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6화 (36/556)

8-6. 여울목의 전투

전장을 가로질러 날아간 포탄 중 두 발은 너무 앞에 떨어졌지만, 나머지 두 발은 질주하는 기사대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끄아아악!”

“어어엇, 멈춰! 우윽!”

말이 내는 구슬픈 비명과 함께 온갖 고함이 오가며, 달려오던 기사들의 대열이 엉망이 되었다. 말이 당해서 그대로 주저앉았는지, 관성을 이기지 못한 기사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모습도 보인다.

커다란 타원 형태로 달려오는 기사단을 대각선에서 노릴 수 있는 위치였기에 피해는 극대화된 것 같다. 이런 대포가 쏘는 포탄이라고 해 봤자 인간이든 말이든 갑옷이든 찢어발길 기세로 구르고 튕기는 쇠 구슬일 뿐이라, 운동에너지를 잃어버리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적을 쓸어버릴 수 있는 각도에서 쏘는 것이 중요했다.

딱히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적이 무질서하게 무리 지어 달려온 덕분에 아주 괜찮은 각도에서 명중탄을 낼 수 있었다.

실제로 포탄에 의한 피해는 열 명을 넘지 않았겠지만, 이게 준 충격은 상당히 컸다는 것이 내 위치에서도 명확하게 보였다. 일부는 계속 달리고 일부는 멈추는 바람에 가뜩이나 엉망이던 대열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후열의 기병들이 사방으로 퍼지는 바람에 이제 부대라고 부르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

아아, 저러면 질서 회복하는 데 한참 걸리지.

혹시, 정말 혹시라도 우익의 모리츠와 파스칼의 부대가 당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돌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걱정도 잠깐 하기는 했다. 하지만 헛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저런 놈들에게 당할 아군이 아니지.

“아치요, 임무다!”

“넵, 콘도티에레!”

“저 쪽, 제10 연대 쪽에 가서 기즈라는 이름의 지휘관을 찾아. 전진을 멈추고 적의 측면을 위협하라고 전달!”

“기즈에게, 전진을 멈추고 적의 측면을 위협하라!”

“정확하다, 얼른 다녀 와!”

아치요가 다시 겅중겅중 달려간다.

전투라는 것은 참혹하고 위험하며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터무니없이 크기는 하지만, 다른 체계화 된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에게 주어진 자원을 잘 파악하고, 전장의 위협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일이다.

이번 전투는 나에게 주어진 자원이 제법 훌륭했으며, 위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걱정했던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거나, 곧 해결될 것 같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약간은 긴장을 풀어도 될 것 같다. 이제 전투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해도 좋은 단계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 젠장, 저걸 잊고 있었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고 말았다. 이제 남은 포탄도 없으니, 사용이 끝난 장비를 정리하고 ‘장전된 것처럼’ 보일 준비를 하던 포병들이 어리둥절해서 나를 바라본다.

역시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면 안 된다. 빌어먹을... 말이, 아니 생각이 씨가 되었나 보다.

멀리 적 후방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너머에서 뭔가가 꾸물거리더니, 보병과 기병들이 언덕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원래 적의 군세는 셋이었다. 소베트르라는 남작이 이끄는 이단 토벌에 지원한 귀족군과 드라멜른 기사단, 마지막으로 드 레뮤즈 백작의 군대.

지금까지 전장에 없었던 드 레뮤즈 백작의 군대가 언덕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늦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네.

나는 머릿속에 있었던 다음 계획을 모조리 폐기했다. 새로 등장한 적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너무나 큰 변수임이 분명하니까. 아침부터 머리를 너무 많이 썼는데, 새로운 전장의 모습을 그리려니 과부하가 걸릴 것 같다. 머리가 쿡쿡 쑤신다.

아군이 지금까지 얻은 것과, 앞으로 더 얻을 수 있는 것을 고민해본다. 대충 눈감고 사도 떡상하던 불장이 갑자기 하락장이 된 격이다. 이제는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고민해볼 때이지만....

나는 문득 전장의 오른편, 드라멜른 기사단의 후방을 질주하는 기병대를 발견했다. 저건... 설마 파스칼의 기병대인가?

그렇다면 이걸 그냥 둘 수는 없지.

"로베르 경의 기병대에게 전령을!"

