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타오르는 블랑독
나를 껴안은 상대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갈비뼈가 아플 정도였기 때문에 반가워서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암살이 목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뭐야! 누구야, 당신?”
나는 몸부림을 쳐 근육질 팔을 풀어내고 물었다.
“콘도티에레! 설마 저를 잊어버리신 겁니까?”
“설마 모리츠?“
“옙! 모리츠 디트마르 폰 뮌타우젠! 콘도티에레의 부름에 응해 방금 도착했습니다!”
훤칠한 키에 근육질 몸에, 약간 느끼한 인상을 가진 청년이 싱긋 웃으면서 과장되게 인사를 한다. 반쯤 걷어 올린 팔뚝에 튀어나온 힘줄과 근육이 어마무시하다. 죽일 생각이었으면 진짜 눌려서 죽었을 것 같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네에? 콘도티에레께서 부르셨잖습니까?”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냐는 말이지.”
“빨리 뵙고 싶어서 가장 빠른 쾌속선을 잡아타고 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옛 용병대 부하 녀석은 특별한 기프트가 있었다. 쾌속선을 타고 왔다면 조금 이해가 된다.
그러고 보니, 갑옷 상인이 당황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아··· 갑옷 방탄 실험하고 있었지.
“아 그리고 갑옷 한가운데를 뻥 뚫으면 어떡해?”
“네? 그러려고 하신 것 아닌가요?”
“나는 일부러 옆구리 쪽 비스듬한 면을 맞히려고 한 거야. 일부러 노리다 보니 살짝 빗나갔잖아. 가운데 노렸으면 나도 단발에 명중했지.”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정 중앙을 노렸으나 빗나갔다.
“그럼···.”
타앙! 또 한 발이 발사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갑옷의 옆구리 쪽 비스듬한 철판에 구멍이 뚫린다. 뒤 편에 받쳐놓은 모래주머니에서 바닷가 모래가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이러면 되었습니까?”
“어··· 그래. 여전히 총은 잘 쏘는구나.”
모리츠는 남들 두 배는 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기쁜 티를 낸다. 으 이 녀석, 참 좋은 녀석인데 묘하게 이런 점이 거슬려. 여자에게 인기 좋게 생겨가지고 말이야.
그래도, 나의 좁디좁은 인간관계에서 마음 놓고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료 중 하나이다.
“이 거리에서 소총도 아니고 권총에 뻥뻥 뚫리면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구멍이 두 개 뚫린 흉갑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군납업자에게 찾아가 따지기 시작했다.
그냥 안으로 움푹 파인 정도도 아니고, 타원형으로 좌우로 넓게 뚫렸다. 이러면 관통 과정에서 탄체가 변형되고 갑옷의 부서진 조각까지 같이 안쪽으로 흩어져 비산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어떤 점에서는 맨몸에 맞는 것보다 위험하지. 납 조각이며 철 조각이 내장을 온통 찢어 놓으니까.
게다가 총에 뚫리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쇠뇌나 창, 칼 같은 냉병기는 확실하게 막아주는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좀 큰 충격에 깨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 그게···.”
총기는 한 군데에 왕창 주문했으면서, 갑옷은 100개씩만 주문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방탄 보증 완료라고 가라치는 놈들이 워낙 많아야지.
키가 작고 비쩍 마른 군납업자는 불쌍할 정도로 땀을 흘리며 눈알을 돌리다가, 이내 고개가 땅에 땋을 지경으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콘도티에레! 제가 잠시 어리석은 마음을 먹었습니다!”
평소에 잘 거래하지 않는 엘랑키아 남부에서 주문이 들어오니까, 적당히 해먹을 수 있겠거니 생각한 건가.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겉보기에는 멀끔하고, 방탄 시험을 한 도탄 자국도 있으니 그냥 받았을지 모르지.
하지만 나는 내 병사들에게 이따위 갑옷은 못 입힌다.
“한 번 더 기회를 드린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네? 기, 기회를···.”
“이대로라면 업자님이 속한 상단이나, 상단이 없다면 지역 길드에 클레임을 요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아마 앞으로 장사 하시기 어렵겠죠. 제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흐, 히익! 아닙니다!”
남자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연다.
