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트랑카벨의 방문자들
일단 살로슈 22년산 빈티지를··· 이 아니라 가티 드 리네콩테라는 이름의 소년 종자를 방으로 들이고 후회했다.
방이 엄청 더러웠기 때문이다. 최근에 방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잠자는 것 외에 거의 없었기 때문에, 벗어놓은 옷가지와 자기 전에 잠깐 살펴본 서류들이 사방에 쌓여 있다. 이런 생활 특징이 방구석에 뭘 들고 오면 밖으로 도로 나가는 일은 잘 없어서 지저분하게 쌓이기만 한다.
물론 저택의 하녀가 청소해주지만, 서류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서류가 차지하는 영역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청소하지 못하는 영역도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 내가 도저히 못 견디게 되면 날 잡아서 청소하게 되는데··· 지금이 딱 그 직전 타이밍이다.
“...방이 좀 더럽군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에티엘 공작님이 저에게는 무슨 일로?”
“한번 뵙고 싶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시간이나 장소는 편하신 대로 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어···.”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어쩐다··· 아롱드 영감님처럼 생각해보기로 했다. ...포도주에 눈이 가서 실패했다. 시발! 내가 이렇게 유혹에 약한 인간이었나!
그런데 포도주에 눈이 가니, 갑자기 부쩍 의심이 들었다. 왜 나에게 이런 좋은 술을 주려고 했을까? 혹시 포도주에 뭔가를 탄 것은 아닐까? 물론 실제로 무색무취의 독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냄새를 잘 맡아보면 알 수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살로슈 포도주를 많이 마셔봤어야 알지, 원래 냄샌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독에 대처하는 법을 머릿속으로 되짚어 본다. 우선 당연히 봉인이 뜯긴 흔적이 있는지 잘 살피고, 향기를 맡아보고(원래 향기를 모르니 실패), 팔꿈치 안쪽, 부드러운 피부에 몇 방울 발라보고, 혀끝을 살짝 대고 바로 헹궈보고··· 아니 이런 짓을 해서라도 굳이 포도주를 마셔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블랑독 산 싸구려 포도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는데 왜 이런 시련이.
“에트 경, 혹시 저희 리네콩테라는 가문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망상 중인 나에게 갑자기 가티가 묻는다. 이건 무슨 소리래. 뭐 유명한 가문이라도 되나? 머릿속을 뒤져보지만,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으음, 안타깝지만 나는 귀족 사회에 관심이 거의 전혀 없다. 내가 직접 연관되었던 가문들이나 서로의 관계도 잘 모르는데 뭐. 다행히 모리츠와 같은 똑똑한 친구들이 ‘문장관’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에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 왜, 귀족들도 스스로는 기억 잘 못 해서 일부러 문장관이라는 전문가들을 데리고 있는 거잖아?
“죄송합니다. 기억에 없네요. 제가 멀리 그룬발트 출신에 평생 용병 생활이나 하다 보니···.”
가티의 상전인 에티엘에게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는 약간 빈정대는 의도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가티의 소년다운 앳된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엘랑드르 대공으로 더 유명하니까요. 리네콩테 가문은 엘랑드르를 통치하는 대공가입니다.”
뭐 시발? 뭔 공? 대애공? 아니, 아아니··· 엘랑키아 공작 각하도 이번에 생전 처음 봤는데, 그 종자는 한술 더 떠서 대공 집안사람이야? 허, 참. 공작, 그것도 왕족의 종자니까 보통 가문 사람은 아닐 거로 생각했는데 소국의 왕이나 다름없는 대공 가문의 사람이라.
엘랑드르는 엘랑키아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다른 나라이다. 북쪽 변경에 있는 소국으로, 대공이 통치하는 국가이고 엘랑키아 국왕을 상위 군주로 섬기고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랑키아의 일부인 것은 아니고.
...복잡하지만 봉건제도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더러운 제도이다. 트랑카벨 가문의 상위 군주가 드 레뮤즈 가문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신하 관계이기는 커녕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아무튼 엘랑드르 대공국이 최근에는 북방전쟁에도 조력하는 등, 잠시 사이가 좋아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국가 관계라는 것이 뭐 뻔하지 말이다.
