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303화 (299/450)

59화. 소요 (3)

새하얀 운해를 거느린 산봉우리.

옥룡설산의 가장 높은 산봉은 모산혈조가 대법을 강행했던 장소였다.

모산혈조와 그 제자들이 전멸한 시점에서 텅텅 비어있어야 할 곳.

하지만 사람은 비어 있어도 거처로 쓴 곳엔 대법에 대한 자료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했는데....

“선객이 왔던 것 같은데?”

어지러운 방을 둘러본 백서희가 삐딱하게 말했다.

먼지가 내려앉은 바닥엔 발자국이 찍힌 데다, 뭔가를 뒤진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었다.

“혈교가 철수한 것 아니야?”

“아니.”

강엽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들었다.

“그랬다면 이런 걸 놔두고 갈 리가 없지.”

얼핏 보면 뭔가 어지럽게 적혀 있는 것 같지만, 강엽은 이게 술법의 한 구절임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이밀며 종이를 살핀 백서희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하나도 모르겠네. 이게 뭐야?”

“범어(梵語).”

“...범어? 엄청 옛날 사람들이 썼던 말?”

“정확히는 천축에서 쓴 언어인데... 그쪽에서 넘어온 술법들이 많거든.”

모산파의 술법은 범어와 상관이 없지만, 진혈강림대법은 천축 밀교(密敎)의 영향을 받은 술법.

술법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구절이 적힌 종이를 흘리고 갈 리가 없었다.

“흔적이 오래되지 않았어.”

“여기서부턴 내가 좀 더 낫겠다.”

살수의 덕목엔 추종술도 있다. 백서희는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상대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상대가 구태여 숨기지도 않은 덕분이었다.

거처 뒤편의 삼나무숲을 지나서 정상에 오른 두 사람은 큼지막한 제단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쪽을 둘러보고 있던 사람도.

“넌 뭐냐?”

강엽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초음의 공능으로 상대가 삼화취정를 이룬 초고수임을 깨닫고 기세를 끌어올리자 청년이 식겁했다.

“아니, 여긴 어떻게 알고...?”

“그건 내가 물을 말이군. 여긴 혈교밖에 모를 텐데. 혈교의 주구냐?”

“이거 참... 일이 요상하게 됐군요.”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청년의 얼굴.

백서희가 쌍검을 들며 경고했다.

“어물쩍 넘길 생각 마. 모산파 제자들의 거처를 뒤진 거 당신이지?”

“하아, 이거야 원... 그나마 성과를 가져가나 싶었는데 이렇게 뒷덜미를 잡힐 줄이야.”

두 사람을 번갈아본 청년이 푹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싸울 뜻이 없다는 듯이 빈 손을 반쯤 들어올렸다.

“외통수네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짐작대로 저는 모산파 제자들의 거처를 뒤졌습니다. 하지만 혈교의 주구는 아닙니다.”

“당신 누구야?”

“하하, 그게....”

“광명마교인가?”

여유가 있었던 청년은 뒤이은 강엽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백서희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광명마교라고?”

“혈교가 아니면 광명마교나 무림맹인데. 무림맹의 인사라면 적어도 우리 몰래 이딴 짓을 하지 않겠지. 할 이유도 없고.”

강엽이 한 걸음 나서자 마찬가지로 한 걸음 물러난 청년이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날붙이는 보이지 않지만, 강엽은 청년이 자신의 병장기를 교묘하게 숨겨뒀다는 걸 알아봤다.

백서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새끼 봐라. 토시에 칼 숨기고 있네? 혁대는 연검이고, 가죽신도 암기를 숨겨둔 것 같고, 위건(圍巾 : 목도리)은 천잠사로 만든 게 뭔가 있구만.”

전직 살수답게 청년이 전신에 살행을 위한 무기를 둘렀음을 꿰뚫어본 것이다.

청년이 혀를 내둘렀다.

“보통내기가 아닌 건 알았지만 눈썰미가 좋군요.”

“끝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강엽이 말끝을 흐리는 것과 동시에 시커먼 안개가 정상 주변을 포위하듯 에워싸기 시작했다.

청년이 제단 주변에 놓아둔 바랑을 허공섭물로 띄우면서 몸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촤아아악!

어둠 속을 뚫고 오는 한 줄기 섬광.

전신의 털이 쭈뼛 선 청년은 필사적으로 몸을 틀며 외쳤다.

“성급하시군요! 얘기를 좀...!”

“들어주지. 일단 제압한 다음에.”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겁한 청년이 비수를 휘둘렀다.

아무런 사전동작도 없이 음속을 넘는 기습.

