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알코자르 토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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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대 위치로!”
군악수들이 요란하게 북을 치는 소리가 숲속을 채웠다. 하급 장교와 소수의 선임병들이 숲에서 나와 선을 만들고, 병사들이 거기 줄을 맞춰서 선다. 순식간에 전투 대형이 하나둘씩 완성되고 있었다. 이번에 첫 전투이므로 허둥대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걸 생각해도 훌륭한 움직임이다.
정말 잘 훈련 받은 좋은 부대이다.
“6중대에 전해라, 이웃의 5중대와 대열 수평을 맞출 것!”
“옛, 연대장님!”
연대장으로 첫 출전인 지로드 드 뤼퐁텔은 능숙하게 지휘하고 있었다. 제22 몽세나 보병 연대는 소속 연대원의 절반 이상이 트랑카벨 영지 출신이 아닌, 블랑독 출신 지원병이다. 연대장인 지로드 역시 뤼퐁텔의 남작이다. 원래 트랑카벨과 우호적인 가문이었던 뤼퐁텔 영지는 귀족 연합군 및 드라멜른 기사단과 전투가 벌어졌던 여울목 바로 근처에 있었다. 이 때문인지 지로드는 여울목의 전투를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지켜봤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가신들과 종속 가문의 군대를 300명 넘게 데리고 와서는 집단으로 입대 지원할 때는 놀랐었다.
하지만 아무런 불만이나 자기주장도 없이 성실하게 초기 교육을 이수했고, 연대장이 된 이후에도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저는 여울목의 전투에서, 트랑카벨 가문 영지군의 조직력에 반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싸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지휘관 교육 중에 왜 지원했냐는 말에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내 사람 보는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펑, 펑, 펑, 펑!
오차를 조절한 포병들이 두 번째 포탄을 날렸다. 포 하나씩 순서대로 쏘는 이유는 당연히 탄착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트랑카벨 포병대로서는, 사실상 시험 출전이었던 여울목의 전투를 빼면 기념비적인 첫 포격이다. 아무 준비도 없이, 포 하나당 딱 세 발 들고 출전했던 여울목의 전투와는 다르다. 이번에는 탄약도 든든하게 준비했으니까. 이번 전투 내내, 브롱보카쥬의 전장을 포성으로 뒤덮을 것이다.
우연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포병대의 목표는 후방의 기병대이다. 다만 이 경우는 우리가 후방에서 덮치고 있으니, 이쪽 관점에서는 전방이라고 봐야 하나.
현 상황은 이렇다. 트랑카벨 영지군 전체가 숲속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매복하고 있던 숲에서 나와 전투 참여를 위해 전개하고 있다. 마침 적의 직후방이다. 배치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숲속 깊숙하게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창병들이 고생했지, 숲속에서 몇 미터나 되는 창 들고 다녀야 했으니···.
물론 가스텔 백작과 협의한 내용이고 계획된 작전이다. 우리는 지도를 보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민했다. 그 결과 네 가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첫째, 적이 정직하게 브롱보카쥬의 언덕을 공격하는 경우.
매복했던 트랑카벨 영지군은 최대한 빨리 숲에서 나와 전장에 합류한다. 이 경우 적의 측면을 위협할 수는 있으나 숲에서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기습 효과는 없다. 각개격파 위험이 있으니 매우 서둘러야 한다.
둘째, 적이 언덕을 무시하고 그대로 누아 성을 향해 가는 경우.
매복했던 트랑카벨 영지군은 숲에서 기다리다가 적의 후방을 기습한다. 일부러 난전을 유도한다. 이 경우에는 반대로 드 누아 영지군이 최대한 빨리 이동해 전장에 합류한다. 이 역시 각개격파의 위험이 있기는 하다.
셋째, 적이 누아 성을 향해 가는 척하다가, 드 누아 영지군이 언덕에서 내려오면 결전에 응하는 경우.
드 누아 영지군은 정해진 타이밍에 정해진 장소로 이동해 진형을 편다. 물론 매복한 트랑카벨 영지군의 정면에 해당하는 장소로, 결전을 받아들인 적군은 자연스럽게 후방을 노출하게 된다. 게다가 숲에서의 거리도 가까워서 기습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넷째, 적이 아예 브롱보카쥬에 오지도 않고, 우회하는 경우.
특별한 답이 없다. 트랑카벨도 드 누아도 최대한 빨리 진영을 집어치우고 누아 성으로 행군하는 수밖에. 자기네가 결전 요청해놓고 뒤통수를 친 치사한 알코자르 남작 욕을 하도록 하자.
