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終)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다고 하던가.
조막만했던 아이들이 자란 것을 요즘처럼 실감을 한 적이 없었다.
“진아 말이야.”
어느 날 백서희가 말했다.
“요즘 좀 이상해. 엄마의 직감인데 뭔가 있어. 특히 린이하고. 저번에 춘절비무대회 때 그 아이만 보더라고. 린아가 강한 상대하고 겨루니까 안절부절못하는 거 있지?”
“하후진의 딸 말이군. 둘이 어릴 적부터 친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아들 일인데 참 둔하다. 진짜로 뭔가 있다니까. 내 생각에 둘이 요즘 몰래 만나는 것 같아.”
“그건 너무 억측 아닌가?”
워낙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서 소꿉친구나 다름없는데, 친하게 지내는 걸로 수상하다고 보기엔....
“저번에 삼경에 몰래 나가는 걸 봤어. 단목 동생한테 물어봤는데 린아도 요즘 밤 늦게 수련을 핑계로 나간다고 하더라.”
“그건 확실히 이상하군.”
“물어볼까?”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추궁하는 건 좀 그렇지. 식사 때 슬며시 떠보자고.”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
아무리 바빠도 이레에 한 번씩은 온 가족이 모였는데, 강엽은 다 자란 장남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네가 올해로 스물하나던가. 시간이 참 빠르다.”
난데없이 나이를 입에 담는 부친의 모습에 강무진이 긴장한 낯빛으로 술잔을 내려놨다.
“소자에게 시키실 일이 있습니까?”
“너도 교의 일을 배울 때가 됐다. 당장 큰일을 맡기진 못하겠지만,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일이라면 오히려 소자가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라는 바가 있느냐?”
“허락하신다면 화성각에 들어가보고 싶습니다. 신분을 숨기고 말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칠성좌의 이름을 딴 조직. 명교를 개파하면서 조직을 개편했지만, 몇 개는 과거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화성각이라... 괜찮구나. 다만 네 어미가 말하길 너도 슬슬 혼처를 구해야 하지 않냐고 하던데. 일을 배우기 앞서 일가를 꾸리는 건 어찌 생각하느냐?”
“소자는 아직 일가를 이루기엔 어립니다!”
눈에 띄게 당황하는 강무진의 모습에 강엽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무진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다른 아이들까지 찔리는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눈치껏 아닌 척했지만 경륜을 쌓은 강엽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법.
부인들과 시선을 나눈 강엽은 헛기침을 하며 넌지시 장남을 떠봤다.
“그래? 마음에 둔 여인은 없고?”
“아직은 없습니다.”
굳이 ‘아직은’이라 말하는 게 곧 미래엔 있을 거라는 말로 들린다면 착각일까.
그 순간 강엽은 확신했다.
‘걸렸다, 요놈.’
화성각엔 하후린이 조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부교주의 금지옥엽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후광에 의존하지 않고 일개 대원에서 출발해 조장의 자리에 오른 것.
굳이 강무진이 화성각의 말단에서 시작하겠다는 것은 하후린의 영향도 있으리라.
‘뭐... 좋은 아이지.’
친구의 딸이라서가 아니다. 아비의 성격을 닮아 당차고 씩씩한 아이인 만큼 아들과도 잘 어울릴 것이다.
“그래? 그럼 그렇게 조치하마.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아비는 딱히 네가 여자 만나는 것 금할 생각 없으니 알아서 해라.”
“예? 아, 그, 그게...!”
“이상한 애만 만나지 말고. 정식으로 사귄다면 부모에게는 말하도록.”
“...예.”
어색한 미소만 짓는 강무진이었다.
강엽이 한쪽 눈을 찡긋하자 백서희도 쓴웃음을 흘렸다.
* * *
강무진은 오랫동안 하후린과 교제한 끝에 청혼했다.
다퉜을 때도 있었지만 금방 화해했다. 위기에 빠졌을 땐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먼 서역에서 침공한 마교와 싸웠을 땐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포위망을 뚫고 아군을 구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생사고락을 함께한 끝에 어느덧 서로를 자신의 일부처럼 받아들인 두 사람이었다.