“그럼··· 차기 대공이십니까?”
“하하하, 아닙니다, 설마요. 다음 대공은 형님이 되시겠죠. 저는 현 대공이신 아버님의 셋째 아들입니다.”
사실 예상은 했다. 다음 대공이면 이렇게 이웃 나라에 와서 종자 살이나 하지는 않았겠지. 물론 기사의 종자는 절대로 하찮은 직업이나 신분이 아니다. 그냥 심부름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에티엘 공작처럼 신분이 높고 전도가 유망한 인물의 종자라면 그 자체로 특권 계급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엘랑드르처럼 애매한 관계의 이웃 나라 통치 가문의 자식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완전한 신하국도, 그렇다고 독립국도 아닌 정말로 애매한 관계가 엘랑키아 왕국과 엘랑드르 대공국 사이에는 존재한다. 원래 엘랑드르 대공가문, 이름은 지금 알았지만 리네콩테 가문은 엘랑키아 왕실의 방계라고 한다. 그런데 역사가 꼬이고 꼬여서 지금 같은 애매한 관계가 되어버렸다지.
아무튼 이 소년은··· 아마도 가문의 ‘덜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전도유망한 왕족의 곁에서 기사로서의 행동과 지식을 배우며 정진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볼모라는 것이 현실이겠지.
아마도 이 소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은 엘랑드르 대공국의 국익을 위해서, 가문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잘라낼 수도 있는 손가락이라는 것을.
“제가 갑자기 가문을 밝혀서 어이가 없으시겠지요?”
“음··· 어떤 의도인지 궁금하긴 합니다.”
“저도 트랑카벨 가문이나 에트 경 만큼 엘랑키아 왕가를 싫어한다고 알려 드리고 싶어서요.”
“푸훗!”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터졌다···. 정말이다. 이 뼈가 있는 농담을 듣고서야 알았다. 이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실과 비슷한 또래 소년의 검푸른 눈 속에는 무언가가 있다. 이글거리는 분노. 그것을 완벽하게 숨기는 이 화사한 미소는 거듭거듭 훈련한 결과이겠지.
“그러니 이 명품, 살로슈 포도주에도 독 따위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크레이 공작가의 술 창고에서 챙겨왔거든요.”
“에이, 딱히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거짓말이다. 엄청나게 의심했다.
“그리고 제가 엘랑키아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에티엘 공작님은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저는 진심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네, 좋은 분 같기는 하던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 아롱드 영감님도 막판에 꽤 좋아하게 된 것 같았고. 갑자기 결혼 동맹인지 뭔지 폭탄선언을 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지만.
“그래서 한 번 에트 경 께서 만나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결정하시는 것은 에트 경께서 하실 일입니다만···.”
“으음···.”
나는 잠시 망설였다. 오히려 조금 전까지는 살로슈 포도주에 정신이 팔려서 내가 정상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나 의심이 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 그 이유가, 내 나이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소년 종자의 말에 의표를 찔려서라는 쪽팔린 이유이기는 하지만···.
사실 나도 에티엘 드 크레이 공작에 대해서 궁금하기는 하다. 만약에 그가 정말로 국왕이 파견하는 이단 토벌군의 지휘관이라면 알아둬서 나쁜 것 없기는 하고. 전투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대화나 협상 따위와 다름없다. 병사를 내보내 무기를 부딪치다 보면, 그 너머의 상대방이 보인다. 그렇다면 상대를 잘 아는 쪽이 유리하지.
그럼 반대로 접근을 해보자. 내가 가서 포도주에 해롱대다가 할말 못 할말 다 털어놓았을 때 트랑카벨에 심각하게 문제가 생길만한 정보가 있나?
트랑카벨 영지군의 규모? 살짝 고급 정보 같기는 하지만, 간첩 몇 풀어서 훈련장이나 병영 오가는 병사 숫자 며칠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정보기는 하다.
신무기 개발 계획? 뭐가 먼저 만들어질지 나도 잘 모르기는 하는데··· 애초에 군수 생산 지구가 딱히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은 아니라서···. 기술자들 업장은 출입 금지이긴 하지만 이건 트랑카벨 가문의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자 길드 특유의 비밀엄수 같은 거지. 오히려 우리가 가진 화력 규모에 대해서는 광고를 하고 싶은 판이라.
