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8화 (28/556)

7-2. 삼개군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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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황의 정순파 이단 선언 및 이단 토벌 성전 소집.

엘랑키아 국왕의 성전 참여 선언.

레뮤즈 백작의 정순파 추방령.

이런 소식이 거듭되면서 블랑독에는 점점 흉흉한 분위기가 돌기 시작했다. 특히 정순파가 소수파인 지역에서는 ‘저놈들 때문에 우리까지 위험해졌다’라는 인식이 팽배한 곳도 있었다.

랑두제가 대표적으로 그런 상황에 처한 곳이었다.

랑두제 남작령은 레뮤즈의 동쪽에 있는 영지로, 드 랑두제 가문이 통치하는 본성과 세 개의 마을로 이루어진 장원이었다. 이어진 균분상속제로 인해 손바닥만 한 영지를 가진 소영주가 즐비한 블랑독에서는 이 정도만 되어도 제법 구색을 갖춘 큰 영지에 속한다.

현 가주인 소베트르 드 랑두제 남작은 자신의 대군주인 라몽 드 레뮤즈가 정순파 추방령을 내리자, 자신도 영지의 정순파를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랑두제의 정순파들과 소베트르 남작 자신 양측에게 불행하게도, 소베트르는 독실한 주신교의 신자였고 앞뒤가 꽉 막힌 60대 노인이었다.

소베트르는 즉각 랑두제 성과 그 부근 정착지에서 정순파들을 색출하도록 명령했다. 곧 16명의 명단이 작성되었고, 이들은 제대로 된 조사나 재판도 없이 본보기로 목이 매달렸다.

랑두제 가문 소속의 다른 마을에도 같은 짓을 하라는 명령이 전해졌으나, 문제는 영주의 생각보다 정순파의 숫자가 꽤 많았다는 것이며, 수비병이나 기사 중에서도 본인이나 가족이 정순파인 경우가 제법 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어지간히 광신자가 아닌 다음에야,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인사를 나누었던 이웃을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갑자기 공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이단 청산은 지지부진했고, 분노한 소베트르는 직접 휘하 기사들을 이끌고 이단자 색출에 나섰다.

하지만 분노한 정순파 주민들에 의해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분기탱천한 소베트르는 친위군을 이끌고 진압에 나섰으나, 분노한 주민들 역시 강경하게 맞섰다.

많은 사상자가 나온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마침내 마을 경비대의 일부까지 주민들 편으로 돌아서자 숫자가 적은 토벌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주모자 몇 명만 잡아 목을 매달면 쉽게 진압될 거로 생각했던 소베트르 남작은 이를 갈며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한 주민들이 기세가 하늘을 찔렀고, 결국 세 개 마을 모두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영민들의 반란에 소베트르가 오히려 성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은 물론이다.

위기에 빠진 소베트르는 자신의 대군주인 드 레뮤즈 백작과 블랑독 너머의 사돈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한편 드 랑두제 가문의 재무관인 막생 노타름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는 원래 소베트르 드 랑두제 남작을 섬기던 재무관이다. 그러나 정순파인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주군을 적대하다 보니, 반군의 우두머리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막생 나으리···.”

주민들은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영지이다. 대부분 아는 사이다. 막생은 세금을 부과하고 부역을 시키는 입장이라 항상 욕을 먹는 입장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공정한 인물이라는 신뢰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막생 노타름은 죽을 맛이다. 여태까지 살면서 출세니, 입신양명이니 하는 것에 얽매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대로 랑두제의 영주를 섬겨온 입장이고, 자신도 성인이 되자 자연스럽게 랑두제 성에 들어가 서기관 업무를 배우고, 선임 재무관이 은퇴하자 그 업무를 이어받았을 뿐이다.

처음 정순파 탄압이 시작되었을 때도 가혹하다고는 생각했으나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로 여겼다. 하지만 영주가 만든 영지 내 정순파 목록에 아내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다. 몇 번이나 확인했다. 이름, 성, 지역까지.

자기 아내가 맞았다.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어여쁘고 착한 아내. 그가 출근하면 성실하게 텃밭을 일구었고, 퇴근하면 저녁을 준비하여 기다렸다. 다소 늦더라도, 먼저 먹으라고 해도 함께 먹는 것이 좋다며 기다리던 아내는 그에게 과분한 행복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느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내를 데리고 달아나는 수밖에.

“우선 진정하시오. 안타깝지만 우리는 떠나야 할 것 같소.”

“떠나요?”

“남작님의 군대가 우선 후퇴하기는 했지만, 돌아올 거요. 레뮤즈의 백작도 지원군을 보낼 거고.”

하물며 반란군의 우두머리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현재 반란군에 속한 유일한 기사 계급이었기에, 그리고 영민들의 얼굴을 항상 접하는 재무관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그렇게 형성되었다.

그냥 아내만 데리고 멀리 도망쳤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숫자가 이렇게 많으니, 도망치는 자신과 아내를 위한 가림막이 되어 줄 것이라는 약은 생각도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짐만 챙겨서 모이시오. 해가 뜨기 직전에 출발하겠소.”