청혼을 받은 하후린은 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강무진을 껴안았다.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은 끝에 성대한 혼인식을 열었고, 전 무림의 인사들이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천산에 모였다.
“흐윽, 우리 아들이 결혼한다니....”
코끝이 찡해진 백서희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자 강엽은 한동안 부인을 위로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편에선 하후진이 눈물콧물 쏟아내며 대성통곡을 했는데, 어찌나 추한지 하객들이 수군거릴 정도였다.
단목정이 남편의 못 말릴 모습에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것은 덤이었다.
* * *
“교를 떠나고 싶습니다.”
둘째 아들인 강무린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강엽과 백서희는 심장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
“떠난다니!? 어디로 가려고?”
“한동안 세상을 자유롭게 둘러보고 싶습니다. 도가의 제자들도 표주를 떠나지 않습니까?”
“...여보, 뭐라고 좀 말해봐.”
백서희가 만류하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강엽은 아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침묵했다.
잠깐의 사이를 두고 강엽이 입을 열었다.
“세상을 둘러보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그래도 교에 남아 아비를 도와줄 수는 없겠느냐?”
“...송구합니다.”
강엽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 아들이 오랫동안 하후린을 연모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후린이 형인 강무진과 이어졌으니,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떠나는 것이리라.
“교를 떠난다면 자립해야 한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네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야.”
교의 지원을 바라지 말라는 엄포에도 강무린은 굴하지 않았다.
“낭인전에 갈 생각입니다.”
“낭인전에?”
낭왕이 은퇴한 자리엔 진멸신권 정무악이 올랐다.
일전에 정무악이 장남의 혼인식에 찾아왔다는 걸 떠올린 강엽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정무악이 널 꾀었구나.”
“아닙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선 말리셨지요. 명교주의 아들인 제가 낭인전에 들어오면 은원에 휘말릴 수 있다고요.”
명교에 대항할 세력은 존재하지 않으나, 강엽에게 원한을 지닌 사람이 없다고 할 순 없었다.
몇 년 전에 멸문한 서역마교의 잔당들이 중원에 흘러들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란 사실은 숨길 겁니다. 그러니 허락해주십시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저는 천산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아들이 거친 강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는 사실을 아는 두 사람은 더는 말리지 못했다.
* * *
당묘정의 소생인 강세령과 강무정은 당문과 명교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완안극이 두 남매의 스승으로 붙었기에, 두 남매는 당문과 독곡의 무공을 배우면서 성장했다.
당묘정은 당문주의 지위를 잇지 못했기에, 그녀의 아들인 강무정이 차기 당문주로 점지된 상황.
당천경이 팔순의 나이로 물러나기로 결정한 뒤에, 그녀는 조용히 강엽을 찾아와서 말했다.
“아이들을 가문으로 데려가고 싶어요.”
강엽은 거절하지 못했다.
오래전에 한 약속이거니와, 당문에 돌아가는 게 두 아이에게도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저도 당분간은 가문에서 생활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가문의 일에 적응하려면 그편이 좋을 테니....”
“...알겠소. 대신 무슨 일 있으면 부르시오.”
당묘정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을 무렵, 조영옥도 딸인 강세민을 태화문의 소문주로 임명했다.
슬하에 늦둥이 아들이 있긴 했지만 누이와 나이 차이가 많아서 후계자 경쟁을 할 입장은 못 되었다.
강엽은 머지않아 강세민도 슬하에서 벗어날 것을 예감했지만, 구태여 막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크는 것은 막을 수 없다면, 아이들이 각자의 인생을 위해 떠나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 * *
세월이 지나 아이들은 무림을 대표하는 고수로서 입지를 다졌다.
명교주가 된 강무진은 구천마제(九天魔帝)라는 별호로 불리며 마도제일인으로 경외받았다.
낭인전에 간 강무린은 십 년 만에 정무악의 뒤를 이어 낭인전주가 되었으며, 여룡제(驪龍帝)라 불렸다.
