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4화 (24/556)

6-3. 전쟁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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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랑키아 왕국의 수도 베르마유의 국왕 집무실에는 세 명의 남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고베르 드 팔라스. 엘랑키아 왕국의 군주 다고베르 2세. 자신만만한 표정의 30대 청년으로, 편안하고 다소 방만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뮈르텔 드 생프랑보. 엘랑키아 왕국의 재상. 불안한 표정으로 양손을 모아 쥔 초로의 귀족이다. 불안한 듯, 왕의 얼굴과 탁자에 놓은 각종 문서를 번갈아가며 살피고 있었다.

에티엘 드 크레이. 왕가의 일원이자 크레이의 공작으로, 다고베르 2세의 사촌 동생이다. 완벽하게 각을 맞춘 듯한 바른 자세로, 무릎에 주먹을 올려놓고 미동도 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뮈르텔 재상, 재정 지원을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다고베르 2세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태도는 방만하지만, 그 말투에서는 초로의 재상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진다. 마치 친한 손위 친척에게 어리광 부리는 듯한 태도이다.

“폐하 이어지는 전쟁은 정말 곤란합니다. 북방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북방 전쟁의 대가로 성 여섯 개를 받아오지 않았나요?”

“그 성을 요새화하고 수비군을 배치하는 비용 더 들어갑니다.”

“남쪽의 블랑독을 왕실 영지로 병합하면 그 정도는 충당 가능할 겁니다.”

“폐하, 전쟁은 도박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서로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둘 다 어느 선을 넘지는 않는다. 서로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또 그만큼 친한 사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재상, 모처럼 에티엘이 의욕을 보여주고 있는데 믿어보면 어떨까요?”

“저, 저는 왕실의 재정에 부담을 주면서까지는···.”

“에티엘은 저와 다르게 성실하니까, 맡기면 뭐든 잘 할 겁니다. 그렇지 에티엘?”

“물론입니다. 형님 폐하!”

재상 뮈르텔은 말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왕실군은 현재 재편성이 필요하고, 재편성에 들어갈 비용을 마련하는 중입니다. 이걸 뒤로 미룬다면···.”

“우리 왕실 기사들은 숫자가 좀 적어도 잘 싸웁니다. 좀 천천히 보강해도 되겠지요.”

“네··· 지방의 몇 개 영지를 통합하는데 왕실군이 앞장서서 직접 나서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이번에는 나설 일이 없겠죠.”

"왕실 기사들은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왕이 신이 나는 것을 보며, 초로의 재상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가끔 고집을 부리기는 하지만, 재상이 애지중지하는 이 청년은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 재원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성전 기여자 기록부를 준비해 주십시오.”

“책을 만들라고요?”

“네. 고풍스럽고 멋지게 만들어서 베르마유 대사원에 봉헌하고, 귀족들은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아하, 무슨 무슨 백작 성전 기여금 얼마 제공, 무슨 무슨 공작 직접 참전, 이런 기록부 말이군요!”

“맞습니다, 폐하.”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는지 다고베르 2세는 벌떡 일어난다.

“좋습니다! 왕실 필경사와 채식사를 보내서 끝내주는 책을 한 권 만들어 주죠. 금액에 비례해서 이름이 커지고, 얼마 이상이면 칸을 따로 만들어서 황금색과 빨간색으로 번쩍번쩍하게 장식하면 귀족들이 너도나도 돈을 내겠죠?”

“봉헌된 책이니, 주신께서 직접 읽으실 내용이니까요.”

“귀족들에게 자진해서 지갑을 열도록 할 수 있다니, 성전이라 다행입니다, 재상.”

“비용이나 병력 일부는 그렇게 조달할 수 있겠지만 결국 대부분은 왕실 금고에서 나가야 합니다.”

“그럼요, 저도 매번 이렇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합이 잘 맞는 왕과 재상이라 생각하며, 에티엘이 슬그머니 웃는다.

“에티엘 들었지?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전쟁 준비해라. 타비뇽에 법황 특사인지 와 있다니까 만나보고.”

“예, 형님 폐하. 그 준비에 앞서, 블랑독에 한 번 다녀오려고 합니다.”

“무슨 일··· 아, 거기에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아가씨가 있었지!”

“아뇨, 꼭 그것 때문은 아니고···.”

지금까지 계속 침착하고 강건한 모습만 보여주던 에티엘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자, 다고베르 2세가 껄껄거리며 웃는다.

“그래 다녀와야지. 편지에는 답장이 없어?”

“그냥 의례적인···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감사 인사만 왔습니다.”

