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기병대 출진
“이틀 후가 개선식인데, 참석하고 가시면 안 될까요?”
아실이 애처로운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한다. 가문 사정으로 이른 성인식을 하고 공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15세 소년. 그야 불안하겠지.
솔직히 나도 곁에 있어 주고 싶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쁜 녀석들이 오기 전에 미리 가서 준비해야 합니다.”
“네···.”
“그리고 이번 개선식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아실 자작님입니다.”
“실제로 지휘하신 것은 에트 경, 콘도티에레 님이시죠. 다들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짐짓 엄숙한 표정과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그냥 참모나 지휘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총사령관인 아실 자작님이 계셨기에 그 군대가 유지될 수 있었고, 단호하게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겁니다.”
“....”
“앞으로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아실 자작께서는 군대의 중심입니다. 저 같은 ‘실무자’들을 쓰는 사람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소년의 얼굴이 굳는다. 이런, 너무 진지하게 말했네. 나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개선식 이후 블랑독 전역에서 모인 귀족분들을 만나셔야 한다면서요?”
“네! ...맞아요. 솔직히 조금 무섭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네?”
“제가 트랑카벨의 영토 밖으로 나가서 나쁜 녀석들을 해치우면, 그 귀족들도 트랑카벨 가문은 더 인정해 주겠죠!”
“아! 그렇겠네요, 맞습니다.”
“어찌 보면 아실 자작님께 큰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부디 잘 부탁드려요.”
“잘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콘도티에레께서도···.”
우물쭈물하던 아실이 허리를 쭉 편다.
“몸조심하시고, 북부의 백성들을 지켜주세요.”
“물론입니다.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올게요.”
나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항구도시 라니오타에서 총을 팔았던 대머리 상인이 선물로 줬던 권총이다. 내가 가지고 싶긴 하지만 나는 이미 총이 있으니까, 트랑카벨의 차기 주인에게 어울리는 명품이기도 하고.
“저 주시는 거예요?”
“예, 아주 좋은 총입니다. 치륜식은 화승식과 쏘는 방법이 조금 다르니, 돌아오게 되면 가르쳐 드리지요. 아니면 톨마르 경께서 사용법을 아실 겁니다.”
“아뇨! 콘도티에레께서 돌아오시면 배우겠습니다!”
아실은 싱글벙글하며 권총을 이리저리 살핀다. 좋은 나무를 써서 은은하게 향기도 나고, 그냥 장식품으로 따져도 명품이지 이거.
“저는 훈련 부대 때문에··· 출정하실 때 남문 쪽에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친 아실이 멀어지자, 이번에는 아쥬흐가 다가온다. 왠지 아쥬흐는 나와 아실의 대화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끔찍이도 사랑하는 동생이지만 직접 대하려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 같기도 하고.
“아쥬흐 공··· 어, 복장이?”
“많이 이상한가요?”
“아뇨, 어울리는데요, 낯설어서···.”
그녀의 복장은 주디칼리식 정장과 사냥복을 반쯤 섞은 느낌이다. 통이 좁은 바지와 흰색 셔츠, 그 위에 입은 붉은색 공단 조끼는 영락없는 주디칼리 부자집 도련님의 모습.
하지만 잘 정돈된 금발을 덮은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삼각모,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검은색이지만 모서리에 금실로 포인트가 들어간 긴 겉옷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가 이색적인 매력을 보여준다.
잘못 매칭하면 돈만 많은 졸부의 괴짜 취미로 몰릴 수 있겠으나, 날씬하고 비율이 좋은 아쥬흐이기에 소화할 수 있는 복장이겠지.
마지막으로, 가느다란 허리를 조이고 있는 가죽 허리띠에 매달린 것은 둥그스름한 손 보호대에 세련된 장식이 들어간 세검이다.
“저도 같이 갈게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네에?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전쟁 중인데요, 위험하지 않은 장소가 어디 있겠어요?”
