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반격 (6)
‘운이 좋군.’
강엽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낙일신검이 아니라 나를 노려서.’
만약 맹월림주가 냉철하게 대국을 보았다면 낙일신검을 노렸을 테지.
어떤 전쟁이든 왕이 사로잡히면 끝나는 법.
설령 강엽이 더 위협적이라고 해도, 낙일신검부터 제압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적룡마창과 월야살이 각각 낙일신검과 현운 도장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완안극과 독주사가 독공을 겨루고 있었는데, 언뜻 봐도 독주사가 밀리는 양상.
그동안 점창육로가 아군을 이끌며 적들을 밀어버리고 있었는데, 숫적으로는 밀려도 고수층은 더 두꺼운 만큼 오히려 몰아붙이고 있었다.
특히 점창육로 중에 낙일신검 다음의 고수인 종현은 삼화취정에 오른지라 막을 자가 없었다.
문제는 혈라분을 복용한 적들이 팔다리가 잘리는 고통에도 개의치 않고 싸운다는 것.
전날 완안극이 독을 풀어 상당수가 전력에서 이탈했는데도 천 명에 가까운 병력이 모였다.
‘그 짧은 사이에 이만한 병력을 다시 모으다니... 역시 이놈들은 만만치 않아.’
일반적인 무림 문파와는 달리 맹월림은 운남 전역에 넓게 퍼진 부족들을 끌어모은 세력.
전사들 하나하나의 수준은 평범한 무림인에 못 미칠지라도 그 전력은 어지간한 소국에 필적한다.
만약 맹월림이 점창파를 밀어버리고, 태화문을 삼킨 혈교 세력과 협력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면 사천 무림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겠지.
이 싸움이 분수령이었다.
[어딜 보느냐, 귀영!]
쩌렁쩌렁한 전성과 함께 달려오는 거구. 아니, 전성이 꽂히기도 전에 먼저 도달했다.
찌아아아아악!
무려 여덟 겹이나 두른 호신의 술법을 종잇장마냥 찢어버리고 강엽을 향해 내려치는 도격 경파.
다시 한번 호신의 술법을 비스듬한 각도로 짜서 아슬아슬하게 도격을 틀었지만, 묵직한 각력이 뒤를 이었다.
태극반의 경파로 최대한 흘려냈음에도 손목이 저릿해지는 위력이었다.
‘불괴가 없었다면 뼈가 부러졌겠군.’
상대의 각력을 가늠한 강엽이 내심 혀를 내두르는데, 이번엔 횡으로 도격이 날아왔다.
쿠아아아아앙!
더 두껍게 엮은 호신의 술법으로 도격을 막자 거센 충격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왜 그러지? 처음의 기세는 어디 간 거냐!]
도발하며 다시 한번 공세를 이어가는 맹월림주였지만, 기실 그의 털가죽도 피투성이였다.
두 사람이 딛고 선 혈라지망은 일견 얇은 실처럼 보이나, 그 정체는 보검처럼 예리한 강사(罡絲).
상시적인 호신강기를 두르지 않는다면 발바닥이 조각조각 잘려나간다.
강엽도 혈라지망을 유지하기 위해 공력을 소모하지만, 상대 역시 그만한 소모를 감수해야 하는 일.
그러나 맹월림주는 공력을 소모하는 대신 단단한 털가죽과 재생력을 믿고 전심전력을 발했다.
‘어지간한 상처는 한 호흡 만에 아물고 있어. 인랑이라는 놈과는 비교도 안 되는군.’
이만하면 강엽 자신에 버금가는 재생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집중해라, 귀영. 강적을 앞에 두고 한눈을 파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니면 시간이 네 편이라 생각하나?]
늑대의 면상에 박힌 푸른 눈동자가 둥글게 휘어졌다.
[이 거미줄은 네 호신강기겠지? 호신강기가 무너지면 그 반동은 주인에게 돌아가는 법. 네놈이 금강불괴라고 해도 그 충격은 작지 않을 거다.]
“.......”
비아냥거리는 투로 도발하지만, 말에 담긴 내용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혈라지망의 실이 끊어질 때마다 심신 전반에 걸쳐 막대한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으니까.
맹월림주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이딴 거에 의존할 바엔 무인답게 싸워보자.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는 육탄전이 낫지 않나!?]
쾅! 쾅! 투아아아앙!
한가롭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아도, 두 사람은 거미줄 위를 질주하며 싸우고 있었다.
호흡 한 번 내쉬는 동안에 몇 번씩 위치를 바꾸면서 수십 합을 교환하고 상대를 찢는다.