턱!

강기를 두른 비수가 맨손에 잡히자 청년이 어이없어했다.

“...금강불괴?”

호신기도 없이 맨몸으로 강기를 잡았는데도 잘리기는커녕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

비수를 버린 청년은 몰래 꺼낸 판관필로 강엽의 눈동자를 찍고, 십성의 공력을 담은 슬격으로 낭심을 찍었다.

아무리 금강불괴라도 뼈나 근육이 없는 곳까지 단단하지는 않을 터.

그러나 후속타는 허무하게 잔상만 가를 뿐이었다.

‘이형환위? 아니, 뭔가 다르다!’

눈앞에서 일어난 현상이 뭔지 분석할 시간 따윈 없었다.

청년은 본능적으로 다음 수를 가져갔고,

퍼어엉...!

“흐읍!”

빛살처럼 질주하는 척초를 호신강기로 막으면서 잇몸이 으스러져라 이를 꽉 악물었다.

‘사일검법! 이 계집이 어떻게?’

강엽이 청년을 붙잡은 동안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몸을 날린 백서희의 찌르기 일격.

탄자결로 허리와 하체에 경력을 돋운 그녀의 가속은 음속을 넘어섰다. 충돌음이 들린 것은 검극이 호신강기를 찌르고 난 직후.

...콰차아아아앙!

유리조각처럼 깨진 내공 파편들이 흩날렸다.

“......!”

세 겹으로 쌓아올린 호신강기가 단숨에 뚫렸다. 그나마 세 겹을 뚫었을 때는 위력이 다소 죽어서 운 좋게 피할 수 있었다.

몇 달 전에 객사한 오사도의 궁격이 연상되는 찌르기 일격.

투아아앙!

“크헉!”

묵직한 장력이 척추를 강타했다. 앞서 호신강기가 깨져나갔기에 속절없이 당했다.

은신술로 몸을 숨기는 것도 소용없다. 그가 자신하던 수가 이 둘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으니까.

‘사도급 고수만 두 명! 게다가 한 명은 최소 일사도급...!’

결국 청년은 바랑도 빼앗기고 강엽에게 목이 잡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암기나 날붙이 따위는 좀 남았지만, 그걸 쓴다고 이 둘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을까?

회의감을 품은 청년은 강엽의 손을 툭툭 치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다, 다 말할 테니까 좀....”

자존심이 상하지만 목숨을 건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필요 없어. 알아서 알아내마.”

“뭐? 크억!”

강엽의 왼쪽 눈동자가 붉게 물드는 것과 동시에 청년은 뇌리로 침투하는 고통에 입을 떡 벌렸다.

날카로운 칼날로 뇌를 저미는 격통이 머릿속을 마비시킨다.

“...그랬나.”

“뭔가 알아냈어?”

“이놈은 광명마교의 구사도다.”

“엥? 구사도?”

“사도 중에선 말석인 것 같군. 말석이라고 실력이 뒤쳐지는 건 아니겠지만....”

강엽이 이제껏 겪어본 사도는 둘. 하나는 황산에서 만난 팔사도였고, 다른 하나는 무림맹으로 오는 길에 시비가 붙어서 싸운 오사도였다.

‘오사도보다는 좀 약한 것 같은데... 그래도 압도적으로 실력 차이가 나진 않아.’

오사도와 싸웠을 때의 실력이었다면, 그리고 백서희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쉽게 제압하지 못했겠지.

구사도 역시 삼화취정을 이룬 고수답게 만만치 않은 무공의 소유자였다.

“근데 이놈, 점창파에 잠입했었는데?”

“뭐어!?”

“피난민으로 위장했군. 우릴 염탐한 적도 있고. 상황을 봐서 이기는 놈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어.”

“등잔 밑이 어두웠네.”

피난민들 중에 광명마교의 사도가 섞여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적의 세작이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칫했으면 뒤통수를 맞을 뻔했다.

“그런데 이놈은 왜 여기 있지?”

“사천삼패가 개입한 뒤에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겼으니까.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거지.”

만약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면, 혹은 중요한 고수들이 부상을 입었다면 암살을 계획했을 것이다.

하나 낙일신검을 제외하면 이쪽의 고수들은 모두 무사했으니 빈틈을 노릴 수가 없었을 터.

“여기 위치를 안 건... 모산파 제자들의 시체를 몰래 뒤졌군. 시신을 수습하는 척하면서 혹시 그들이 남긴 게 없는지 살펴봤던 거야.”

참고로 점창파 제자들의 시신은 매장했고, 그들을 돕기 위해 온 무림인들의 시신은 화장했다.