성을 당씨로 바꾼 당세령은 의술을 익혀 종조부와 어미의 뒤를 잇는 천하제일의로 명성을 떨쳤다.
동생인 당무정은 당문주가 되었으며, 암독왕(暗毒王)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차녀인 강세민은 흑도제일인으로서 마안무후(魔眼武后)라는 위명으로 천하를 질타했다.
홍가려의 아들인 강무호는 어미의 뒤를 이어 하오문주가 되었고, 무영호리(無影狐狸)라 불리며 강호제일의 신비인이 되었다.
야율산산의 딸인 강세아 역시 어미의 뒤를 이어 북해빙궁의 궁주가 되었으며, 빙마후(氷魔后)라는 이름으로 새외제일인에 등극했다.
* * *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강엽은 중경의 장원에 은거했다.
태상 교주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으나, 아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교의 일엔 참견하지 않았다.
간간이 옛 인연들을 찾아가고, 그들과 술을 마시거나 바둑을 두면서 소일거리를 하는 게 전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결코 바라지 않았던, 그러나 예상하고 있던 시련이 찾아왔다.
“사랑해요, 엽랑.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정매.”
사랑하는 이들이 곁을 떠났다.
주름진 얼굴의 당묘정이 품에 안겨 눈을 감았을 때까지 강엽은 내면의 충동과 싸워야 했다.
그녀를 흡혈귀로 만들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터.
그러나 당묘정은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강엽과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았노라 고백했다.
시간이 지나 조영옥도, 홍가려도, 야율산산도 강엽의 품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하후진과 청수, 전강, 장경 역시 강엽이 보는 앞에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삶을 마쳤다.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곁을 떠날 때마다, 가슴이 뭉텅이로 깎여나간 것처럼 공허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 떠나려 하고 있었다.
* * *
강엽은 한숨을 쉬면서 탕약을 준비했다.
아무리 심상지경의 고수라 해도 노화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는지, 백 세가 넘도록 정정했던 육신도 결국 한계를 맞이했다.
강엽 역시 그녀와 함께 늙어갔다.
다만 내공을 역으로 돌려 늙어 보이도록 꾸민 그와 달리 그녀는 정말로 나이를 먹었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얼굴의 주름이 깊어졌다. 내공의 화후와 별개로 육신은 점점 쇠약해졌다.
그처럼 흡혈귀라서 노화를 피한 완안극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힘드실 겁니다.”
그가 말한 특단의 조치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평화롭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난....”
침대 등받이에 기댄 그녀는 잔기침을 하면서도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조금 아쉽긴 해. 당신과 함께 살면서 온갖 경험을 했지만, 딱 한 가지는 못해봤거든.”
“그게 뭔데.”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싶었어. 중원을 넘어, 열사의 사막과 밀림, 그 바깥의 세상까지....”
“건강해지면 그러자. 입도공월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흐음, 두 발로 걷고 싶은걸.”
“그러려면 건강해져야지.”
“으, 쓰다.”
탕약을 마신 그녀는 입매를 구기면서도 이내 희미하게 웃었고, 강엽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러니까 젊은 시절이 생각나.”
“당신은 지금도 젊어.”
“쭈그렁 할망구가 됐는걸.”
“누가 당신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겠어. 지금도 허리만 꼿꼿하구만. 머리만 좀 샜지.”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네.”
졸음이 몰려오는지 웃는 그대로 눈꺼풀을 감은 백서희.
순간 심장이 철렁한 강엽은 그녀가 찬찬히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음과 탕약을 끓이고, 밤에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손을 잡고 함께 잠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건....’
문득 익숙한 장면이 망막을 채웠다.
언젠가 진조의 기억에서 봤던, 진조와 예사란이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았던 광경.
강엽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관찰했으며, 그들과 함께 미소 짓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 강엽은 문득 옆이 허전하다는 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희!”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서둘러 밖으로 달려나간 강엽은 앞마당에 선 그녀를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아아....”
고아한 달빛을 받으며 검무를 추고 있는 그녀의 주변엔 피부 잔해와 하얀 모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젊어진 외양으로 쌍검을 휘두르며 월하검무를 추고 있는 모습.