“어, 어디로 가시려는 건가요?”

“남쪽밖에 없소. 트랑카벨 가문의 영지로.”

“트랑카벨···.”

이단 토벌령이 내려진 이후, 블랑독이 다소 어수선하긴 했지만 드 레뮤즈 백작의 확고한 통치 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막생 역시 주군에게 도착한 공문을 보지 않았다면 별 관심 없이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트랑카벨 가문은 정순파의 피난처를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명심하시오, 해가 뜨기 직전이오. 너무 늦으면 다른 지역에서 온 추격대가 올 거요.”

아마 로데브 강을 넘어서까지 추격군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많은 숫자를 데리고 강을 건너려면···. 최근 비가 오지는 않았으니 걸어서 건널 수 있으려나?

“여기서 남쪽에 트랑카벨의 군대가 있어요!”

“맞아! 아치요가 이웃 마을 다녀오다 봤다고 했나?”

“아 나도 봤어! 기사님들이 언덕 위에서 뭔가 하고 있었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막생은 최근 랑두제 영지 밖을 나가본 기억이 없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그도 소문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는 했다. 트랑카벨의 대군이 북상해서 잠시 긴장했지만 지나는 지역의 영주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평원 지역에서 훈련하고 있다던가.

그런 대군이 지나가는데 소영주들 입장에서 양해를 안 해줄 재주가 없기야 했겠다고 비뚤어진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그게 자신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자신의 목숨줄이 될지도 몰랐다.

“아치요, 자네가 남쪽에 있는 군대의 대장을 만나보게.”

“에? 제가요? 지금요?”

“자네만큼 길을 잘 아는 이가 없으니, 부탁하네.”

아치요는 다른 지역 출신으로, 농사일을 돕거나 심부름을 하는 등 잡일을 하면서 사는 부지런한 청년이다. 비쩍 마르고 팔다리만 길어서, 마을 아이들이 방아깨비라고 놀리는 모양이지만. 달리기가 워낙 빨라서 막생 역시도 심부름을 몇 번 맡긴 기억이 있다.

“어, 알겠습니다. 뭐라고 전할까요?”

“잠시 기다리게, 서한을 쓰겠네.”

재무관이라 다행이다. 종이를 꺼낸 막생은 빠르게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적었다.

랑두제 영지에서 정순파 탄압 중

소요 발생하여 주민들이 남쪽으로 도망

부디 트랑카벨의 보호를 요청드립니다

세 줄을 휘갈겨 써서 잘 접어 다른 종이로 감싼다. 그리고 지갑에서 은화를 꺼내서는 함께 아치요에게 전달한다.

“야간이니 심부름 삯도 두 배를 줘야겠지. 잘 부탁하네. 우리 목숨이 자네에게 달렸네.”

“맡겨 주십쇼!”

“자네 짐이 있으면 우리가 챙겨줄 테니···.”

“떠돌이라 딱히 짐은 없네요.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부탁할게! 잘 다녀와!”

“이거 가져가! 아침에 배고프면 먹고!”

“어두우니까 조심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누더기 가방에 편지와 빵 덩어리를 넣은 아치요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간다.

긴 다리로 겅중겅중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방아깨비라는 별명이 썩 잘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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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이나 남았어?”

“흐음, 100명 중에서 76명이네요!”

“이번에는 76명이나? 나쁘지는 않네.”

나는 모리츠와 함께 뭔가를 종이에 기록하고 있었다.

용기병들이 3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언덕과 언덕 사이를 말로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화승총을 들고 있으며, 왼손 손가락 사이에는 화승 뭉치를 쥐고 있었다. 기병용으로 만들어진 단축형 모델이 아니라, 보병의 평범한 화승총이다.

200명의 ‘말도 탈 줄 알고 총도 쏠 줄 아는’ 병사들을 추려서 용기병대를 편성하기는 했지만, 아직 문제가 있었다. 마상 사격에 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말 위에서 권총도 아니고 소총을 쏘는 것은 워낙 숙련도가 필요한 일이라 지금 훈련할 일이 아니다. 말에서 재빨리 타고 내리고, 말들을 한군데 모아 놓은 뒤 최대한 빨리 사격 대형을 갖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도 어떻게 해결이 됐다. 주로 소지주나 향사 집안 출신인 이들은 기사들만큼은 아니지만, 승마에 익숙했고 훈련 내용도 빠르게 이해했으니까. 날다람쥐처럼 말 위에 오르고, 서로의 고삐를 엮어 고정한 후 사격에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것도 잘 이해했다.

문제는, 빌어먹을 화승이 자꾸 꺼진다는 것이다!

화승이라는 것은 아주 천천히 타는 노끈이다. 초석 녹인 물을 고르게 입혀서 만든다고 하더라. 여기 불을 붙여 두었다가, 기계장치를 이용해 화승총 외부의 점화약에 불을 붙이고, 점화약이 총신 내부의 장약을 폭발시키면 총알이 발사되는 형식이다.

