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9화 (49/556)

10-5. 트랑카벨의 방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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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짜증이 좀 나서 소리를 빽 질렀다.

“어르신들 지금 이해를 못 하시나 본데, 봄에 이단 토벌군이 몰려온다구요!”

하지만 눈앞의 탁자에 앉은 사람들은 오히려 껄껄거리며 웃는 것이다.

“허허허, 콘도티에레 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되겠네요.”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한 것은 아넥시 전투 당시에 아넥시 민병들의 대표였던 루옹이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했었지만, 차츰 싸우면서 신뢰가 쌓이자 중견 지휘관 역할을 충실하게 해줬었지. 전투의 클라이맥스였던 개문 돌격 때에는 선봉대장을 맡았었다.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아직 붙어있는 벌목용 도끼를 휘두르며 맨 앞에서 뛰쳐나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저희는 아넥시에 남기로 했습니다. 다 같이 이야기를 해서 결정한 내용입니다.”

“하아···.”

“평생 아넥시에서 살아왔는데, 저희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나는 답답한 마음에 혹시 설득할 수 있나 싶어 테이블의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으나, 모두가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안 들을 거야’ 라고 써 붙인 듯한 담담한 표정들을 하고 있다. 모두 40~50대의 남자 넷에 여자 둘. 아넥시 각 구의 관리위원이라고 한다.

“게다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네···.”

“차라리 블랑독 구석구석에 소문을 내주세요, 혹시라도 갈 곳이 없거나, 약탈자들에게 쫓기고 있다면 아넥시로 오라고 말입니다.”

“맞아요, 우리가 챙겨 줄 수 있어요.”

“로데브 강 북쪽에도 쉼터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휴우....”

말이 안 통한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고집불통들 같으니라고.

슬슬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 트랑카벨이 주민들에게 알리는 네 가지 항목을 담은 전령들이 블랑독 전역으로 달려갔다.

1. 모든 정순파 신도들은 봄이 오기 전까지 로데브 강 이남, 트랑카벨 가문의 영지인 카르카냑, 델레망드, 몽세나 중 한곳으로 대피할 것

2. 정순파가 아닌 블랑독 주민들도 원한다면 대피할 것, 이주자들의 의식주는 트랑카벨 가문에서 최대한 책임질 예정임

3. 대피하지 않은 주민들은 성전군의 공격에 저항하지 말 것, 비무장 상태를 유지할 것이며, 성전군에 협력하더라도 향후 트랑카벨 가문과의 관계에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임을 약속함

4. 블랑독 연맹군에 합류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각 도시의 모병 담당관을 찾아가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것

로데브 강 북쪽의 영토들을 포기한다는 블랑독 연맹의 방어 계획에 불만을 가지는 귀족들도 물론 많았다. 특히 자기 영토가 일시적으로라도 적들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에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이상의 방어 계획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대부분의 귀족들과 그 가신들, 트랑카벨 영지군에 입대한 이들의 가족들은 남쪽을 향한 여정에 나섰다. 트랑카벨 가문은 400대가 넘는 마차를 보내서 피난 계획을 돕고 있었다. 이 마차들은 내년에는 군수물자를 나르는 데 사용되겠지.

나는 새로 편성한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 기병들과 함께 블랑독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피난민들을 돕는 한편, 블랑독 변경지역의 지리를 익히고 있었다. 물론 막 새로 편성된 제31 연대의 기동 훈련 역시 매우 중요한 목적이었고.

“콘도티에레, 하나만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루옹이 갑자기 진지하게 물어본다.

“저희 아넥시 마을이 어떻게든 버텨낸다면, 콘도티에레나 트랑카벨 가문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으으음···.”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갑자기 스승님의 말이 생각난다.

‘다 같이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도, 분명히 더 위험하고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큰 역할은 존재합니다.’

...스승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휘관이 절대로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이기도 하고요. 자, 에트라면 그 역할을 맡을 부하들을 어떻게 선발하겠습니까?’

나는 아직까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좀 더 용감하고 좀 더 충실한 이들을 사지로 보낼 뿐이다. 미안해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로데브 강 북쪽에 방어 거점이 있다는 것은···.”

나는 갑자기 목이 메왔다. 말을 하기 힘들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대답만을 기다리는 아넥시 주민들을 마주 보기 힘들었다.

“방어 전략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적의 진격 속도가 느려지고··· 주 전선에 압박이 감소하니까요.”

“오오, 역시 그렇군요!”

