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이스키비르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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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힘들었다···.”
“후후, 고생하셨어요. 정말 훌륭하신 설명이었어요.”
“으으··· 그분들께도 잘 전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기뻐하시면서 돌아가셨잖아요?”
가스텔 드 누아 백작, 쿠탈로 데 베스카란 자작, 그리고 차스틸리보 남작가의 장남 하브라고와의 회의를 끝내고, 숙소가 있는 별관으로 이동했다.
아쥬흐는 별관 중앙의 하녀들이 상주하는 큰 방, 내 방은 그 곁에 있는 작은 방이다. 드 누아 가문의 집사가 ‘비슷한 규모의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죄송하다’라면서 몇 번이나 굽실굽실 사죄했다. 하지만 맹세코 나는 전혀 신경 안 쓴다! 오히려 엄청 깨끗하고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호화롭다! 게다가 격으로 봐서도, 콘도티에렌지 뭔지 해봤자 결국 트랑카벨 가문에 고용된 몸에 불과하니 딱 이정도가 적절하다. 오히려 집사가 너무 미안해 해서 민망할 정도였다.
입구에서도 가까워서, 바로 들어가자마자 대충 씻고 얼른 자야···.
“앗 오셨네요, 콘도티에레~ 앗, 아쥬흐 마님!”
복도에는 천이 덮인 카트를 밀고 있는 첼레스티나가 있었다. 뭔가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헤헤, 시장하시지 않으세요? 부엌 마감하기 전에 빵을 조금 받아 두었어요. 차도 있는데 드시지 않으시겠어요?”
“아···.”
그러게, 한참 떠들고 긴장하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네.
“아쥬흐 양,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그럼 저도 한 조각 먹어도 될까요?”
“네에, 물론이에요! 이럴 줄 알고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럼 넓은 제 방에서 먹을까요?”
“엇, 음··· 그렇게까지는···.”
“앗! 네에, 저 드 누아 저택의 특실 구경해도 될까요?”
“후후, 그럼 같이 가요.”
우리는 아쥬흐에게 주어진 손님 방으로 이동했다. 상주하는 하녀들이 깜짝 놀라 자리를 세팅한다. 아쥬흐는 부드럽게 이미 늦었고 곧 잘 테니, 하녀들도 물러가서 먼저 자라고 말한다. 하녀들은 망설이다가 아쥬흐가 재차 이야기하자 인사를 하고 물러간다.
우리는 탁자에 늦은 밤의 다과회를 준비한다. 버터를 바른 빵에 딱딱한 과자 몇 개, 우유와 차가 담긴 주전자.
“푸후훗···.”
“아쥬흐 양? 왜 웃으시나요?”
“후후후, 죄송해요. 두 분이 차례차례 협력해서 테이블로 음식과 식기를 옮기는 게, 마치 카르카냑에서 병사님들이 보급품 옮겨 싣는 것과 비슷하게 보여서요.”
“앗!”
“그래서 두 분은 참 오랫동안 군인으로 야전에서 생활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크으, 역시 짬내는 지울 수가 없는 거네요.”
우리는 군대식으로 재빠르게 다과상을 세팅했다. 놀랍게도, 음식들은 모두 방금이라도 데운 듯 따뜻하다.
“세상에, 어떻게 아직 음식이 따뜻하죠?”
버터 바른 빵을 한 입 베어 문 아쥬흐가 놀라서 묻는다.
“첼레스티나의 기프트가 그것입니다. 불을 다루는 기프티드지요.”
“세상에, 전혀 몰랐네요.”
“네에, 헤헤헤, 이제는 많이 연습해서 딱 정확한 온도로 유지 가능해요.”
“아니, 그 능력을 겨우 음식 보온용으로 쓰는 건 재능 낭비 아닌가?”
“뭐 어떤가요, 콘도티에레!”
“그냥 뭐··· 이 시간에 따뜻한 빵이라니 좋긴 하네.”
사실 내가 나쁜 놈이지. 첼레스티나의 기프트를 개화시키고, 전쟁에 사용하도록 한 것이 바로 나니까. 그 과정에서 그녀가 힘들었던 과거에 결별하고 자아를 되찾았다거나 하는 변명을 힘들여서 해보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던 주디칼리의 소녀를 전쟁터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나다.
