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화 (1/556)

1-1. 퇴역하고 싶은 용병

검과 마법, 그리고 화약이 지배하는 세계.

현실 세계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전생한 세계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이곳에는 세계를 멸망시키려 드는 마왕이나 미치광이 종교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 없이도, 인간들은 불합리와 부도덕만 가지고도 세상을 비극과 혼란으로 가득 채우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시대는 난세, 현실은 지옥.

당시의 나는 높은 꿈을 꾸었다. 내가 영웅이 되고 초인이 되어 이 비극과 혼란을 잠재우겠다고.

또한, 약자를 지키고 정의를 세우겠다는 꿈을 말이다.

10여 년이 흘렀다.

세상은 별로 바뀐 것이 없다.

여전히 비극과 혼란이 곳곳에 널려 있지만 잘 피해 가며 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마왕도, 미치광이 종교 집단도 없다.

나는 영웅도 초인도 되지 못했다.

그저 검과 마법, 그리고 화약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적응한 한 명의 이방인이었다.

###

갑옷을 입은 보병들이 헉헉대며 바위투성이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완만한 비탈이라고는 해도 그늘 하나 없는 한여름의 더운 날씨, 게다가 오늘은 평소보다 습도도 높다.

푹푹 찌는 와중에 철로 된 투구와 갑옷을 입고, 무기를 짊어지고 비탈을 오르다니··· 내가 저들과 같은 신세가 아니라는 점만 해도 감사하게 된다.

손질이 잘되지 않은 철제 갑옷의 시커먼 색이나 가죽의 탁한 갈색이 뒤섞인 우중충한 보병들의 머리 위에서 휘날리는 알록달록한 깃발은 유난히 화려해서 도드라진다. 멀어서 무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성전이 벌어진다는 소식에 천국행 티켓이 욕심나 서둘러 병력을 꾸렸으리라. 그렇기 달려온 어딘가의 귀족 나부랭이 중 하나겠지.

나는 바위 언덕의 능선을 따라 배치된 아군 병사들을 살펴본다. 카르카냑과 벨모제 인근에서 모집된 신병들이 다섯에 베테랑 용병이 하나 비율이다. 대부분 농가나 산골 마을 출신인 순박한 신병들은 용감하고 열의도 높았으나 긴장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최소한 투구와 흉갑은 걸치고 있었으며, 고된 훈련의 결과로 제법 쓸만한 창병 방진을 갖추고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형적인 유리함도 있으니, 바위투성이 비탈을 기어올라 기진맥진한 적은 충분히 막아 줄 것이다.

약간 뒤에는 쇠뇌와 화승총으로 무장한 사격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그들이 온종일 고생해서 파 놓은 간이 참호와 끝을 뾰족하게 깎은 말뚝이 적을 저지하고 있다. 창병들이 고착시킨 적을 노릴 예정이다.

적 역시 무장은 비슷하고 숫자는 약간 많다. 숙련도는 마찬가지로 신병투성이겠지. 아무튼, 엘랑키아의 정예 병력은 죄다 북방 전쟁에 불려 나가 있으니까, 선봉의 공을 다투려고 벼락치기로 끌려 나온 병력의 상태야 뻔할 테고.

한가지 불안 요소라면 적 기병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이런 고약한 전장을 선택한 것이다. 바위투성이 비탈에, 측면은 벼랑과 잡목림이 지켜주는 천혜의 요지를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적 기병이 다소 많더라도 이런 전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리하게 달리다가는 말이 먼저 지쳐 떨어지니까. 어중간하게 덩치로 밀고 들어온다면 최소한의 대책은 세워 놓았다.

몇 번 점검해도 질 건덕지는 보이지 않는다. 너무 상황을 낙관하면 안 되지만 이런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면 정말로 전장의 신이겠지.

유리해도 너무 유리하다. 그리고 경험상, 이런 경우에는 전투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아마 이번에도 대치하고 시간이나 끌다가 물러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적이 멈추지 않네요.”

내가 보좌하는 이 작은 군대의 지휘관인 소년 귀족, 아실 트랑카벨 자작이 긴장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올해로 겨우 15세가 된 소년이지만, 트랑카벨 가문에서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는 남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진해서 전장에 나와 있다.

물론 다른 지휘관을 대리로 세워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화신과도 같은 고결한 성품의 소년은 ‘백성들을 전쟁터로 보내는데, 영주 집안의 남자가 아무도 이끌지 않을 수는 없다’라며 고집을 부려 직접 전장에 나서게 되었고, 내가 보좌하게 된 것이다.

