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5화 (55/556)

12-1. 알코자르 토벌

드 누아 영지는 이스키비르 강을 따라서 남북으로 긴 형태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이스키비르 하류에 있는 작은 삼각주, 이름 그대로 이스키비르 삼각주로부터 북쪽으로 레뮤즈 백작령과의 경계에 이른다. 이런 기형적인 형태가 된 이유는, 당연히 강 건너의 영토를 라솔 왕국에 빼앗겼기 때문이고.

강 건너에서 알코자르 남작의 군대가 진격해올 루트는 크게 남쪽과 북쪽의 두 곳이 있는데, 북쪽으로 오는 것은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는다. 강을 건너자마자 온통 숲으로 빽빽하기 때문으로, 전부터 약탈자들은 숲 깊이 들어오는 것은 피했다고 한다. 그러니 강 주변의 마을이나 무두질 오두막들이 습격의 대상이 됐었겠지.

가장 남쪽인 삼각주 쪽은 강폭도 넓고, 수확도 진작에 끝난 상태라 대군이 습격하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잘못 섬에 들어갔다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수도 있고.

결국 적이 대규모의 야전군으로 침공하려 한다면 답은 중부의 평원 지역밖에 없다. 강을 걸어서 건널 수야 없겠지만 폭과 유속이 적당해서 나룻배를 이용해 기습적으로 건너기 좋았다.

“첼레스티나, 네그라타 용병단이라고 들어봤어?”

“네에, 처음 들어봐요.”

“주디칼리나 그룬발트 쪽이 아니면 모르는 게 당연한가···.”

용병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고용주 따라서 활동 영역이 바뀌는 것이니까, 내가 못 들어봤다고 얕보면 큰일이 난다. 오히려 한 지역에 터줏대감처럼 오래 머물렀다면 그건 그만큼 그 지역에서 잘 적응했고 높게 평가받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드 누아에서 싸워본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형적인 타라트바라 계열의 용병단으로 보인다.

라솔 왕국 출신의 용병단 편성은 크게 타라트라바 계열과 포르트와 계열이 있는데, 이 중 타라트라바 계열 편성의 특징은 중무장 백병전용 특화 무장을 채용한 삼중편성이라는 점이다. 아··· 돌격대를 따로 두는 우리 슈토르히 연대도 그럼 타라트라바 식이라고 해야 하나? 좀 다른 점은, 타라트라바 식 편성은 근접 전문 보병 부대를 따로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창병 부대의 일부로 편성한다는 것으로, 내 기준에서는 상당히 특이한 점이다.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용병단의 규모가 거대하다는 것이다. 보통 전장에 나오는 연대 규모는 주디칼리가 가장 작고, 그룬발트가 그다음이며 라솔 왕국 계열이 가장 큰데, 타라트라바식 편성은 가끔 5천명이 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아마 네그라타 용병단도 그 정도 규모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비전투 계절인 겨울에는 병력 일부를 해산하고 핵심 전력만 남기는 경우가 많으니 좀 작은 규모로 생각해도 되겠지.

“콘도티에레, 저기,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응, 뭔데?”

“혹시 그 네그 뭐라는 용병대는 강 건너 영토를 약탈하면서 겨울에도 전력을 유지한 게 아닐까요?”

“아.”

예리한 지적이다. 하긴, 그런 부수입이 있다면 굳이 병력을 줄일 필요가 없지. 오히려 병력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약탈에 도움도 될 테고. 봄이 되었을 때도 병력이 유지된다면 군사행동을 빨리 시작할 수 있어서 많이 유리하고, 고용주도 좋아할 것이다.

애초에 용병 지휘관이 남작령을 포상으로 받았다면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 같다. 요새 너무 잘 풀려서인가, 실수할 뻔했네.

“좋은 지적이야, 첼레스티나.”

“네에, 에헤헤.”

으으음, 이러면 병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그냥 한 수백에서 천 명쯤 되는 국경 분쟁일 줄 알고 병력을 적당히 데리고 왔다. 보병 연대 하나에, 다른 기병 연대의 절반 정도 규모인 정찰 연대 하나니··· 합쳐도 2천 명도 안 되는데. 드 누아 가문도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부대는 비슷한 규모이지 않을까 싶은데···. 교관으로 대활약 중인 기즈 드 콜롬브가 열심히 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더 심각한 문제는 트랑카벨의 지원군이 아직 도착도 안 했다는 것이다. 추가 병력을 더 불러도 시간에 맞추지는 못하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건 지키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적의 움직임은 대략 예상할 수 있고, 유리한 지점으로 전장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리니 능선 때가 생각나는걸. 적도 잔뼈가 굵은 용병대라면 그런 눈감고 돌진하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나는 지도 몇 군데에 동그라미를 쳐서 표시했다. 시간 되는대로 살펴봐야지.