그런 만큼 화승 관리는 중요하다. 보병들도 대기할 때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입으로 바람을 불어주거나, 천천히 총을 돌려주거나 하고, 반대로 바람이 심할 때는 바람이 불지 않는 방향 쪽으로 몸을 돌리거나 망토로 감싸거나 하는 것이다.

물론 점화약도 바람이 심하게 불면 날아가 버려서 불발의 원인이 되긴 하지만, 용기병들에게 지급한 화승총은 화문에 뚜껑이 있는 형식이다. 장전 후에 뚜껑을 닫아놓고 움직이다가, 사격 직전에 뚜껑을 열면 화문의 점화약이 드러나는 형식이다.

그런데 말 타고 수백 미터를 질주하는 와중에 불이 자꾸 꺼져버린다. 당연히 불이 꺼지면 총이 발사되지 않는다. 모처럼 총병에게 말을 태워서 빠르게 이동시켰는데, 그래서 좋은 사격 지점을 잡았는데 불이 다 꺼졌네? 그러면 그 용기병 부대는 의미가 없어지는 거지.

바람 영향과 무관한 치륜식 발사기관을 사용하는 선택지도 있기야 하지만, 치륜식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충격으로 고장이 잘 난다는 것이다. 화승식에 비해 비교도 안 되게 복잡한 구성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백병전용 무기로 휘두르지 않는 한 비교적 총집 안에서 얌전히 있는 권총과 달리 보병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부딪히게 마련인 소총의 고장률이 좀 높았다. 구조가 복잡하니 수리도 힘들고 말이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비싸다는 것! 화승총보다 2배에서 3배 정도 비싸다. 지금 트랑카벨 병사들에게 지급한 화승총도 꽤 좋은 물건들인데, 그것보다도 훨씬 비싸다.

물론 아쥬흐의 돈 자랑으로 인해 트랑카벨 가문에 돈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으으, 그래도 2배 이상 비싸면 그냥 2명을 무장시키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효율충, 성능충 마인드를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최대한 불을 꺼트리지 않고 이동하며, 불이 꺼지면 왼손의 예비 화승을 끼우고, 거기도 불이 꺼졌다면 부싯깃통으로 불을 피워 최대한 빨리 사격 준비를 하는 훈련 중이다. 물론 용기병들이 갑자기 적 앞에서 전개해서 사격하고 이런 일이 잘 벌어지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다행히 병사들도 요령이 생기는지, 갈수록 불씨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었다. 열 명 중 일곱 명만 쏠 수 있어도 훌륭하긴 하지 뭐. 실전에서 긴장하면 더 떨어질 수 있겠지만 억지로 닦달한다고 더 좋아지지는 않을 수준이 도달한 것 같다.

지금쯤, 권총으로 무장한 총기병들은 기동훈련과 전투 중 무기를 재빨리 바꿔 드는 훈련을 하고 있을 테고, 보병들은 다양한 전투 대형을 갖춰 이동하거나 진형을 바꾸는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규모 군대의 훈련이라는 것이 꽤 볼만한 것이라서 주변에서 구경꾼들이 많았다. 인근 영주들이야 참관이라는 형식으로 보고 있었고, 일반인들도 소풍 온 것처럼 주변에 자리를 잡고 구경하기도 한다. 병사들이야 힘들겠지만, 엄청 멋있는 장면이니까. 트랑카벨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목적도 있고 말이다.

참고로 나도 보고 싶은데, 용기병 훈련이 더 중요해서 어쩔 수 없다.

“콘도티에레!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응 무슨 일이지.

“누가 나를 찾아와?”

“트랑카벨의 장군님을 찾는다는 말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설픈 단어 선택에서 절박함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언덕 반대편으로 내려가니, 두 명의 용기병이 누군가를 부축해서 데리고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질질 끌고 오고 있는 것인가 했더니, 완전히 지쳐서 녹초가 되어 쓰러지기 직전인 사람을 부축해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녹초가 됐지.

“모리츠, 물 좀 가져다줄래?”

“알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언덕을 내려가 그를 만났다. 비쩍 마르고 키만 큰 청년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트랑카벨, 장군님?”

“그렇네, 무슨 일인가?”

“랑두제에서, 서신이요.”

그가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편지를 건네준다. 빵가루와 뭔지 모를 식물의 씨앗 같은 게 붙어있는 더러워진 종이에서 급박함이 느껴진다.

“랑두제 영지에서 정순파 탄압 중, 소요 발생하여 주민들이 남쪽으로 도망, 부디 트랑카벨의 보호를 요청드립니···다?”

랑두제? 랑두제가 어디지?

“자네, 랑두제가 어디인가?”

“저쪽, 저 방향···.”

“이런, 일단 눕히고 기다리지.”

청년은 마치 마라톤의 전령처럼, 여기까지 오는 데 모든 힘을 쓴 모양이었다. 도저히 대화가 불가능해 보여 잠시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주어야겠다.

느낌이 좋지 않다. 청년이 가리킨 방향은 북서쪽, 여기서 북서쪽으로 더 가면 드 레뮤즈 백작의 확고한 세력권이다. 멋대로 개입하면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제기랄! 제발 별일이 없기를 기도했는데! 역시 신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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