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화 (3/556)

1-3. 퇴역하고 싶은 용병

내 외침에 놀란 듯, 기사가 잠시 멈춘다. 몸을 조금 돌려 내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투구의 면갑을 올린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네. 야 임마, 정신이 나간 거냐. 전투 중에, 그것도 적을 코앞에 두고 면갑을 올리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창병들이 맨 얼굴 찌르면 어쩌려고. 기껏 기프트로 강화시킨 주제에 말이다.

게다가 멍청한 새끼가 남자답게 잘생겨서 짜증이 나네···.

“그렇다! 나는 그레비 드 상포리앙 백작의 장남, 카렐 드 상포리앙이다! 귀하는 누구인가?”

선이 굵고 각진 턱을 가진, 부리부리한 눈의 기사가 고풍스러운 자기소개를 한다.

“내 이름은 에트요.”

아마 내 목소리가 끝까지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름은’을 말하면서 거의 동시에 권총을 뻗어 쏴 버렸거든. 갑작스러운 총성에 놀란 바로 옆 아군 병사의 어깨가 펄쩍 뛰는 게 느껴진다.

“크아악!”

비명과 함께 카렐 드 상포리앙의 상체가 크게 휘청인다. 갑옷의 가슴 쪽에 작은 흠집이 난다. 예상대로, 소총도 아니고 권총에서 발사된 탄환은 마법으로 강화된 갑옷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그렇든, 운이 좋아서 그렇든, 기프트로 강화를 해서 그렇든 말이야, 갑옷이나 투구가 총알을 막아 줘도 그 부위는 아프다. 진짜, 존나게, 욕 나오도록.

나도 한 번 튕겨봐서 알지. 물론 관통당했을 때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카렐은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뒤로 휘었던 허리를 다시 앞으로 숙이고는 이를 악문다. 억지로 앓는 소리를 참는 것 같다. 그야 아프다니까. 뒈질 만큼 아플 거야.

그러나 이내 다시 허리를 세우고 나를 노려본다. 하얀 피부가 분노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이 분노와 고통으로 찌푸려진 꼴을 보니 음습하고도 시커먼 기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임마 총 안 맞아도 아프다고. 얼굴이 평생 아팠어 시발.

“끄으으으, 비겁한 녀석! 가문조차 밝히지 않고 무슨 짓인···.”

그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내가 또 쐈거든.

두 번째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잔뜩 조여놓은 태엽이 풀리고 화약 뚜껑이 열린다. 뚜껑으로 가려져 있던 격철에 물린 황철석이 태엽의 힘으로 회전하기 시작한 철제 바퀴와 마찰한다. 불꽃이 일어나고 화약이 점화. 그리고···.

탕!

“끄으으악!”

당당한 체구를 가진 카렐의 상체가 다시 휘청한다. 촘촘한 아군 창날 사이에 끼었다가, 이번에는 아예 뒤로 발라당 쓰러져 버린다.

“크흑, 컥!”

쓰러진 카렐이 부들부들 떨며 괴상한 소리를 낸다. 얼마 뒤 축 늘어진다. 입가에서 거품이 일어난다. 조금 있으면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겠지. 어 시발 이대로 두면 안 되는데.

나는 아직 화약 연기가 풀풀 풍기는 권총을 권총집에 돌려 넣고, 무릎을 꿇고 창대 아래로 기어들어 간다. 쓰러져 경련하는 카렐의 발목을 잡아끈다. 아군 병사들도, 적군 병사들도 모두 놀란 것 같다.

아마 카렐이 지금의 나처럼 재빨리 네발로 기어서 창방진 안으로 파고들었다면 훨씬 까다로웠을 것이다. 아니면 뭐 굴러서 들어왔다거나. 최소 아군 병사 두셋은 쓰러뜨렸을 테고, 방진 자체가 흔들렸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귀족이고, 기사잖아.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돌지 않는 인종이니까.

“자 트랑카벨의 아들들아! 적장을 쓰러뜨렸다! 나머지 떨거지들을 늪으로 밀어 넣어 버려라!”

“예엣!”

“전진!”

“하아!”

병사들이 하아, 하아! 하는 구령 소리와 함께 전진을 시작한다. 한번에 반걸음씩. 아주 천천히, 대열을 이루어 나아간다.

