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2화 (52/556)

11-2. 겨울의 준비

“흐이이익! 헤에엑!”

“뒈져!”

공포에 질린 창병이 부러진 창대를 마구 휘두르며 도망치려다 실패했다. 반원을 그리며 허공을 휘둘러진, 한쪽 끝이 뾰족한 가시 망치가 도망치던 창병의 등짝을 뚫고 박혔다. 방금 막 창병을 쫓아가 잡는 데 성공한, 사냥꾼 차림의 병사는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다가간다.

기어서라도 도망치겠다고 퍼덕거리는 창병의 등을 밟고 발로 걷어차서 챙이 달린 투구를 벗긴다. 그리고 망치의 뭉툭한 쪽으로 몇 번 후려쳤다. 퍽, 퍽, 하고 나무나 못을 때릴 때와는 전혀 다른 소름 끼치게 축축한 소리가 난다. 경련을 일으키던 상대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열한 기습 사격으로 시작되었던 전투는 처절한 학살로 끝나가고 있었다. 화력은 세 배, 숫자는 두 배에 이르는 압도적 격차였다. 거기다가 약탈자 쪽의 ‘설마 우리를 공격하겠어’ 하는 방심, 습격자 쪽의 첫 총탄을 낭비하게 한 용의주도함까지. 처음부터 승부는 났었다.

게다가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습격자 측의 격렬한 증오심이었다.

완전히 승패가 갈리고 적이 전의를 잃은 상태에서도 농락하듯 괴롭히며 죽인다. 살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도망쳐도,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려 빌어도 용서는 없었다. 여기저기서 머리가 부서져 뇌수가 흐르고, 사지가 토막 나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야 저 새끼들 헤엄쳐서 도망친다!”

“활로 쏠까?”

“잡아 멍청이들아 거기 저수지인데 내년에 시체 물로 농사지을래?”

“거름으로 딱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럼 빵에서 라솔 새끼들 냄새나잖아!”

“푸하하하하!”

쫓기다 쫓기다 도망칠 곳이 없어 배후의 저수지로 뛰어든 이들의 머리에 정확히 화살이 박힌다. 갑옷과 투구의 무게 때문에 초겨울의 차가운 물에 그대로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 자들도 있다. 조금 전까지 허우적대던 적병을 보며 폭소를 터뜨리던 병사들이, 버려진 긴 창을 들어 툴툴거리면서 시체를 건져 올린다.

가스텔 드 누아 백작은 싸늘한 눈으로 끝나가는 학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부하 중 특히 경보병은 이스키비르 강 주변 숲에서 사냥하는 것을 업으로 한 이들이 많았다. 힘들여 추적해 잡은 사냥감이며 겨울 동안 모아 놓은 가죽이며, 강 건너온 약탈자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크든 작든 자기 영토가 도적들에게 유린당하는데, 마음껏 싸워보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드 누아 영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여태껏 참아 왔었다.

그런데 참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왼팔이 아직도 얼얼했다. 가스텔은 허리춤의 아직도 뜨겁게 달아오른 권총을 바라보았다. 폭이 넓은 단검을 휘두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장교로 보이는 적의 악귀와도 같던 표정이 기억났다. 너무도 간단히, 콩알만한 납탄이 상대의 광대뼈를 부수고 움푹한 투구의 안쪽을 핏덩이로 가득 채웠었다.

“완승입니다, 백작님.”

충실한 가신 모콜리 드 디망투완 남작이 감동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양 팔이 뒤로 묶인, 꽤 화려한 장식이 달린 흉갑을 입은 포로를 집어 던지듯 가스텔의 앞에 무릎 꿇렸다. 포로는 공포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흉갑 위로 비죽 튀어 나온, 자신이 흘린 피로 엉망이 되었지만 화려해 보이는 레이스 장식 옷깃이 보인다.

“이름이 뭐지?”

“파, 파들로 데 바를렉···.”

“존댓말 안 쓰냐! 똑바로 신분 안 밝혀?”

“히, 히이익! 바, 바를렉 자작의 아들입, 입니다!”

모콜리가 고함을 지르자 자지러지는 것을 보니 배짱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보아하니 갑옷이나 허리띠의 버클이 완전히 새것이다. 나이도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게 이번이 첫 출전인 모양이지.