...아마 다른 귀족 집안이었다면 위선을 부린다며 경멸했겠지만. 이 소년 귀족의 경우는 함께 지내본 결과, 절대로 위선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 내 예상이 빗나간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놨는데 공격한다고?

“적 지휘관이 생각보다 다소 무모한 것 같습니다."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전투가 벌어지겠군요."

아실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적은 사지로 들어오는 겁니다."

확신을 주고 싶었으므로, 이번에는 단호하게 말했다. 진심이다. 적의 공격을 유도하고 싶었다면 오히려 적당히 허점을 드러내서 배치했을 것이다.

6:4 정도로 유리하면 모험적인 지휘관의 경우 공격을 결심할 수 있다. 어쩌면 7:3까지도. 그런데 현재 상황은 9:1 수준으로 유리한 상황이란 말이지. 불필요한 조우전을 피하고 싶어서 일부러 우주 방어 배치를 했더니 여기다가 꼬라박을 해? 게임이라도 발컨으로 욕을 먹을 짓인데.

적 지휘관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무모함의 대가를 단단히 치르게 될 것이다. 괜히 병사들만 죽어나겠지만.

비탈을 올라온 적군은 전장 너비에 맞춰 배치를 새로 하더니, 곧 정면으로 접근해오기 시작한다. 적의 최선두는 이제 아군 방어선에서 3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중앙부에 툭 튀어나온 큰 규모의 보병대열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여기가 평지였다면 말이다.

크게 가파르지는 않지만, 경사가 제멋대로에, 여기저기 비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바위까지 있는 거지 같은 지형에서 대형 방진은 의미가 없다. 병사 숙련도가 높아서, 마치 슬라임마냥 지형에 맞춰 척척 변형되는 베테랑 부대라면 모를까.

행군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단순히 병사들의 자질뿐 아니라 지휘관이 부대에 익숙한지, 편성된 지 오래돼서 구성원들끼리 합의 맞는 상태인지.

현재 적군의 상태는 명확하다. 평지에서 각 맞춰서 행진하는 것 이상은 배우지 못한 벼락치기 부대. 구성원 대부분은 이번이 첫 출전일 것이다. 아군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서 참호도 파고 말뚝도 파 놨잖아. 어수선한 지형에서 공격의 선봉을 이끌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포병이 없어서 아쉬운데. 저 상황에 한 발만 떨어져도 신병들 멘탈을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을 텐데... 라고 사악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타타탕!

아군 진영에서 총소리가 올렸다. 한 발도 아니고, 꽤 많이.

"하아아...."

나는 이마를 감싸 쥔다. 예상은 한 일이다.

"어떤 멍청이가 쐈어!"

"방아쇠 건들지 마! 총구는 하늘로!"

"명령 전까지 손 떼!"

내가 화낼 필요는 없다. 열 받은 중견 장교들의 고함이 메아리친다. 전장에 익숙지 못한 신병들을 데리고 싸울 때의 세금 같은 거다. 적군이 가까워지자 긴장을 이기지 못한 병사들이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겨 버리는 거지. 누군가 한 사람이 쏘면 그 옆 사람도 쏴서 최악의 경우 부대 전체에 전염되기도 한다.

타탕, 타타탕!

타타탕!

아군의 실수에 화답하듯이, 적진에서도 매가리 없는 총소리가 세 차례 울린다. 다행히 이번에는 멍청이들이 적진에 더 많았다. 1점 따고 시작한다고 봐도 되겠지. 적진에서도 분노한 장교들이 고래고래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예전에 다른 전장에서, 150명 정도 되는 화승총병 부대가 적은 근처에도 오지 않았는데 허공에 총을 난사하더니 우르르 도망치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그 치들은 놀랍게도 신병도 아니었다. 적 기병이 돌격하기 시작하자 놀라서 그랬다는데, 정작 그 기병들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패닉이라는 것이 일단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전장에서는 별일이 다 일어난다고 생각해야 한다.

서로 총알을 낭비하는 해프닝의 와중에, 적 선두와의 거리는 200미터 정도로 줄어들었다.