평평한 땅 위에서 치고받는 싸움과 달리, 높낮이가 다른 혈라지망 위에서 곡예를 하듯 꺾고 흘리며 끊임없이 부딪치는 공방.
쉬아아아악!
섬전같은 도격이 밤하늘을 조각내는 것과 동시에, 하늘 높이 도약한 강엽이 유려하게 몸을 틀었다.
[제대로 싸우라니까! 시간을 끌 작정인가? 네놈 동료들이 내 부하들을 다 쓰러트리면, 힘을 합쳐서 날 죽이려는 수작인 줄 모를 것 같나!]
거세게 날아오는 도격 경파를 피한 강엽이 차갑게 일갈했다.
“착각하지 마라.”
[뭐?]
“내가 왜 네 알량한 자존심을 챙겨줘야 하지? 네가 맹월림주라서? 팔대교왕에 오른 강자라서?”
[.......]
입을 다문 늑대 머리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강엽이 말했다.
“넌 버러지다. 힘으로 남을 억압하고, 제 부하들을 소모품처럼 쓰다 버리고, 제 욕망만 우선시하는 놈.”
[이놈, 내 대의를 모욕하는 거냐!?]
“대의? 황제의 지배를 벗어나서 왕국을 세우자는 대의 말인가?”
강엽이 피식 웃었다.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네가 왕으로 군림하는 게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더 불행 같은데? 사는 게 팍팍하다고 지옥으로 들어가면 쓰나.”
말하자마자 짐승의 포효가 강맹한 도격과 함께 날아왔다. 얼마 남지 않은 혈라지망의 거미줄을 절반이나 날려버린 경파의 폭풍.
무지막지한 강기가 노도처럼 휘몰아치면서 강엽을 압박했다.
[닥쳐라! 나는 과거 대리국 제일의 명문가였던 고가(高家)의 후예! 이 땅을 영광으로 이끌 자다!]
대리국. 한때 찬란한 시대를 구가했던 왕국은 침략자들의 창칼에 짓밟혀 오래된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
과연 운남 사람들 중에 수백 년 전에 멸망한 왕국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네 사정 따위는 관심 없어.”
[그렇다면 강제로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마!]
후우우우우웅......!
찰나지간 맹월림주의 육신 안쪽에서 폭발하듯 터져나온 흉흉한 기파.
한순간에 혈라지망의 전역을 아우른 기파가 하나의 일념에 따라 뭉치고 조각된다.
-광랑찬월가(狂狼簒月歌).
밤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늑대의 그림자가 만월을 집어삼키는 심상.
만월의 광기를 모조리 삼킨 맹월림주의 기파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혈라지망을 갈가리 찢어발긴다.
목구멍 너머로 올라오는 핏물을 삼킨 강엽이 쓴 속을 달래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 정말 끝장을 보자는 거군....”
사실 아무리 용을 써도 맹월림주쯤 되는 절세고수가 작정하고 덤비면 어쩔 수 없긴 했다.
맹월림주가 심극을 꺼냈는데, 이것까지 무시하면 그땐 정말로 목숨이 위험해지리라.
그 순간 세상이 어두컴컴하게 물들었다.
[뭐냐?]
먹물이 번지듯 강엽을 중심으로 사위가 어둑해지고, 세상과 유리된 것처럼 고요해진다.
-무광암.
지난날 광명마교주의 심상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손에 넣었으며, 금마와의 싸움을 통해 정립한 심극.
어찌 보면 달빛을 통해 펼치는 맹월림주의 심극과는 상극이었다.
치이이이이익...!
강엽을 중심으로 범람한 어둠이 맹월림주와 덮치는 것과 동시에 잡음이 울리고 흐릿한 잔상이 낀다.
양쪽의 심극이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제 위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쳇, 하필이면 상극의 심극을...!]
맹월림주가 혀를 찼다. 상대와 함께 심극을 펼친다고 무조건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상성에 구애받지 않는 심극이라면 서로를 침범하는 일 없이 온전히 펼쳐진다.
하지만 강엽의 심극은 빛을 삼키고, 맹월림주의 심극은 월광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만월에 펼친다면 천하팔존도 격살할 수 있는 심극.
하지만 심극을 온전히 펼칠 수 없다면....
“장군(將軍)이다.”
“뭣이?”
장기에서 상대의 궁을 잡고자 놓는 수. 강엽의 한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하나의 술법이 완성됐다.
시커먼 안개가 사위를 짓누를 듯 들이치며 밤하늘까지 가리자 맹월림주의 청안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네 심극은 외부의 영향을 받더군.”
