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4화 (44/556)

9-6. 슈토르히 용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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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 훈련 준비가 끝났습니다, 콘도티에레!”

“수고했어.”

나는 그 자리에서 뒤로 돌아, 트랑카벨 영지군의 총지휘권을 가진 아실 트랑카벨에게 보고했다.

“시범 훈련, 시작하겠습니다, 자작님.”

“네, 시작해주세요.”

아실의 명령이 떨어지자, 슈토르히 용병단의 선임 중대장이자 포술장인 루드비히 아린 폰 자이트리츠가 빠른 걸음으로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검은 곱슬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현재 장소는 트랑카벨의 동쪽 성벽 너머. 바로 근처에는 작은 관측 망루를 만들어 트랑카벨 가문의 핵심 인사들과 연대장들이 훈련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또 성벽 위에는 마찬가지로 참관을 허락받은 병사들이 빼곡하게 보고 있었다. 각 부대의 중대장들, 거기에 중대마다 대표로 병사 몇 명씩 뽑아서 왔다 보니 숫자가 상당했다.

“진형! 진형! 선형 대형!”

루드비히의 목소리가 조용한 진형 가운데 울려 퍼지자, 경쾌한 북소리와 함께 진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대장들과 기수가 달려가 방향과 모서리를 잡고, 그 사이를 창병들이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당연히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동이다. 하지만 슈토르히는 배는 빠르다.

순식간에 창병들이 바둑판 모양으로 배치되고, 총병들이 그 사이를 채우는 진형이 완성되었다.

“진형! 진형! 사각 대형!”

이번에도 역시 기수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더니 총병들이 진형 바깥으로 빠지고, 창병들이 빈 공간을 채워가기 시작한다. 중앙을 비워 놓은 사각 대형은 선형 대형보다 훨씬 형성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슈토르히 연대는 이를 누구보다도 빠르고 확실하게 실행하기 위해서 훈련을 한다. 내가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남은 고참병들은 여전히 잊지 않은 모양이다.

진형의 외곽을 지키는 고참 창병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전체적인 진형의 형태를 잡는 역할도 할 뿐 더러, 실전에서는 가장 위험한 위치에서 방진을 지탱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연대 전체에서 가장 높은 봉급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보병 연대장들은 난간에 바짝 붙어서 집중한다. 직접 진형 변경 훈련을 몇 번이나 실행했던 연대장들에게 물 흐르듯 자유롭게 진형과 방향을 바꾸는 슈토르히 연대의 모습은 문화 충격에 가까울 것이다.

으으음··· 솔직히 내가 지휘하던 시절보다 더 빨라진 것 같아서 나도 놀랐다. 뭐야 이놈들, 이걸 이렇게까지 빨리할 필요가 있나? 이게 무슨 차력쇼야?

“그냥 진형 변경 훈련은 지루하시죠? 이제 사격 시범입니다!”

망루에서 마치 사회자처럼 해설을 하는 이는 선임 중대장 크레시미르 두브람이다. 이 녀석이 담당한 중대는 조금 특이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이번 시범 연습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무슨 흥행 꾼처럼 참관자들의 시선을 이리저리 몰고 있다. 타고났어 아주.

사각 대형을 갖춘 연대가 일순간 멈춘다.

“발사!”

타타타타탕!

네 모서리 쪽에 배치된 총병들이 일제히 총을 발사한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사방으로 하얀 연기가 치솟는 장면은 장관이다. 보통 사면 모든 방향을 향해 총을 쏘는 경우는 없을 테니 비효율적인 장면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이는 총이 비었음을 알리는 퍼포먼스였다.

“이제 나옵니다! 슈토르히 연대의 장기!”

크레시미르의 사회도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참관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킨다. 슈토르히 연대의 총병들이 엄청난 속도로 재장전한다. 물론 실사격용에 비해 화약을 일부만 넘는 훈련 사격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총알 넣는 시늉, 꽂을대로 장전하는 단계도 잊지 않는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 친구들은 실탄 사격도 지금 시범 훈련보다 전혀 느리지 않을 것이다.