###

제10 카르카냑 연대의 신병 얀 고티에는 이웃 부대에서 들려오는 장교의 고함에 어깨를 움츠렸다. 옆 부대의 누군가가 실수로 총을 쏜 모양이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얀 자신도 조금 전에 방아쇠를 건드리거나, 오줌을 지리거나, 둘 다 저지를 뻔했으니까.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침착하게 장전된 총을 바닥에 세운 상태로 장비를 점검한다. 장전은 되어있지만, 화승을 물린 격철을 뒤로 당기지 않아 현재 상태에서는 발사되지 않는다. 화승의 길이는 적당하고, 불이 꺼지지도 않았다. 가죽 띠에 주렁주렁 매달린 탄약포들을 더듬어 띠의 위치를 조정하고, 흉갑을 고정한 끈이 풀리지 않았는지 흔들어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허리띠 뒤로 손을 넣어 손도끼를 확인한다. 오래 써서 반들반들한 손잡이가 만져진다. 벌써 몇 년이나 사용해온 손도끼로, 손잡이만 갈아 낀 것을 포함하면 10년도 더 된 익숙한 물건이다. 모병 당시에 개인용 무기를 한 종류 지참해도 좋다고 하길래 가지고 왔다.

물론 평범한 장작 패는 용도인 손도끼다. 사람은커녕, 동물을 상대로 휘둘러본 적도 없다. 오로지 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패는 용도로만 사용했었다. 오래돼서 망가진 벽을 수리할 때 뭉툭한 머리 부분으로 못을 박은 적은 있지마는.

오늘은 이걸 사람을 향해 휘둘러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화승총 사수인 그가 도끼를 들고 돌격할 일이야 없겠지만 전투 중 포화를 뚫고 접근한 적과의 백병전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교육받았다. 교관이 훈련 당시에야 정 급하면 총을 휘둘러 개머리판으로 적 머리를 후리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화승총은 휘두르기에 너무 무거웠다.

"야, 불 꺼뜨린 것 아니지? 정신 차려!"

아이러니하게도 옆 부대에서 노발대발한 장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을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저 멀리 적군의 대열이 점점 가까워진다. 이제 창을 세로로 세우고 다가오는 적병의 얼굴이 보인다. 철 투구 아래쪽으로 땟국물로 번들거리는 시커멓게 탄 얼굴이 긴장과 공포로 찌푸려져 있다.

지금 자신의 표정도 저럴까.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얀은 생각했다.

적병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다르게 생겼다. 전혀 사악하게도, 날렵하게도 보이지 않는다. 갑옷을 입고 창을 든 것만 빼면 그냥 이웃 농부 아저씨처럼 생겼다. 그러고 보니 강 건너 방앗간 주인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사격 준비!"

장교의 호령 소리에 맞춰 총을 양손으로 가슴 앞에 든다. 드디어 시작이다. 기껏 진정시켜 놓았던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한다. 숨이 몰아쉬어 지며 어깨가 춤을 춘다. 이래서는 총을 제대로 쏠 수가 없는데!

"조준!"

격철을 뒤로 당긴 뒤, 총을 수평으로 겨누고 뺨을 가져다 댄다. 이제는 방아쇠를 당기면 정말로 총알이 나간다! 일부러 손가락을 방아쇠에서 조금 떨어뜨려 놓는다. 잘못 건드렸다가 발사되면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다.

두 개의 말뚝 사이로, 찡그린 표정을 지은 적병의 가슴을 가늠자 위에 올린다. 적 창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속보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세로로 세워져 있던 창이 수평으로 눕는다. 총병들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어설픈 참호선 옆에 배치된 아군 창병들을 향한 공격이다. 그러고 보니 적 창병과 닮은 강 건너 방앗간 집 둘째 아들도 같이 입대했을 텐데. 건강하려나.

"발사!"

타타탕! 타앙!

딴생각을 하다, 0.5초쯤 늦게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흰 연기가 눈 앞을 가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누가 뒤로 당기기라도 하는 듯, 발사의 반동으로 오른 어깨가 뒤로 확 돌아간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오른팔과 어깨가 마치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아파져 오기 시작한다. 나무로 된 총몸에 쓸린 뺨도 따끔따끔하다. 어쩌면 화문에서 튄 불꽃에 데였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연달아 터진 폭음에 찌잉 하고 이명이 들리며 전장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졌다. 누가 관자놀이를 누르는 것처럼, 귀 주변이 욱신욱신 아파져 온다.

"콜록 콜록!"

한 박자 늦게 매캐한 화약 연기가 대열을 덮치자 누군가 기침을 시작한다. 코가 간지럽고 눈이 따끔거린다. 훈련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금방 익숙해질 것이라 하지만,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왠지 콧물도 나오는 것 같다.

"재장전!"

꽂을대를 다시 총구에 쑤셔 넣는다. 사격 직후에는 총열 안쪽이 각종 그을음과 타다 남은 탄약포 찌꺼기 등으로 지저분해져 있어서 재장전 전에 깨끗하게 닦아내야 한다. 그런데 잘 들어가지 않는다.