블랑독 방어 계획? 로데브 강을 방어선으로 한다는 것 말고는 정해진 게 없다. 우리 쪽도 적 규모나 이런 정보를 알아야 더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이 몸이 사실 트랑카벨 영지군의 수장이니라! 여울목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간 귀족 기사나 그 가신들이 300명이 넘는데 아무한테나 물어보면 알려주겠네.
으흐음, 뭔가 남들 모르는데 나만 알고 있는 사실 없나? 갑자기 군사기밀이 이렇게 없어도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는 한다.
뭐··· 내가 말실수를 해서 손해가 난다고 해 봤자, 나라는 개인의 인상비평이 최악이 되는 정도가 아닐까. 이 정도면 조금 조심하면서 만나도 될 것 같은데···.
“좋습니다. 한 번 뵙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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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소 허당 끼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물론 나도 내 위치에 대해 최소한의 자각은 가지고 있다. 마침 오랫동안 알고 지낸 슈토르히 고참병들도 카르카냑에 잔뜩 있고, 개인 경호 정도야 알아서 챙기고 있다고.
‘에티엘이라는 공작을 믿더라도, 그 수하들도 믿으시면 곤란합니다. 가끔 과잉 충성을 하려 드는 인간들이 있거든요. 아니면 외부 세력 누군가의 돈을 받아먹었다거나요.’
모리츠 역시 걱정했기 때문에, 내가 미리 약속 장소로 지정한 돼지의 투구 식당에는 신뢰하는 슈토르히 멤버들이 여럿 배치되었다. 1층에서는 고참병 여럿이 간소하게 회식을 할 터이고, 2층 옆방에서는 모리츠와 크레시미르가 아침부터 술판을 벌일 예정이다. 으음··· 술판을 실제로 벌이는 것은 아니고 위장이다 물론. 아마도.
그나저나 돼지의 투구라··· 리니 능선 전투 직후에 카르카냑에 와서 아쥬흐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던 때가 벌써 한참 전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인데. 그러고 보니 그때도 살로슈 명품 포도주를 마셨었지.
어?
혹시 그 살로슈가 아쥬흐가 에티엘에게 선물 받은 술이었나?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으면서, 정말로 집무실에 쌓아둬야 할 정도로 돈이 많으면서도 딱히 먹고 마시는 데에는 사치를 안 부리는 아쥬흐인데. 갑자기 명품 포도주를 꺼내더라 했더니··· 이런 거였나.
그러고 보니 어제 면담 자리에서 무기 선물 어쩌고 하더니··· 아넥시 전투 때 아쥬흐가 들고 왔던 그 상아와 은으로 만든 총 이야기였나. 분명 선물 받은 무기라고 했었지···.
으음··· 그랬구나. 뭔가 복잡한 기분이 드네.
“에트 경,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지금 왔는걸요.”
에티엘 드 크레이가 상쾌한 미소와 함께 도착했다. 이번에는 내가 기다리는 입장이군. 나름 정장이랍시고, 갑옷을 제외한 전투복 복장을 다 챙겨입고 나온 나와 다르게, 그는 깔끔하고 멋진 평상복 차림이다.
“항상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에트 경.”
“저를 아십니까?”
“그럼요, 과거에 직접 뵌 적도 있는데요. 역시 기억하지 못하시는군요.”
“어어···.”
고백한다. 나는 사람 얼굴 기억을 잘 못 한다.
그래도 엘랑키아의 공작인데··· 소개받았으면 조금이라도 기억이 날 것 같기는 한데··· 언제지?
“혹시 주디칼리에서... 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전장에서 만났다는 말인가. 아군인가 적군인가. 공작 양반이 설마 용병으로 주디칼리 전쟁판에서 굴렀을 것 같지는 않은데.
“델로나 대학.”
“어?”
에티엘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뭐 신나기라도 하는 거냐!
“저는 공작위를 물려받기 전에 델로나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별로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지만요.”
“그럼··· 아쥬흐 양과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니셨군요.”