“에티엘 정도 미남이면 바로 넘어오지 않을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형님 폐하, 어째서 그런 식으로만 말씀하시나요. 전쟁이 격화되기 전에 한 번 설득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도 좋겠지. 조정을 받아들인다면, 그쪽 가문들도 대군주로 왕을 섬기는 쪽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니까. 솔직히 법황이 멋대로 엘랑키아에 성전 선포하는 것도 별로 좋진 않아.”

“예, 명심하겠습니다.”

충실한 신하 두 사람인 뮈르텔 재상과 크레이 공작을 내보낸 다고베르 2세는 탁자에 놓인 지도로 눈을 돌렸다.

아란 제국이 몰락하고 무법천지가 된 대륙에 엘랑키아를 건국했던 그의 조상들은 위대한 왕들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신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나눠주었다. 그리하여 국왕의 행동에는 많은 제약이 걸렸으며, 국경 지방을 노리는 각국의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었다.

그 결과는 건국 당시보다 더 줄어든 엘랑키아의 영토였다.

옛 아란 제국의 귀족이었던 귀쟁이 엘프들의 혈통타령으로 각종 권리를 요구하는 그룬발트 제국.

아직 명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국경선과, 서로의 영토 너머에 존재하는 봉신들을 이용해 교묘하게 국경지대를 침입 중인 라솔 왕국.

광범위한 자치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완전히 독립하려 드는 엘랑드르 대공국과와 나우데사 연방.

모두 배은망덕하고 불충한 것들이다.

다고베르 2세는 위대한 엘랑키아가 받는 이런 수모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엘랑키아 역사상, 아니 대륙 역사상 누구보다도 강력한 군주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전 대륙이 우러러보는 태양과도 같은 군주가.

그 첫걸음으로,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남부 변경의 자작령들을 왕실 영지로 접수하는 것은 괜찮은 선택이리라.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법황은 짜증이 나지만, 마침 판을 잘 깔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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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손님이 많다.

아침부터 북적북적 바쁘게 돌아가는 군수 생산 구역을 보며 생각했다.

남들이 바쁘거나 말거나, 나는 가건물 주점의 문간에 앉아 포도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카르카냑에 머물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포도주가 무지하게 저렴하다는 것이다. 나는 입맛도 싸구려라서 말이야, 주는 대로 잘 먹기 때문에 주머니에 부담 없는 블랑독 산 저가 포도주가 무척 마음에 든다.

물론 트랑카벨 저택에 가면 이것보다 좋은 포도주가 얼마든지 있지만, 모처럼 벗어나서 마시는 싸구려 포도주가 훨씬 좋은 것이지.

이 군수 생산 구역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카르카냑의 이중성벽 구조 중, 외성 구역의 일부를 개발한 곳이다. 트랑카벨 가문의 영지에서는 물론, 그 외부에서도 찾아온 수많은 기능공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장 급한 무기는 외부에서 사 올 수 있다지만, 트랑카벨 수준으로 갑자기 군대의 몸집을 불리게 된다면 당연히 자급자족하는 쪽이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좋은 게 당연하다! 게다가 온갖 소모품 조달 문제도 있고, 특히 화약 무기류는 나름 첨단 기술이 들어갔다고 고장률이 어마어마하다. 교체 부품만 있어도 금방 수리할 수 있는데, 총 자체를 버리게 되는 안타까운 일은 줄여야 하니까.

그 외에도 군복이나 버프 코트, 가방 등을 만드는 공장도 곧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거, 카르카냑이 완전히 군납 산업의 메카가 되겠네. 전쟁이 끝날 때쯤은 포도주가 주 상품인 블랑독 상단의 주 거래 상품이 군수물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지금 일하고 있거나, 곧 일하게 될 기술자들의 상당수는 내가 오래 머물렀던 주디칼리에서 스카웃 해 온 인물들이다. 주디칼리 도시국가들의 답답한 길드 시스템에 시달리고, 꽉 막힌 권력자들의 부당한 대우를 받던 이들을 괜찮은 조건으로 불러왔다.

천상 공돌이인 이 사람들은 돈도 돈이지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연구지원’만 조건으로 붙여도 신이 나서 바다를 건너 와 주었다. 기프티드 장인들을 이용한 판금이나 화약 제조는 보통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 그중에 탐구심이 왕성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던 이들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겠지.

"남들 힘들게 일 시켜놓고 본인은 아침부터 술이나 마시고 있는 건가? 나도 한 병 줘! 제일 독한 걸로!"

갑작스러운 걸쭉한 험담이 나를 덮친다.

"아니 이 사람이...."

그는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맞은 편 자리에 털썩 앉는다. 떡대 좋은 드워프 무기공 에오르크 레타일이다.