"예, 콘도티에레!"

"현재 대치중인 정면의 기병 분견대를 공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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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토벌 기사도 연합의 맹주인 소베트르 드 랑두제는 오늘따라 몇 번째 놀라는 것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포성이 울릴 때마다 자신의 사고회로 역시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 까지만 해도 그는 명실상부하게 수천의 대군, 기사도 연합을 지휘하고 있었다. 명목상으로라도 자기보다 훨씬 지위가 높은 귀족 집안의 자식들이 그의 명령을 따라 전장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별로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 현재, 심지어 한참 치열한 전투 중인데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몇 안 되는 드 랑두제 가문의 가신들조차 어느 부대에 휩쓸렸는지 알 수 없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명색이 지휘관인데 전투에 영향을 미칠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부끄럽지라도 않게···.

“소베트르 맹주님! 기병 지원이 필요합니다!”

참모장 아인멜츠의 외침이 소베트르가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자칫하면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질 뻔한 그가 부끄러워하며 상황을 파악한다.

아인멜츠는 예비대의 보병들을 측면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들은 현재 전장에서 유일하게 통제력을 잃지 않고 있는 부대일지도 모른다. 주로 귀족들이 데리고 온 전위의 봉건 군대들과 다르게, 예비대 보병들은 경험 많은 용병들이었다. 따라서 이 혼란 속에서도 침착하게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겠다. 전투 시작부터 지금까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측면으로부터 공격당해서 무너져내리고 있는 전방의 보병 부대나, 대포 한 발씩 맞더니 통제 불능이 되어 버린 후방의 기병대에 비하면 말이다.

원래라면 선두 보병들이 적 방어선을 약화시키면, 예비대의 용병들이 2파 공격으로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돌파하거나, 적어도 적의 예비 전력을 전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럼 최후방의 기사대가 상황에 맞춰서 전선을 돌파하거나 예비대가 사라진 적의 측면을 들이받는 계획이었으나···.

그 계획의 핵심 전력인 기사대가 사라진 지금, 계획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렇더라도, 아인멜츠와 용병들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명목상 맹주이자 지휘관인 자신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기사도 연합!”

소베트르는 말을 돌려 반쯤 와해당한 기사대 쪽으로 외쳤다.

“우리는 모두 엘랑키아 국왕 폐하의 신하들로서, 이단을 토벌하고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모였다!”

젊은 시절, 드 랑두제 가문의 병력을 이끌고 몇몇 전장에 나가 본 경험은 있으나 특별한 지휘관으로 임명된 경험은 없었다. 남작 가문의 얼마 안 되는 병력은 대군이 소집된 전장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은 없었다.

젊었던 시절의 큰 꿈과 달리,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대군의 일부가 되어 함께 움직이거나, 전쟁 내내 적의 얼굴 보기도 힘들 한직에서 후방 경비나 서는 신세에 차츰 적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쨌든 그는 수천 군세의 우두머리이다. 비록 온전히 자신의 군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을 지휘하고 명령하는 것은 그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누가 뭐래도 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습니다, 소베트르 경!”

“내 동생이 죽었어요! 죽었단 말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소베트르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적 화력이 상상 이상입니다!”

“새롭게 군을 추스르셔야 합니다, 상황을 보십시오!”

“우리 영지에도 대포가 있소이다! 기껏 이단 역도들 토벌이라 가지고 오지 않았건만···.”

“전진을 위한 후퇴를 생각해 주시지요.”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소베트르는 울컥하고 분노가 올라왔다.

딱 두 시간 전 까지만 해도 미친 듯한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며 출전을 강요하고, 동맹인 드라멜른 기사단과 연락할 틈도 없이 멋대로 개전을 선언했던 병신들이 누구란 말인가? 자기네 마음대로 통제도 따르지 않고 우르르 달려갔다가 우르르 돌아오더니, 이제 와서 겁이 나는 것인가?

마지막까지 이 자식들이 저질러 놓은 최악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인멜츠를 보다 못해 도우려는 자신인데, 이 혈통만 좋은 자식들은···.

“부끄럽지도 않소! 그대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만다. 비록 지방의 소귀족에 불과하나, 외적인 예절은 지키고자 노력했던 그였다. 다른 귀족에게 이런 식으로 윽박지르듯 말하는 것은 처음이다.

