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슈토르히 용병단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행군해 마침내 카르카냑에 도착했다. 여울목 전투의 승리자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그들이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목숨 걸고 싸워서 지켰던 도시에 입성한다. 제10 카르카냑, 제15 델레망드, 제16 몽세나 연대의 3개 보병 연대. 그리고 제7 카르카냑 기병 연대.
먼저 예상한 싸움은 아니었고 완벽한 준비도 아니었으나 훌륭하게 이겨 내었던 용사들이다.
지휘관으로서는...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를 강요했던 점은 반성해야 한다 생각한다. 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야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었던 점이 칭찬할 부분까지는 아니니까.
다음에는 더 완벽한 전장에서 싸우게 해주자고 다짐한다.
"모두 수고했어!”
“훌륭하다 훌륭해!”
“트랑카벨! 트랑카벨!”
주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환한다. 이전과 같은 대대적인 개선식은 없다. 앞으로 아실이 지휘하는, 정말로 큰 승리가 있을 때까지 공식적인 개선식은 보류하기로 정했으니까.
그래도 승리한 연대의 성내 퍼레이드는 빼놓을 수 없다. 이건 승리한 병사들이 조금 고되더라도 자긍심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고, 또 카르카냑과 그 주변 주민들을 위한 복지기도 했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시절, 형형색색의 멋진 복장에 평소에는 구경하기도 힘든 무기를 든 병사들이 발을 맞추어 시내를 행진하는데 그걸 어떻게 참아!
실제로 행군로가 잘 보이는 모서리의 주점이나 여관방들은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면 웃돈이 세 배 까지 붙어서 거래가 된다더라. 나라도 그럴 걸, 100번 퍼레이드 하면 100번 다 보러 간다!
“아실 트랑카벨!”
“아실 자작님! 여기 봐주세요!”
“아실 도련님이 또 이기셨다고?”
역시 아실은 인기가 좋다. 어린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절대적이다. 나는 가급적 승자로서의 스포트라이트는 아실에게 몰아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내 지휘 권한이야 트랑카벨 가문의 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내 개인의 명망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뭐 여기서 몸값 올려서 다른 가문에 취업하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유명해져서 좋은 일도 없잖아.
다만 이번에는 유독 아실이 고집을 부렸다. 정식 개선식도 아니고, 자신은 전투가 종료되는 순간까지 전쟁터에 도착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이번만은 트랑카벨 남매와 옆에서 나란히 말을 몰기로 했다. 으음, 이게 평소에 아실이 보는 광경이군. 이렇게 많은 여자아이들에게 뜨거운 시선을 받는다니! 아니 나도 근처에서 참여하지 않는다 뿐이지 개선식 꼬박꼬박 구경했었는데 애초에 여자가 이리 많은 줄도 몰랐어!
“성녀님이다! 완성자님이야!”
“아넥시의 성녀님이다!”
“아아, 성녀님!”
한편 아쥬흐는 열성적인 팬층, 문자 그대로 광신도에 가까운 사람들이 생겼다. 바로 아쥬흐를 성녀로 모시는 정순파 신도들이다.
만약에 법황청이 정순파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이단 토벌령을 내렸다면, 현재로서는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이 절박해지고 불안해지면 종교에 의존하게 되는 모양이다. 게다가··· 뭔가 아쥬흐가 현실에 존재하는 신의 사자와 같은 인식이니 자동으로 선교까지 되는 느낌이다. 역시 아넥시에서의 소문이 컸겠지. 아넥시 주민들 입장에서는 실제로 위기에 처했을 때, 아쥬흐가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나쁜 놈들을 처치하고 구원해준 것이니까.
