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350화 (344/450)

68화. 북해 (4)

야율산산이 말했다.

“아버지는 궁주전에 억류되셨어요.”

빙궁주는 와병을 이유로 만나주지 않았다.

하지만 역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딸을 만나지 못하는 핑계로는 너무 구차하지 않은가.

하물며 팔사도와 가신들은 태연하게 드나드니 그녀의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가신들이 팔사도에게 붙었군.’

정확히는 그녀의 뒤에 있는 광명마교에 붙었다.

암만 빙궁주가 내상을 입었다고 해도 기다렸다는 듯이 등을 돌리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

필시 광명마교가 그전부터 공작을 한 것이겠지.

‘어쩌면 빙궁주가 내상을 입은 것도....’

빙궁주를 따라나선 측근들이 전멸했고, 빙궁주 자신은 정신을 잃은 채 구조됐기 때문에 야율산산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빙궁주가 내상을 입은 것도 광명마교의 함정일지 모른다.

강엽의 말에 야율산산이 굳어졌다.

“방법이 없을까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지.”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거군요. 하지만 적들 중엔 팔사도가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사사도가....”

“사사도는 내가 죽였다.”

“...!”

사사도를 어찌 죽였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설명하면 호광성의 싸움부터 짚고 넘어가야 했으니까.

“팔사도는 내가 맡지. 혹시 도와줄 사람은 없나? 가령 전에 봤던 그 노파라던가....”

“빙오선 장로님은 낭왕과 함께 계세요.”

일전에 빙궁의 무인들을 이끌고 야율산산을 구하러 모산혈조의 산장까지 쳐들어왔던 초고수.

빙궁에서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른이었기에 그녀에게 낭왕의 호위를 부탁했던 것이다.

“그럼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은 전부 긁어모아.”

“...그들이 도움이 될까요?”

“안 돼도 돼. 필요한 건 소궁주인 네 위세다. 나 혼자 돌격해봤자 명분 없는 싸움일 뿐이야.”

강엽이 무차별로 쳐들어가서 적들을 학살한다면 무관한 이들까지 휘말릴 것이다.

야율산산이 아설하를 돌아보자 그녀가 결연하게 말했다.

“즉시 연통하겠습니다.”

모든 이들이 광명마교에 붙은 건 아니다.

개중엔 항의하다 수장이 숙청된 조직이나 힘에 짓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들도 많았던 것이다.

“굳이 명분을 챙기는 건....”

“이후를 생각해야지. 넌 부친을 구하기 위해 일어섰고, 때마침 북해로 온 금패급 낭인을 고용한 거야. 이 일의 주체는 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눈 가리고 아웅하더라도 명분을 챙겨야 사람들이 호응한다. 왜 위정자들이 명분을 그렇게 챙기겠냐?”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없는 힘은 단순한 폭거일 뿐. 빙궁이 오랜 칩거를 깨고 무림과 동맹을 맺기 위해서라도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평무인들은 광명마교가 왜 빙궁을 하인처럼 부리는지 모를 테지.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한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거야.”

“.......”

사실 적시로 두들겨맞은 야율산산은 너덜너덜한 정신을 부둥켜잡지도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잠시 후 그녀가 땅이 꺼져라 탄식했다.

“이건 제가 생각한 방식과는 좀 많이 다른데요.”

“원래는 어쩔 생각이었는데?”

“일단 낭왕 어르신을 회복시키고, 또 궁의 무사들을 설득한 다음에 거사를 일으킬 생각이었죠.”

“과정은 달라도 결과는 같아.”

“...실패하면 우린 반역자로 몰릴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고사한다. 시간을 끌수록 저쪽에 넘어가는 자들이 많아질 거야.”

팔사도가 생판 남이었다면 궁의 무인들도 반발했겠지만 그녀는 빙궁주의 누이였다.

실제 속내가 어떻든 대외적으론 사경을 헤매는 오라비를 보살피고 있다고 알려진 것이다.

만약 여기서 뒤집지 못하면 역으로 궁주의 병상을 틈타 권좌를 탐한 반역자로 몰릴 테지.