맹월림주가 낙일신검의 제자인 점창파 장문인을 죽였을 때도 그랬다.
그들이 싸운 날을 되짚어보니 그날도 여지없이 보름달이 떴다.
워낙 비극적인 싸움인 만큼 그 싸움에서 살아남은 점창파의 제자들에게도 들을 수 있었다.
보름달이 불길할 정도로 짙은 음기를 뿌리던 날에 점창파 장문인이 비명에 횡사했다고.
그것만 들으면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변신할 때도 달의 음기에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놈의 심극 역시 월광의 영향을 받을 공산이 커.’
맹월림주가 심상절예의 경지를 이룩했다면 백날 계책을 쥐어짜내도 통하지 않았겠지만, 심극의 경지에 머물러있다면 이용할 여지는 충분했다.
무광암과 흑무암쇄진에 의해 월광이 차단되자 사그라드는 맹월림주의 기파. 점창산 전체를 뒤짚을 듯했던 기파가 급속도로 쇠해졌다.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냐?]
“물극필반이라고 아나? 강함이 극에 이르면 약해진다는 노자의 가르침이지. 뭐, 이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굳이 심극을 펼치는 순간을 노린 이유였다. 그들 같은 절세고수가 구명절초처럼 펼치는 기예인 만큼 꺼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공력을 잡아먹는 것.
‘내가 처음부터 무광암을 펼쳤다면 이놈은 도망치거나, 틈을 보면서 역습을 노렸겠지.’
애초에 강엽은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이 없었다.
맹월림주의 말마따나 아군이 적들을 제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륜전을 펼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맹월림주를 빠르게 제압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얼마나 강한 집단이든 왕이 사로잡히면 싸움은 끝나는 법이니까.
‘점창파에 쳐들어온 놈들이야 혈라분을 처먹었으니 천지분간 못하겠지만, 산 아래의 놈들은 다르다.’
맹월림에 반감을 갖는 부족들이 적지 않듯, 맹월림에 깊이 충성하는 부족들도 상당히 많다. 맹월림주를 사로잡는다면 그들도 한동안은 경거망동하지 못할 터.
츠와아아아아아악!
맹월림주는 어떻게든 강엽이 쳐둔 함정을 빠져나가려고 도격을 휘둘렀지만 소용없었다.
흑무암쇄진이 잠시 갈라진 바깥의 전경, 그 너머로 새로이 솟아오른 혈목들이 강선을 엮으면서 다시 혈라지망을 짰던 것이다.
이전의 혈라지망은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수십 겹이나 되는 호신의 술법이 도격을 막는다.
“시간이 됐군.”
위아아아아앙!
월광이 약해짐에 따라 잦아드는 광랑찬월가의 심극이, 이내 무광암의 어둠에 먹혀가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아까 전에 부쉈던 혈라지망 역시 함정의 일부였음을 직감한 맹월림주가 치를 떨었다.
그의 심리적 허점을 파고들기 위해서 어렵사리 혈라지망을 유지하는 듯한 연기를 했던 것이겠지.
[...그렇군. 내가 도망칠 여지도 주지 않기 위해서였나.]
일반적인 전쟁이었다면 적들이 독에 당해 골골대자마자 바로 병력을 갖춰서 쳐들어갔을 것이다.
하나 졸자들은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맹월림주쯤 되는 절세고수가 도주를 꾀한다면 잡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강엽은 그가 도주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긁고, 심리적인 허점을 파고들어 덫을 놨다.
“이제 넌 도주하지도 못하고, 점창파의 제자들이나 낭인들을 해치지도 못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둘.
강엽을 죽이거나, 맹월림의 고수들이 점창파를 이기고 바깥의 혈라지망을 부수는 것뿐.
하지만 맹월림이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두더라도 그때쯤엔 두 사람의 승부가 갈릴 것이다.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는 싸움을 원한다고 했던가?”
흠칫 몸을 비트는 맹월림주를 향해 강엽이 한 발을 내디뎠다.
“좋지. 그런 싸움. 어디 누가 부서지는지 해보자고.”
[이노오오오오옴!]
두 괴물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찰나 맹월림의 고수들은 직감했다.
모든 것을 걸고 내던진 건곤일척의 승부수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처음부터 이걸 위해서였나...!”
낙일신검의 전언을 빙자해서 군영에 쳐들어온 것도, 무위를 드러내서 위험한 적수임을 각인시킨 것도.