“첼레스티나, 가자.”

“네에, 어디를요?”

“전장 봐 두러 가야지.”

“앗, 네에, 수레 끌고 갈게요.”

###

네그라타 용병단의 부단장인 미카토 바르두 샌잔디스는 유유히 흐르는 이스키비르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흐흑, 춥지만 건너올 수는 있었습니다!”

“수고했다, 빨리 불가에 가서 쉬어라.”

“네, 부장님!”

“여기 포상금이다, 정말 잘했어.”

“하하핫, 감사합니다.”

상금으로 은화 몇 개가 건네진다. 속옷만 입은 사내가 부들부들 떨면서 강물 속에서 걸어 나와 모닥불 근처로 향했다. 동료들이 고생했다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담요를 걸쳐준다. 방금 그는 맨몸으로 강 반대편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온 상황이다.

겨울이라 물이 줄어 걸어서 통과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건너갔다 온 용병은 거의 가슴까지 젖어 있었다. 이 겨울 날씨에 푹 젖은 몸으로 싸우는 것은 무리다. 이대로 맨몸으로 강을 건너는 계획은 포기했다. 역시 배가 준비되어야 한다.

강 건너에는 드 누아의 정찰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여럿 보인다. 적이 준비하기 전에 우르르 건너가서 교두보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는데, 그건 어렵겠다. 이대로 나룻배를 만들면서 타르벤도 단장이 이끄는 본군을 기다려야겠다.

미카토는 병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진격해서 약탈하고 빠지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는데, 타르벤도는 굳이 주변의 우호적인 귀족들에게 전령을 보내 병력을 보충하겠다고 결정했다. 명목은 기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주변에 과시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용병대가 엘랑키아의 백작령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누나의 남편이고, 자신에게는 꽤 잘해주는 편이며, 무명의 용병대를 여기까지 키워 낸 능력에 대해서는 물론 인정하고 있지만 최근 행동을 보면 정말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왜 그렇게 주변에 자랑을 못 해 안달인 건지. 기병대 문제도 그런 게, 사실 네그라타 연대에는 200명 정원의 기병대가 있다. 문제는 타르벤도가 ‘개인 친위대’랍시고 실전 투입을 아까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온갖 비싼 장비는 되는 대로 발라놔서 용병단의 재정에 큰 부담만 주고 있었고.

...최근에는 자꾸 첩을 들여서 사람 좋기만 한 누나도 좀 슬퍼하는 것 같고. 미카토가 보기에는, 타르벤도라는 60대 넘은 노인네가 뭐 그리 여자를 밝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예쁜 여자들을 후처로 들일 만큼 절륜하다’를 주변에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무튼 언젠가 자신이 물려받을 용병단이니, 충성하고는 있지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룻배 5척을 완성하는 데는 나흘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이미 확보한 2척과 합쳐, 2곳에서 동시에 도강을 시도하려고 한다. 남는 시간 동안 철저하게 계획을 세울 것이다.

타르벤도 단장이 늦지 않기를.

###

“오호, 그랬나?”

가스텔 드 누아 백작은 북쪽 숲의 숲지기장인 메르클랑 나브룰의 보고를 받고 빙그레 웃었다. 메르클랑은 조금 전까지 트랑카벨에서 온 군사 고문의 호위 겸 길 안내를 하고 온 참이다.

“그렇습니다. 지도에 뭔가 표시하더니, 부지런히 잘도 돌아다니더군요. 높다 싶은 곳은 다 올라가 보고, 땅이 패었다 싶으면 직접 발로 걸어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 정말인가?”

“결국 몇 번이나 늪지대에 빠지고, 같이 다니는 여자 부관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진짜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크흐흐흐, 카르카냑의 보송보송한 개울가만 생각했다면, 누아의 늪지대에 당황하는 게 당연하겠지.”

“누가 아니랍니까. 저는 고향을 사랑하고 정말 아름답긴 하지만, 솔직히 좀 고약한 동네여야지 말입니다, 백작님.”