트랑카벨 가문과 슈토르히 용병단을 제외하면, 내 그다지 넓지 않은 인맥에서 상당히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솔직히 이 사람 말고는 아는 무기공이 없어.

"저한테는 뭐라 하셔도 괜찮은데요, 고용주들 앞에서는 말씀을 조금만 조심해 주세요."

"싫다!"

"아 예 그러시겠죠. 대신 잘 참으시면 좋은 술 한 번씩 사겠습니다."

"생각해보마!"

이렇게 성격이 괴팍하고 말을 함부로 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평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드워프 장인` 이다. 듣기로는 전전대 법황이 직접 앉는 옥좌를 설계하기도 했다나. 한곳에서 오래 머물지를 못해서 그렇지, 이력을 뜯어보면 정말 굵직하고 특이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실력은 굉장하다. 무엇보다 어제와 오늘의 기술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의 전장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아무래도 내가 이전 생의 기억이 있고 빠르게 발전한 기술을 본 경험이 있다 보니, 이 세계 기술자들의 둔중한 반응이 답답하다 느낀 적이 많았다. 하지만 에오르크는 분명 보는 눈이 다르다. 인간보다 더 긴 수명을 가진 드워프인지라 다른 관점에서 세계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주로 대륙 동북부 산악지대에서 폐쇄적인 생활을 하는 동족들을 떠나 아예 인간들 사이에 정착한 특이한 드워프니까 보통 사고방식은 아닐 수밖에.

"네가 말했던 가벼운 포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오, 정말입니까? 엄청 빠른데요!"

"포신을 가늘게 만들고, 끈과 굳힌 가죽으로 강도를 보강하라니...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계산해 보니 어떻게 되긴 할 것 같더군."

이전 생의 기억을 뒤져 `2명이 포가를 설치하고 운용할 수 있는` 가벼운 포를 의뢰했더니,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대포의 가치도 모르는 놈은 썩 꺼지라고 욕만 얻어먹었다. 하지만 혼자 가서 생각해봤더니 역시 될 것 같았던 모양이다. 그럼, 된다니깐, 되니까 부탁했지.

"그래도 이런 계집애 팔뚝만 한 포를 어디에 쓰려는 거냐?"

"계집애 팔뚝이라뇨, 보병과 기병의 행군 속도를 따라가면서 언제 어디라도 방열 가능한 경야포는 야전 포병의 꿈인데요?"

"대포란 것은 말이야, 이 술과 같다고!"

에오르크는 마침 도착한 주문했던 술병을 병째로 들더니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병 하나만큼은 먹어야지! 참새 오줌만큼 먹어서는 맛을 모르는 거야!"

"병을 원샷 해 놓고 맛을 논하십니까."

"그럼 한 병 더 마셔봐야겠군. 물론 자네가 사는 거로."

"업무시간에 술을 얼마나 드시려고...."

"가죽포인지 거적대기포인지는 다음 주까지 샘플을 만들어 보도록 하지."

"여기 한 병 주세요! 독한 걸로요."

근육질에 수염투성이 상남자처럼 생겨서는 능글거리며 웃는 게 한 대 때려주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하니까. 원래 가성비 좋은 물건은 어디 하나쯤은 하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중에 대형 포도 뽑긴 할 겁니다. 새로 보강하는 성벽 요새에 포좌에 써야 하거든요."

"그래, 그때는 기대하지. 공성포는 필요 없고? 내가 아주 끝내주는 계획안이 있는데 말이야."

"하하, 지키기도 급급한데 공성포를 어디에 쓰겠어요."

"에이, 아쉽구만."

"카르카냑 성도 외성 보강을 해야 하는데, 아침 산책하시는 겸 살펴봐 주세요."

"이노옴, 대체 내가 뭐라고 생각하길래 오만 잡일을 다 시키는 것이냐?"

"그 뭐냐, 다재다능한 술주정뱅이?"

"이노옴!"

"아, 잠깐만, 술 나왔어요, 술 나왔다니까."

그러게 하자가 좀 있어도 가성비가 좋은 사람이라니까.

조병창 감독과 신무기 개발, 성벽 보강 설계까지 이 공돌이 드워프가 다 해줄 거다. 또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까. 포술 교관이랑 성벽 시공 관리도 시킬 수 있겠는데?

“콘도티에레!”

내가 악덕 기업주 같은 못된 생각을 하면서 드워프식 관절 꺾기의 위협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을 때, 모리츠의 우렁찬 부름이 들린다.

“벌써 저녁 만찬 시간인가?”

“아닙니다, 콘도티에레! 아쥬흐 영주영애께서 부르십니다!”

“어? 무슨 일이야?”

“손님이 오셨습니다!”

요즘 손님이 많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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