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8화 (18/556)

5-3. 아넥시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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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팍! 퍽!

오른쪽 머리 위, 마을 창고 3층 외벽에 총알이 벽에 박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모리츠의 어그로 끌기가 생각보다도 성공한 모양이다. 소리로 보아 못해도 열다섯에서 스물 정도 되는 적 총병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빠캉!

다시 모리츠의 총성이 울린다.

전혀 엉뚱한 쪽에서.

적은 또 한 명 쓰러졌으려나? 뭐 아무리 모리츠라고 해도 백발백중은 아닐뿐더러 마음 놓고 조준도 못 하는데 적은 산개 대형을 취하고 있으니, 빗나갈 가능성은 늘어났을 테니.

하지만 어그로를 충분히 끌고 있으니 아주 잘해주고 있는 거다. 저 십수 발의 총탄이 성벽 위의 민병들을 노렸다면 적지 않은 명중탄이 나왔을 테니까.

지금 모리츠가 하는 일은 이리저리 층이나 창문을 바꿔가면서 잠시 고개를 내밀어 총을 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적들은 엉뚱한데 총알을 낭비했냐면, 그건 사전에 나와 모리츠가 살짝 트릭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흑색화약 무기는 발사 후에 하얀 연기가 자욱하여서 발사 자체를 숨길 수는 없다. 숨길 수 없다면 오히려 드러내서 정신없게 만들어 보자는 데서 착안한 트릭이다.

모리츠가 고개를 내밀만한 창문 몇 군데에는 투구와 막대기를 든 민병대원 아주머니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리고 모리츠의 신호에 따라 막대기에 투구를 얹어 창문 위로 올릴락 말락 하며 어그로를 끄는 것이다.

적 입장에서는 창문에 반짝거리는 투구가 보이니 일단 쏘고 봤을 테고,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확인은 잘 안 되지만 얼마 뒤에 또 다른 데서 총알이 날아올 테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일 거다.

머리에 피가 올랐을 테니 다음 사격은 더 안 맞고, 안 맞으니 또 열받고··· 무한 반복의 지옥에 빠졌을 거다 아마.

모리츠는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할 녀석이니 일단 맡겨두고, 나는 성벽 위의 다른 부분에 신경을 쓴다. 현재 전투는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열심히 돌을 나르고, 올라온 적들을 열심히 압박하고는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그나마 어제 열심히 계획해서 함께 준비했던, 흙을 채운 술통으로 접근로를 제한하는 방식이 적을 꽤 막아주고 있었다. 포도주 집산지인 덕에, 빈 술통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다.

사다리를 통해 올라오는 구역의 좌, 우에 이런 식으로 술통을 배치해서 성벽 위로 올라와도 움직일 공간을 주지 않아 접적 면적을 최대한 줄이기로 한 것인데, 이것도 전투가 길어질수록 올라온 적들이 술통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한계가 오고 있었다.

“이 새끼들 뭐야!”

“밀리면 안 된다! 힘내라!”

“아 찔렸어! 시발, 어어, 그만 밀어 개새끼들아!”

“창 있냐? 창?”

흙을 채운 술통을 밀어내기 위해 힘을 다하는 적들과 막아내기 위해 힘을 다하는 아넥시 민병들은 술통 위로 마구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는데, 옆에서 보기에는 우스워 보일 수 있으나 당사자들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실제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이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내가 보기에 지금 성벽을 올라온 용병들은 폐급이라 제대로 된 ‘전투’에서 사람 구실 하기 힘든 놈들이 다수 섞여 있으나, 이런 막싸움에서는 나름대로 익숙해 보였다. 살살 약을 올리면서 민병들이 성가퀴나 술통 너머로 고개를 내밀게 하고 성 아래에서 저격하게 만드는 바람에 사상자가 자꾸 늘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 저게 뭐야! 그 부상자들 곁에 흰옷을 입고 붕대를 감고 있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 아쥬흐는 저기서 뭐 하는 거야··· 하 정말.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도 눈에 보인다··· 그들의 고귀한 성녀가 그들 사이에 이르러 부상자를 돌보기 시작하자, 주변의 민병들은 버프라도 받은 듯 적 용병들을 사납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게 신앙의 힘인가··· 나는 이용하는 쪽이지만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데···.

어쨌거나, 성벽은 조금은 더 버텨줘야 한다. 저 후방에 대기하는 소수의 총병과 방패병들을 창병에게서 떼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한꺼번에 섬멸할 수 있다.

부디 조금만 버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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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일거에 밀어붙이지 않는 거요? 당신들은 신의 뜻을 지상 대행하는 사자들이 아닌가! 간특한 이단들을 어서 처리하지 않고 이 후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용병 지휘관 하비에르는 자신의 고용주이자, 명목상 이 작은 군대의 총지휘관인 보세낙 드 리몽의 재촉에 짜증이 차올랐다. 가능한 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차근차근 설명한다.