“저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따뜻한 차를 마시게 될 줄은 몰랐어요. 고마워요.”
“헤헤헤, 고맙긴요, 아쥬흐 마님.”
“...그 마님은 좀 어떻게 안 될까요?”
“앗? 저택의 하인 분들이 마님이라고 부르길래···.”
“첼레스티나는 제 하인이 아니잖아요. 가문에 고용된 용병이시기는 하지만.”
“그,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아쥬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요.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죠?”
“네에? 그건 안 돼요··· 콘도티에레도 존칭하시는데··· 그럼 아쥬흐 양이라고 부를게요. 저도.”
“음, 좋아요.”
그러고 보니 하도 바빠서, 아쥬흐와 첼레스티나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느긋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첼레스티나는 우리가 회의하는 동안 뭐 했어?”
“네에, 저는 네그라타 용병단의 포로들을 만났어요.”
“그래? 신문한 거야?”
“앗, 네에··· 아뇨··· 신문은 아니네요, 그냥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특별히 알아봐야 할 사실이 있나요?”
“아니, 아니야 그런 건 아니지.”
첼레스티나는 자기 속을 잘 드러내는 만큼, 남의 속도 쉽게 드러나게 하는 능력자이다. 각 잡고 고문을 해도 발설하지 않는 그런 놈들은 논외이지만. 이런 상황의 포로와 같은, 평범한 포로들은 귀신같이 속에 든 정보를 다 캐어 내는 능력자이다. 본인은 의도한 바가 아니라지만.
“그러고 보니, 브롱보카쥬에서 포로로 잡힌 지휘관 있잖아요?”
“음, 이름이 미카토였나?”
“네에, 맞네요. 콘도티에레와 면담을 하고 싶어 했어요.”
“흐음··· 만나보긴 해야 할 텐데.”
“맞아요. 향후 라솔 블랑독의 정세에는 알코라즈 남작령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내일 한 번 자리를 마련해야겠네요.”
“역시 그렇죠?”
“후후, 그래도 포로 1600명이라니··· 너무 잡으셨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어쩌다 그렇게나 포로가 잡힌 거지. 타르벤도라는 이름의 용병대장, 알코라즈 남작 입장에서는 골치가 다 아프겠지. 출전했다가 병력을 거의 다 잃고 돌아갔다. 하지만 그 반수가 아직 포로로 잡혀 있다고.
분명 몸값이 엄청나겠지. 그래도 어떻게든 몸값을 마련해서 찾아오면 빚에 허덕이기는 하겠지만 용병단을 재건할 수 있다.
만약에 모르는 체한다? 그건 용병 폐업이다. 아무리 용병들이 파리 목숨이고, 모으고자 하면 어중이 떠중이 아무나 모을 수 있다지만. 적어도 용병대장 책임으로 붙잡힌 부하들 안 찾아오면 그건 용병 장사 못한다고 봐야지.
게다가 중견 지휘관 장교들과 고참병들로 이루어진 용병 핵심 조직은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슈토르히 연대도 핵심은 선임 중대장 네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래도 1600명···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게다가 몸값을 받아도 무기는 안 돌려준다. 맨 몸만 안전하게 돌려보낼 거니 무장은 또 따로 돈 들여서 시켜야지. 빚더미에 올라앉을 타르벤도는 어떻게 할까?
아니, 뻔히 보인다. 분명 아쥬흐에게 빚을 지고, 그 빚을 어떻게든 이용 당하겠지. 불쌍하게도. 그 왜··· 외상보다 비싼 청구서는 없다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없나?
“그거 말고는 다른 건 없었어?”
“네에, 부상자가 많아서 약품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었어요. ...제가 맘대로 부대 예비 물자 조금 나눠줬어요. 죄송해요.”
첼레스티나가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숙인다.
“아냐, 잘했어. 정말 잘했어. 어차피 드 누아 영지군과 나눠 쓰려고 넉넉하게 가져왔고, 드 누아 군이 별로 다치지 않았으니 어차피 남을 물건이니까. 앗, 이렇게 말 하면 안 되나? 다 트랑카벨 가문의 돈인데···.”
“후후, 트랑카벨 가문의 지갑은 그 정도로는 끄덕도 하지 않는답니다?”
