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슈토르히 용병단
나는 종이를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프린터가 있으면 죽 돌리면 좋겠지만 그런 문명의 이기는 없으니 칠판에 간략하게 단대호와 병력 숫자를 적는다.
“먼저 영지군의 기간인 보병연대는 아래와 같습니다. 영지 정규군 8개 연대에 최근 편입된 용병 연대가 하나 추가됩니다.”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 - 1200
제11 벨모제 보병 연대 - 1200
제15 델레망드 보병 연대 - 1200
제16 몽세나 보병 연대 - 1200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 - 900
제19 델레망드 보병 연대 - 900
제 21 카르카냑 보병 연대 - 미편성
제 22 몽세나 보병 연대 - 미편성
슈토르히 연대 - 1000
“제10, 15, 16 연대는 얼마 전 여울목의 전투에서 다소 피해를 입어 결원이 있으나 곧 보충할 예정입니다. 신편 제18, 19연대 역시 장기적으로는 1200명에 해당하는 완편 연대로 증강할 예정입니다.”
내가 이야기를 하자, 특히 군 경험이 있는 톨마르와 파스칼이 많이 놀란 것 같다. 예상보다 훨씬 많기 때문일지도. 아실 역시 놀란 것 같지만 신난다는 듯한 느낌이 더 강했고. 아쥬흐는 한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아롱드는 손녀에게 들은 건지, 예상을 한 건지 담담한 표정이다.
참고로 신편 연대들에 병력이 부족한 이유는 아직 창병들이 충분한 훈련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총병 보다는 창병 훈련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병은 얼마나 됩니까?”
“네, 기병은 이와 같습니다.”
제7 카르카냑 기병 연대 - 1000
제8 벨모제 기병 연대 - 편성 중
여기까지 쓰고, 잠시 고민하다가 아래에 두 줄을 이어서 쓴다.
신규 정찰 연대 - 절반 규모 예정
마지막으로 동그라미를 하나치고 안에 ‘용병’을 적어 넣는다.
‘용병’ - 절반 규모 예정
“그럼 총··· 저 표대로라면 9600에 1000을 더하고, 약 3천이 추가 되니까··· 13600이 되는군요. 엄청난 대군이네요.”
“여기에 각 도시와 요새의 주둔군, 그리고 드 누아 가문을 포함한 동맹 영주들의 군대가 포함되니 총병력은 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파스칼은 잠시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내 대답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으음, 기사로서는 참으로 피가 끓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허나 늙은이로서는 말이야, 우리 트랑카벨 가문이 견딜 수 있나 하는 노파심을 버릴 수 없구먼! 으음, 가주님께는 외람된 말씀입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괜찮네 톨마르 경. 합당한 의문일세. 그 점에 대해서는 사령관인 에트 군, 콘도티에레가 잘 설명해 주겠지.”
톨마르의 걱정에, 아롱드가 나에게 설명을 넘긴다.
“트랑카벨 가문은 블랑독에 넓은 영토를 가진 전통적인 귀족 집안인 동시에, 무역과··· 금융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상업 도시적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양자의 강점만을 취했기에 이 정도의 병력은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간략하게 설명했다. 외국에서 벌어들이는 부를 통해서 무기를 충분히 구입할 수 있으며, 트랑카벨 가문에 우호적이고 충성스러운 영민들과, 협력적인 동맹 영주들의 영토 출신 블랑독 주민들 사이에서 모병을 통해 양질의 병력을 충원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전 대륙의 무기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군수 공업이 발전한 주디칼리와 다이렉트로 바다를 통해 무역할 수 있다는 점은 대단한 메리트이긴 하다. 만약 위치가 엘랑키아 서쪽이었다면··· 뭐 알디온이나 나우데사에서 사다 썼으려나. 그래도 지금처럼 쉽지는 않았겠지.
“물론 이 병력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단 토벌령이 거둬지고 엘랑키아 왕실과 조약을 맺는 단계까지 가면 축소해도 되겠지만···.”