후계자로 내정된 야율산산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일부러 내버려둔 걸지도 모르지.’

설사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강엽이 야율산산을 돌아봤다.

“나나 동맹건에 대해 굳이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어. 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를 보는 거다.”

“...그건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요?”

“대중은 진실에 관심이 없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는 걸 믿지. 지금 이 시점에서 빙궁의 무인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할까?”

“그야....”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한 야율산산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 말씀하신 명분 말인가요?”

“그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광명마교가 빙궁이나 도시에서 패악질을 부린 적 있나?”

아무리 군기가 잘 잡혀 있어도 사람이 다섯 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쓰레기인 법.

분명히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본 이들이 있으리라.

“...많아요.”

야율산산의 입가에 씁쓸한 기색이 맺혔다.

탁자 아래에서 치맛자락을 잡은 손이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을 꽉 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광명마교의 간부가 시비를 욕보인 적이 있어요. 그 시비는 정혼자가 있었는데, 정절을 잃은 충격에 그만....”

정혼자는 빙궁의 무인이었다.

그는 연인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마교도에게 덤볐지만, 오히려 죽도록 맞고 폐인이 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설하가 나섰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도시 주민들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남편이 도시에서 주루를 하고 있는 만큼 다른 이들보다 많은 소식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사흘 전, 마교도들이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를 죽였습니다. 옷에 양념을 튀겼다는 이유였습니다. 닷새 전엔 기녀가 수청을 들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죽이고 기루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없이 무고한 이들이 죽고 다쳤다.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기분 나쁘게 굴었다는 이유로 점령군처럼 행세하며 북해의 주민들을 핍박했다.

“섭선을 독문병기로 삼은 대교가 있습니다.”

“콧수염을 기른 놈?”

“예, 맞습니다. 그놈은 도시 바깥에서 사흘 거리에 있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몰살시켰습니다.”

본인이 한 짓이 아니라고 한사코 부정했지만, 독문 선법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체에 남겨진 흔적은 몹시 가학적이었다. 대상이 죽기 전까지 고문했던 것이다.

“.......”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파악하기 힘든데, 이쪽의 힘은 부족하고 빙궁주는 인질로 잡혀 있다.

절망을 타파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쓸개를 핥는 심정으로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것뿐.

“순서를 좀 바꿔야겠어.”

강엽이 아설하를 돌아봤다.

“나와 야율산산은 궁 내부에서 움직인다. 당신은 남편과 함께 바깥에서 움직여.”

“바깥이라 하시면?”

“판을 키워야지.”

강엽의 눈이 시린 한광을 품었다.

* * *

아설하를 보낸 뒤, 강엽은 야율산산을 대동하고 궁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소궁주가 낯선 사내를 끼고 경내를 돌아다니는 광경에 지나가던 이들이 멈칫하며 돌아봤다.

대다수는 머리를 조아리거나 포권을 하면서 예를 갖추었으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이거 소궁주님이 아니시오?”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사내. 말끔한 도복 위에 황금빛 수실로 태양을 새긴 광명마교의 대교였다.

일찍이 강엽이 성문을 통과했을 때 빙궁 무인들의 뒤편에서 수문장처럼 굴었던 자.

그가 야율산산과 걸어오는 강엽을 흘겨보고는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처음 보는 자인데 누구요?”

“내가 대답해야 하나요?”

앙칼진 대답에 대교가 콧수염을 씰룩거리더니, 피식 웃으면서 두 손을 들어보였다.

“저런, 심기가 상하셨나 보군. 하지만 혼인을 앞두고 계신 분께서 외간 남자와 함께 다니시면 자칫 안 좋은 소문이 날 수 있소이다.”

“혼인?”

무시할 수 없는 말에 강엽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데, 야율산산은 불쾌감을 내비쳤다.

“별 거 아니에요. 예 공자라는 자인데, 본인 말로는 사도의 직위에 오른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혼인할 생각도 없는데 멋대로 떠들고 다녀요.”

그게 진실인지 아니면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허세로 늘어놓은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의 앞길을 막은 대교는 그녀의 말에 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콧수염을 매만졌다.