아마 적은 첫 번째나 네 번째 방식을 택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세 번째가 터졌다. 어느 쪽도 수비하는 측인 만큼 아군이 불리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세 번째가 가장 잭팟에 가까운 경우의 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눈앞에, 제22 몽세나 보병 연대의 정면에 적의 꽁무니가 보이고 있다고?
“콘도티에레, 보병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공격을 해도 되겠습니까?”
“음, 역시 빠르네요! 공격합시다, 지로드 연대장.”
“감사합니다, 콘도티에레!”
지로드가 군악대에 신호하자, 북소리가 멈췄다. 대신 전투 개시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전장에 낮게 깔린다.
“연대 전진, 앞으로!”
지로드가 칼을 뽑아 앞으로 겨누며 외치자, 이번에는 규칙적인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제22 연대가 위풍당당하게 전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병사들이 만든 완벽한 사각형이 이동하면서 조금씩 일그러지기는 하지만 크게 흩어지는 일은 없다.
배치가 쉽고 빠르지만, 아군의 화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선형 대형이다. 바둑판 형태로 배치된 총병과 창병 덩어리들이 기능적인 조합을 유지하고 있다. 거대한 방진의 질량을 이용한 무식한 공격에는 약할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은 적의 후방을 노리고 있다. 그런 강렬한 반격에 직면할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 그렇다면 화력이 최고다!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전진하는 온전한 연대 하나이다. 앞을 가로막는 놈들은 몽땅 구멍투성이로 만들어 줄 수 있겠다.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적을 향해 나아간다.
퍼퍼펑!
탄착 오차를 수정했는지, 이번에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일제사격의 포성이 울린다.
“크아아악!”
“멈춰! 멈추라고!”
적의 비명과 아우성이 여기서도 들린다. 대체 어디에 어떻게 맞았는지, 반쯤 쪼개진 투구가 놀라울 만큼 허공으로 높이 튀어 오른다. 멀리서 보니 그냥 흙먼지만 보이지만, 직접 포격을 받은 기병 대열은 끔찍한 꼴이 되었겠지.
예상대로, 기병대열이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완전히 붕괴되어 사방팔방으로 도망쳤으면 싶었는데, 보병의 측면 쪽으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대포로부터 멀어지는 위치이기도 하고, 보병의 측면을 지킨다는 구실도 있고 말이지.
적에게는 기병대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통일된 무장을 한 긴 창을 든 부대였고, 나머지 하나는 알록달록한 전형적인 귀족 중기병대였다. 전자는 아마 네그라타 용병대 소속의 기병이고 후자는 다른 데서 모아온 기사 출신 부대겠지. 이런 경우 후자에 포격하면 특히 효과가 좋더라.
아무리 사람의 의지가 굳건해도 말이 겁에 질리면 결국 기병은 전투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도 있고, 귀족 기사들이 원래 적의 사격을 버티는 것을 잘 못 하더라. 포탄 뒤집어쓰는 건 평민들이 할 일이라 생각해서 그런가? 실제로 죽을 각오를 하고 왔어도, 포탄 맞고 죽기는 싫다 이건가? 뭐 그런 이유겠지.
“로베르 경!”
“예, 콘도티에레!”
“차례가 왔습니다.”
보병들을 앞서 보내고, 그 빈자리에 정찰 연대의 기병들을 배치해 대열을 정돈하고 있던 연대장 로베르 드 나뵈프가 다가온다. 역시 평소대로의 표정 없는 얼굴이다. 으음, 희로애락이 드러나지 않아서 약간 어색하기는 하다. 그래도 임무에 보여주는 열성을 보면 믿을 만한 연대장이다.
“저 우측으로 빠진 귀족 기병들이 보이십니까?”
“예, 콘도티에레.”
“목표는 저들입니다. 용기병 1개 중대, 추격기병 1개 중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대를 이끌고 저들을 섬멸할 것, 아마 드 누아의 기병들도 대응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적이 도망간다면, 전장에서 쫓아내면 됩니다. 너무 멀리 추격하지 말고 돌아와서 이후 본인의 판단으로 행동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아시겠지만, 드 누아의 기병대는 총기로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도 고려하여 함께 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콘도티에레!”
“무운을 빕니다!”
로베르가 경례를 마치고 400기의 기병들과 함께 보병들을 우회해서 달려 나간다. 이제 남은 예비대는 용기병 1개 중대와 추격기병 1개 중대 뿐이다. 그리고는 포병과 전령들이 소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왠지 전투가 오래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퍼펑! 펑!
