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알코자르 토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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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기병 지휘관은 어디로 부대를 움직이면 살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안다고 한다. 아니, 그것을 알지 않으면 뛰어난 기병 지휘관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오래 살아남을 수조차 없다.
기병의 운용은 흔히 주먹으로 유리를 깨는 일에 비유되고는 한다. 온 힘을 다해 때리면 상대를 부술 수야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 주먹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다. 세기나 각도가 잘못되면 유리는 못 부수고 내 주먹만 결딴나는 수도 있다. 그만큼 강력하지만 예민한 병종이다.
그런 점에서 제31 정찰 연대장 로베르 드 나뵈프는 타고난 기병 지휘관이다. 생각해보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저돌적으로 달려들던 시절에도 나름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행동했었지. 머리로 하는 계산이 아니라 본능으로 하는 계산 같은 느낌이다.
적 보병 대열의 후방을 급습한 제31 연대는 무작정 돌격 따위는 하지 않았다. 후열 총병들의 교대 타이밍을 노려 재빨리 적의 좌측, 내가 보기에는 우측에 배치된 병력을 노려 바짝 붙었다. 그리고 다소 느슨한 카라콜 공격으로 창병들의 뒤통수를 날렸다.
타타타탕!
연달아서 쏟아지는 총격에, 후방에서의 공격을 전혀 대비하지 못한 적 창병들이 줄줄이 쓰러져갔다. 아넥시 전투에서 증명되었지만, 쌍권총 기병들의 근접 카라콜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총을 써버린 총기병들은 그대로 창병 대열에 돌입하는 대신, 바로 옆의 총병 무리에 뛰어들었다. 뒤이어 달려온 추격기병들이 한 자루씩 가진 총을 다시 창병 대열에 쏟아부었다. 이미 첫 번째 카라콜 공격에 빈사 상태에 빠져있던 창병 대열은 두 번째 공격에 도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힘 싸움에서 밀려서 퇴각하는 것이 아니다. 병력 대다수가 무기를 던져버리고 살기 위해 제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무질서한 패주. 옆 사람이 도망치면 다시 옆 사람이 따라가는 식으로 부정의 연쇄가 발생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무조건 밀집 대형을 유지하는 것이 그나마 살 가능성이 크다. 슈토르히 시절에도 경험했지만, 사방이 적인 상태에서도 잘 버티면 살길이 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보병이 무거운 무기조차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친다? 기병보다 빨리 달릴 수가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실 말 할 필요도 없겠지. 저 도망치는 병사들도 머리로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패닉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정상적인 판단이 되고 상식대로 행동한다면 패닉이 아니겠지.
물론 이것은 단순히 기병만의 활약으로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포병이 계속해서 적군을 약화시켰으며, 접전 초기에 총병 일제사격으로 기세를 꺾고 예비대를 빨리 전장으로 끌어내어 소모하게 했기에 기병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공간이 나와버린 것이다.
그렇게, 적 후위 부대의 좌익은 트랑카벨 영지군 보병과 기병의 협공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엄청나네··· 생각보다 훨씬 잘 싸우는 것 같네.”
“네에, 트랑카벨 병사들은 강해요! 콘도티에레가 키운 병사들인걸요?”
“제22 연대는 전혀 신경 써주지 못했는데···.”
“헤헤헤, 그래도 느낌이란 게 있어요?”
“흐음···.”
오래 함께 지내본 입장에서, 첼레스티나가 말하는 느낌은 ‘느낌 같은 느낌’의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본인은 제법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도, 전달이 잘 안 되는 모양이지만.
“아앗, 콘도티에레! 적이 후퇴합니다!”
“어라···.”
적 좌측이 아군의 보병과 기병의 입체적인 공격에 완전히 포위당하자, 적 후위 부대의 지휘관은 무너져가는 측익을 구하는 대신 그 시간을 써서 나머지 부대를 수습하는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으음, 비정하지만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재빠르게 남은 병력으로 사각 대형을 짜고 병력을 빼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수완은 있다. 제법 경험 있는 용병인 모양이지···.
“하지만 저런 식으로 운영하면 부하들의 신뢰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요···.”