“크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돈 자랑이네요.”
“게다가 회유하는 쪽이 트랑카벨 가문으로서도 이득일 것 같아요. 저도 칭찬하고 싶어요, 잘했어요. 첼레스타나.”
“네에, 헤헤헤!”
아쥬흐의 칭찬에 바로 의기양양해지는 첼레스티나이다.
“저도 내일 오전에 환자를 좀 볼게요. 그 후에, 알코자르 남작의 부장을 만나보죠.”
“알겠습니다, 아쥬흐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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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괜찮으세요, 아쥬흐 양?”
“괜찮아요, 조금 지치네요, 후후.”
지쳐서 벽을 짚고 선 아쥬흐를 첼레스티나가 부축한다. 많이 피곤한지,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린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아쥬흐는 오전부터 꼬박 9시간 가까이 환자들을 치료했다. 소속과 무관하게 중상자들을 치료한다고 했기에, 포로와 드 누아 군, 트랑카벨 군을 막론하고 수많은 환자가 실려왔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고 상처를 살피며 아픈 곳을 묻는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치료를 지시한다. 필요하다면 자기 손으로 치료한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빨간 피로 물들었다.
물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당장 죽을 상처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상당히 많은 병사가 죽을 수도 있었던 최악의 상황을 피했고, 불구가 될 위기를 면했을 것이다.
나는 성녀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에 성녀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상처가 덧나 열이 펄펄 끓어 헛것을 보는 병사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며, 손으로 조심스럽게 상처로부터 고름을 제거하는 그녀의 모습이 거기에 한없이 가까우리라 생각한다. 어쩐지 코가 시큰해지는 광경이었다.
참고로 나는 성녀의 작업을 도우려다가 쫓겨났다. 비숙련자 일손은 급하지 않은데 괜히 콘도티에레가 돌아다니면 병사들이 불편해한다고 나가란다···.
그렇게 종일 고생하고, 인제야 간신히 시간이 난 것이다.
“괜찮아요, 잠시만 쉴게요.”
그녀가 이렇게까지 피곤해하는 이유는 그녀의 기프트 때문이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주디칼리의 의대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스스로가 대단히 노력하고 똑똑한 두뇌를 가진 것도 있지만 의료에 도움이 되는 기프트를 가졌기 때문이 컸다.
하지만 기프트라는 것은 빠르게 심신을 소모한다. 이렇게 온종일, 수많은 환자를 봤다는 것은···.
“아침에 치료를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놀랐어요.”
의자에 다소곳이 기대앉아서, 잠시 눈을 감은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너무 미안하고··· 후회됐어요.”
“무엇이··· 말입니까?”
“아, 내가 너무 늦었구나. 어제부터 치료를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내가 미리 성을 나서서 찾아갔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에요.”
“아니 왜 그걸 아쥬흐 양이 후회하십니까!”
“흐음··· 포로를 한 명이라도 멀쩡하게 더 살려야 받을 수 있는 몸값이 늘어나니까?”
그녀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휴우, 그래도 농담을 하는 정도의 여유는 있구나. 다행이다.
“후후, 콘도티에레 에트가 생판 남인 정순파 신도들을 살리겠다고 트랑카벨에서 죽도록 고생하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읏···.”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가슴 한쪽이 왜 이리 아프지.
나도 이렇게까지 내 몸을 깎아가며 트랑카벨을 섬기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제가 어제 편히 쉬는 동안에··· 목숨을 잃은 병사도 있겠지요?”
“아니요, 결단코 없습니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급한 상황은 피했다는 것이잖아요. 치료하셨으니 아쥬흐 양이 가장 잘 알지 않으십니까···.”
“하아, 그럼 다행이네요.”
그래도 다행히도, 정말로 몹시 다행히도 그녀의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유난히 창백한 그녀의 뺨에 슬쩍 미소가 걸린다.
“그래도 지금은 힘들어도 기분이 좋아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아쥬흐 양 얼굴은 기뻐 보이기는 하는데요, 그래도 오늘은 이만 쉬시는 게 어떨가요?”
“안 돼요. 알코자르 남작령 건은 최대한 빨리해야 하는걸요. 미카토 부단장도 만나봐야 하고, 몸 값 계산도 해야 하고요. 문서 쓸 게 산더미네요.”