“그렇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학생 중 하나였던 저에 비해서, 항상 빛나는 성적을 거두던 아쥬흐 양은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흐으으음.”
델로나 대학 시절의 아쥬흐는 지금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잘 웃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공부는 엄청 잘했다고 알고··· 처음 만났을 때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나를 평가하듯 훑어보던 그녀의 모습이 기억난다.
...뭐 그래도 그때도 속 깊고 따뜻한 아이였지. 가령, 거리에서 강아지와 함께 구걸하던 거지를 보았을 때라든가···.
“저는 형님 폐하께서 대주시는 학비를 고마운 줄도 모르고 시간이나 낭비하는 얼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깨달은 때가 있습니다.”
“...언제인가요?”
“검술 대회에서 아쥬흐 양에게 완패했을 때입니다.”
“아···.”
기억난다. 아쥬흐가 나에게 취미로 배운 검술로 처음 참여한 대회에서 3등인가를 했었지. 점수제의 규칙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참가자의 80퍼센트가 남자인 만만치 않은 대회였다.
참고로 정작 나는 검술이 별로 뛰어난 편이 아닌데, 왜 나한테 배운 그녀가 3등이나 할 수 있었는지는 미스터리이다.
“저는 공부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검술만은 그럭저럭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얼음 공주’에게 호되게 당한 사건이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얼음 공주라··· 아쥬흐가 그렇게 불렸었구나. 하긴 그때, 상대를 평가하듯 지그시 바라보는 아쥬흐의 눈이 얼어붙은 보석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이름처럼 파란 눈동자는 그대로인데. 요새는 파란 가을하늘 정도가 연상되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때 아쥬흐 양을 좋아하게 되었고,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아, 물론 대학도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아쥬흐 양이 1년 먼저 졸업하긴 했지만 말이죠.”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자기보다 늦게 들어와서 일찍 졸업하는 짝사랑 상대라니··· 그러게 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래서 그런 얼음 공주를 키워 내신 에트 경이 과연 어떤 분이 신가 궁금했었습니다.”
응? 누가 누굴 키워? 나는 그냥 고용 보디가드 같은 거였는데··· 슬슬 수전증이 와서 용병 때려치우고 방황하던 시기였다고. 게다가 나도 당시 아쥬흐는 좀 무서웠다는 말이지. 지금 맥을 못 추는 이유도 당시에 이미 강자라는 인식이 각인되어서 그럴지도 몰라.
“대학 축제 때 오셔서 준비를 도와주셨던 것도 기억납니다. 다들 일을 해본 적 없는 귀족 도련님 아가씨들이라 어쩔 줄 모르는데, 솜씨 있게 연극 무대며, 가설 상점이며 만들어주셨었지요?”
“아··· 그거 기억나긴 하는데···.”
헛웃음이 나오네. 아쥬흐가 공부해야 해서 시간이 아까운데, 자기만 빠져서 주변에 폐를 끼치기는 싫으니 나더라 도와주라 했던 그거잖아. 학생들 입장에서는 웬 인부 아저씨가 나타나서 뚝딱뚝딱 일을 도와주니 좋기야 했겠지만.
“그리고 최근에 친우인 카렐 경을 만나면서, 에트 경이 사실 대단한 경력의 용병 출신이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카렐 경··· 설마 카렐 드 상포리앙 말씀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그 친구가 기뻐하겠네요.”
뭐 그야··· 사람 심장 멈췄다가 도로 뛰게 하는 경험이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니까··· 리니 능선 전투 이후에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네.
“식사 나왔습니다.”
우리는 꽤 정겨운 분위기에서 식사했다. 전에 아쥬흐와도 함께 먹었던 그룬발트식 족발도 맛있었고, 술은 에티엘이 준비한 살로슈 포도주였으니까,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지.
예상대로 그는 솔직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으음, 어째 만나는 귀족들 대부분이 인간적으로 꽤 괜찮은데, 나는 사실 귀족에 대해서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아쥬흐 소개해달라, 설득해달라 하면서 징징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기는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것도 호감 가는 부분이었다.
함께 술과 고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내년의 유혈 사태를 막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