“하아··· 이번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호위하거나 시중을 들 사람도···.”
“제 몸 정도는 챙길 수 있어요. 델로나에서 몇 년을 혼자 살았는데요.”
“으음···.”
“그리고 그냥 구경하러 가는 것은 아니에요. 이번 출전은 블랑독의 군소 영주들을 많이 만나게 될 텐데 그들을 설득하고 구슬리는 일을 누가 하겠어요.”
“으으음···.”
그건 맞는 말이다. 이거 고민이 되는데. 하지만 아실의 개선식과, 이어지는 연회를 주관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데리고 다녀오시게.”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
하인이 미는 휠체어에 탄 트랑카벨의 가주, 아롱드 영감님이 나타났다.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아주 좋네! 요새 손주들이나 자네를 보면 내가 다 신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정식으로 후계자를 정하는 자리인데 내가 나서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나!”
“허어··· 그렇긴 합니다만.”
생각해보면 나는 트랑카벨 가문의 사람들을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마지못해 말하자, 아쥬흐가 미소를 짓는다.
“블랑독의 귀족들은 나와 아실이 잘 구워삶아 놓으마, 잘 다녀오거라!”
“다녀올게요, 할아버지.”
아쥬흐가 휠체어에 탄 할아버지와 포옹하더니 나를 따른다. 우리가 밖으로 걸어가자 하인들이 문을 열어준다. 갑자기 비치는 남부의 햇빛이 따갑다.
“오오, 아쥬흐 영주영애께서 함께 가시는 겁니까!”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리츠가 커다란 소리로 외친다.
“그래요. 잘 부탁드려요.”
“승마복도 무척 잘 어울리십니다! 적군이 보면 아름다움에 눈이 멀겠네요! 여러분, 아쥬흐 영주영애께서 이번 출정에 함께하십니다!”
모리츠가 앞장서서 문을 나가며 우렁찬 소리로 외친다. 아주 홍보 전문가로 제격이다.
참고로, 모리츠의 어딘가 닭살이 돋는 칭찬 멘트는 조금도 꾸며내거나 빈정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남의 장점을 찾아내는 전문가이고 솔직한 녀석이다. 으··· 나도 처음 만났을 때 친해지기 전에는 덩치 큰 이상한 놈이 기분 나쁜 아첨 한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영주영애가 무슨 말인가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모리츠가 살았던 동네에서 쓰는 여 귀족에 대한 존칭이 아닐까요?”
“흐음, 콘도티에레 에트도 그룬발트에 오래 계시지 않았나요?”
“그룬발트가 워낙 넓어서요. 지역마다 문화가 많이 달라요.”
우리는 문으로 향하는 짧고 서늘한 회랑을 속닥거리며 함께 걸었다. 슬쩍 쳐다보니 아쥬흐는 전혀 긴장한 모습이 아니다. 대단하네, 나는 엄청나게 긴장되는데. 역시 이게 4개 자작령을 운영하는 귀족의 위엄인가.
아쥬흐가 나와 함께 정문을 나서자, 모리츠의 홍보 덕택인지 우워어! 하는 함성이 울린다.
정확히 200명의 기병.
전원이 트랑카벨의 가신이며, 귀족부터 향사까지 계층은 다르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충신들이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훈련받아 승마에 익숙한 20~40세 사이의 청년들.
굳이 내가 선발하지 않아도 트랑카벨 군대의 주축이 되었을 인물들이다. 이제는 이들을 중심으로 신규 기병 연대를 편성 예정이다. 연대 번호는 뭐로 하는 게 좋을까.
모두 새로 지급한 번쩍번쩍하는 퀴레이스 갑옷을 입고 있다. 물론 라니오타에서 관통 검증에 실패한 그 상인 말고, 다른 쪽으로 수입한 물건이다. 만듦새도 좋고, 전문적인 갑옷공 아키텍티의 세공을 받아 강화 기프트가 입혀진 좋은 물건들이다. 얼굴을 제외한 상체 전부와 허벅지를 덮은 모습이 늠름하고, 어딘가 무기질적인 느낌을 줘서 정말 멋지다.