“표적 변경! 표적 변경! 정면의 적 보병 대열로!”
“옛, 콘도티에레!”
옆으로 빠져있던 적 기병에게 마지막 포탄 세례를 날렸다. 혼비백산한 기병들은 이제 로베르의 기병대가 적절하게 정리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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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이냐 대체!”
알코자르의 남작이자 네그라타의 단장인 타르벤도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얼굴에서 땀이 뻘뻘 흐르고, 서둘러 이동하느라 가발이 비뚤어졌다. 항상 느긋하고 여유 있게 행동하던 그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어떻게 저만한 병력이 숲에 숨어있는데 모를 수가 있느냐! 정찰하지 않았나?”
“저희 정찰대가 숲을 뒤지기는 했으나···.”
부단장 미카토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고개를 숙였다. 오늘 새벽, 매복에 대비해 정찰은 했다. 정확히는 정찰을 ‘지시’했다. 200명이 넘는 용병들이 앞장서서 숲을 한참 뒤졌으니까.
하지만 숲이 워낙 거대하고, 평원에 접한 면적도 넓다 보니 한계가 있겠지. 그래봤자 몇백 미터 정도이고, 그보다 깊은 곳에 적이 숨어있었다면··· 빌어먹을!
어쩌면 정찰을 대충했을 수도 있다. 이번에 드 누아 영지에 들어온 이후로, 숲에만 들어가면 목이 꺾이고 등에 칼이나 화살을 맞아 죽는다는 인식이 있어서 병사들이 숲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고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화장실 보러 가거나 나무하러 가는 것도 꺼릴 정도가 되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더라도! 빌어먹을, 빌어먹을! 설마 이런 짓을 하다니.
“생각보다 깊은 곳에 매복했던 모양입니다.”
“그게 말이 되나! 원래대로라면 전장은 저 언덕이었을 터, 이렇게 먼 곳에 매복하다니 가당키나···.”
순간 타르벤도가 말을 멈추었다.
그 역시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오면서 살아남고, 용병단의 단장이 되고 귀족의 신분을 받은 인물이다. 절대 어리석지 않다. 그 때문에 깨달았다.
분명 언덕에서 싸울 예정이었다. 하지만 적의 포진을 보고 언덕을 공격하는 대신, 동쪽으로 행군하는 척 해서 적을 끌어낸 것은 바로 누구도 아닌 타르벤도 자신이었다. 이 장소를 결전의 장소로 정한 것은 자신이었다!
설마 적은 여기까지도 예상하고 있었나, 하는 소름이 이 늙은 ‘용병왕’을 엄습했다.
설마 그럴 리는 없다. 부정적인 생각은 떨쳐냈다. 적으로서는 도박을 걸었을 뿐이다. 설령 언덕 쪽에서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합류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니까. 그다지 높지 않은 리스크로 낚시를 걸어 봤던 거겠지. 미래를 들여다보는 천재적인 예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어쨌거나 자신은 그 얕아 빠진 수에 걸려든 것이 아닌가! 순차적으로 몰려오는 분노에 타르벤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남작님! 아니, 콘도티에레!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겠습니까?”
미카토가 다급하게 물었다. 재촉하고 싶지는 않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면 정말 다 죽는 것이다. 적의 위협적인 보병 대열은 차근차근 다가오고 있었다.
“으으, 전방의 방진을 각각 둘로 나눈다! 후방의 절반을 후위부대로! 후방의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후위의 지휘를 맡긴다, 미카토!”
“맡겨주십시오, 콘도티에레!”
현재로서는 유일한 선택이다. 무슨 짓을 해도 후방의 적이 다가오기 전에, 전방의 드 누아 군을 섬멸하고 나아갈 방법은 없었으니까. 각개격파가 어려우니 각각에 상당하는 병력으로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험 요소는 있다. 각 방진의 모든 부분이 균일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견 지휘관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적과 접하는 면에 힘을 주게 마련이고, 당연히 전방으로 향하는 쪽에 더 강한 전력이 모여있다. 특히 총병의 경우는 7할 이상이 전방에 모여있겠지. 전방 지휘관들이 특수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게 정석이다. 그래야 화력 낭비를 최대한 줄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제 와서 부대를 통제해서 완벽하게 절반으로 나누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전방에서 잘 싸우던 부대를 무너뜨리는 수도 있다. 지금처럼 후위 병력을 빼내는 것 부터가 뒷심 빠지는 일이라 부담을 주는 일인데, 직접 싸우는 병력을 빼내는 것은 자살행위지.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미카토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당장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부대들을 어떻게든 모아서 새로운 전열을 만들어낸 것은 나름 미카토가 평소에 부대를 잘 파악하고 있고, 현재의 배치에 대해서도 완전히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빼낸 병력을 재편성해 후위 부대를 만들어낸다.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주 전열에 가능한 한 부담을 주지 않고 빼낸 병력, 약 1100명의 부대이다.