“50벌! 퀴레이스 갑옷과 창병 갑옷 각각 50벌을 추가로 납품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각각 150벌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오오, 생각보다 센데. 한 120벌쯤 부를 줄 알았는데. 적어도 자기 책임의 크기는 알고 있다 이건가.
“...그 정도면 좋습니다. 새 물건이 도착하면 다시 테스트해 보고, 괜찮다면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물론 추가 주문도 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콘도티에레!”
이 정도면 됐겠지. 앞으로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잘 챙기려고 할 거야.
굽실거리는 납품업자를 뒤로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는 모리츠와 잠시 걷는다.
“오오, 역시 콘도티에레, 자비로우십니다!”
“다 계산이 있으니 한 거지. 모리츠, 너는 어떻게 지냈어?”
“동료들과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용병단 본대는 지금 나우데사에서 비르카제 공작의 군대에 종군 중입니다. 저는 업무 처리 때문에 주디칼리에 돌아와 있었구요.”
“북방 전쟁 끝난 건 알아?”
“헉! 정말입니까!”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보니 진짜 몰랐나 보네. 이 녀석의 리액션은 항상 과도하다. 정말로 순수하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지만.
“그래서 말이야 내가 이번에···.”
“하겠습니다!”
“조건 정도는 좀 들어!”
“지옥을 가자 하셔도 갈 건데요?”
“으으, 엘랑키아 국왕군이랑 붙을 지도 모르는데?”
“딱 좋네요. 나우데사에서 우리 용병단이 때려잡은 엘랑키아 기사들이 수백은 될 겁니다!”
“...우리 이단 편들어서 파문 받을지도 몰라.”
“파문 무서우면 용병을 어떻게 합니까?”
대답 한 번 시원시원하다. 한편으로는 고맙네. 떠난 지 오래된 옛 친구에게도 이렇게 잘 대해주다니.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런데 혼자 온 거야? 다른 녀석들은 잘 지내?”
“아!”
갑자기 커다란 손바닥으로 박수를 짝하고 친다.
“첼레스티나!”
“첼레스티나가 왜?”
“함께 오기로 했는데 놓고 왔네요.”
“뭐? 그 녀석 길치잖아?”
“아, 첼레스티나도 콘도티에레 엄청 보고 싶어 했었는데, 참 안된 일입니다!”
아니··· 자기가 두고 왔으면서 뻔뻔한 것 아닌가? 성실한 녀석인데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두고 온 거야?”
“배 떠날 시간이 다 됐는데 안 왔습니다!”
“또 어디서 길을 잃은 모양이구나···.”
“그래도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은 하니까요, 믿고 기다려야죠!”
“그래···.”
모리츠도, 첼레스티나도 용병 시절의 동료들이다. 그룬발트에서, 또 주디칼리에서 함께 했었고, 그렇게 하나 둘 모여 결국 용병단을 결성했었다.
슈토르히 용병단.
용병단 이름이 황새라니··· 지금 생각하면 작명 센스가 좀 어떻게 된 인간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계에 아무것도 없이 방황하던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며 존재들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롱드 트랑카벨 영감님도 그때 만났었고···.
추억이다··· 라고 생각하려니, 이제 다시 현실이 되었다.
기왕 지옥을 가야 한다면, 가장 든든한 친구들과 함께.
###
다음 전쟁 소식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항구도시 라니오타에서 일을 마치고 복귀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새로운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상처투성이로 온몸에 붕대를 감고 고열과 싸우는 불쌍한 청년의 형태를 하고 찾아왔다.
“상처가 덧나고 염증이 심해서··· 혼수상태예요.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일 정도···.”
아쥬흐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한다. 자꾸 잊어버릴 것 같지만, 그녀는 주디칼리의 델로나 대학에서 공부한 진짜 의사이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름은 로용 드 말리크, 말리크 남작의 둘째 아들이라고 해요.”
그가 실신 전에 남겼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200명 정도의 용병들이 무리를 지어 블랑독 북동부를 침입했다. 이 지역은 남작령이나 드문드문 있을 정도로 손바닥만 한 영토를 가진 소영주들이 난립한 지역이다. 용병들은 교묘하게 인구가 적은 지역들을 기습해 약탈하고, 주민들을 ‘심판’ 했다.