꼴을 보아하니 집에 돈은 좀 있어 보인다. 화려한 복장을 하고 전장에 나서는 것은 주변이나 적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있지만, 자신은 이만큼 가치 있는 포로니 죽이지 말아 달라는 의미도 있다고 하니. 아마 평범한 복장이었다면 모콜리 역시 절대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쌓인 것은 적지 않았으니까.

“오늘은 포로는 안 잡을 생각이었다 만···.”

“히이익! 사, 살려주세요!”

가스텔의 싸늘한 말을 들은 파들로가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땅바닥에 박으며 빌기 시작한다. 솔직히, 이따위 놈들이 드 누아의 영토를 멋대로 돌아다니며 분탕질을 쳐댔다는 사실에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지만, 가스텔은 잘 참았다. 확실히 가치 있는 포로로 보였기 때문이다. 몸값으로도 그렇고, 정보로도 말이다.

“좋아, 이놈은 데려간다.”

“예, 백작님. 일어나! 너 도망치려고 하면 발목 자른다! 알겠어?”

“흐윽, 흑··· 네, 넷!”

“똑바로 못 걸어도 자를 거야! 잘린 발목으로 땅 딛고 싶어! 똑바로 걸어!”

“흐극, 흑흑··· 걸을게요! 걸어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유일한 생존자인 파들로는 모콜리의 우악스러운 손에 이끌려 종사들에게 인계되었다. 이 종사들 역시 딱히 모콜리보다 친절하게 대해주지는 않겠지만.

“전리품 챙겨라! 오늘은 우리가 빼앗는 쪽이다!”

“예, 백작님!”

우선 무기류, 특히 총과 화약, 검을 챙긴다. 총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라솔 왕국에는 양질의 철이 나는 지역이 많아 좋은 검도 많다.

“갑옷이나 투구는 가져도 된다! 최대한 챙겨!”

“오오오, 정말입니까!”

병사들이 신나서 무기를 챙긴다. 누아는 가난한 지역이고, 라솔 왕국과의 패전 이후 이렇다 할 전쟁도 없었기 때문에 기사나 병사들이 좋은 무기를 챙길 기회도 없었다. 자연스럽게도, 백작의 가신 중에서도 너무 오래돼 윤기를 잃은 구식 철판 갑옷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슬 갑옷을 입은 경우도 보였다.

“열 한 명이 당했습니다, 백작님.”

가신 중 하나가 보고한다. 적 200명 이상을 쓰러뜨린 압도적 대승리지만, 역시 희생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 고생했다. 부상자도 잘 챙겨라.”

“예, 백작님.”

돌아가는 기사의 어깨에는 조금 전까지 사용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총이 매달려 있다. 트랑카벨 가문에서 갑자기 선물이라고 주었던 300정의 총 중 하나이다. 이 총들로 무장한 덕분에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

그냥 싸웠다면··· 수적으로 압도적으로 유리하니 이기기야 이겼겠지. 하지만 훨씬 잘 무장된 적과 싸우면서 드 누아의 기사와 병사들이 많은 희생을 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복수랍시고 찾아오는 다음 군대를 막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기즈 드 콜롬브라는, 트랑카벨에서 파견 온 훈련 교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총기 훈련받던 병력 중 절반을 빼간다고 하니 기겁했었지. 하지만 아직 훈련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드 누아의 총병들은 잘 싸워줬다. 이제 무사히 데리고 가서 교관에게 돌려주고, 더 강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누아의 전사들아!”

가스텔은 충동적으로 검을 뽑아 들더니, 허공을 향해 치켜들며 외쳤다.

“우리가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누아를 위해서!”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좋아한다. 가스텔의 생각보다도 몇 배나 고함이 크고, 끊이지 않는다. 몇몇 병사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미웠을까, 어떻게 참았을까.

“우리는 이겼다!”

어느새, 가스텔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에도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아!”

“덤벼봐라 라솔 개자식들아!”

한 맺힌 아우성치는 고함이 누아의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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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르히 연대의 선임중대장이자, 트랑카벨 저택과의 연락 담당을 맡은 크레시미르 두브람은 오늘 기분이 좋았다.

괜찮아 보이는 신병 후보를 만났기 때문이다.