그리고 각각 안장에는 좌우 각각 1자루의 치륜식 권총이 매달려 있다. 화승식은 말 위에서 쓰기가 매우 어렵다. 달리고 흔들리다 보면 화승의 불이 꺼지기도 쉬웠고 화문이 열려있어 자칫하면 점화용 화약이 밖으로 쏟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덮개가 달린 치륜식은 안정성이 높았다. 습기에도 좀 더 강하고 말이다.
...대신 더 비싸고 복잡하지만.
내가 이들을 선발한 이유는 아직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부 블랑독에 데려갈 기동 부대로 임시 편성했기 때문이다.
적과 싸우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북부를 순찰하며 ‘트랑카벨의 얼굴’로 각인시키게 될 부대이다.
“전원, 승마!”
내 신호를 받은 모리츠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모두 말에 오른다. 약간 느슨했던 대열이 순식간에 자로 잰 듯 갖춰진다. 역시, 말에 보통 익숙한 이들이 아니다.
나도 말에 오른다. 아쥬흐에게 혹시 도움이 필요할까 싶었으나 훌쩍하고 혼자 잘도 오른다. 그러고 보니 이 아가씨, 취미로 검술을 가르쳤더니 델로나 대학 검술 대회 입상도 했었지. 규칙을 정하고 점수제로 하는 스포츠에 가까운 시합이지만 어쨌든 남자 경쟁자들을 이기고 올라갔던 것이다.
...한 손으로만 검술을 하면 몸이 짝짝이가 된다는 말에, 고집스럽게 왼손으로도 똑같은 만큼의 훈련을 소화했던 기묘한 성실함이 기억에 남네.
자, 출발하기 전에 구경하러 와 주신 분들을 위해 간단한 묘기를 보여주자.
“1열 앞으로!”
넓은 광장에 한 줄로 늘어선 50기의 기병이 총총걸음으로 행진을 시작한다.
“1열 반전! 2열 앞으로!”
첫 줄의 50기가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을 왼쪽으로 돌리더니 진행 방향을 반대로 하고, 뒷줄의 50기가 그대로 나아간다.
부딪힐까 조마조마한 상황도 잠시, 각각 50기, 총 100기의 기병대는 정확하게 부딪히지 않고 각자 말 한 마리 분의 공간을 남기고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없는 와중에 최근까지 확실하게 훈련한 움직임이다.
구경하던 이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나온다. 당연히 존나 멋지지! 번쩍번쩍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병들이 이렇게 완벽하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안 멋져!
그렇게 3열, 4열도 같은 과정을 거치고, 다시 완벽하게 대열을 형성한다. 내가 선발할 때 신경을 썼던 것은 어릴 때부터 말에 익숙해졌나 하는 점도 있었으니까, 모두 말과 한 몸처럼 움직인다.
“전진!”
한참 이어지는 환호 소리가 잦아들자, 우리는 대열을 이루어 광장을 떠나 남문 방향으로 움직인다. 내가 맨 앞에 아쥬흐와 나란히, 바로 뒤를 내 부관인 모리츠가 따른다. 외부인인 모리츠를 갑자기 중간 관리직으로 앉히면 미움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 것인데 모리츠가 벌써부터 다른 기병 대원들과 친해진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뒤로는 제1 중대장으로 100명을 이끄는 파스칼 드 뒤랑과 그의 부대가, 마지막으로 제2 중대장인 마브리엘 마슈레가 이끄는 부대가 따른다.
파스칼 드 뒤랑은 30대 초반의 ‘정말 귀족처럼 생긴’ 콧수염 청년이다. 블랑독의 토착 귀족이라던데, 트랑카벨의 오랜 가신이라고 한다. 현재는 남쪽에 있는 몽세나의 성주로 일하고 있다.