“혼인할 생각이 없으시다? 뭐, 좋소. 그건 내 소관이 아니지. 예간성 그 친구가 알아서 할 일이야. 하지만....”

그가 섭선을 펼쳐들자 날카로운 예기가 강엽의 목덜미를 노리고 쏘아졌다.

“이자가 누군지는 알아야겠소이다.”

날카롭게 벼려진 철편을 겹겹이 두른 섭선.

사전 동작 없이 휘둘러졌기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반응도 할 수 없는 기습적인 출수였다.

그러나 빠르게 가져간 출수는 강엽의 손에 붙잡혀 단단히 고정되었을 뿐.

한순간에 이루어진 공수탈백인에 그는 그제야 강엽이 자신 이상의 고수임을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이런! 예삿놈이...!”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콰앙!

별안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력이 전신을 후려쳐서 저 멀리 내동댕이쳐버린 것이다.

전력으로 달리는 육두마차에 치인 것마냥 날아간 그는 사지가 꺾인 채 바들바들 떨었다.

“.......”

백주의 참상에 사위가 얼어붙었다.

마치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경악을 대변하듯 숨소리마저 자취를 감춘 고요한 적막.

야율산산도 뻣뻣해진 가운데 강엽이 손가락을 까딱여 대교를 허공섭물로 움켜쥐었다.

“팔사도는 어딨나?”

“케흑... 나안, 오, 올라....”

콧대가 주저앉고 턱뼈가 덜렁거린다. 가지런한 치아도 우수수 부러져서 발음이 엉망진창이었다.

강엽의 왼쪽 눈동자에 선명한 붉은빛이 떠올랐다.

“궁주전에 있군.”

“으어...!”

콰직!

실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떨어진 시신을 힐끗 일별한 강엽이 무신경하게 몸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소궁주님! 이건 대체...!”

궁의 무인들이 뒤늦게 기겁하며 나서자 야율산산이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늦어.”

무인들을 쭉 훑어보는 차가운 눈길. 흠칫 굳어진 무인들이 병장기를 움켜쥐었지만 빼내진 못했다.

좀 전에 광명마교의 대교가 어찌 죽었는지 본 것이다.

“더 빨리 움직였어야지. 저놈이 소궁주를 위협한 걸 못 봤나?”

“아니, 그건...!”

야율산산이 아니라 강엽을 위협한 게 아닌가.

그들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반발했지만 강엽은 아랑곳하지 않고 몰아붙였다.

“마교도가 소궁주의 앞길을 막고 손님을 위협했다. 이건 소궁주의 권위를 무시한 거다. 근데 너희는 막기는커녕 멀리서 관망만 했어. 아닌가?”

물론 시시비비를 가리면 빙궁의 무인들도 할 말은 있으리라. 다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들로 하여금 항변할 수 없도록 강제했다.

그때 야율산산이 나섰다.

“이제는 참지 않을 겁니다.”

“예에?”

“일부 배신자들이 광명마교와 결탁하여 궁주님을 억류하고, 궁의 대소사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의 사람들과 도시 주민들을 핍박하고 있어요.”

“....”

무인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었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했지만 광명마교가 빙궁에 들어앉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즉시 궁도들에게 전하세요. 불의에 맞서 일어날 때라고. 광명마교를 몰아낼 겁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무인들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외인들이 점령군 행세를 하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부에 얼마나 실망했던가.

“네, 지금이야말로 일어설 때입니다.”

이미 아설하가 조직과 타격대에 서찰을 보냈다.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응할지는 미지수지만, 이전부터 같은 뜻을 품은 동지들은 움직일 터.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젠 멈출 수 없다.

무인들을 보낸 뒤 두 사람은 궁주전으로 갔고, 광명마교의 무리를 마주치는 족족 참살했다.

어느덧 야율산산도 두 손으로 새하얀 장력을 발출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북해빙궁의 궁주 직계로 전해지는 독문신공.

-빙백신공(氷白神功).

한여름의 초목과 연못이 꽁꽁 얼어붙는다. 단지 야율산산이 지나가는 것만으로 그리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이군.’

요 이 년간 몰라보게 자라긴 했어도 야율산산의 나이는 스무 살도 안 됐을 터.