“합석해도 괜찮겠나? 나는 슈토르히의 선임중대장, 크레시미르라고 하네.”

뭐, 묻는 순간에 이미 앉아 있었다. 맞은 편의 거구의 남자, 고프릭 벨장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은 제법 붐비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크레시미르는 마시고 있던 포도주병과 잔을 그 테이블로 옮겼다.

크레시미르가 보기에, 그 거구의 남자는 이런 식당이 익숙지 않은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한마디로 촌놈처럼 보였다. 한참이나 메뉴를 보고 망설이다가, 오믈렛과 가장 싼 스튜를 시켜서는 구석 자리에서 조금씩 먹고 있었다. 은화를 낸 것을 보면 돈이 아예 없지도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그가 탁자 옆에 올려놓은 종이를 보면, 아주 최근, 어쩌면 오늘 모병소에 다녀온 지원병인 것으로 보인다.

“카르카냑은 처음인가?”

“네···.”

“오믈렛이 참 맛있어 보이는군. 나도 오늘 안주는 오믈렛으로 할까. 주인장, 여기 오믈렛 하나 주시오! 잔도 하나 주시고!”

눈이 마주치자, 크레시미르는 싱글벙글 웃고 거구의 남자는 어색한지 눈을 피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믈렛이 탁자에 도착한다. 크레시미르는 크게 한 조각 끊어 입으로 넣는다.

“크, 맛있구만. 오믈렛은 왠지 애들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잘 안 먹었었는데 이제 자주 먹어야겠네. 술이랑도 잘 어울리고.”

“네....”

“나는 멀리 동쪽 출신인데, 정말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산악지대가 고향이지. 어릴 때는 정말 너무 가난해서, 달걀을 혼자 하나 다 먹는 게 소원일 정도였어.”

“....”

“포도주와도 잘 어울리네. 자네도 한잔하겠나?”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그냥 받기만 하게, 안 마셔도 되고. 이것도 다 인연인데 말이지. 내 이름은 크레시미르라네.”

“저는 고프릭이라 합니다.”

고프릭은 거절했었지만, 일단 술을 받자 한 모금 마신다. 술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잘 마시는구만, 술도 좋고, 음식도 맛있어. 블랑독은 참 좋은 동네 같아. 자네도 블랑독 출신인가?”

“아뇨, 저는 좀 북쪽에서 왔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인데··· 그랬군. 아무튼 매일이라도 달걀을 먹을 수 있다니 참 좋네. 자네도 어지간히 달걀 요리를 좋아하나 보지?”

“저는··· 아내와 아이가 좋아해서···.”

“오오 그런가? 가족은 안전한 곳에 있나? 카르카냑?”

“아뇨··· 죽었습니다.”

“어.”

크레시미르는 자신의 눈치 없음을 저주했다. 넉살 좋고 아무에게나 잘 들이대는 것은 장점이었으나, 그러다 보면 가끔 이런 사고를 치고 만다. 빌어먹을, 이런 시기에 남자가 혼자 지원병 안내서 들고 밥 먹으러 왔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어야 했는데.

“...유감이네, 진심으로.”

“아닙니다.”

“내가 정말 눈치가 없구만···.”

둘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깨작깨작, 조금씩 음식을 씹는 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그, 자네 옆의 종이를 보게 되었네만, 트랑카벨 영지군에 지원한 것인가?”

“네···.”

“내가 마침 선임중대장을 맡고 있으니 혹시 궁금한 게 있나? 뭐든 대답해주지.”

“워낙 아는 게 없어서··· 질문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평소에 궁금하던 게 하나 쯤은 있을 것 아닌가?”

“그럼··· 트랑카벨 군은 정말 그렇게 강합니까?”

“물론! 전 엘랑키아에서, 대륙에서 가장 강하지!”

크레시미르가 워낙 호언장담하자, 고프릭은 오히려 놀란 듯하다.

“내가 모시던 분이, 트랑카벨 영지군의 총지휘관, 콘도티에레라네. 영주님의 군대를 대신 이끄는 대리인이지.”

“콘도티에레··· 들어는 봤습니다.”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이야. 전 대륙에서 가장 강한 군인일세. 엘랑키아 국왕인지가 어설프게 덤벼봤자 소용없을 걸?”