“말이 심하지 않습니까, 소베트르 경!”

“우리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모인 동지들이지 상하관계가 아니란 말입니다!”

분노로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소베트르는 지금 자신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욕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 위해 무진 노력을 해야 했다.

“모두 대열을 정돈해 주십시오! 드 레뮤즈 백작께서 오셨습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실 생각이신가요?”

어느새 가까이 온 아인멜츠가 자칫 발사관을 떠날 뻔한, 소베트르의 욕설을 말려 주었다. 그나저나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드 레뮤즈 백작이?

“오오, 정말이군, 백작께서 직접?”

“지원군이 왔소이다!”

소베트르는 조금 전까지의 분노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느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부끄러움과, 주군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을 실망하게 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물론 그가 대단한 기대를 받는 존재는 아니며, 그저 명분 백작가인 드 레뮤즈 가문을 섬기는 수많은 가신들의 말석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장 뒤편의 나지막한 언덕을 넘는 보병들이 보인다. 빽빽한 창날이 마치 숲을 보는 것 같다. 그 옆에는 몇몇 수행원을 거느린 덩치가 좋은 남자가 있었는데, 아마도 라몽 백작 본인으로 보인다. 소베트르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주군은 지금 전장을 어떤 생각으로 보고 있을까?

“백작께 우리의 위용을 보여줍시다!”

“찬성이오!”

방금 전까지 전장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던 귀족들이 갑자기 정의의 용사가 되어 대열을 갖추기 시작한다.

소베트르는 구토를 할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속한 귀족이라는 집단이 싫어졌다.

빌어먹을.

역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적습이다!"

역겹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려고 한 순간 갑자기 소란이 벌어졌다. 간신히 질서가 회복되기 시작한 귀족 기병대의 후방으로부터였다.

"세상에!"

소베트르는 탄식했다. 기사대의 후방으로 적 기병들이 습격해오고 있었다.

타타타탕!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군의 소리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소베트르는 검을 뽑았다. 어쩌면 직접 적과 싸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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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드 나뵈프는 안장을 누르고 있는 허벅지에 힘을 꽉 주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컥!”

가만 놔두었다면 약 2초 후에는 그의 몸에 꽂혔을 창날이 기세를 잃고 땅으로 떨어진다. 그 주인 역시 가슴 근처에서 핏방울을 뿌리며 안장에서 굴러 떨어진다.

로베르가 중대장으로 이끄는 2개 중대의 총기병과 60여기의 중갑기병들이 거의 비슷한 수의 적 기사들과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전투 내내 이렇다 할 활약 없이 계속 기다리기만 했지만, 콘도티에레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사용이 끝난 권총을 안장의 권총집에 집어 던지듯 넣은 로베르는 즉시 등 뒤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바로 다음의 적은 방금 사용해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아직도 손에 들고 있었다. 로베르는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의 칼자루 끝에 묶인 하얀 천이 바람에 깃발처럼 휘날린다.

카앙!

“끄으읏!”

상대는 로베르의 무기를 휘두르는 힘과 돌격의 기세를 견디지 못하고 권총을 놓치며 말에서 떨어졌다. 치명상은 아니겠지만, 이런 기병전의 와중에 초장부터 말에서 떨어졌다면 다시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적은 전투의 초보다.

아군과 적군이 마구 엉킨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말을 돌려 다음 적을 노리면서, 로베르는 생각했다. 적들은 기사 계급이고, 아마 어릴 때부터 무예를 배우고 승마술을 단련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전투’에 맞게 훈련받은 군인은 아니었다.

마치 얼마 전의 로베르처럼.

로베르는 총이 싫었다. 약탈자 용병들이 블랑독의 경계를 넘어 이웃 영지들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이단이라며 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에 분기하여 동료들과 함께 전장에 나갔었다.

그에게도, 또래 친구 기사들에게도 첫 출전이었다.

그리고 그 시끄럽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무기가 많은 친구들을, 가족과 친척과 가신들을 쓰러뜨렸다. 그 자신도 복부에 큰 상처를 입었다.