맹월림의 칼받이로 쓰인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혈교나 모산파처럼 사마외도 취급받은 적들은 으슥한 절벽에 버렸다. 그대로 두면 산짐승들이나 맹금들이 뜯어먹을 테니까.

“그러니 소홀히 할 수밖에. 돈이나 병장기도 아니고 개인의 일지 같은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겠지. 피난민들이라면 더욱 그랬을 테고.”

“그럼 모산파 제자들의 시체에 옥룡설산에 대한 정보가 있었나 보네.”

“그래. 이놈은 우연히 그걸 발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본 거야. 그리고.... 음?”

좀 더 깊숙이 기억의 저편으로 들어가본 강엽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단단한 벽에 막힌 것처럼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슬슬 정신을 차렸나?”

삼화취정의 초고수쯤 되면 완벽히 제압해도 기억을 엿보는 데 한계가 있다. 워낙 정신력이 강하기 때문에 도중에 마안을 뿌리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과도 달랐다.

우우우우웅...!

손을 밀어내는 무채색의 공력.

눈썹을 치켜뜬 강엽이 구사도를 내던지자 그의 몸이 팽이처럼 빙그르르 회전했다.

제단 위에 가볍게 착지한 구사도가 목을 뚜둑 꺾으며 씩 웃었다.

“이런, 이건 뜻밖의 만남이로군.”

“강엽, 왜...!?”

강엽은 말없이 구사도를 노려봤다. 구사도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되, 알맹이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찬란한 빛기둥이 솟구치며 구사도의 외형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원영신...!”

화아아아아아악-!

눈부신 광채가 뼈대만 남은 제단을 산산조각 부수고, 낮게 깔린 운해까지 둥그렇게 밀어낸다.

단지 현신하는 것만으로 천재지변에 준하는 존재감.

잔잔한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오랜만이구나, 진조의 후예.”

깨끗한 백색 유삼을 입은 사내.

구사도의 몸에 원영신으로 강림한 광명마교주가, 강엽을 보며 티없이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실수했군.’

강엽이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가 사도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광명마교주가 현신할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건만.

백서희도 광명마교주의 몸에서 풍기는 압도적인 기척을 느끼고 얼어붙었다.

“이, 이거 진짜 말도 안 되는 괴물이네....”

삼화취정에 올랐음에도, 아니 삼화취정에 올랐기에 광명마교주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삼화취정이니 오기조원이니 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물.

다행스럽게도 광명마교주 역시 두 사람을 당장 적대할 생각은 없는 듯 팔짱만 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두어 달 전이었던가? 그때도 사도급이었는데 몰라보게 강해졌군. 역시 진조의 후예라고 해야 할까... 아니.”

강엽을 위아래로 훑어본 광명마교주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새로운 일월신교주라고 해야겠군.”

“....”

대강 훑어본 것만으로 일월신마공을 익혔다는 것을 눈치챈 건가.

‘역시 이놈은 괴물이다.’

심상지경에 오른 지금도 광명마교주와 일대일로 붙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나마 원영신인 지금이라면 해볼 만할지도....

“혹시 본좌가 원영신이라서 싸워볼 만하다고 느꼈나?”

속마음을 꿰뚫어본 것처럼 묻는 질문.

납덩이처럼 딱딱해진 표정을 본 광명마교주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 그때 본좌의 심성절예를 봤으면서도 승산을 가늠하고 있다니. 용기가 가상하군.”

“원영신으로 싸우면 한계가 있을 텐데?”

“음?”

“일전에 염왕과 싸웠을 때도 급하게 후퇴했지. 원영신을 오래 유지할 수 없거나 심상절예를 쓸 수 있는 횟수에 한계가 있어서 아닌가?”

“....”

“가장 강한 일사도의 몸을 그릇으로 삼았을 때도 그랬는데, 구사도는 말할 것도 없겠지.”

원영신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심상절예를 몇 번이나 퍼부으면 구사도의 육신이 버티지 못할 터.

‘하지만 놈이 구사도의 죽음을 감수하고 심상절예를 쓴다면... 그 시점에서 끝이다.’

자신이야 무광암이 있으니 어떻게든 한 번은 무사히 막아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서희는 무조건 휘말린다. 어쩌면 산 아래에 있는 완안극과 금사하까지도.

“허세를 부리는구나, 진조의 후예. 속으로는 미칠 듯이 두려워하면서 억지로 수를 계산하고 있어.”

실소를 흘린 광명마교주가 백서희를 향해 눈길을 돌리자 그녀가 흠칫 굳어졌다.