최대한 객관적이면서 알아듣기 쉬운 용어를 골라서 설명하자, 루옹과 다른 구역장들은 기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우리 주력을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적의 발을 묶을 버림 말은 유용합니다.’

지난 아넥시 공방전의, 겨우 500명 정도의 약탈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년에 올, 성전군의 침공은 최소한 만 단위일 것이다. 성벽이 있다지만, 이런 평지의 소도시 따위 마음먹고 공격한다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콘도티에레! 이번에는 저희 차례입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번에는 트랑카벨 가문이, 성녀님과 콘도티에레께서 저희를 지켜 주셨으니, 이번에는 저희가 트랑카벨 가문을 지킬 차례입니다.”

“음음, 그렇죠.”

“저희도 제법 준비했습니다!”

...나는 이 분위기가 너무 싫다. 전투 직전, 병사들이 자신이 처한 위험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내 쪽을 배려해주는 상황 말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내 병사들도 아니다. 이들은 그냥 정순파이거나, 정순파의 이웃인 보통 사람들이다. 지난 아넥시 전투에서 훌륭하게 활약하기는 했지만 그게 이들이 군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뭡니까?”

“제가 방어 계획을 세워 드릴 겁니다. 꼭 잊지 말고 계획대로 싸워 주세요.”

“하하, 그거 든든하네요!”

“그리고 트랑카벨 가문에서 무기와 다른 물자들을 보내드릴 겁니다. 특히 화약 무기는 방어전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드시 사용법을 익혀 주세요.”

“물론이죠. 사실은 이미 배우고 있습니다.”

“네? 누구한테요?”

내가 묻자 루옹과 다른 사람들은 조금 껄끄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게··· 바트로 군, 들어오시게.”

루옹의 말에 문이 열리고 30대 초반 정도의 남자가 들어온다. 수염은 길렀는데, 머리는 최근에 박박 밀었었는지 아주 짧아 보인다. 한쪽 다리를 살짝 저는 것 같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다소 구형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깨끗하게 관리된 화승총이다.

“어어, 총을 가지고 계셨군요.”

“예전에 전투가 끝나고 수거해가실 때, 성 밖 도랑에 빠진 채 남아있던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걸 건져서 수리했습니다.”

“아··· 그랬군요. 잘 동작하나요? 훌륭한 솜씨입니다.”

화승총은 확실히 나무나 철이나 온통 긁힌 자국 투성이었으나, 잘 닦여서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무기 관리에 상당히 깐깐한 슈토르히 연대의 군기반장 루드비히의 기준도 통과할 법하다.

“바트로는 지난 전투의 포로 출신입니다. 지금은 아넥시의 주민입니다!”

“허, 그러시군요.”

루옹이 그렇게 말하며 바트로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어쩐지, 나와 눈을 잘 못 마주치더라. 지금은 허리가 구부정해질 지경으로 바닥만 보고 있다.

“아넥시 주민들이 그렇게 정하셨으면 그런 겁니다.”

나는 총을 돌려주며 말했다.

“과거에 부끄러운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넥시의 일원이니 여기 집중하세요.”

“그럼요, 그럼요. 그렇죠! 어깨 펴라고 바트로!”

바트로의 눈가에 눈물이 보인다. 후회라는 감정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 과실을 늦게라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어제보다 좀 더 나아지지.

루옹의 설명에 따르면 아넥시 전투 이후에 살아남은 포로는 수십 명 쯤 되었다는 모양이다. 생존자들은 아넥시 재건 작업에 한 달 정도 투입됐다. 그동안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회의가 몇 번이나 열렸다고 하는데··· 사형시키자는 의견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아넥시 전투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조차 말이다. 뭐, 내 생각에도 그랬겠지 싶다. 전투 직후에야 죽이고 싶도록 미웠겠지만···.

결국 계속 가둬두거나 노예로 쓸 수도 없어서, 처벌은 ‘머리를 삭발하고 추방한다’로 정해졌다고 한다. 그중에 마을에 눌러앉은 이들이 있었던 모양이고. 사실 뜨내기 용병 중에는 정말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용병 일에 뛰어든 경우도 많다. 전쟁이 끝나고 자기들이 황폐화시킨 땅에 정착하는 경우도 왕왕 있고.

이 바트로라는 사내가 어떤 인간인지, 가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던 주민들이 인정한 거면 그냥 그런 거지 뭐. 게다가 총을 다루고, 수리까지 할 수 있는 모양이니 도움이 될 것이다. 최소한 눈 피하고 부끄러워할 정도의 양식은 갖춘 인간인 것 같고 말이지.