“접근로가 제한되어서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비대는 성문이 열리면 그때 들어갈 예정입니다.”

하비에르와 보세낙, 그리고 약 150명 정도의 병사들이 후방에 배치되어 있다. 120명의 창병, 5명의 총병, 나머지 검과 방패로 무장한 보병들. 모두 하비에르가 신뢰하는 전우들이다. 성문이 열리면 곧바로 진입해 영역을 확보하고 성문 주변을 완전히 장악할 예정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이 몰아칠 때요! 우리가 몰아치면 주신께서 우리의 힘을 빌려 적을 치실 것이 분명하오!"

"음...."

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광신도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니 짜증을 참기 어려웠지만, 슬슬 병력 증원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옆에서 고블린 닮은 수도사가 신경질적으로 찡찡대니 왠지 하기가 싫다. 하비에르는 속으로 한숨을 쉰다.

나무통에 화약을 담아서 성문 앞에서 터뜨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마 성문에 걸린 빗장이나 경첩을 부술 수 있다면 전투는 단번에 끝날 것이다. 팽팽한 와중에 갑자기 폭발에 의해 성문이 열린다? 민병들은 패닉에 빠져 무너진다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고민 끝에, 포기했다. 철이 아닌 나무통은 폭발 방향을 조절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냥 화약만 날리는 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미 화약의 양이 빠듯한데, 그거 다 써버리면 앞으로의 원정을 총 없이 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마을이 끝이 아니라, 서너 군데는 더 들러야 하니 아껴야 한다. 아무리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멍청이들이라고 해도, 기사들을 총 없이 상대하는 것은 좀 어렵다.

다른 방법을 선택하자.

"아쿠토, 네가 지원을 해 줘야겠다."

아쿠토는 방패병 부대의 지휘관으로 하비에르의 부장이다. 벌써 5년 이상 함께 싸워오고 있었으며 충실하고도 단단한 바위 같은 동생이다. 얼굴에 길게 칼자국이 난 검은 피부의 타고 난 보병은 대답 대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칼자루로 방패를 두드려 긍정을 표시한다.

창병과 총병이 지배하는 전장에서 검과 방패로 무장한 방패병의 입지는 `유연한 보조 전력`에 가깝다. 창병만으로도 대열을 유지할 수 있고, 총병만으로도 피해를 줄 수 있기에 무시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세 배나 되는 창병들에게 근접해 마구 썰어버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하비에르는 아쿠토와 그의 부대를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통상적인 보병 갑옷에 쇠를 씌운 방패와 검을 추가로 지급해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고, 병사 개개인의 체력이나 기량에 의존하므로 양성하기도 힘들다. 경시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게 원인이기도 하다. 이 비용으로 방패병을 양성하느니 창병을 늘리겠다는 사령관도 많고.

하지만 하비에르는 아쿠토와 그 부하들을 대단히 신뢰한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아쿠토가 보여줄 것이다.

"절반씩 나뉘어서 무너진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로 진입해. 총병들이 지원해줄 거다."

"알겠습니다."

“후딱 쓸어 버리고 저녁에는 포도주를 마시자고.”

“블랑독 포도주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마지막 남은 5인의 총병 역시 딸려 보내기로 한다. 병종 간의 조합을 중시하는 하비에르 입장에서 예비대를 창병만 남기는 것은 극단적인 일이지만, 전투를 빨리 끝내면 큰 문제는 없겠지.

아쿠토가 방패병과 총병들을 이끌고 성벽으로 향한다. 저격을 걱정해 평소보다 본진을 뒤로 빼놓았기 때문에 거리가 멀다. 저 빌어먹을 저격수 때문이다. 아직도 못 잡았는지 간헐적으로 쩌렁쩌렁 울리는 총성이 들려오곤 한다.

"주께서 영을 통해 우리를 지켜보시니, 검의 대리인의 손을 빌려 악을 치셨을 때를 기억하노라!"

갑자기 보세낙이 노래를 시작했다. 거친 철판을 나이프로 긁어대는 듯한 끔찍한 목소리에 음정 박자도 맞지 않는 성가였지만 그 소리만은 무시무시하게 컸다. 성직자가 부르는 성스러운 노래라기보다는, 한에 맺힌 주술사가 악을 써서 남기는 저주에 가까운 소리였다.

하비에르는 귀를 막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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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저 새끼들 이동하네?”

한참 애를 태우면서 구경만 하던 나는 후방의 적 창병진 근처에서 방패로 무장한 돌격대와 소수의 총병들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환호했다!