가스텔이 유쾌한지 소리를 내어 웃었다. 메르클랑 역시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두 팔을 벌리며 고개를 젓는다.

“결국 끌고 다니던 수레도 늪에 빠져서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도로 건져 내느라 다 같이 고생했습니다.”

“그래, 같이 다녀보니 어떻던가?”

“처음에는 굳이 이렇게 해 봐야 하나 싶었습니다.”

“흐음, 나중에는?”

“나중에는 전쟁에서 이기려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늪지대니,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은 장소에서 기어코 걸어서 건널 만한 쪽길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고··· 들어가 보지 않았다면 몰랐겠지요.”

“으흠.”

“사흘 동안 다섯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아마 그 트랑카벨의 지휘관은 그 지역에 대해서는 저보다 잘 알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용의주도한 인물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발로 뛰기보다는 머리로 생각하는 타입이라 생각했었는데··· 예상과 너무 다른 모양이다. 가스텔은 에트의 의외의 모습에 감탄했다.

“...외람되지만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자네가 아니면 누가 나에게 건의를 하겠나.”

“이번에는 트랑카벨 가문을 한 번 믿어봐도 될 것 같습니다. 에트라는 지휘관도 그렇고, 병사들을 훈련하고 있는 기즈 드 콜롬브라는 교관도 굉장히 성실해 보입니다.”

“아하, 남을 잘 믿지 않는 자네가 그러니 의외로군.”

“숲에서 낯선 얼굴을 만나면 절반은 도둑놈이고 절반은 멍청이니까요. 숲지기는 기본적으로 낯선 인간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이 지내보니 괜찮았던 모양이군.”

“예··· 백작님. 솔직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 중 하나인 숲지기장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가스텔은 뭐든 말하라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전에는 라솔 놈들과 싸우면 이기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호! 자네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들었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 백작님. 저따위가 감히···.”

“아닐세. 왜냐하면 내 생각도 비슷하거든.”

메르클랑은 시무룩해 보인다. 드 누아의 가신으로 태어나 평생 영지의 외곽을 지키며 살아온 청년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트랑카벨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네. 기병과 보병 합쳐서 2천 명에 가까운 규모라네.”

“그런 대군이! 트랑카벨이 정말입니까!”

시무룩하던 메르클랑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진다.

“나도 그러겠지만, 자네도 우리 누아의 전사들이 어떻게 해야 트랑카벨 군과 협력해서 싸울지 생각해주었으면 하네.”

“협력해서 말입니까?”

“만약 이번 전쟁에서 진다면, 드 누아 가문은 사라지는 거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어떻게든···..”

당황한 메르클랑의 말을 가스텔이 막았다. 그의 심정이야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긴다면, 앞으로도 트랑카벨과 협력해서 계속 싸워나가게 되겠지. 도움만 받고 치울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죠! 원한도 은혜도 갚지 않으면 사나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오호, 좋은 말이군. 좋네, 메르클랑 군, 앞으로도 잘 싸워주게. 트랑카벨의 에트 경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챙겨주고 말이네.”

“알겠습니다, 백작님!”

그렇게 인사를 한 메르클랑이 나가려다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몸을 돌린다.

“아, 그러고 보니 트랑카벨의 에트 경이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음, 뭔가?”

“드 누아 가문이··· 강 건너의 영토를 되찾을 때가 빨리 오면 좋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오호···.”

가스텔의 관자놀이 혈관이 꿈틀거렸다. 강 건너의 영토라니 무슨 말일까.

“지나가는 농담처럼 한 소리였지만,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알았네.”

메르클랑이 집무실을 나간 뒤, 가스텔은 나무 의자에 깊게 몸을 기댔다.

“후우···.”

죽는 순간에도 자신에게 미안해하며 돌아가신 선대 드 누아 백작, 아버지가 생각났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문의 영토가 반쪽이 된 것에 대한 사과였다. 사실 모든 일은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일으켰던 엘랑키아 왕실의 책임이며, 선대 백작은 거기 휘말린 책임밖에 없었다.

어쩌면 정말 가볍게 농담으로, 어차피 못 찾는 것을 알면서 던진 헛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트는 상당히 말을 조심해서 한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뻔히 듣는 사람이 복잡하게 받아들일 소리를 정말 농담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지만, 최후까지 원통하게 생각하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에 맹세코, 강 건너의 옛 영토를 되찾아 드 누아 영지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가스텔은 기꺼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