환골탈태와 동시에 반로환동을 이룬 백서희가 박꽃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환하게 웃었다.
“이제 같이 여행갈 수 있겠네.”
“서희야!”
저도 모르게 그녀를 으스러져라 껴안고, 어깨를 떨며 오열했다.
백서희도 눈시울을 붉히며 강엽을 마주 끌어안았다.
“이별은 피할 수 없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직은... 당신과 하고 싶은 일이 많은걸.”
“고맙다. 고마워....”
“우리 남편,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 어떡해. 이젠 증손주까지 있는데.”
“너도 울고 있는데.”
바닥에 점점이 떨어지는 눈물.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기적에 감사했다.
* * *
자식들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모인 날.
다시 젊음을 되찾은 강엽과 백서희는 이제 그들보다 나이가 든 후손들 앞에서 떠날 뜻을 밝혔다.
“아버지....”
“영원히 떠나는 게 아니다. 너희가 이 아비를 부른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달려오마.”
강엽은 아들딸들을 끌어안고 힘차게 웃었다.
손주들과 갓 태어난 증손주들까지 눈에 담으며,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고 배웅을 받았다.
백서희 역시 강무진과 강무린은 물론, 다른 여인의 소생들까지 안아주며 행복을 기원했다.
며느리들을 끌어안고, 손주들과 증손주들과 차례대로 시선을 마주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울고 웃으면서 강호를 떠난 두 사람은....
“어디부터 가고 싶어?”
“으음, 글쎄... 아직 안 정했는데.”
“그럼 중원부터 한 바퀴 돌아볼까? 안 갔던 명승고적들도 둘러보고, 못 먹어본 음식도 먹고.”
“그러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발견하면 돕고?”
“협객행이라... 명교주가 협객으로 불리면 그것도 놀랄 노자겠군.”
“이제는 아니잖아. 우린 자유롭게 살 수 있어.”
“...그런가.”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을 쬐면서.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또 다시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찾아올 걸 예감하면서도.
현재의 행복에 감사하며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갔다.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명마입니다.
2022년 2월 16일에 연재하기 시작한 글이 1년 5개월이라는 여정 끝에 마침내 완결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은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한 개의 글을 완결할 때마다 참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시원하면서도 아쉬운, 조금 더 잘 쓸 수는 없었을까 하는 미묘한 감정이 듭니다.
흡혈왕은 전작들과 달리 18권에 이르는 장편이라서 그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본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생략한 이야기도 있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홍가려가 하오문의 소문주로서 적응하는 이야기라든지, 장경과 전강의 과거 이야기라든지....
다만 그 이야기들을 다 풀면 글이 늘어질 수 있기에, 제 마음속 한 켠에만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글은 작가가 쓰지만, 작품은 독자가 완성한다.’
이건 평소에 제가 품고 있는 생각입니다.
18권에 달하는 장편이 무사히 완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독자 여러분의 공입니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없었다면 결코 완결하지 못했겠지요.
부족한 작가의 글을 완결까지 따라와주신 독자 여러분께 공을 돌립니다. 강엽과 백서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작품이 완결되면 외전으로 못 다한 이야기를 하는 게 요즘 추세라서 외전을 쓸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외전은 따로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강엽과 백서희의 이야기는 완결됐고, 이후의 이야기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강엽과 백서희는 넓은 세상을 둘러볼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또 다른 이야기를 쌓겠지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강엽은 다시 오랜 시간을 살 것이고,
힘겨워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겁니다.
흡혈왕은 닫힌 결말이지만, 강엽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여지를 남겨두고 싶습니다.
후속작은 현재 구상 중입니다. 무협을 쓸지 판타지를 쓸지 정하진 못했습니다. 어디서 연재를 할지도요. 다만 네이버에서는 언젠가 다시 연재하고 싶습니다.
만약 다른 플랫폼에서 제 이름을 찾으신다면... 하하, 쑥스럽지만 신작을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후기로 너무 많은 말을 남기는 것도 좋진 않겠지요. 언젠가 다른 작품에서 독자 여러분을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명마 배상(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