물론 아쥬흐를 믿고 따른다고 반드시 정순파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민간 신앙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어디 평범한 시골 사람들이 교리의 정합성이나 교단의 인정 따위를 생각하면서 신앙을 가지겠나. 자연스럽게 믿게 되고 마음의 위안을 찾는 것이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 탄압하고 목숨까지 빼앗으려 드는 자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아쥬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하늘처럼 파란 눈과 마주치자 잠시 의아한 듯하더니, 이내 자애로운 미소를 보여준다. 으으음, 이렇게 예쁜데 추종자가 안 생기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
오늘 그녀는 의료인의 옷 같기도 하고 종교인의 옷 같기도 한, 순백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다. 폭이 넉넉하고 자락이 긴 원피스 형태의 옷은 너무 과하지 않게 그녀의 몸매를 드러내어 자애로움에 매력을 더한다는 느낌이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카르카냑에 와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수녀복이나, 아넥시로 함께 갔을 때의 사냥복을 생각하면 말이다. 혹시 그녀는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흐음··· 주디칼리에서 유학하던 때에도 좀 특이한 옷을 즐겨 입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옷걸이가 워낙 좋으니까 괴짜라는 느낌은 없는 게 신기하지.
...내가 그런 식으로 특이하게 입었으면 괴상한 복장으로 도망치는 찐따가 됐을 거야 아마.
“콘도티에레!”
“또 이겼다 콘도티에레!”
어어? 이거 뭐지?
“콘도티에레 잘 생겼다!”
“카르카냑 최고 상남자, 콘도티에레 에트!”
“기적의 상승장군 에트!”
뭐야 이 자식들!
“이야! 오늘은 콘도티에레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네요!”
“푸후훗, 그렇네요, 콘도티에레 에트.”
아실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하고, 아쥬흐는 또 터지려는 웃음보를 간신히 틀어막고 있는 표정이다. 아니 아니 아니··· 뭐야 이거.
“콘도티에레, 날 가져요!”
“이젠 정말 콘도티에레 뿐이야!”
“콘도티에레! 콘도티에레!”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 돌아가서 장난으로 콘도티에레를 연호하는 주민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황샌지 뭔지 이상한 깃발 들고 다니는 놈들! 이럴 거면 돌아가라고!
“콘도티에레, 손 흔들어 주세요.”
“으으으으음···.”
오늘은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해결할 문제가 무척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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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왔구나 너희들···.”
나는 왠지 퍼레이드가 끝나고 평소에는 빠져나가지 못해 안달이었던 트랑카벨 저택이 붙어 있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 왠지 서류도 좀 검토하고 다음 모병 계획도 세워야 하고··· 그 뭐냐, 어? 새 병종! 새 병종 창설 회의 뭐 그런 거···.
“할아버님께서 슈토르히 여러분들이 무척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네요.”
내 되지도 않는 술수는 생글생글 웃는 아쥬흐의 미소와 함께 산산이 깨어졌다.
“새로 짓고 있는 병영 건물을 임시 숙소로 빌려주신 모양이에요. 어서 가보세요, 콘도티에레 에트.”
“아니 저기 아쥬흐 양···.”
내가 또 징징대려고 하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워 내 입을 막았다.
“알아요, 콘도티에레 에트. 많이 쑥스러우시죠?”
“···.”
“자 빨리 가보세요. 저 북쪽 멀리 나우데사에서 와 주신 분들이잖아요? 물론 콘도티에레 에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트랑카벨 가문에 힘을 빌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맞는 말이다. 슈토르히 용병단은 그저 나와의 친목을 위해서 온 것은 아니다. 내가 단장 자리를 버리고 떠난 후에도 그들은 프로페셔널한 용병으로 살아왔겠지.
이들은 트랑카벨을 위한 싸움에서 피를 흘리기 위해 기꺼이 와 준 사람들이다.
환영해주는 것이 맞다.
“하아아, 아쥬흐 양의 말이 맞습니다.”
“그럼 가보세요. 할아버님께서 오늘 술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거··· 다행이네요.”
나는 그렇게, 부관인 모리츠를 데리고 카르카냑 외성의 병영 지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큰마음을 먹고 문을 열었다.