마브리엘 마슈레는 리니 능선 전투에서 함께 싸웠던 혈기 넘치는 노인 톨마르 마슈레의 장남이다. 젊을 때 트랑카벨의 군무를 도맡아 하느라 장가를 늦게 갔다고 하더니, 아직 26살의 젊은 기사이다. 톨마르 경은 아들이 미덥지 못한지 신신당부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 지휘관이 될 것 같다. 마슈레 집안의 둘째 아들인 가스파르 역시 부대에 함께하고 있는데, 이놈은 좀 뺀질뺀질해 보이더라.
좁은 시내를 지나 남문으로 향하자, 소문을 듣고 몰려온 인파가 북적댄다. 하긴, 군대가 출정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기는 하지.
“트랑카벨 만세!”
“신의 가호를!”
“트랑카벨! 트랑카벨!”
“무사히 돌아와!”
제각각의 외침 속에 가운데를 통과하자니, 굉장한 열기다.
“콘도티에레!”
바로 뒤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모리츠 네 이놈!
“콘도티에레!”
“트랑카벨!”
“콘도티에레 힘내!”
외침 사이에 콘도티에레가 섞이기 시작했다. 부끄럽게··· 나는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손이라도 흔들어 주지 그래요?”
무척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은 아쥬흐가 말하자, 나는 마지 못해 손을 들어 응해주었다. 환호성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성문을 통과하자 밖에는 아실과 훈련병들이 보인다. 날도 더운데 고생이 많다! 아직은 어수룩한 훈련병이지만 언젠가 베테랑이 되어 트랑카벨의 군대를 떠받치는 이들이 되겠지.
“콘도티에레 에트! 아쥬흐 누님! 잘 다녀오세요.”
아실은 누나를 보고 놀라지도 않네. 미리 이야기된 거였나. 역시 트랑카벨 사람들은 뭐 하나 대충 하지를 않아···.
뒤에서는 톨마르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노 기사 역시 정말로 함께 가고 싶어 했지만, 훈련과 편성을 반복 중인 신병들을 통제할 인물이 필요했기에 남기로 했다. 대신 두 아들을 맡기며 신신당부해 주셨지.
“마브리엘! 가스파르! 이놈들, 집안 이름에 먹칠은 하지 말거라!”
“아, 아버지! 창피하니까 그만 좀 하세요!”
저 뒤편에서 들리는 소리에 와르르하고 웃음이 터진다. 톨마르 영감도 참 목소리가 좀 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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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카냑을 빠져나온 우리는 속도를 높여 로데브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벨모제 부근에서 강을 건너, 다시 북쪽으로 향하는 지류를 따라 올라갔다.
그 북쪽, 북 로데브 강에서 그은 연장선보다 이북은 ‘트랑카벨이 아닌 블랑독’이다. 뭐 그 아래 지역에도 트랑카벨의 가신이 아닌 영주들이야 잔뜩 있지만, 공식적인 교류도 거의 끊긴 지역이라는 이야기지.
로데브 강 남쪽 지역에 비해서 좀 더 건조하고 거친 지역이라고 하던데, 거주민들도 거친 모양이다.
얼마 전 빈사의 몸으로 트랑카벨에 도착했던 청년 기사 역시 여기 어딘가의 말리크 남작령 출신이라고 했었지. 가족들은 모두 참살되었다 했던가.
여기서부터는 잠시 부대를 나눌 필요가 있겠다.
“잠시 휴식!”
“잠시 휴시익!”
모리츠의 쩌렁쩌렁한 목청은 정말 도움이 되는구나. 모두 말에 내려서 잠시 쉬고, 지휘부는 한자리에 잠시 모인다.
우리는 지도를 펼쳤다. 참고로 가죽으로 덧댄 블랑독의 지도는 모리츠가 양손으로 펼쳐서 들고 있다. 참으로 만능 부관이다.