하지만 첼레스티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의 말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원래 용병단은 상하관계, 군신 관계가 명확한 귀족 군대와 다르다. 단장이나 일반 병사나 지휘체계는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계약으로 얽힌 동료 관계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병력 일부가 위험에 빠졌는데 도와주는 척도 안 하고 기회라는 듯 나머지만 빠져나가 버리면 말이 나오게 마련이지.
도와주는 ‘척’이라니··· 그것도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과연 도울 수는 있었나? 괜히 좌익을 살리려다가 중앙과 우익마저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콘도티에레시라면 저렇게 행동하시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냐 모르는 일이야··· 슈토르히 연대는 아직 저런 상황에 부닥친 적이 없으니까···.”
“네에, 그럼 콘도티에레께서 미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신 거죠!”
으음, 그런가? 하긴, 내가 편집증 수준으로 집착하는 것이 뭘 해도 손해나는 선택만 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기는 하지. 지금까지야 어쨌든, 앞으로도 더더욱 몸을 사리도록 해야겠다.
“지로드 연대장! 추격 중지! 병력을 추스르고 다음 전투를 준비!”
“알겠습니다, 콘도티에레!”
“포병대는 사격 유지! 과열에 주의하고!”
“옛, 콘도티에레!”
창병 대열끼리의 전투에서는 추격전이 거의 불가능하다. 밀집 대형을 짠 상태에서는 서로 느릿느릿하게 제한된 움직임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빨리 움직이려면 진형을 풀고 달려야 하는데 그러고 앞질러 가봤자 단단한 진형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는 방진 못 막는다. 느릿느릿하게 진형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어리석어 보여도 다 이유가 있는 법.
타탕, 탕!
탕! 탕!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니 띄엄띄엄 총소리만 들리다가 차츰 잦아들었다. 조금 전까지 치열하게 싸운 병사들은 이제 자신이 피에 젖어서 아군과 적군들의 시체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되며, 흥분이 진정되면서 갑작스럽게 피로가 몰려오고 체력이 고갈된다. 전투 중에 입은 자잘한 상처들도 갑자기 아프기 시작할 것이다. 이걸 재빨리 잡아주지 않으면 부대의 전투력이 반감된다.
승리가 머지않았다며 자신감도 심어주고, 전투력에 지장이 없는 작은 상처라도 빨리 치료하고, 유독 사상자가 몰려서 발생한 부대가 있다면 예비대로 교체해준다. 항상 지휘관을 교육할 때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내 일만 잘해서는 장교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콘도티에레! 낙오된 적 병사들이 항복해오고 있어요!”
“뭐, 버려졌다는 생각에 마지막 버티던 힘이 사라졌겠지.”
“네에··· 포로로 잡아도 될까요?”
첼레스티나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아직 전투는 한창이며, 포로 감시를 위해 따로 병력을 두는 것도 위험할지 모른다. 이 때문에 전투 도중에는 포로를 잡지 않고 그냥 학살해 버리는 경우도 제법 있고.
“용병들이니까, 어차피 정신이 나갔겠지. 장교들은 따로 모아서 감시하고, 나머지는 손만 묶어서 예비대로 감시하도록 해.”
“네에, 알겠습니다 콘도티에레!”
도망자들은 기병으로 가득한 평원을 뚫느니 항복했고, 마지막까지 대열을 풀지 않고 저항하던 병사들과 지휘관들도 목숨을 살려준다 약속하자 줄줄이 항복했다. 이들에게 이번 전투는 이제 끝났다. 퀭한 얼굴과 혼이 나간 듯한 눈이 그들의 처지를 보여준다. 무기를 수거하고 묶어두면 나중에 중요한 협상용 아이템이 될 것이다.
“대열을 정돈하고 부상자를 후송해! 대열을 정돈해 적의 본대를 포위한다!”
“옛, 콘도티에레!”
슬슬 전투는 종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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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라타 용병단의 부단장 미카토는 참담한 마음으로 말을 달렸다. 후위 부대는 간신히 병력을 빼서 후퇴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걸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병력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위기에 빠진 측익을 구원하기는커녕, 미끼로 삼아 재빠르게 후퇴했다. 평생 동료를 버리고 철수했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이다.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합리화는 하겠지만··· 아무도 비난하지 않더라도 평생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겠지.