“전 화기!”

크레시미르가 오른팔을 허공을 향해 뻗었다가···.

“일제에~ 사격!”

정면을 향해 뻗으며 연극배우처럼 외친다.

“발사!”

타타타타타탕!

두 열로 나뉜 총병들의 한쪽 측면에서 총성이 쏟아져 나온다. 좁은 공간에 뿜어져 나온 두 열의 하얀 연기가 뻑뻑하게 쌓이고 또 쌓여서 하얀 연기의 벽을 만들어 낸다.

“2열 발사!”

타타타타타탕!

거기서 끝이 아니다. 교대한 다음 대열이 비슷한 양의 화력을 다시 같은 방향으로 뿜어내 하얀 연기를 추가한다.

콰콰쾅!

갑작스러운 굉음. 멀리서 들리는 그다지 크지 않은 총소리에 방심했던 참석자 일부가 기겁한다. 어느새, 갈라진 창병 대열을 뚫고 머리를 내민 대포가 화염을 뿜어내고 있었다.

“전진!”

“하아! 하아! 하아!”

바로 다음 순간, 방금까지 대포가 고개를 내밀었던 공간을 채운 창병들이 힘찬 구호와 함께 한 걸음씩 창을 내밀고 전진하기 시작한다. 하얀 연기를 뚫고, 긴 창끝이 모습을 드러낸다.

불과 3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연대가 가진 모든 화기를 한 방향으로 쏟아부은 직후, 창병들이 전진해 파이크 푸쉬 공격을 실행한다. 만약 그 방향에 적이 있었다면 연이은 공격에 두들겨 맞아 정신을 못 차리고 전열이 붕괴하였을 것이다. 참관자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모두 시범 훈련으로 고생한 슈토르히 연대를 위해 박수!”

크레시미르가 앞장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점차 열성적인 박수 소리가 망루 위에 퍼져나간다. 반대편의 성벽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열화와 같은 환호! 완벽하게 시범을 마친 슈토르히 연대 병사들이 모자를 벗어 흔들면서 환호에 답한다.

“이것이야말로 슈토르히 연대가 가진 진정한 힘입니다! 전부 에트 연대장, 아니 콘도티에레께서 고안하신··· 아니 뭡니까 콘도티에레! 본인이 놀라면 어떡해요?”

아니 시발 뭐야 이거 개쩌네! 지린다 진짜! 내 입도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 모른다.

정말 훌륭하네, 슈토르히 용병단, 뭐냐 이놈들 밥 먹고 훈련만 했냐? 진짜 쩔어! 쩐다고! 영상으로 찍어서 두고두고 보고 싶을 정도야!

“...내가 있던 시절보다 더 나은 것 같은데 솔직히.”

“후후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좋게 보셨다니 우리 용병단도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진짜 쩔어 너희들···.”

흠흠, 나도 솔직히 너무 놀라서 잠시 표정 관리에 실패했지만, 이쯤에서 계획된 멘트를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아주 다행히도 나를 제외한 참관자들은 더더욱 놀란 것 같다. 그럼 시발 놀라지, 이런 걸 어디 가서 또 보겠어. 엘랑키아 전체를 뒤져도 이런 묘기를 할 수 있는 연대는 없을걸?

“정말 훌륭합니다, 콘도티에레!”

“아, 감사합니다, 아실 자작님.”

“역시 슈토르히 연대의 전설은 정말이었군요!”

“아니··· 그건 약간 과장되기는 했습니다만··· 하하하, 그래도 멋진 병사들이죠.”

소년 귀족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모리츠가 공들여서 했던 프로파간다의 일부는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 같네.

“총과 대포, 이렇게 쓰는 것이었군! 일부러 기다렸다가 볼 가치가 있었어!”

“으어어어···.”