너무 느리지 않냐고? 정면에서 지휘관을 잃고 어쩔 줄 모르는 적병들에게는 그렇지 않을걸. 지금까지는 뚫지 못해서 답답하던 창벽이 갑자기 나한테 다가오기 시작하는데.

그 갑자기 토할 것 같은 공포는 당해본 사람만 알지.

우리 병사들이 차근차근 적군을 방금 그들이 벗어난 늪지대로 밀어 넣는 사이, 나는 낑낑대며 카렐 드 상포리앙의 덩치를 대열 후방으로 끌어냈다.

뒤에서 내가 하는 짓을 지켜보던 장교들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다.

“방진이 늪지대에 들어가기 전에 멈춰주게. 그걸로 충분할 거야.”

“알겠습니다!”

장교 중 하나에 지시를 내린 후, 나는 서둘러 카렐의 투구와 흉갑을 벗겼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보라색이 되어간다. 손등을 이마에 대 보니 시체처럼 차갑다.

아아, 이건 심장진탕이라고 한다. 가슴을 세게 얻어맞아 심장에 이상이 오는 것이지.

심장진탕은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뇌진탕처럼 실제로 있는 증상이다. 보통 심부전 현상이 나타나 일시적 기절이나 호흡 곤란이 일어난다. 축구공에 가슴을 맞아서 잠깐 기절했다가 멀쩡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이런 케이스이다.

그런데 내 솜씨가 좋았던 것인지, 카렐이 운이 없었던 것인지 아예 심장마비가 와버린 모양이다.

금속 소재를 강화하는 아키텍티 계열의 기프트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갑주의 단단함을 강화한다. 그 경도는 상당히 강력해서 권총은 물론 원거리에서 발사된 소총탄도 튕겨낼 정도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재의 강도를 올릴 뿐, 그 충격력을 상쇄해 주는 것은 아니다.

화약이 전장에 나온 시대의 철판 갑옷은 약간 연성을 가지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 이유는 너무 단단하면 깨지고, 충격이 착용자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는 교통사고에 대비해 자동차에 일부러 찌그러지는 구조를 넣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기프트로 무조건 경도만 올렸으니, 같은 장소에 두 번 총알을 맞자 심장진탕이 와 버린 것이지. 물론 대개의 경우는 충격을 좀 감수하더라도 완전하게 튕겨내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이 말이지.

흉갑을 벗기자 땀으로 젖은 셔츠가 나온다. 땀으로 달라붙은 얇은 셔츠 너머로 시퍼렇게 든 피멍이 보인다. 으··· 존나 아팠겠다.

갑옷 아래 단출한 복장을 보니, 이래서 심정지가 왔구나 싶다. 푹신한 내의나 버프 코트를 겹쳐 입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 어쩌면 그냥 아프고 말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젖은 셔츠를 통해 충격이 그대로 몸통에 전달되었을 테고, 아마 갈비뼈도 부러졌을걸.

금속 강화 기프트도 있고 날씨도 더우니 두꺼운 내의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해는 간다. 실은 나도 그렇거든. 어차피 전장에 직접적으로 나가지는 않겠거니 생각했으니까. 이걸 보니 다음에 전장에 나설 때는 버프 코트라도 챙겨 입어야겠다.

아... 나 용병 때려치우기로 했는데 왜 다음 전투를 생각하는 거지. 지금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최전방에 나와서 쌍권총 휘두르며 생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데.

별생각을 다 하며, 나는 카렐의 가슴 위에 양손을 겹쳐 얹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훅훅훅!”

이건 백작의 후계자다! 몸값을 받는다면 돈으로 따져도 노다지가 따로 없고, 협상의 대상으로 따져도 어마어마한 가치다. 살려야 한다!

“훅훅훅! 일어나 임마!”

“커헉, 콜록! 흐어어어···.”

“옳지! 숨 쉬어 숨!”

몇 번이나 가슴을 압박했을까, 혈색이 돌아온 카렐이 죽다 살아나 기침을 연발하며 깊게 숨을 들이쉰다.

짜식, 여기서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네.

나는 나대로 녹초가 되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거, 하아, 묶어서, 하아, 사령부로.”

잔뜩 커진 눈으로 지켜보던 장교가 내 지시를 찰떡같이 알아 듣고 가방에서 밧줄을 꺼낸다.