아니, 자칫하면 이대로 전투에서 패배해 꼬리표를 달아줄 동료도, 후회할 머리통도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남작··· 콘도티에레 타르벤도!”
달려오면서 지켜보니 주 전선은 굳건히 잘 싸우고 있는 것 같다. 피해를 좀 입기는 했지만, 기병들도 아직 건재하다. 규모로 보면 아직도 상당한 전력이고, 전투가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현재 알코자르 남작군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며, 공간이다. 후방에서 재편한 트랑카벨의 군대가 더 접근해 온다면 포위망 돌파를 위해 진형을 변경할 시간도 공간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 미카토냐? 무사했구나!”
“예, 콘도티에레. 현재 상황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고, 공격이다! 마지막 전력을 모아 드 누아 군을 섬멸하는 것이다! 그걸로 전장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거다!”
타르벤도가 호기롭게 말할 때, 미카토는 살짝 절망을 느꼈다. 만약에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미카토가 지휘하던 후위 부대가 두들겨 맞고 있을 때 실행했어야 했다. 실제로 적 기병의 상당수가 거기 모여있었으니까. 트랑카벨 측의 기병대는 완전히 묶여있었고, 드 누아의 기병대도 견제를 위해서인지 그 후방에 대기하고 있었다. 만약에 무언가 시도를 해 보려고 했다면 그때 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후위대는 이리로 후퇴해오고 있고, 적 기병들은 다음 임무를 준비하면서 그 기세를 회복했으며, 후방에서는 트랑카벨의 보병들이 느릿느릿하지만 확실하게 무서운 기세로 추격해오고 있었다.
이제 와서 정면의 드 누아 군을 섬멸한다고? 갑자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타르벤도의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혐오감이 솟아올랐다. 아무리 봐도 이 늙은 용병대장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부단장인 미카토가 질문하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을 숨기기 위해’ 되는 대로 대답했을 뿐.
타르벤도는 절대로 무능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짜증과 혐오감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선다. 아무리 친위대라고 해도 호위병들이 듣는 데서 공공연하게 말하기는 곤란한 이야기니까.
“콘도티에레, 후퇴를 건의드리고 싶습니다.”
“후, 후퇴? 아직 우리는 싸울 힘이 남았지 않은가?”
“맞습니다. 힘이 남아있을 때 후퇴해야 합니다. 그래야 병력을 최대한 살려서 물러갈 수 있습니다.”
“끄으으음···.”
“송구스럽지만 이번은 저희 용병단의 실책이 컸습니다. 적의 규모나 역량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누구 한 명의 책임은 아니다. 단장이나 부단장인 자신들의 책임이 물론 크긴 하겠으나, 누가 저 트랑카벨의 기병과 보병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적 편에 가세하리라 예상했겠는가?
“핵심 전력을 남겨서 후퇴해야 합니다. 그게 네그라타 용병단과 알코자르 남작령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으으음!”
타르벤도의 눈이 커졌다. 미카토의 의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 알코자르 남작, 타르벤도 카마조 데 보르토는 전공을 세워 당대에 귀족이 된 인물이다. 당연히 주변의 오래된 전통 귀족 영주들에게 곱게 보일 리가 만무했다. 한편 타르벤도 입장에서도 자격지심이 있어서 주변 영주들과 사이가 안 좋기도 했는데, 여기서 군사력까지 잃어버리면 알코자르 영지는 갈기갈기 찢기리라.
“부단장의 말이 맞는 것 같군···.”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후퇴를 지휘해도 되겠습니까?”
“알겠네···.”
늙은 용병대장, 타르벤도는 몇 분 사이에 10년은 늙어버린 모습이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단장님!”
아, 전장에서는 콘도티에레라고 불러야 하는데. 뭐 이제 와서 어쩌겠나 싶다.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는데, 타르벤도가 불러 세운다.
“잠깐, 미카토!”
“예, 콘도티에레?”