톨마르 경이 내 어깨를 흔든다. 깊은 흥분과 감정이 실렸는지, 평소보다 내 몸이 훨씬 심하게 흔들린다. 아쥬흐 역시도 드물게도 진심으로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한참이나 가리고 있네. 다른 연대장들은 말할 것도 없지! 특히 마브리엘은 피가 끓는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으흠, 흠. 핵심은 화력의 집중입니다.”

무사히 시범을 마치고 병영으로 돌아가는 슈토르히 연대를 보며, 내가 설명을 시작했다.

“트랑카벨 영지군의 표준 보병 연대는 총병의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창병들이 용감하고 우수하기에, 보다 적은 수로도 대열 유지가 가능하며, 그렇다면 한 발이라도 더 많은 화력을 투사하는 편이 유리하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방금 시범을 보인 슈토르히 연대와 비교하면 어떤가?”

“사실, 과거에 나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던 슈토르히 연대의 편성 경험을 기준으로 해서, 트랑카벨 영지군 보병 연대를 구성했습니다.”

“오오, 정말인가!”

순식간에 웅성웅성해진다. 보병 연대장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거, 너무 긴장할 것 같은데? 같은 장비로 왜 똑같이 못 하냐는 말이 나오면 안 되잖아.

“물론 슈토르히처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건 굳이 말하면 서커스에 가깝지요. 대단하기는 하지만 모든 연대가 저런 시범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와하하하, 그렇구만!”

조금은 분위기가 누그러진 것 같다.

“다만 연대가 가진 모든 화기를 짧은 시간에 한 방향으로 투사하는 훈련은 모든 연대가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말투를 진지하게 바꾸었다. 이건 중요한 부분이니까, 아무리 진지하게 해도 부족하지.

“약 500명의 총병이 사격한다고 해도, 그 명중률은 20퍼센트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아니, 20퍼센트가 명중해 100명 정도의 적을 쓰러뜨리면 대단히 성공적인 거죠.”

실전에서는 이쪽도 사격을 당해 희생자고 나오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불발도 왕왕 나오므로 효율이 훨씬 떨어진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거기에 포병이 합세한다고 해도 150명을 쓰러뜨리기도 어렵습니다. 만약에, 이 피해가 연대 전체에 균등하게 나뉘어 발생하는 경우를 가정해봅니다. 그러면 약 1200명 규모 연대의 경우, 사상률은 약 12퍼센트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는 아닙니다.”

“으음, 그렇겠네요.”

아실이 열심히 손가락을 접었다 펴면서 계산해본다.

“하지만 그 150명을 2개 중대가 지키는 아주 좁은 지점에 집중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중대를 100명으로 계산하면··· 75퍼센트의 사상률이네요! 네 명 중 세 명!”

“정확하네요! 넷 중 셋이 쓰러지면 대형을 유지할 수 있는 부대는 없습니다. 설령, 어떻게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막을 수가 없어집니다.”

“콘도티에레, 혹시 아넥시에서 있었던 총기병들의 카라콜 전술과 같은 맥락입니까?”

“파스칼 경, 그것도 맞습니다. 다만, 카라콜의 경우는 대단히 제한된 경우만 사용할 수 있는 화력 집중 전술이지만 보병 연대의 화력 집중은 측면의 안전만 보장되면 보다 다양한 경우에 활용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으으음, 그렇군요.”

모두가 깊은 관심을 보인다. 이거 성공적인 시범인걸.

“일단 화력을 집중해 대열에 구멍을 뚫으면, 그 방향으로 창병이 전진해 밀어붙이든, 기병을 돌입시켜 대열을 돌파하든 상대에게 큰 부담을 안길 수 있습니다.”

파스칼의 말대로, 아넥시 전투에서 우리 총기병들은 카라콜을 활용한 집중 사격으로 적 창병 방진의 한쪽 면을 완전히 갈아 버렸었다. 그 내부로 기병창과 중갑으로 무장한 기병대가 돌격해 들어갔고, 적 창병들은 거의 저항도 못 해보고 무자비하게 전멸당했다.