나는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는 것이 옳은지 확신하기는 힘들었다.
“아마도 내년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전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전력은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기간은 약 2년을 예상합니다.”
“2년···.”
참석자들은 각자가 계산을 하는지 조용하다.
“2년이라면, 우리가 엘랑키아 왕실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파스칼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물론 엘랑키아를 무너뜨린다, 혹은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철저하게 블랑독을 지키는 방어전입니다. 그저, 저들에게 ‘블랑독을 먹으려면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간다’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극도로 효율충인 내 경우에서만 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효율을 무시하는 군주는 나라를 말아먹는다. 군주가 종교적인 열정에 휘말리거나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거나 하면 미친 짓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는 빨리 군주 목을 쳐서 나라를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
내가 알기로, 또 다른 여러 가지 판단 요소들을 따져보면 엘랑키아 국왕 다고베르 2세는 그렇게까지 꼴통은 아니다. 뭐 애초에 종교적 열정에 불타는 인간이었다면 법황이 성전 때리자마자 신나서 달려왔겠지. 북방 전쟁에서도 딱 이득 보고 빠지는 것을 보면, 트랑카벨의 힘을 보여주면 생각보다 조기 종전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지금 정치와 종교가 뒤섞인 더러운 상황이 아니라면,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딜을 해 볼 수 있겠지만··· 엘랑키아 국왕과 법황 양쪽과 척져 버린 이상 싸우지 않는 선택지는 보이지 않는다.
“콘도티에레 에트, 저 정찰 연대나 동그라미 친 용병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 좋은 질문입니다.”
아쥬흐가 묻는다. 어제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니까. 사실 고민하던 것을 어젯밤에 구체화해서 그렇지만.
“현재 트랑카벨 가문의 기병대는 중무장하여 근접전을 상정한 총기병과 화력 지원을 담당하는 용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야전에 특화된 결전형 편성입니다.”
대륙 어디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강병이지만, 야전에서 비슷한 규모의 적과 힘으로 맞서 싸울 때 최고의 효율을 보이는 병종이라는 말이지.
“하지만 블랑독 전체가 전장이 된다면, 빠르게 거점에서 거점으로 이동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적의 포위망을 뚫을 필요가 있고, 후방을 교란하는 역할도 필요하고요.”
전장 안에서는 대체로 화력이 속도보다 중요하지만, 전장 밖에서는 반대가 된다. 닿지도 않는 상대에게 화력을 투사할 수는 없으니까.
“정찰 연대는 보다 경무장의 기병들을 포함합니다. 몽세나의 산악마들을 활용하려 합니다. 파스칼 경은 알고 계시죠?”
“아, 그래서 군마 훈련을 시키라고 하셨던 것이군요. 네, 몽세나의 산악마 품종은 덩치가 작아서 중무장 기사를 태우기에는 좋지 않지만, 빠르고 체력이 좋아서 말씀하신 역할에 맞다 생각됩니다.”
중무장하고 권총 근거리 사격으로 화력을 쏟아 넣으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검을 뽑아 억지로 적진을 비집고 들어가는 총기병과는 다른 포지션의 병과이다. 하지만 이미 돌파당한 적에게 치명타를 가하거나, 도망치는 적을 몇십 킬로미터나 추적하면서 끝장내는 역할에는 적합하겠지.
“용병들도 비슷한 포지션의 경장 기병들을 고용해보려고 합니다. 사실은 이미 주디칼리 시절에 알고 지내던 용병단에 연락을 넣어 둔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좋네요. 설명 감사드려요, 콘도티에레 에트.”
아쥬흐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략적인 가이드는 설명해 드린 것 같네요. 다른 질문은 없으신가요?”
내 질문에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특별한 질문은 없는 것 같다.
“허허허, 듣기는 했지만 믿기지 않는군. 내년 봄이면 이 정도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게 된다는 거지?”
톨마르가 너털웃음과 함께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중에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게 되겠지만, 그때 까지는 이 계획은 여기 계신 분들만 알고 계셔주세요.”