그래도 심폐소생술로 금방 깨어나서 다행이다. 안 깨어났으면 인공호흡을 해야 했으니까.

전투 와중에, 갑자기 쓰러진 적 기사의 몸을 끌어내서, 갑옷을 주섬주섬 벗기고, 대흉근을 만지작 거리더니, 상체를 숙여 마우스 투 마우스의 인공호흡···.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을 모르는 병사들이 보면 대체 뭐라고 소문이 났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아··· 카렐 씨, 운 좋은 줄 아쇼. 당신 방금 저승 가는 배 탈 뻔했으니깐.”

“쿨럭, 커헉! 크으헉!”

“고마운 줄도 알아야지?”

기침을 연발하는 카렐이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기침하지 않았다면 분명 욕설을 했을 표정이다.

하긴 나라도 이런 상황이면 쌍욕을 하면 했지 고맙지는 않겠지.

나는 비틀대며 일어선다. 온몸이 쑤시고 피곤하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팔을 내려다보자 다시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아까 총 쏘면서 실수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권총 장전 해야 하는데 귀찮다. 제발 전투가 여기서 끝나면 좋겠는데.

지금 있는 우측면에서의 전투는 끝난 것 같다. 카렐이 포로로 잡히는 모습을 본 데다, 아군 창병들에게 압박까지 받은 적군이 본격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몇 명은 늪지대에서 엎어졌는지 머드 축제라도 다녀온 꼴이다. 저거 냄새 잘 안 빠질 텐데···.

다시 말에 오른다. 내 말 고삐를 잡고 있던 예비대 병사의 눈빛이 바뀌었다. 조금 부끄럽네. 동네 장터에서 차력 쇼라도 한 기분으로, 감탄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뒤로하고 다시 중앙으로 달린다.

중앙의 전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적은 아직 패주하지는 않았으나, 이제 대열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딱 보니 창이 교차하고는 있으나, 열성적이지 않고 지휘 통제도 잘 안 되고 있다.

서로 창에 찔릴 거리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창대만 부딪히는 애매한 거리. 전의는 이미 상실한 상황. 서로 괜히 사격에 의한 사상자만 누적될 테니 빨리 퇴각해 주면 좋을 텐데.

애초부터 불리함을 모르고 이 전장으로 병력을 밀어 넣는 멍청한 놈이 지휘관이었지. 그렇다 해도 자기 병사들이 고전하는 꼴은 볼 수 있지 않을까. 멍청한 데다 자존심만 그득한 놈이라면 일은 좀 꼬일 수도 있겠지만.

“트랑카벨 자작님!”

나는 말에서 구르듯이 뛰어내리며 이 전투의 지휘관인 아실 트랑카벨 자작을 불렀다. 그는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처음 그 자리에 서 있다.

“에트 경! 우익에서 적의 격퇴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트랑카벨 자작의 앳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나도 알게 되었다. 좌익 쪽 아군 진영을 뒤덮은 기병들 때문이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단단한 가죽 재질의 버프 코트를 입고 흉갑을 걸친 기병들이 중앙과 좌익이 이어지는 선을 뚫고 돌입해와 있었다. 최근 유행하는 경장 기병들의 복장인 것을 보면 용병들인 것 같다.

경험이 꽤 있는지 말을 몰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제법 날렵해 보인다. 미리 만들어 둔 바리케이드에 의존해 아군 보병들이 대응하고는 있었지만, 이대로 두면 돌파당할지도 모른다.

‘이대로 두면’ 말이지만.

“적은 어리석은 데다, 자존심만 높고, 운조차 없군요.”

적은 가장 들어오면 안 되는 곳으로 들어왔다. 적장이 너무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슬쩍 웃음이 나온다. 제발 이쪽으로 와 주었으면 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인데. 정말 적장은··· 전술적으로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구나.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운도 지지리 없는 인간이군요.”

내가 마치 악역처럼 큭큭거리자, 아실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내가 웃는 이유를 알았다는 듯 손바닥을 마주친다.

“좌익에는 톨마르 경이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신호를 보낼 필요조차 없다. 정확하게 미리 계획한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전장의 소음을 뚫고 고풍스러운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다 날카롭고 템포가 빠른 최근의 신호용 나팔과는 격이 다른, 전장 전체에 낮게 깔리는 듯한 우렁찬 소리.

‘그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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