후방에서 갑자기 나타난 적과는 거의 동수로 보인다. 미카토는 적과 비슷하게 선형 대형을 취했다. 목표는 전위부대가 드 누아 군을 부술 때까지 버티는 것. 적의 선형 대형과 맞추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콰쾅!
“크아아악!”
“으아아! 내 다리, 으아아아!”
흙먼지가 일어나며 병사 두 명이 대열에서 튕겨져 나온다. 한 명은 죽었는지 엎드려서 꼼짝을 하지 않고, 나머지 한 명은 무릎 아래가 사라져서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적은 포병을 가지고 있다. 선형 대형이 아니라 종심이 깊은 밀집대형을 취한다면 포탄 한 발에 더 많은 숫자가 쓸려나갈 것이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총기도 이제서야 보급하기 시작한 드 누아의 산적들이 포병이라니! 대량의 총기를 트랑카벨에서 공급받았다고 하던데, 설마 야포까지 사들인 것인가? 크나큰 충격이었다.
미카토는 분통이 터져서 주먹으로 자기 허벅지를 내리쳤다. 쇠장갑과 허벅지 갑옷이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네그라타 용병단 역시 전장 트렌드에 맞춰서 야포를 도입할 예정은 있었다. 그룬발트나 주디칼리에 비해서 넓은 평야가 적고 지형이 복잡한 라솔에서는 상대적으로 포병의 중요성이 낮았지만, 그래도 점점 사용률이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병 도입을 막은 것은 타르벤도의 개인 친위 기병대였다. 특수 주문된 전신 갑주에 화려한 장식들, 거기에 기병창과 권총 두자루에 각종 부무장들, 혈통 좋은 군마까지 마련하자니 돈이 부족했다. 무슨 생각인지 타르벤도는 이를 위해 부족한 부분은 개인 빚까지 져서 장비를 마련했다. 이러니 포병대를 마련할 예산을 낼 방법이 없었지.
그 친위대는 지금 타르벤도를 보호하며 함께 벌벌 떨고 있었다. 쌍욕이 나올 지경이다. 저 병신들 무장할 돈으로 야포를 샀으면 어땠을까. 드 누아 군을 몰아붙여서, 후방의 적이 대열을 갖추기 전에 승패를 결정지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버텨라! 곧 적의 공격이 온다!”
“사격 준비!”
장교들이 외치며 급히 만들어진 대열을 가다듬는다. 미카토는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병력 차출에, 평소에 함께했던 부대들도 아니건만, 장교들의 선도 아래 지금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전투 대형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이 오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공격해 올 기세로 무섭게 후방에 육박해오던 적은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어째서?
단순히 아군을 허둥대게 만들어서 전방에 가해지는 압력을 약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나?
쾅! 콰쾅!
“이런 시발!”
바로 근처를 포탄이 지나갔다. 노린 것인지 빗나간 것인지는 모른다. 바닥에서 튕긴 흙이 갑옷을 때려 요란한 소리를 낸다. 요란한 소리와 튕기는 흙에 맞아 놀란 말이 미친 듯이 날뛰어 진정시키는 데 애를 먹었다.
이 주변의 지면은 단단해서 포탄이 물수제비처럼 잘도 튀어 지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중간에 부딪힌 것은 인간이든 철이든 나무든 상관하지 않고 모조리 부숴버린다. 바닥에 갈색으로 파인 자국이 으스스했다.
“괜찮으십니까, 부단장?”
“난 괜찮다! 다친 사람 있나?”
“전령이 당했습니다!”
“빌어먹을!”
적은 딱 화승총 사거리 두 배 정도 거리에 멈췄다. 그러면서 포격은 계속해오고 있다.
상황은 명백했다.
우리가 가긴 싫고, 니가 와라.
도발이다.
“어쩔 수 없군, 공격 준비! 후방의 적을 몰아낸다!”
“알겠습니다, 부단장!”
네그라타 용병대가 방어태세를 풀고 전진하기 시작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포격에 시달리느니, 이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병사들의 발걸음에서 조바심이 느껴진다.
“동수라면 지지 않는다! 네그라타에 승리를!”
“네그라타에 승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