나는 결국 루옹과 구역장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밖으로 나왔다.

재건된 아넥시는 확실히 활력이 넘치는 좋은 도시가 되었다. 최근 블랑독 북부가 흉흉한 와중에도 이 정도니,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분명 크게 발전했겠지··· 일단 위치가 좋으니까. 그 위치 때문에 위험해 진 게 현실이지만....

답이 없다. 싸우겠다면 도와주는 수밖에.

“첼레스티나! 거기 있어?”

“네에, 콘도티에레!”

저쪽에서 종이에 뭔가를 쓰고 있던 그녀가 내 부름을 받자 얼른 뛰어온다.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싱글벙글 웃고 있다.

“아넥시 지도는 파악했니?”

“네에, 콘도티에레. 방어 계획 수립 완료했어요!”

“그래, 보여줄래?”

“여기요, 에헤헤.”

그녀가 내민 종이에는 깔끔하게 완성된 아넥시의 평면도와 그녀가 생각한 보강 위치, 저격 포인트, 방어자의 시야각 등등이 꼼꼼하게 쓰여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선이 어긋난 부분이나 찍찍 긋고 새로 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노트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이런 걸 순식간에 작성했다는 것이 그녀의 비범함을 보여줄 것이다.

첼레스티나가 배만 똑바로 탔으면 바로 도착했을 거리를 빙빙 돌아 헤맨 길치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사실 엄청난 공간지각능력을 가지고 있다.

“저쪽 망루 사이의 거리가 얼마지?”

“으음, 182미터쯤! 이네요.”

별다른 표식 없이도 100미터 이상 거리에 있는 표적들의 거리를 1미터 미만 오차로 잡아낸다. 눈대중만 가지고 말이다. 아군과 적군의 거리를 파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사격 통제에서, 그녀의 이 능력이 얼마나 유용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보조 망루를 세 개 세운다면 어디가 좋을까?”

“네에, 여기, 여기, 여기가 어때요?”

“오, 딱 좋네.”

비슷한 일을 경험과 성실한 관측을 통해서 해내는 슈토르히의 수석 포술장 루드비히의 평가에 의하면···.

‘첼레스티나는 남의 시야를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라며 극찬했었다. 누군가가 저쪽에 서 있다면 뭐가 보일지를 머리로 알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굳이 여기저기 발로 안 돌아다녀도 각각의 거리나 구조 등을 금방 파악하는 것이다. 지도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런 것도 매우 잘한다.

...그런데 왜 길치냐, 라고 하면 나도,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슈토르히의 동료들도 알 수가 없다. 대체 왜 그런지. 익숙한 도시 안에서는 골목길까지도 구석구석 잘 알아서 누구보다도 지름길을 잘 이용하는 그녀가, 성문 밖에만 나오면 이렇게 작아만 지는가.

“헤헤헤헤.”

그녀가 내 소매를 잡는다. 처음 친해졌을 때부터 이랬다. 그녀 나름의 친애 표시인 모양이다.

“병사들이나 마을 사람들도 보고 있잖아. 너도 슈토르히의 선임 중대장인데 이러면 안 되지.”

“지금은 부관인데요···.”

“부관도 안 돼.”

“네에···.”

불만인지 말꼬리를 흐리면서도 소매를 놓는다. 나는 그녀가 그려준 방어 지도에 몇 자를 더 적어 넣는다. 최근 트랑카벨 병사들의 신임을 얻어 좀 더 복잡하고 독립적인 임무를 수행하러 간 모리츠 대신 첼레스티나가 내 부관 업무를 맡게 되었다. ‘길치가 부관을 한다’는 것에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믿는다. 길 찾는 거 빼고는 잘한다.

“잠깐 블랑독 지도 좀 꺼내줄래?”

“네에, 콘도티에레.”

우리는 옆의 나무 상자 위에 지도를 펼쳤다. 지도 위에 열 개 정도의 네모 표시가 그려져 있고, 별 표시는 세 개 그려져 있다. 나는 별 표시를 하나 더 그려 넣었다. 바로 여기, 아넥시 위치에.

“그럼 로데브 강 북쪽에는 모두 네 개의 요새가 있겠네.”

밑에 글을 적어 나간다.