적은 분명 자신들이 유리하다 생각했을 것이고, 핵심 예비대를 투입해 막타를 치려는 생각일 것이다. 아마 전위로 세운 놈들은 대충 숫자만 채우는 어중이떠중이 용병이고 지금 오는 놈들이 진짜일 테고.

주디칼리의 전장에서 보았던 무척 강력했던 방패병 돌격대가 생각난다. 어느 도시를 통치하는 참주의 근위대였다. 총병과 포병들이 한 지점만 지겹게 때려서 틈을 만들어 내자, 그 틈으로 뛰어들어 돌파구를 억지로 비틀어 열었었다.

하지만 그건 창병과 총병의 충분한 지원을 받아 적진을 고착시켰을 때나 그 유연함이나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고··· 단독으로는 아무 쓸모도 없다.

이 시대의 전장은 다양한 병종이 협력할수록 강해진다. 아니,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기병에게는 말이다.

“얘들아, 준비 됐니?”

“네!”

“어디로 갈까요?”

내 지휘소··· 라 불리는 어설픈 천막이 있는 2층 상가 건물의 옥상에는 5명의 전령 소년이 대기하고 있었다. 본래 8명이었으나, 3명은 이미 전령으로 보냈다. 무사히 잘 돌아와야 할 텐데.

“후문 쪽에, 말 탄 아저씨들한테 가야 해. 미리 정해둔 암호 기억나지?”

“문 열렸으니까 들어와!”

“그래그래. ‘문 열렸으니까 들어와’라고 전하면 돼. 너희 둘은 후문으로 출발!”

“네, 콘도티테레!”

꼬맹이 두 명이 후문 쪽으로 달려 나간다. 서로 다른 길을 통해 달려가라고 미리 예행연습을 한 상태이다.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니까, 소년들을 도시 내에서 전령으로 쓰려고 한 것인데··· 전장에서의 버릇대로 혹시라도 중간에 방해받을 것을 고려하여 중요한 전령은 2명씩 보내고 있었다.

이런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좆같네.

원래라면 애들은 전령으로도 쓰면 안 되겠지만··· 자기들이 열성적으로 지원했고, 자기네 도시를 지키는 일이니까··· 라고 합리화를 시키고 있었다.

이래서야 ‘효율이 좋다’는 이유로 애들을 전장에 끌어내던 개새끼들과 다를 바가 없잖아···.

그래도 이 전투는 이겨야 한다. 나는 자괴감을 떨쳐내고 남은 세 명을 돌아본다.

“너는 옆 건물에 모리츠 아저씨 알지? 가서 내 신호가 올 때 까지 기다리라고 전해줘.”

“네, 콘도티테레!”

작전 개시 신호는 모리츠의 총소리로 하기로 했다. 그러니 일단은 멈춰야 한다. 잠깐, 모리츠 녀석 무사하겠지?

빠캉!

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요란한 총소리가 울린다. 다시 창고 건물에 파파팍 하고 총알 박히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모리츠가 한 100발 정도는 탱킹한 느낌인데.

잠시 기다린다. 후문으로 간 소년들이 기병 중대장인 파스칼 드 뒤랑과 마브리엘 마슈레에게 명령을 전달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병의 이동속도를 역산하여 명령을 받은 트랑카벨의 기병대가 적절한 위치에 도달할 때까지.

모리츠가 매복한 창고 건물을 올려다보니, 내 쪽으로 향한 창문에 모리츠가 고개를 내밀었다. 명령은 무사히 전달 된 모양이다. 내가 명령을 내리면 모리츠가 발사하고, 기병대에 신호가 간다.

그 와중에 적장이 파견한 돌격대가 성벽에 거의 도착한 모양인지 시야가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제 압박이 더 심해질 테니 시간 승부다. 딱 적절한 타이밍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허억 헉, 콘도테헤에!”

후문 쪽으로 달려갔던 소년이 헉헉대며 돌아왔다.

“고생했어! 별일 없지?”

“네헤! 아무, 헤엑, 없었습니다! 허억!”

나는 손바닥을 두드리며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회중시계가 있으면 좋겠지만, 들고 다닐 정도로 작은 시계는 아주 소수의 기프티드 조합에서만 만들기 때문에 눈이 튀어나오게 비싸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문으로 갔던 또 다른 소년도 돌아온다. 나는 속으로 계산했던 숫자를 끝까지 센 다음, 열다섯을 다시 셌다.

“모리츠 지금이야!”

내 쪽을 바라보고 있던 모리츠가 사라진다.

빠캉!

다시 울려 퍼지는 총소리. 자, 때가 왔다 약탈자 놈들, 우리 트랑카벨 신생 기병대의 맛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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