“콘도티에레!”
“대장!”
내가 예상했던 것은 말이지.
그··· 일부러 좀 느지막하게 온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야.
어차피 아롱드 영감님이 술도 잔뜩 가져다주셨겠다, 다들 취하고 분위기 좋을 때 슬쩍 들어가고 싶었거든?
다들 이미 꽤나 취해있었던 것은 예상대로였지만,
“대자앙!”
사람의 장벽에 휩쓸릴 줄은 몰랐다는 거지.
“대장, 오랜만이야!”
“이제 대장이 아니지, 콘도티에레잖아?”
“대장은 대장이지!”
보급형 모리츠 같은 시커먼 근육 돼지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건 좀 말이야 살면서 그렇게···.
경험해보고 싶지는 않은···.
“아, 대장 운다!”
“역시 대장도 우리가 보고 싶었던 거야!”
“진작 불러주셨으면 진작 왔을 텐데!”
내 예상과는 다르네.
나는 눈앞이 뿌예져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꽤 좋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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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르히 용병단의 연회는 생각만큼 박력 있고 폭발적인 부어라 마셔라는 아니었다. 하기는, 내가 있을 때도 그런 편이었지.
내가 온갖 용병단원들과 인사하러 다니는 것만 빼면,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 가끔씩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오는 정도의 딱 건강한 술자리였다. 중간중간 재간 있는 단원들이 류트나 플룻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말이지. 연주자의 절반 정도는 솔직히 솜씨가 별로였지만 분위기 타면 좋게 들리는 그런 거.
다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나는 내 기억력의 한계를 다시 한번 시험당했다.
그래도 꽤 많은 정보를 알게 됐다.
“뭐? 첼레스티나가 여기에도 없어? 당연히 용병단이랑 같이 움직일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다니까요!”
뭐야 진짜! 아무리 길치라지만. ‘좀 늦기는 해도 언젠가는 도착한다’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아닌가?
“모리츠 이거 어쩔 거야!”
“우리 첼레스티나 중대장이 실종됐다고!”
“아니, 이렇게까지 못 찾아올 거라 생각했나···.”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모리츠라니, 아주 특이한 광경이네.
으음··· 어쨌든 알 만한 도시 쪽에는 소식을 보내서 혹시라도 첼레스티나와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다행히 슈토르히 용병단과 인연이 있는 도시들이 조금 있으니까. 나도 너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했어.
내 쪽에서는 당연히 용병단 본대와 함께 있을 거로 생각했고, 용병단 쪽에서는 어련히 알아서 내 쪽으로 도착했겠거니 하다 보니 둘 다 놓쳐버린 것이다.
첼레스티나는 강한 여자니까 별일 있겠나 싶으면서도··· 걱정이 되긴 한다.
“그럼 지금 슈토르히 인원은 전부 몇이야?”
“넵, 현재 카르카냑에 도착한 인원은 총 783명입니다!”
“흐음···.”
생각보다 좀 적은 듯 싶네. 내가 그만 둘 때가 한 2200명쯤 되었던가. 가장 많을 때는 3000명이 넘었었지. 다만 최근 참여했던 북방 전쟁이 끝났고,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사람이 가장 적을 때긴 하다. 끝난 김에 고향에 다녀오려고 제대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고용주와의 계약이 완전히 끝난 이후에 용병단을 떠나는 것은 용병 개인에게 전혀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식으로 제대증을 받았다면 이를 바탕으로 다른 용병단에 들어가기도 한다. 제대증에 당사자의 종군 기록에 대해 나와 있으니 오히려 다른 용병단에서는 좋아하지.
“그 외에 다른 데 들렀다 내년 봄까지는 온다는 친구들이 200명 정도 있습니다.”
“음, 역시 그렇구나.”