“네···.”

“자네 혹시 복수가 하고 싶은 건가?”

“....”

갑자기 고프릭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번에는 말실수가 아니다. 크레시미르 역시 진지한 표정이다.

“이런 시기라네, 복수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은 제법 있다네. 내 부하 중에서도 그렇고.”

“하지만···.”

“복수심에 완전히 빠지면 안되겠지만, 적당한 복수심은 자네를 서서히 담금질해서 강해지게 만들 것이네.”

크레시미르는 술을 한 잔 더 들이켜더니, 이제서야 속마음을 내놓는다.

“자네가 괜찮다면, 우리 부대로 지원하는 것은 어떤가?”

“저··· 모병관님이 병종은 연대장님들이 정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정하는 사람 중 하나가 나거든. 연대장은 아니지만.”

“허··· 네.”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슈토르히의 간부들은 훈련 교관으로 많이 파견 나가 있기도 했고.

“우리 부대는 좀 특이하다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크레시미르는 조금 망설인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단점이 장점으로 커버가 안 될 만큼 커 보이기도 한다. 이 고프릭이라는 사내에게는 어떨지?

정공법을 택하기로 한다.

“트랑카벨 영지군의 모든 부대를 통틀어서, 우리 중대만큼 많은 임금을 받는 부대는 없네. 그렇다고 다른 부대가 질투하지도 않는다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예상대로, 고프릭은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아내와 자식을 잃고 공허한 마음을 가진 사내가 돈 몇 푼에 혹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슬픈 일이겠다.

“하지만 아무나 될 수 없다네. 자네처럼 체격이 좋고 완력이 좋은 남자는 잘 없으니까.”

“평생 농사만 짓다 보니 싸워본 적이 없어서···.”

“그걸 이제부터 배우면 되는 게 아니겠나.”

잠깐 뜸을 들인다.

“우리 부대의 가장 큰 메리트··· 아마도 자네에게는 메리트일 거라 확신하는 점이 있네.”

“무엇인가요?”

“가장 앞에서, 가장 증오스러운 놈들을 찢어 죽일 수 있는 특권이지.”

여상스럽게, ‘우리 부대는 짬밥이 괜찮은 편이야’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을 말투였다. 하지만 고프릭의 눈이 커졌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 가장 큰 반응이었다.

“뭐, 자네도 싫은 놈들이 좀 있지 않겠나. 엘랑키아 왕실이든, 법황청이든, 조만간 우리 콘도티에레께서 죄다 찢어발겨 버릴 거야. 우리는 그 맨 앞에 서는 ‘돌격대’라네.”

“....”

고프릭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갑자기 손이 덜덜 떨렸다. 피부가 뜨거워지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내와 자식을 잃은 비통함이 몰려오는 가운데 저 깊은 곳에서, 잠시 묻어둔 줄 알았던 복수심이 피어오른다.

보세낙 드 리몽, 고블린처럼 생긴 사제 놈.

그자가 직접 자기 아내와 자식을 죽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자가 데리고 온 군대의 ‘성전’ 과정에서 죽은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죽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고통스럽게.

증오스러웠다. 그런 사제에게 권한을 준 법황청의 교단이. 그저 하루하루 신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뿐인 평범한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여버린 사제들이. 격정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움푹 팬 뺨에 눈물이 한방울 굴러떨어진다. 필사적으로 오열을 참는다.

크레시미르는 약간 슬픈 표정으로 그런 고프릭을 바라본다. 자기 행동, 복수를 권하고 입대를 권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자신이라면, 무력하게 살지도 죽지도 못하느니 복수에 투신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당당하다. 당당하게 자기 곁에서 함께 싸울 동료로서 이 남자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크레시미르 님이라고 하셨나요?”

고프릭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치밀어 오르는 오열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핏발이 서서 빨갛게 된, 물기 어린 눈으로 묻는다.

“그렇네. 슈토르히 연대에서 선임중대장을 맡고 있다네.”

“말씀하신··· 돌격대에 관해서 설명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되겠군. 우선 술 한 잔 받게.”

“네···.”

이제는 거절하지 않는다. 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으려면, 그리고 증오스러운 적들을 찢어 버릴 준비를 하려면 술도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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