모두 맹월림주가 강엽과의 싸움을 가장 우선시하도록 교묘하게 심리적인 함정을 짠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전율한 적룡마창은 창졸간에 들이닥친 검광에 소스라치게 놀라 허리를 눕혔다.
그야말로 빛살처럼 미간을 찌르는 검극. 조금이라도 동작이 굼떴다면 바람구멍이 났을 것이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점창파의 사일검법은 일척필살(一刺必殺)을 오의로 삼지만, 검격이 무위에 그쳤다고 포기하는 일 따위는 없다.
낙일신검은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손목과 허리를 틀면서 연계를 이어갔다. 찌르기에서 연결되는 투로. 빛살을 나누는 검광이 시야 모서리를 베어들어왔다.
적룡마창이 허리를 퉁기며 바람개비처럼 돌자 그가 손에 쥔 적룡창이 뜨거운 옥염을 토해냈다.
그 뜨거움에서 사특한 기운을 감지한 낙일신검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평범한 교성의 공력이 아니군. 자네들도 혈라분이라는 비약을 복용했는가?”
“천하의 낙일신검을 상대하거늘 어찌 뒤를 생각하겠소? 우리 모두 오늘만 살겠다는 각오로 온 거요.”
목숨을 잃진 않더라도 한동안 정양하거나 장애를 앓을지 모른다. 어쩌면 주화입마에 들지도 모르는 일.
“그래도 상관없소. 이길 수만 있다면!”
“허어...!”
낙일신검이 탄식했다. 제자들을 죽인 원한과는 별개로 이들의 각오가 무섭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수인병단(獸人兵團)의 전사들이여!”
아군과 얽힌 맹월림의 전사들 일부가 만월을 우러르며 포효하더니, 옷을 찢고 이형의 존재가 되었다.
맹월림주와 인랑이 그랬듯 인간과 짐승이 뒤섞인 듯한 몰골에 낙일신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괴물들이 또 있었구먼.”
“기대하셔도 좋을 거요.”
적룡마창이 광소를 흘린다. 낙일신검은 코끝에 흘러들어오는 냄새를 맡고 표정을 굳혔다.
“화탄인가...!”
쾅! 쾅! 콰콰콰콰쾅!
수인병단은 단지 괴물로 변한 전사들이 아니었다. 진기가 흘러들어가면 발화되는 화탄을 패용하고 다녔다.
일순간 팽창한 충격파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날려버렸다. 불길에 휩싸여 허우적대는 사람들.
수인병단의 전사들 역시 횡액을 맞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몸이 상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맹월림주에 비할 수는 없어도 그들 역시 만월의 축복으로 한껏 재생력을 누렸던 것이다.
-우오오오오오오!
짐승처럼 포효하고 사방으로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에 낙일신검이 허연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이런 악독한...!”
“이기려면 뭔 짓인들 못하겠소?”
화탄이 터진 충격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각까지 덮쳤다. 도관의 목재가 산산이 터져나가고, 시뻘건 화마가 그렇게 부서진 곳을 덮친다.
그 광경을 발견한 사색이 됐다.
“아, 안 돼!”
안쪽엔 그들의 가족들이 있었다.
적룡마창 역시 그 기색을 알아채고 외쳤다.
“수인병단, 전각들을 노려라! 안에 숨은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
피난민들이 위협받는다면 전열이 무너진다. 맹월림이 이기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론만 말해서 그건 헛짓거리였다.
콰아아아앙-!
수인병단의 힘을 못 이기고 부서지는 전각들. 점창파 제자들과 낭인들을 뿌리치고 전각을 박살냈지만, 막상 두려움에 벌벌 떠는 사람들 따윈 없었다.
오히려 안쪽에서 터진 독기운에 수인병단이 코를 붙잡고 쓰러지는 모습.
“이런......!”
“허허, 마음이 급해지니 시야가 좁아지는군. 피난민들이 우리 약점인 걸 아는데 뻔히 안쪽에 두겠나?”
“하지만 기척이 느껴졌는데...!”
“술법으로 속인 거라네. 그래도 자네쯤 되는 고수라면 알아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약 때문인가? 판단력이 다소 흐려진 것 같구먼.”
“빌어먹을!”
또다시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에 적룡마창이 분통을 터뜨리는 한편, 피난민들은 가족들이 안전한 곳에 있다는 점창파 제자들의 말을 듣고 용기를 되찾았다.
진실을 숨겼다는 것이 못내 섭섭하긴 했지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싸웠던 그들이었다.
어쨌든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걸 알고 나선 다시 전의를 끌어올려서 적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