말이 심판이지, 그냥 정순파 신도로 몰아서 죽인 거겠지. 고문당하며 이단으로 몰린 이들이 실제로 정순파 신도인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갑자기 습격당해 잡혀 온 무고한 이들이 자신이 정순파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약탈을 일삼는 용병들은 몇 개나 되는 마을을 초토화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정말···. 종교의 순기능은 물론 인정하지만, 종종 맹목이 되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면 역겹기 그지없다.
“그런데 대체 정순파가 뭔가요? 정말로 법황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신앙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이렇게 죽여대는 건가요?”
아쥬흐가 짜증 난다는 듯 말한다. 특히 합리의 극치인 의학을 공부한 그녀에게는 더더욱 어처구니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교단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도 있지만, 근본 교리가 달라서 법황청의 미움을 샀습니다.”
“그 교리가 무엇인가요?”
“현 법황청은 일원계승론을 유일무이한 정론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원계승론이 뭔지 아세요?”
“...미안해요, 모르겠어요.”
아쥬흐는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모르겠다 대답한다. 옆에 있는 모리츠 역시 고개를 흔든다.
으으음··· 이게 말로 하자면 길고 복잡한데.
“성사 중에 사제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하늘에 계신 성스러운 주, 지상에 내려 가까이 살피시는 영, 그리고 신의 검을 뽑은 대리인.”
“성전에 가면 항상 듣는 말이네요.”
“주와 영, 대리인이라는 세 존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항상 교단의 뜨거운 감자였거든요. 교단의 정론인 일원계승론은, 주가 가장 높은 존재이고 대리인이 가장 낮은 존재이나, 이는 격의 차이이지 세 존재의 본질은 동등하다 보는 해석이에요.”
갑자기 아쥬흐가 나를 외계인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정순파는 여기서 다른 해석을 합니다. 주와 영, 대리인은 모두 다른 존재라는 것이죠. 신이 신을 흠모하고 숭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신이 신을 창조하지 않는다. 신을 숭배하는 것은 인간이며, 신이 만들어낸 존재 또한 인간이라는 해석입니다.”
“....”
“삼원분리론이라 하죠.”
내가 믿지도 않는 종교 지식에 대해 이렇게 빠삭하게 알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원래 콘도티에레 에트가 굉장히 명석하신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쥬흐가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망설인다. 아마 덜 무례하게 보일 말을 찾고 있겠지.
“의외의 지식에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네요. 혹시 주신교의 독실한 신자신가요?”
“그럴 리가요. 애초에 독실한 신자들은 이런 것 잘 모릅니다.”
그렇지. 교단과 사제가 설명해주는 것만 잘 따르면 되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이단에 몰리지 않으려구요. 어릴 때는 이단심문관이 정말 무서웠거든요. 마을 광장에서 사람을 태워 죽이는 모습을 멀리서지만 처음 본 날 잠을 못 잤어요.”
아직 순진하던 시절, 그래서 교리를 열심히 공부했었다. 미리 이단에 대해 알고 있으면 이단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그 행위 자체가 이단으로 몰리는 행동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나 알았다.
뭐, 다행히도 아직 화형대에 올라가진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설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네요.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다니···.”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알 필요도 없구요.”
이 세계의 종교나, 전생하기 전 세계의 중세나 마찬가지다. 시끄러운 이단 토벌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구실일 뿐이고, 결국은 정치적인 고려 때문이니까.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방침입니다.”
마을들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한 다음 돌아간 놈들.
분명히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맛을 보았으니까, 덩치를 불려서. 맛집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어중이떠중이들 다 한 번씩 들르는 것과 같지. 물론 맛집의 경우 어중이떠중이는 소중한 손님이 될 사람들이지만, 이 경우는 그냥 개자식들이고.
나도 용병이지만, 힘들고 위험한 전투보다 쉬운 약탈에만 눈독을 들이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 많다는 것은 알지.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쥬흐가 망설이다가 입을 연다.
"그래도 저는 트랑카벨의 백성들이 우선이에요. 지금 전군이 재편에 힘쓰고 있는데... 준비되지 않은 출병은 저는 반대예요."
그녀의 표정은 슬퍼 보인다. 그녀의 번민은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니, 나니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아실 자작님의 개선식은 중요한 행사입니다. 단순한 블랑독의 영주들이 다 모이는 외교적 행사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방해하면 안 되죠.”
“그럼 어떻게···.”
“용병의 방식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