“음, 병력을 드러내어 과시하지는 않을 계획인가?”
“딱히 숨기지는 않겠고 결국 소문이 나게 되겠지만, 정확한 숫자는 애매한 정도가 딱 좋습니다. 아마 적은 첫 개전까지 우리를 과소평가할 테니까요.”
“호오, 그렇군. 알겠네! 다른 분들도 모두 부탁하겠습니다!”
“물론이에요!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침묵하겠습니다.”
“저도요.”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가 트랑카벨 가문과 굳게 엮인 이들이거나, 모리츠처럼 나와 굳게 엮인 이들이니까, 당연히 의심은 하지 않는다.
아, 하나 말하지 않은 게 있네.
“참, 여기에는 중요한 병력 증강 요소가 있습니다.”
“허헛, 아직도 인가!”
“네, 포병의 존재입니다.”
“포병? 그 쇠로 된 관 말인가? 벨모제 요새에서 보기는 했네만. 분명 거대하니 위력도 강하겠지만 상상이 잘 가지는 않는군.”
톨마르는 아마 요새에 배치된 중포를 보았겠지.
“소형화된 가벼운 포입니다. 각 연대마다 4문에서 8문 정도를 배치할 생각입니다.”
“저는 여울목의 전투에서 적 기병을 멈춰 세우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을 모든 연대가 보유하게 되는가요? 그것참 든든하긴 하네요. 하지만 그만큼의 물량을 배치할 수 있습니까?”
“그건 드워프 장인 에오르크 레타일 씨가 만들어 줄 겁니다.”
갑자기 에오르크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뭐, 잘 만들어 주겠지. 그건 그렇고, 여기서 야전에서 대포의 위력을 본 것은 나와 모리츠를 제외하면 파스칼밖에 없구나.
“야전에서 포병 활용 방식은 조만간 슈토르히 연대의 시범 훈련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와! 정말인가요!”
모리츠의 프로파간다에 당해 슈토르히 연대에 무한한 환상을 가진 상태인 아실이 신이 나서 말한다.
“으음, 벨모제를 오래 비워두기가 걱정되는데, 지금 볼 수는 없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용병단의 포술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라서요.”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럼 기다리면서 마브리엘의 훈련이나 참관해 볼까.”
“그러시면 되겠네요.”
톨마르의 장남 마브리엘 마슈레는 파스칼과 함께 아넥시에서 성공적으로 기병을 이끌었던 중대장이었다. 지금은 새로 편성되는 제8 기병 연대의 연대장으로 부대 편성을 주도하고 있고.
뭔가 거기도 시끄러워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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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누아 백작 가문의 가주인 가스텔 드 누아는 방금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고 뭔지 모를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기쁘기도 하고, 한편 부담스럽기도 한 복잡한 기분.
최근 드 누아 가문은 트랑카벨 가문과 몇 차례 거래가 이어졌다. 트랑카벨은 드 누아 가문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건축용 목재를 구입했고, 인접한 라솔 왕국의 영토로부터 말과 초석을 수입하면서 괜찮은 수수료를 지불했다.
가스텔로서는 상당히 고마운 거래였다. 트랑카벨 입장에서야 해상로를 통해 구해도 될 물건들을 드 누아 가문을 통해 구해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최대한 신경을 썼다. 영지 내의 숲에서 가장 좋은 나무들을 벌목해 보내주었고, 라솔에서 수입한 말과 초석도 트랑카벨에서 요구한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점검해서 보냈다. 거래 상대인 트랑카벨 가문 역시 칼같이 깔끔한 대금 지급으로 보답했다.
백작령치고는 너무 작고 가난했던 드 누아 가문의 빠듯하던 금고는 조금은 충실해졌다.
이번에도 트랑카벨 가문은 대량의 가죽을 발주했다. 영토 대부분이 숲과 강과 인접한 땅이라, 사냥과 목축을 업으로 삼는 영민들이 많은 드 누아 백작령에게는 고마운 거래였다. 양질의 가죽에 한해 후한 가격을 매겨 주었기에, 영민들도 신이 나서 백작가에 가죽을 납품했다.