여러 개의 보병 연대가 충돌하는 대규모 야전에서, 이런 식으로 연대 하나에 빵꾸가 나면 그거 때우는데 예비대가 소모된다. 이게 반복되면 적의 선택지는 갈수록 줄어가고, 아주 천천히 아군이 이득이 누적되어 승리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적의 화력에 의해 아군 대열에 구멍이 생기면 아군의 선택지가 줄어 가는 것이고.

“화력 집중, 일제 사격은 트랑카벨 영지군의 모든 연대가 익혀야 합니다. 이번 가을과 겨울 동안, 각 연대장 께서는 병사들을 잘 살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콘도티에레!”

연대장들의 대답은 시원시원하다.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병사들은 분명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사격은 하는 것 보다, 참는 게 어려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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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 카르카냑 연대의 총병 얀 고티에는 혼이 나간 것 같았다. 중대 대표로 뽑혀 무슨 용병대의 시범 훈련이라는 것을 참관하러 올 때만 해도 이런 광경을 볼 줄은 몰랐다.

이게 총병의 사격?

그럼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은···.

자기 경험과 지식, 그리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의 괴리에 정신줄을 놓을 지경이었다.

“와 시발··· 저게 뭐냐···.”

“우리가 저 앞에 있었으면 지금쯤 송장이 됐겠지?”

“뭘 해도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드네.”

너무도 압도적인 격차에 병사들이 질려 있었다. 마치 나름 착실하게 연습을 해왔고, 고만고만한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괜찮은 성과를 거두었던 취미인이 갑자기 프로의 실력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을 때와 비슷한 광경이리라.

트랑카벨의 영지군은 절대 약하지 않다. 특히 얀 고티에처럼, 리니 능선 전투에서부터 종군했던 베테랑들의 실력은 절대 나쁘지 않았다. 그저 비교 대상의 수준이 너무 높았을 뿐이다.

“중대장님, 우리 어쩌죠···.”

얀 고티에는 옆에서 함께 참관했던 중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난 여울목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중대장은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 역시 충격이 컸는지 병영으로 돌아가는 슈토르히 연대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흐으, 뭘 어쩌냐, 우리도 저렇게 하면 되는 거지!”

“우, 우리가요?”

얀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중대장은 호기롭게 말했다. 그의 중대는 여울목의 전투 내내, 트랑카벨 군의 왼쪽 끝 석조 건물을 지켰었다. 당연히 방어의 핵심부인 이 요새를 적은 끊임없이 공격해왔고, 블랑독 의용군들의 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 전투 내내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중대원의 셋 중 하나가 죽거나 다치는 힘든 상황에서도 용감히 싸웠던 중대장은 용감한 지휘의 보상으로 트랑카벨 쌍엽장을 받았다. 그의 옷깃에서 빛나는, 두 개의 올리브 잎을 형상화한 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너희들 그거 아냐?”

“무엇 말입니까?”

“저 용병대는 우리 콘도티에레께서 창설하신 부대다!”

“정말입니까!”

“그래! 그룬발트에 계실 때 만드셨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 모습이 도저히···.”

“야 임마! 쟤들은 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짱짱하게 줄 맞추면서 태어났겠냐! 우리처럼 쫄따구 신병이었던 때가 있었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중대장의 말은, 마치 자기 자신을 설득하려는 것 같았다.

“아마 트랑카벨 가문의 높은 분들이나, 우리에게까지 저 시범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도 저렇게 만들 생각이시니까 그랬겠지! 묘기 대행진 보여주려고 하신 것은 아닐 테니까!”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몰랐으면 몰라도, 봤으니까 우리도 저걸 목표로 해야지! 어쩌겠어!”

“맞습니다!”

아직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연하고 작지만 분명하게,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신감이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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