훈련 당시에는 잘 들어가던 꽂을대가 왜 이리 안 들어가는지,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기 직전에야 간신히 꽂을대의 머리가 총구로 사라졌다. 그때쯤 화약 연기가 잦아들면서 건너편의 전투가 눈에 들어온다. 양측 보병들이 줄을 맞춰서 서로 창날을 부딪치고 있었다.

총병의 사격에 의한 것인지, 창에 찔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명인가 적군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과연 자신이 쏜 총알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괜히 복잡한 생각이 든다.

"얀! 꽂을대 거꾸로 들어간다!"

"아앗, 넵!"

새로 탄약포를 뜯어 화약을 부어 넣은 후, 하마터면 손잡이 쪽을 넣을 뻔했다. 힘을 잘못 주면 휘거나 부러지기도 한다. 탄약포를 꺼내 이빨로 끝을 잘라내고 화약을 총구로 흘려 넣는다. 화약을 다지고, 다시 총알을 밀어 넣는다. 화문을 열고 점화용의 고운 화약을 넣는다.

"사격 준비!"

몇 초 늦었다! 얀은 서둘러 화승의 길이를 조절하고 양손으로 총을 든다. 화승은 불이 잘 꺼지지 않고 아주 천천히 타는 심지지만 매번 신경을 써줘야 했다.

"조준!"

다시 격철을 뒤로 당기고 뺨을 가져다 댄다. 이제 장전이 완료, 사격 준비가 끝났다.

장전 중에는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팔뚝이 엄청 아프다. 진짜로 몽둥이로 맞은 느낌. 마치 처음으로 혼자 나무를 베어 쓰러뜨렸을 때 느낌이다. 별로 큰 나무도 아니었는데, 완전히 베어 쓰러뜨리는 데 한나절이 걸렸었지. 근육통으로 다음 날 앓아누웠었고.

눈앞의 광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어지럽게 엉키고 있는 창날의 벽들. 병사들에게 아까보다 자잘한 상처들이 늘었을 뿐, 바닥에 누운 시체의 숫자도 똑같다.

'창병들은 적을 저지하는 역할을 할 뿐, 실질적으로 상대를 죽이는 건 여러분이다.'

바로 어제, 행군을 마치고 참호 등 방어진지 준비까지 끝낸 화승총병들을 모아놓고 교관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특별히 고함을 지르거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니었음에도, 목소리는 조곤조곤하게 구석구석까지 잘 들렸다.

'여기 창병대에 친구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 여러분들이 한 발이라도 빨리 쏴서 적을 쓰러뜨려야, 창병대 동료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어든다 이 말이지.'

그와 동료 신병들이 온갖 실수를 다 하는 와중에도, 용병 출신이라는 그 교관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의 설명은 알아듣기 쉬웠고, 각자의 부족한 점을 정확하게 캐치해 조언해줬었다.

'그렇다고 자네들이 안전한 곳에서 일방적으로 총을 쏘기만 하라는 법도 없다. 가끔은 적의 포화를 몸으로 견디며 반격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백병전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지.'

그래서인지, 얀과 동료들은 모두 그 용병 출신 교관을 좋아했다. 그들이 경애하는 트랑카벨의 소년 만큼이나.

'그래도, 언제나 침착하고 용감해라! 그리고 죽지 말아라! 부디 부탁한다!'

교관의 표정은 한 점 과장도 없이 진심이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훈련의 끝에, 조금은 쓸만한 병사가 되었을까.

"발사!"

이번에는 상념에도 불구하고 늦지 않았다. 방아쇠의 신호를 받은 격철이 화승 끄트머리를 물고 튀어 나가 화문에 직격, 화약 접시 위의 화약에 불을 붙였다. 화문에서 불꽃이 튀어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다. 순식간에 불이 붙은 점화용 화약이 좁은 관을 따라 타고 들어가, 아주 약간의 딜레이 후에 총열 안쪽에 장전된 화약을 폭발시켰다.

타앙!

"읏!"

총구와 화문 양쪽에서 화염과 연기가 피어올라 눈 앞을 가린다. 또다시 어깨가 두드려 맞은 듯 아프다. 뺨이 따끔거린다. 하지만 전투는 이제 시작이다. 얀은 서둘러 가방에서 다음 탄약포를 꺼내 장전을 준비한다.

아까보다 장전이 아주 조금은 빨라진 것 같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