타바브르 성

- 르 타바브르 가문의 요새

- 수비군 약 40

- 바위산 위에 위치, 공격하기 매우 어려워 보임

- 총 10정, 보존식 공급

아스쿠 성

- 주변 3개 소가문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요새

- 수비군 약 120

- 해안 벼랑 위에 있어서 난공불락

- 총 30정, 보존식 공급

포르망제 성

- 르 포르망제 남작 가문의 요새

- 수비군 약 200+, 민병 다수 지원 예상

- 평지에 있어 수비가 어려워 보임

- 총 30정, 보존식 공급

아넥시 성

- 정순파 주민들이 자치 중

- 수비군 민병 다수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500+’라고 썼다. 비록 전문 군인들은 아니지만, 실전을 한 번 겪어봤다는 것은 분명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아넥시 성

- 정순파 주민들이 자치 중

- 수비군 민병 다수(500+)

- 평지에 있으나 두 언덕 사이에 있어 방어 이점

- 총 100정, 보존식 공급

트랑카벨 가문의 이주 요청이나, 비무장 요청을 끝끝내 거부하고 요새화를 결심한 네 곳이다. 입지가 천혜의 요새인 타바브르나 아스쿠는 솔직히 버틸 만하다 보인다. 공격측도 별로 이득은 보기 어려울테고.

하지만 평지에 있는 포르망제나 아넥시는 걱정이 된다. 한참 요새화가 진행 중인 벨모제와 달리 성벽을 통째로 뜯어고치기도 힘들고, 요새 포병을 배치할 수도 없다. 적이 각오하면 언젠가 함락될 수밖에 없겠지.

“에헤헤헤, 멋있어요.”

“무슨 말이야?”

내가 지도를 보고 끙끙대는 모습을 보고 첼레스티나가 뜬금없는 말을 던진다.

“위험한 상황인데도, 힘내서 지키려 하는 정순파 사람들도 멋있고, 그 사람들도 지켜보려 하는 콘도티에레도 멋있어요.”

“음···.”

“서로가 서로를 지키려 하는 거잖아요? 분명 잘 될 거예요.”

“...전쟁은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려 하면 안 돼.”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는 콘도티에레도 멋있어요.”

“이 녀석!”

너무 솔직한 건 맞을 사유가 된다! 첼레스티나의 바닥 모르게 솔직한 소녀 감성은 뭐라 해야 하나··· 좀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다고.

주디칼리 남부 출신인 첼레스티나는 전형적인 라틴 미녀의 상이다. 건강한 갈색 피부에 풍성한 머리카락, 육감적인 입술.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쭉길쭉해서 전투복을 입고 있으면 영락없는 쿨뷰티 모델이지만··· 이 소녀 감성 어쩔 거야 정말.

“그치만, 주전장은 로데브 강의 북쪽이잖아요?”

“그렇지.”

“직접 도시들에 닿지는 못해도, 콘도티에레 께서 이끄는 군대가 적 주력과 대치하기만 해도 쉽게 함락당하지는 않겠··· 죠?”

“그래.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지.”

로데브 강은 적이 절대로 넘으면 안 되는 방어선이다. 이를 위해서 전장을 로데브 강 북쪽에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사항이긴 하다.

적에게 선택을 강요해야지. 트랑카벨의 야전군을 상대할 것인가, 점점이 흩어진 블랑독의 요새들을 공격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강을 건너 트랑카벨의 핵심부로 진격할 것인가. 그렇게 한꺼번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하려다 보면 병력이 분산되고, 거기에 우리가 이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숨을 쉬며 지도를 다시 말아 첼레스티나에게 넘겨주고,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지난 전투에서 보았던, 하도 오랜 세월 닳고 닳아서 계단이라기보다는 울퉁불퉁한 비탈처럼 된 돌계단 위로 나무로 된 임시 계단이 놓여 있다. 정말로 방어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성벽 위에 서자, 이제 막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블랑독의 초원이 보인다. 평야를 쉴 새 없이, 막히는 것 없이 달려온 초겨울의 바람은 차갑기는 하지만 아직 뼈에 스며드는 정도는 아니다.

아넥시 주변에는 크고 작은 천막들이 수 백 개나 쳐져 있었다. 일부는 제31 연대의 기병들이 만든 것이고,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을 위한 천막도 있다. 아예 교통의 요지인 아넥시를 피난민들 중간 집합소로 만들어야겠네···.

“일단 여기서 하루 쉬고, 피난민들을 재조직해서 남쪽으로 출발하자. 수송용 마차도 최대한 활용해야지.”

“네에, 콘도티에레.”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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