“그거 제가, 아니 첼레스티나가 하면 됩니다. 가이드만 있으면요, 보기에는 이래도 무척 일 잘하거든요.”
“네에, 보기에는 이래도 문서를 잘 써요오···..”
첼레스티나도 많이 걱정되는지 슬픈 표정이다. 원래 첼레스티나는 아쥬흐를 상당히 좋아했었으니까. 무서워하기도 했었지만, 어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어제는 막사에 가지 않고 아쥬흐의 방에서 같이 잤다던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아쥬흐가 슬쩍 눈을 뜬다. 여전히 달뜬 모습이다.
“휴우, 여러분들 말이 맞네요. 미안해요, 내가 너무 서두르고 있죠.
나는 조금 화가 났다. 지금 정세가 급박하고,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맞다. 그렇더라도 이렇게까지 몸이 상해가면서 서두르면 안 되지. 조금만 천천히 살펴주면 좋겠다.
"역시 포로 면담은 내일 할래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방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네...."
아쥬흐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우물쭈물하는 태도를 보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요."
"그럼 저희가 부축할까요?"
"첼레스티나, 한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네에, 무엇이든 시켜주세요!"
"알코라즈 포로들의, 미카토 부단장이나 단장이라는 남작 자신에 대한 반응을 중심으로 정리를 부탁해도 될까요?"
"네에, 물론이에요. 포로들도 만나보고, 장교들의 신문조서도 있으니 제가 요약정리할게요."
"지금요."
"네에... 네?"
"지금 부탁드려요."
"네에, 지금 시작할게요오...."
첼레스티나가 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또 처음 본다. 차렷 자세로 북방식 경례를 한 그녀가 후다닥 복도 멀리 사라진다. 첼레스티나가 가버렸네.
"휴우... 왠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네요."
"어, 어떻게 할까요?"
"업어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자, 어깨에 기대주세요."
"...."
뭐지? 아쥬흐의 기분이 갑자기 나빠진 느낌이다.
"...그건 `업다`가 아니라 `어깨로 둘러메다`가 아닌가요?"
"앗... 보통 야전에서는 이렇게 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나는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등을 보인다. 이내 부드럽고 향기로운 무게가 내 등에 실린다. 화사한 금발의 일부가 내 어깨 너머로 늘어뜨려진다.
...생각보다 너무 가벼운데. 나는 별관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기 시작한다.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아쥬흐 양."
"뭐가요?"
"너무 가벼우셔서... 혹시라도 무리하셔서 그러신 건가 싶어서요."
"...콘도티에레 에트는 여자 몸무게는 잘 모르시지 않나요?"
"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하긴 제가 전장에서 업어, 아니 둘러맨 녀석들은 다 덩치 좋은 장정들이네요. 거기에 갑옷까지 입었으니...."
그냥 `사람 무게`라고 생각하면서 비교한 내가 잘못했네.
"저도 남자 등은 잘 모르는데... 생각보다 넓고 단단하네요."
"하하... 그거 다행이네요."
사실 나는 무지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긴장해서는 등 근육까지 굳었나? 아쥬흐가 생각보다 가볍고, 부드럽고, 향기로운데다가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지럽히고 귓가에 그녀의 숨결까지 느껴지니... 으윽.
"그래요 다행이네요...."
"네?"
"콘도티에레 에트가 함께 해주셔서... 다행이에요...."
그녀가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잠이 든 모양이다. 정말로 피곤하고 힘들었구나. 사람을 죽이는 일도 그렇게 힘든데, 사람을 살리는 일은 몇 배 힘들겠지. 새삼 오늘도 수십 명이나 살려낸 그녀에게 존경심이 피어오른다.
휴우... 나는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대신 자괴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작고 가녀린데, 트랑카벨 가문과 블랑독 지방, 거기 사는 사람들 전체를 짊어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여전히 믿지 않는 신에게 감사한다. 나에게 섬길만한 고용주, 주군을 만나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만약에 신이 있다면, 정말로 나이스라고 말해주고 싶다.
죄송합니다. 천벌이 있다면 나중에 후불로 부탁해요. 아쥬흐가 이렇게 행복하게 자고 있는데 벼락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