“용혈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흑룡교의 신녀를 닮기도 했고... 백무량의 후손인가?”

“흑룡교의 신녀?”

백서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똑닮았군. 생각해보니 참 공교로운데. 그녀는 흑룡교의 신녀였지만 일월신교주의 딸이기도 했지.”

“뭐? 그게 뭔 개같은 족보야!?”

강엽도 놀랐다. 흑룡교의 신녀가 일월신교 출신이었다니?

“몰랐나 보군. 흑룡교와 일월신교는 사이가 썩 나쁘지 않았다. 시조들끼리 막역하게 지냈고, 가급적 서로 적대하지 말라는 훈시를 남겼기 때문에 후손들도 그 말을 따랐거든.”

유익과 백무량은 함께 싸웠던 동료였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훗날을 기약하며 모종의 약속을 나눈 동지.

대를 거듭하면서 끈끈했던 관계는 옅어졌을지 몰라도 혈교나 광명마교처럼 적대하진 않았다.

“흑룡교가 강성했던 시절엔 일월신교가 약했었다. 당시 흑룡교와 일월신교가 서장의 지배를 두고 다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일월신교가 안전한 철군을 약속받은 대가로 교주의 딸을 흑룡교에 바쳤다.”

“그 사람이 흑룡교의 신녀가 됐다는 건가?”

“흑룡교주의 아내가 되었지. 중원 무림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마도제일미로 소문난 경국지색의 미녀였다. 흑룡교주가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다른 마교끼리 붙었다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만, 흑룡교와 일월신교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정략혼이라는 형태로 불가침을 약속한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광명마교주가 피식거렸다.

“재밌군. 진조의 후예가 일월신마공과 전륜구룡공을 익히고, 흑룡교주와 일월신교주의 피를 이은 여인과 함께 다닌다? 운명이 두 마교의 인연을 한데 묶는 것 같지 않은가?”

“...당신하고는 상관없는 문제지.”

“그래, 본좌와는 상관없지. 중요한 건 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광명마교주가 구사도의 몸으로 현신한 시점에서 주도권은 넘어갔다.

그러나 광명마교주는 섣부른 전투를 택하는 대신 뜻밖의 선택지를 내밀었다.

“협상을 제안한다, 진조의 후예.”

“...협상?”

“그래, 구사도를 성히 보내준다면 모산혈조의 자료를 모두 넘겨주마.”

“그걸로 될 거라고 생각하나?”

모산혈조의 술법에 대한 정보는 이미 강엽의 손에 있다. 게다가 잃는다고 해도 큰 가치는 없었다.

‘여차하면 그냥 파쇄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옥룡설산에 찾아온 것이다.

광명마교주가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당연히 그걸로는 부족하겠지. 본좌가 제시할 또다른 조건은 혈교에 대한 정보다.”

“...!”

“운남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알고 있다. 넌 전쟁에서 이겼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시점에서 혈교는 목적을 이룬 거야.”

“뭐라고?”

“암룡승천술. 전쟁에서 죽은 혼백들은 모산혈조가 흡혈귀가 되기 위해 취했지. 하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혈교 본단으로 향했지.”

“혈교의 본단에...?”

“연옥으로 가기 위한 문을 열기 위해서다. 혈마와 그 측근들이 갇힌 곳을 열기 위한 재료로 말이다.”

“...혈마를 부활시키기 위해서인가?”

“일단은 측근들, 호교사천부터 부활시킬 거다. 그들이 전부 부활하면, 마지막으로 혈마가 부활하겠지. 애초에 그런 식으로 짜인 술법이니까.”

강엽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는 알아들었다. 운남의 전쟁이 혈마와 그 측근들을 부활시키기 위한 밑준비였으며, 거의 이뤄냈다는 것을.

“삼십여 년 전에 혈교가 난리를 치면서 하나가 부활했지. 아마 검마일 거다.”

대륙 전역에 걸친 혈교의 난.

광명마교주는 그것이 혈마의 측근 중 하나를 부활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 또 하나가 부활했을 거다. 두 번째는 요선의 차례로군.”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광명마교의 시조가 혈교와 깊이 연관된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거기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하지만 본좌의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건 진실이다.”

광명마교주를 신뢰하지 않으니 그가 명예를 걸고 약속해봤자 믿을 순 없었다.

그러나 진조의 영성이 속삭였다.

‘저 말에 거짓은 없어.’

진실을 모두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거짓을 섞지는 않았다.

광명마교주가 경고했다.

“만약 그들과 부딪친다면 조심해라. 그들은 하나하나가 심상지경을 이룬 고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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