, 한 명은 방금 쏜 상태인 것을 확인하더니 그대로 달려든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로용은 화승총을 포기하고 대신 허리에 찬 장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이제 탄환까지 밀어 넣었으니 화문에 화약만 붓고 격철만 당기면 되는데 그 몇 초가 없었다. 손에서 놓친 총이 흙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이미 허리춤에서 뽑힌 장검이 적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대대로 이어지는 말리크 남작가의 명검.

말이 명검이지 특별히 이름이나 전설이 딸린 대단한 물건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 말리크 가문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조상에게 물려받은 물건이었다. 갑옷은 총에 맞아 쪼개지고 말들은 죽었으며, 성은 무너지고 마을은 불타는 와중에 말이다.

수백 년이 지났으나 아직 예리함을 뽐내는 칼날이나, 손잡이에 박힌 금박과 보석 장식을 보면 제법 훌륭한 검이라는 것은 알 수 있으나, 어차피 기회가 되면 팔아버리고 가신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꽤 사용감이 있는 물건이니 핏자국 몇 개가 더 생긴다고 값어치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죽어 이 새꺄!"

"으읏!"

적의 실수는 총알이 떨어진 총병이 무력하리라 생각하고 동작을 너무 크게 잡은 것이었다. 말리크 가문의 명검은 도끼날이 최고 속도에 도달하기 전에 쳐냈다. 균형을 잃은 적이 움찔하는 순간 예리한 칼날이 적의 갑옷 틈을 파고들었다.

"커컥!"

삽시간에 동료 둘이 어처구니없이 쓰러져버리자, 마지막 적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게다가 손에는 근접전에 불리한 장창을 들고 있다! 로용의 마음속에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한 걸음 내디디며 검을 겨누려는 찰나.

"여기다! 여기 이단들이 있다!"

"개새끼들! 죽여버려!"

적이 더 몰려왔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만 해도 십여 명은 된다.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적이다! 여기 적이 있다!"

다행히 흩어져서 창고를 수색하던 병사들도 달려왔다. 서로 거리가 10미터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십여 발의 화승총이 발사되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타타탕! 탕! 삽시간에 두 창고 건물 사이의 좁은 공간이 뿌연 화약 연기로 가득해졌다.

"윽, 맞았어!"

"총병! 총병 없어?"

"끄으으윽!"

탕탕! 타탕!

다행히 보유한 화기의 양과 질은 트랑카벨 군 측이 압도적이었다. 뒤이어 달려온 병사들이 일제히 총탄을 쏟아내자 몇 명의 적이 추가로 우수수 쓰러졌고, 주춤주춤 눈치를 보더니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훈련받은 군대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시발! 맞은 사람 있나?"

"괜찮냐?"

로용은 부하들이 무사한지 물으면서 듬성듬성 난 풀이 웃자란 흙바닥에서 화승총을 집어 들었다. 불행히도 화승에 불이 꺼져 있었다. 손목에 감아 두었던 예비 화승은 난리 통에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개판이다. 절로 욕이 나온다.

"맞은 사람 없어?"

"소대장님 괜찮으시면 다 괜찮습니다."

천만다행이다. 코앞에서 총탄이 오고 갔는데도 아무도 안 맞았다. 적은 예닐곱 명 정도 쓰러져 있었다.

"와, 역시 남작님 칼 쓰는 거 대단합니다... 소드 마스터 아니십니까?"

"개소리 말고 불이나 줘 봐."

처음부터 옆에서 함께 싸웠던 병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화승에서 화승으로 불을 옮겨 받는다. 바닥이 축축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화승이 젖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런 시발!"

"왜 그러십니까?"

"장전 어디까지 했는지 까먹었다...."

분명 이빨로 탄약포 뜯어서 화약 부어 넣은 것까지는 생각이 난다. 입 안에 느껴지는 잔여 화약의 찝찝한 맛으로 보아 분명했다. 그리고... 다시 탄약포에 싸인 총알 쑤셔 넣고 밀어 넣은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됐건 장약은 들어갔으니 화문에 고운 화약을 붓고 사격 준비를 마친다. 적어도 안 나가는 일은 없겠지. 더 무서운 것은 장전된 상태에서 한 번 더 장전하는 것이다. 잘 되면 불발이고 잘못하면 총열 파열한다.

"적은 건너편 숲으로 도망친 모양입니다!"

창고 맞은편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다. 하긴, 이만한 규모의 창고를 채울 곡물을 실어 오려면 평평한 유통로가 필요하겠지. 로용과 그 부하들은 정 반대 방향에서 접근한 것이고. 거기에는 버려진 무기와 옷가지, 모닥불 흔적 등 적이 있었던 흔적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중대장님!"

총소리를 들었는지 중대장이 직접 휘하 병력을 이끌고 찾아왔다. 알아서 평평한 지면을 찾아서 대열을 갖추고 혹시 모를 적습을 기다리는 용기병들의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하긴 조금 전에도, 대부분 첫 전투였을 텐데도 침착하게 대응해 작은 교전이었지만 분명히 승리했다. 그동안의 훈련이 쓸모없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약 20명 정도의 적과 우연히 만나 교전했습니다. 아군 피해는 없고, 적은 여섯... 일곱 명을 사살했습니다."

"다행이군. 적은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수색해보려 합니다."

"자네 소대가 마저 수색을 끝내 주게. 나머지는 주변을 경계하며 철수 준비를 한다!"

명령받은 로용은 조심스럽게 창고 반대편으로 나왔다. 평평한 지면에 오래 묵은 마차 바퀴가 보인다. 아마 여기서 곡물을 싣고 내렸겠지.

"문을 왜 이렇게 막아놨지?"

튼튼한 창고 문 앞에는 망가진 수레와 나무 상자 등,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었다. 창고는 밖에서 못 들어오게 보관하는 용도일 텐데, 왜 밖에 이렇게 짐을 쌓아 놓았는지.

여기저기 장작더미가 쌓여 있고 불을 피우려다 실패했는지 창고 벽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 것을 보면 창고에 불을 지르기 위한 땔감으로 쓰려고 했나 싶기도 하지만, 팔뚝만 한 나무를 버팀목처럼 받쳐놓은 것을 보면 문을 막으려 시도한 것 같기도 하다.

병사들이 잡동사니를 치우고,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창고 문이 열렸다.

"으읏!"

기이한 열기와 독특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살짝 달착지근하면서도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

...공포의 냄새이다.

"가서 중대장께 알려!"

로용이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 질척질척한 분노가 묻어나기 시작한다.

"철수 불가! 철수 불가! 피난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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