“잠시 부대를 나누겠습니다.”
두 중대 지휘관의 표정이 진지하다.
“파스칼 드 뒤랑 경, 전에 블랑독 북부를 여행하신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어렸을 때, 북부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담고 싶어서 잠시 편력한 경험이 있지요.”
“그림을 그리셨을 정도면 꼼꼼히 잘 살피고 다니셨겠네요?”
“그렇습니다. 그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역시 역시 예술가 성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트랑카벨 저택에 머물 때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 있는데 정말 잘하더라. 그림도 그렸었구만.
“그럼 이쪽, 아완드 영지 쪽을 통해서 동쪽으로 길게 이동하면서 정보를 모아 주세요. 혹시 적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알겠습니다, 콘도티에레.”
“마브리엘 경은 저와 함께 갑니다. 우리 경로는 이렇게, 서쪽 루트를 타고 가겠네요.”
“알겠습니다, 콘도티에레.”
“그럼 이틀 후에, 여기 아넥시 남작령에서 다시 합류하기로 합니다. 전투가 벌어질 것 같으면 합류 전까지는 될 수 있는 대로 회피하는 것을 방침으로 합니다.”
지시는 짧게 이루어졌고, 5분간 더 쉬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각자 자유 휴식.
“콘도티에레 에트, 일단 가져오기는 했는데···.”
아쥬흐가 왠지 우물쭈물하며 손에 든 것을 내민다. 새하얗게 꾸며진 총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안장에 총이 있는 것을 보긴 했는데.
나는 총기의 겉면을 우선 살핀다. 겉보기에는 치륜식 총이다. 길이를 보면 총열을 단축한 기병총 정도로 보이는데, 여성용으로 작게 만든 버전인가 싶기도 하고. 시커먼 실전용 양산품만 만져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와 이거, 상아로 겉을 바르고 은으로 마감을 한 모양이다. 장난 아니게 호화롭고 비싸 보이는데.
설마 장식품은 아닌가 싶어 화문을 열어 살펴보고, 태엽을 감아 방아쇠를 당겨보기도 한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덮개가 열리고 바퀴가 돌아가며 불꽃이 튄다. 아주 상태가 좋다. 화약만 넣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겠네.
“실제로 쏘는 것이 주저 될 정도로 화려한 무기지만 작동은 잘 되어 보입니다.”
“그래요? 선물 받은 무기인데....”
그녀는 왠지 좀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평소와 달라 보인다. 총에 뭔가 켕기는 것이 있나. 아! 쓰는 게 아까워서 그런 모양이다. 확실히 이 정도 총이면 그렇지.
“어! 그거 생미엘의 총 아닙니까?”
말들을 살피고 온 모리츠가 아는 체를 한다. 아쥬흐가 총을 건네주자, 나처럼 이리저리 살펴본다.
“엘랑키아 왕실에 총을 납품하기로 유명한 총기 장인입니다. 처음엔 그냥 명품 총기 장인이었는데, 갈수록 화려한 장식을 달아서 유명해졌습니다!”
“허어, 그런 것도 있었구나.”
“어차피 쓰다 보면 닳고 망가지는 게 무기인데, 거기에 상아에 은에··· 하하! 보기 좋긴 합니다!”
“그렇구나.”
“아주 잘 맞는 총입니다. 영주영애께서 전장에 나오는 상황은 저희가 안 만들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영주영애의 아름다움에 걸맞은 무기입니다!”
총을 돌려받는 아쥬흐의 얼굴이 빨갛다. 그래, 나도 눈앞에서 저런 소리 들으면 기쁜 것은 둘째치고 좀 쪽팔리긴 하겠다.
“이제 슬슬 출발합시다!”
시간이 다 되었는지, 모리츠가 외친다. 쉬고 있던 이들이 어슬렁거리며 일어나 말에 다시 마구를 얹는다.
적은 어디까지 왔을지. 아예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게 가장 좋기는 한데.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