아넥시에서의 마지막 전투에서, 그는 싸우다 죽고자 했다. 전장에서 친지들을 헛되게 잃고 영토까지 유린당한 그에게 미련 따위는 없었다. 마치 내일 죽을 사람처럼 앞장서서 적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기고 살아남았다.

나중에 깨어났을 때, 자신의 목숨은 두 사람이 살려주었음을 깨달았다.

한 명은 아넥시의 완성자이자 성녀, 아쥬흐 트랑카벨이었다. 로베르가 평생 보아온 어떤 여성보다도 아름다웠던 그녀는 자신의 섬세하고 하얀 손가락을 피로 더럽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을 치료했다. 놀라운 솜씨로 장기를 좀먹고 있던 총알을 빼냈으며, 신화적인 배려로 붕대를 감아 주었다.

그의 칼날에 묶인 하얀 천은, 그녀가 감아 주었던 붕대의 깨끗한 끝부분이다. 붕대를 묶으며 맹세한다.  자신의 영혼을 성녀 아쥬흐에게 바치기로 했다. 물론 절대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만의 신성한 맹세, 자랑하듯 떠들면 부정해지고 성녀의 위신을 더럽힌다.

어느 누구도 로베르 드 나뵈프를 쓰러뜨리지 않고서, 성녀 아쥬흐에게 칼을 들이대지는 못할 것이다.

그를 살려준 다른 한 명은 모두가 콘도티에레라 부르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외모만 보고 과소평가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전장에서 죽을 수 있다면 상관없었기에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사격이 끝나면 앞장서서 돌격해라··· 솔직히 총알받이가 된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전장에 설 수 있다면 말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의 명령대로 한 결과, 그 저주스럽던 화약 연기를 뚫지 않고도 적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찢어 죽이고 싶던 적, 가족과 친구들의 원수들을 원하는 만큼 찢어 죽일 수 있었다.

그때 이해했다. 콘도티에레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함께 성녀 아쥬흐의 뜻을 따르는 이로써 무조건 믿고 따라도 되는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콘도티에레는 그가 이겨낼 수 없는 적에게 자신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분명히 거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성녀 아쥬흐에게 불충하라는 지시가 아니라면, 어떤 명령이라도 조금의 의구심도 없이 실행할 것이다.

특히 적 기사를 죽여라··· 는 종류의 명령은 그가 아주 잘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다.

타앙!

또 한명의 적이 쓰러졌다. 이번에는 왼손으로 쐈다. 즉시 총을 안장으로 되돌린다. 콘도티에레는 무기를 바꿔 들어야 하는 위험한 경우 사용한 총을 버려도 된다 했으나, 권총이 상당히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성녀 아쥬흐가 직접 내려주신 무기를 함부로 할 수는 없다. 때문에 무기를 바꿔들지 않고도 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왼팔을 단련했다. 이제는 제법 명중률이 높다.

탕!

누가 쐈는지 모를 총탄이 근처를 지나갔다. 맞지 않았다면 상관없다. 맞는다 해도 죽거나 행동에 불편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상관없다. 로베르는 그대로 검을 마구 휘두르며 적을 몰아붙였다.

로베르는 중대장으로서, 자신들이 왜 이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군은 기병대로서 함께 훈련받고 가장 효율적으로 행동하도록 몸에 익혔다. 그러나 적은 개개인이 멋대로 싸우고 있을 뿐이다.

첫 사격도 밀도 있게 적절한 거리에서 일제히 이루어진 아군에 비해서, 적도 총은 있으나 어정쩡한 거리에서 제멋대로 사격했다. 그러니 백병전이 시작됐는데 아직도 연기 나는 총을 들고 있는 늦은 놈들이 있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기병대는, 돌입해오는 적 기병과 맞돌격하여 완전히 박살 내는데 성공했다. 적은 첫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대열이 무너져 달아나기 시작한다.

부대의 선두에서, 로베르는 잠시 전장을 둘러보았다. 적을 순식간에 무너뜨렸기에, 그의 기병대는 아직 힘이 남았다. 여기서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무너진 적을 추격해 포로를 잡고 완전히 와해시키는 것, 원래 위치로 돌아가 견제 임무를 다시 진행하는 것, 다른 목표를 찾는 것.

평소라면 망설임 없이 귀환하여 다시 명령받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로베르는 부대를 정돈하고 다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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