“꼭 살아서 돌아오거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솔직히, 고맙다. 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매형은 자식이 없어서 그런지 자신을 잘 대해주었다. 사치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쪼잔한 구석이 있어서 짜증 나게 하는 일이 많았지만. 누나의 말을 들어보면 은근히 잘해준다고 한다. 첩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이는 것은 화가 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떤 선은 지켜준다고 했다. 지휘관으로서도, 관리자로서도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귀찮아하는 고리타분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은혜 입은 사람이다. 그가 평생 이룬 것, 물려받으면 대박이라고 생각하면서 섬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살아서 그가 평생 이룬 것을 몽땅 잃어버리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의리, 그따위 것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누나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 싫다면 그게 더 가까울지도.
감상에 빠져서 낭비할 시간도 사고력도 없다. 우선 주력 병력을 전장에서 빼내고, 남작령으로 돌아가려면 힘들게 건너왔던 강을 다시 건너야 한다. 얼마나 어려울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시팔!”
요새 자꾸 욕만 는다. 소매 안쪽으로 눈가를 훔치자 습기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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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을 벗어나지 마라!”
드 누아 백작가의 최고령 가신, 모콜리 드 디망투완 남작의 추상과도 같은 불호령이 전선에 쩌렁쩌렁 메아리친다.
“이 멍청한 녀석들! 따로따로 덤벼들다가 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어가던 선배들을 잊었느냐! 우리는 전투 대열 안에서 살고, 죽어도 전투 대열 안에서 죽는다!”
“아, 알겠습니다, 모콜리 남작님!”
“으으음! 각 지휘관은 부하들을 통솔하거라!”
적이 물러나자, 섣부르게 추격하려던 부하들을 다잡은 모콜리는 될 수 있으면 침착을 가장하며 재편성을 명령했다. 부상자들도 많고, 무기를 잃은 자들도 많을 테니 꼭 필요한 조치이다.
하지만 그 역시, 가슴 속에서는 흥분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흥분했던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드 누아 군이 원수였던 알코자르의 도적놈들과 당당하게 야전에서 맞섰고, 승리하기 직전이다! 가슴이 너무 뛰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표출할 수는 없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모콜리가 생각하기에 적은 서쪽, 이스키비르 강을 건너 진격해온 방향으로 후퇴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굉장히 용의주도하게 움직인다. 병력을 한꺼번에 빼돌려 퇴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서쪽에 배치된 병력을 놔두고 나머지 병력을 후방으로 빼고 있었다. 그 부대를 축으로, 나머지 부대를 슬금슬금 전장 밖으로 내보내려는 것인지. 이 노장은 머릿속에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고민해본다.
트랑카벨에서 보내온 교관의 도움으로 평지에서 적과 힘 싸움하는 것은 배웠으나, 추격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막연하게 생각해봐도, 따로따로 덤벼도 저 단단한 대형을 뚫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전령! 전령!”
마침 전령이 온 모양이다.
“모콜리 경! 트랑카벨 군에서 온 전령입니다!”
“음, 여기 있네! 무슨 일인가?”
“대열을 유지해 주시고, 천천히 모든 전선에 걸쳐서 압박해 주셨으면 한다는 요청입니다!”
“오오, 알았다고 전해라! 이 노인네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수행해 보이마!”
솔직히, 불과 몇 시간 전, 언덕에서 내려올 때 까지만 해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다소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느꼈었고··· 그래서 가신 대표로 항의하러 가기도 했었지. 하지만 이번 전투를 거치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많은 동료를 잃은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죽는 게 두렵지는 않았다. 두려운 것은 무의미하게, 아무 역할도 못 하고 끝나는 것뿐이었다. 모콜리 뿐 아니라, 아마도 드 누아의 모든 가신이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트랑카벨 가문의 에트라는 지휘관은··· 자신들이 목숨을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들었느냐, 누아의 형제들아! 우리의 혈맹 트랑카벨 가문이 반대편에서 협공해줄 것이다! 대열을 유지하면서 전진!”
“앞으로!”
“누아를 위하여!”
몸은 지쳤어도 사기가 치솟아 오른 드 누아 보병대가 차근차근 전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