그런데 그 가죽을 실어가러 온 트랑카벨 가문의 수송 마차들이 뭔가 나무 상자를 잔뜩 싣고 온 것이다. 그들은 상자를 부려 놓더니, 가죽을 싣고 휑하고 가버렸다. 편지 한 장만 남기고서 말이다.
“후우우··· 이것 좀 열어주게.”
“네, 나으리.”
가스텔의 지시에 그가 데리고 있던 일꾼이 지렛대로 단단히 고정된 상자의 뚜껑을 딴다. 안에는 완충재 인지 지푸라기가 가득하다. 지푸라기를 치우자 기름종이로 싸인 길쭉한 물건이 나온다. 잠깐 망설이다가, 가스텔은 기름종이로 감싸인 물건을 집어 든다. 부피에 비해 제법 묵직한 물건. 적어도 나무로 된 물건은 아니다.
종이를 벗기자 흠집 하나 없는 속살이 드러난다. 철과 나무, 그리고 최신 과학기술이 접목된 무기.
트랑카벨 가문에서 보낸 물건은 바로 화승총이다.
“하하, 아롱드 영감··· 아니, 그 젊은 콘도티에레의 생각인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트랑카벨에서 보낸 선물은 완전한 신품의 화승총이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상자가 몇 개나 되는가?”
“하나 둘··· 마흔 개쯤 됩니다요, 나으리.”
“허허허허···.”
한 상자에 다섯 정이 들었다. 마흔 상자면 화승총이 200정이다. 현재 드 누아 가문의 영지군이 보유한 화승총의 수가 120정 정도인데, 그 두 배 가까운 숫자를 떠넘긴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처음에는 가죽값으로 강매하려는 것인가 했더니, 돈은 돈대로 주고 가버렸다.
‘항상 동맹인 저희 가문을 위해 힘써 주시는 귀 가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그동안의 거래에 감사드리며, 약소하지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내년 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 밑에는 트랑카벨 가문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가스텔은 그 행간에서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너희 돈 벌게 해 줬고, 무기도 줬다. 내년에 알아서 잘 챙겨서 나와라.’
조금 거칠게 표현했지만, 이것 외에는 없다.
“나으리, 총들을 성으로 옮길까요?”
“어어, 그래주게. 사람을 더 불러와야 하면 그렇게 하고.”
“이정도야 뭐 저희끼리 가능합니다요, 나으리.”
“알겠네. 힘써 주게나.”
인부들이 가죽을 실어 온 수레에 총이 든 상자를 싣기 시작했다. 가스텔은 어느새 이 총기에 사용할 화약을 구매하려면 얼마나 들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방심 못 할 인간들이구만. 그럽시다, 내년 봄에 봅시다.”
가스텔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편지를 대충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드 누아 가문에 대한 총기 선물은 가스텔의 예상과는 달리, 아쥬흐의 생각이었다.
트랑카벨 가문은 주디칼리로부터 대량의 총기를 사들여서, 약간 과장을 보태서 총기가 넘치고 있었다. 주문이 취소되거나 지연될 가능성도 고려해 중복으로 주문한 물건들도 모조리 도착했기 때문으로, 마침 최근 주디칼리에 큰 전쟁이 없어서 수요가 적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규 연대의 총기들을 신품으로 교체하고, 구형 총기를 지역 주둔군에 보급하는 와중에, 에트가 구형 총기를 동맹 가문들에 넘겨주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그리고 아쥬흐가 ‘그럴 거면 절대로 거절 못 하도록 통 크게 주는 편이 낫다’라고 말했고, 결국 신품 총기를 200정이나 실어 보낸 것이다.
대충 가스텔 드 누아에게, 아쥬흐의 의도는 제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덤으로 에트는 ‘돈 밖에 가진 게 없는 트랑카벨 처녀’의 씀씀이에 다시 한번 놀랐을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