한데 야율산산은 그 나이에 중단전을 개방하고, 심상을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소궁주라는 신분을 감안해도 엄청난 성장세. 어쩌면 몇 년 뒤엔 삼화취정을 이룰지도 모르지.

그리 생각하면서 마교도의 숨통을 끊을 때였다.

쉬아아아악!

사각에서 쇄도하는 격공검을 감지한 강엽이 주먹을 치켜들어 기습을 분쇄했다.

“...어이가 없군. 격공을 그런 식으로 막아?”

새하얀 소맷자락을 나부끼는 영준한 청년.

그를 알아본 야율산산이 쌍심지를 켰다.

“예 공자...!”

“야율 소저, 언젠가 일을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구려.”

“너무 늦었지요. 진작에 행동했어야 했는데.”

“저놈을 믿는 거요?”

화아아아아악...!

자신의 신장만큼 거대한 대검을 들자 태산처럼 묵직한 기운이 사위를 짓누르듯 내리꽂힌다.

청년이 등장했을 때부터 그를 유심히 지켜봤던 강엽은 그제서야 누군가의 흔적을 찾고 피식 웃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하게 낯익다 싶더니... 일사도와 똑닮았군. 둘이 형제냐?”

“...일사도를 아나?”

“얼마 전에 신나게 치고받았지.”

“허세가 일품이구나. 내 얼굴을 보고 일사도를 찾는 걸 보면 안면이 있긴 한 것 같은데....”

청년, 예간성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손속을 나누기 전에 인사나 하자. 난 예간성이다. 영광스러운 사도에 오를 몸이지.”

“글쎄, 소개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데... 뭐, 알려주지 못할 건 없지. 귀영이다.”

“...뭐라고?”

예간성의 입매가 경직됐다.

머나먼 북해에 처박힌 그도 바로 반응할 만큼 요주에 오른 자의 별호였다.

“삼화취정을 이룬 걸 보니 사도 운운할 실력은 되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내뱉기도 전에 강엽의 신형이 사라졌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예간성이 식겁하며 강기를 두른 대검을 비스듬히 휘두를 때.

강엽의 손날이 호신강기를 종잇장처럼 베어버리면서 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내가 좀 바빠. 아쉽지만 네 실력을 봐줄 순 없겠다.”

“게르륵....”

예간성은 말할 수 없었다.

덜덜 떨면서 목을 잡았지만, 강엽이 머리채를 잡자 몸통만 철푸덕 쓰러지면서 피를 뿜었다.

장차 사도가 될 자에 어울리지 않은 허망한 죽음.

야율산산도 멍하니 입을 벌렸다.

“...사도를 이렇게 쉽게?”

“엄밀히 말하면 사도보다는 약해. 혈교의 교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마 백서희나 하후진이 이 자리에 있었어도 예간성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쯤에서 강엽은 말을 멈추고 그들이 지나쳤던 방향을 돌아봤다.

와아아아아아아!

털옷을 입은 빙궁의 무인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던 것.

가슴을 쓸어내린 야율산산은 문득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광명마교를 보고 눈매를 굳혔다.

“가세요.”

“음?”

“저도 금방 따라갈게요. 아버지를 잘 부탁드려요.”

팔사도와의 싸움에서 그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강엽에게 팔사도와의 싸움을 위임하고, 그 자신은 전장에 남아 승기를 굳히려는 것이다.

강엽은 거절하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궁주전의 지붕.

땅으로 잡아끄는 힘을 거스르듯 하늘 높이 치솟으며 푸른 기와를 향해 떨어졌다.

콰가아아아아앙!

단박에 전각을 부수고 아래층까지 파고든다.

공교롭게도 팔사도와 빙궁주의 사이에 착지하며 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신은...!”

무어라 외치는 팔사도의 모습.

그녀가 말을 끝내기 전에 강엽은 조풍을 휘둘러 호신강기를 찢고, 수중의 머리를 내던졌다.

허공섭물로 십자창을 가져와서 머리를 막은 팔사도가 유려한 아미를 치켜뜨며 분개했다.

“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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