“루트비히는 항구까지는 같이 왔습니다만, 급하게 만날 사람이 있다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루트비히가? 고향이 그룬발트 아니었나?”
“저도 그런 것으로 아는데요, 굉장히 급하게 갔습니다. 일 보고 바로 인사하러 온다면서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하더라고요.”
루트비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동그란 안경이 기억난다. 똑 부러진 성격으로 용병단의 보급관을 겸임하고 있었지. 엘랑키아에 친구라도 있는 것인지.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사람은 선임 중대장 중 한 명, 크레시미르 두브람이다. 저 멀리 동쪽의 나도 정확히 모르는 소국 출신이라고 한다. 외모만 보면 금발 태닝 양아치 그 자체인데, 여자를 제법 좋아하기는 해도 남편 있는 여자를 건드리거나 해서 사고 치는 경우는 없고, 업무에 있어서는 의외로 제법 성실한 친구이다.
“모르네드는 그만두었다고?”
“네, 콘도티에레께서 떠나시고 얼마 후에 그만뒀습니다.”
선임 중대장 중 한 명이었던 모르네드는 선임 중대장 중, 나까지 포함한 슈토르히 용병단 전체에서 가장 기사 같고 군인 같은 녀석이었다.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것도 열심히 배우려 노력했었고... 용병들은 `잘하던 것을 계속했더니 그게 장기가 됐다`라는 케이스가 많은데, 모르네드는 노력해서 자기 잠재력을 끌어 올리려 노력하는 드문 단원이었지.
좀 무뚝뚝하고 사람을 가려 사귀는 인상이었지만, 나와는 꽤 친한 편이었다. 평소에는 지휘와 관련된 일 아니면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가끔 함께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말이 좀 더 많아지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분명... 자신도 자기만의 용병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지. 음음, 수전증 핑계로 도망친 내가 할 말은 아니기는 하지만, 슈토르히를 운영할 때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 역할을 모리츠가 놀라울 만큼 훌륭하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로이엔펠트 계열의 연대로 이적했다고 합니다."
"뭐? 아니 하필이면 왜 거기야!"
"제 말이요!"
그로이엔펠트는 그룬발트, 아니 대륙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 용병단이다. 슈토르히같은 소규모 용병단이 중소기업 구멍가게라면 그로이엔펠트는 대기업 백화점이다. 워낙 규모가 크니 연대도 여러 개로 나뉜다. 다텐슈타트에서 끈질기게 쫓아왔던 그로이엔펠트 슈미트는 그로이엔펠트 용병단 소속의 연대 중 슈미트란 이름의 연대장이 지휘하는 부대이다.
아무튼 전장에서 만날 때마다 이가 갈리는 강적이었는데··· 물론 용병이다 보니 아군으로 함께 싸우기도 했었지만 주로 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은근히 라이벌 의식이 있달까··· 정작 그놈들은 우리 같은 구멍가게 용병단에 별 관심 없겠지만.
“그래도 곧 선임 중대장 중 넷이 모이겠습니다. 콘도티에레와 함께 말입니다!”
모리츠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밝고 힘찬 모리츠지만, 역시 이 녀석도 조금은 외로웠구나 싶다.
“...루트비히는 친구 만나러 갔고, 첼레스티나는 행방불명인데?”
갑자기 훈훈한 분위기에 심통이 난 나는 모리츠의 상처를 후벼판다.
“으윽! 곧 올 것이라 믿습니다!”
“불쌍한 첼레스티나··· 어디서 고생하고 있을까···.”
모리츠를 제외한 나머지가 와하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슈토르히 연대.
내가 몇 번 희화화 하기는 했지만, 사실 훌륭한 군인들이다. 그들 자신도 훌륭하지만, 앞으로의 트랑카벨 영지군 증강에도 큰 역할을 하겠지.
이번 겨울이 기다려진다.
...근데 진짜 농담 아니고 첼레스티나 어쩌지 무사히 잘 도착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