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287화 (284/450)

55화. 반격 (3)

강엽은 전장을 질타하는 사특한 술법의 흐름을 감지했다.

과거 흑접에서 접한 술법과 동일한 기운.

‘암룡승천술.’

필시 모산파의 술사들이 술법의 중심에 있을 터.

“으음, 이 무슨 요사한 사술이란 말인가...!”

아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함께 싸우고 있던 낙일신검 또한 술법의 기운을 감지하고 개탄했다.

주력을 못 느끼는 피난민들과 낭인들도 전장의 공기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몸서리를 쳤다.

“돌파하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의 죽음이 대업을 이루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맹월림의 전사들을 진두지휘하는 백인장의 통렬한 고함.

죽은 피난민이 떨어트린 죽창을 발등으로 툭 띄워 잡은 강엽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오 장 높이까지 솟아오른 신형이 적들의 한복판에 떨어지고,

투아아앙!

“컥!”

충격에 휘말린 전사들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동료들과 엉켰다.

서늘한 안광으로 적들을 훑어본 강엽이 한 손을 까딱거렸다.

“와라.”

“이런 미친놈이!”

아군과 떨어졌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

그 무모한 짓에 백인장이 어처구니없어하는 순간, 길쭉한 섬광이 그의 몸뚱이를 일자로 관통했다.

강엽의 죽창이 흉갑을 꿰뚫고 등짝까지 삐져나온 것이다.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맹월림의 전사들이 굳어지는 찰나.

퍼퍼퍼퍼퍼퍼퍼퍽!

시체에서 죽창을 빼낸 강엽의 주변에 수십 개의 그림자가 출현, 짧지 않은 거리를 뛰어넘어 전사들의 육신에 바람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창격을 내지르는 순간 장대를 긁어 전사경의 묘리를 더하고, 당기듯 회수하며 다시 내찌르는 이치.

창술의 근본인 란나찰(攔拿扎)을 충실히 구현한 관영신창이 전사들을 무참히 도륙한다.

“이놈! 멈추지 못하겠느냐-!”

“음?”

전사들의 위를 넘어오는 그림자.

그것이 황소만한 늑대임을 알아본 강엽은 뇌리 한켠에 묻어뒀던 이름을 떠올렸다.

‘기랑병단이었던가?’

사천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한답시고 숙정방을 기습했던 무리.

그들의 목적과는 별개로 인랑일체의 기랑술에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맹월림의 본대에 또다른 기랑병단이 있었던 것이다.

아가리를 벌린 늑대를 지긋이 응시한 강엽의 좌안이 한순간 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과연 인간이 아닌 늑대에게도 마안이 통할까.

그 해답은, 그를 향해 쇄도했던 늑대가 깨갱거리는 소리를 내며 쓰러진 걸로 알 수 있었다.

강엽을 스쳐지나간 늑대가 계단과 부딪치며 나뒹굴자 그 위에 탔던 기랑병도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큭! 대체 이놈이 왜...!”

문득 고삐를 쥔 기랑병이 답답한 신음을 토해냈다.

부지불식간에 내쏜 죽창이 폐부를 짓이겨버린 것.

단단히 무두질을 한 가죽갑옷이 어이없이 꿰뚫리자 기랑병은 무어라 외치려 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피 섞인 게거품밖에 없었다.

죽은 기랑병이 늑대의 위에서 떨어지기 전 잠시 물러났던 전사들은 강엽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는지 동료들의 시체를 넘어왔다.

“죽어.... 커헉!?”

콰직!

목덜미를 물어버린 늑대. 든든했던 아군이 적으로 돌변하는 초유의 사태에 전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이 짐승 새끼가 왜!? 미친 거냐!”

“잘 통하는걸.”

늑대의 목덜미를 쓰다듬은 강엽이 죽은 기랑병의 창을 허공섭물로 회수하며 훌쩍 뛰어올랐다.

주인이 아닌 이를 태운 늑대가 털을 곤두세웠지만, 강엽이 고삐를 쥐자 곧바로 잠잠해졌다.

“기마술은 특기가 아니지만 흉내 좀 내볼까?”

“무, 무슨...!”

당황했던 전사는 사각에서 후려치는 창대를 맞고 머리통이 함몰된 몰골로 쓰러졌다.

노기를 토한 또다른 기랑병들이 암벽 사이를 넘나들며 강엽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강엽의 눈이 붉게 물드는 것과 동시에 늑대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그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늑대의 주둥이에 물려 목뼈가 꺾였다.

“무서우면 도망쳐라. 쫓지 않을 테니까.”

사색이 된 전사들을 오연하게 내려다본 강엽은 늑대의 배를 발로 때리며 고삐를 당겼다.

말을 타는 느낌과는 영 달라서 어색하긴 하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부족한 경험을 갈음한다.

늑대와 함께 질주하는 무소불위.

한 쌍의 늑대와 흡혈귀가 미쳐 날뛰자 적들의 사기는 뚝뚝 떨어지다 못해 산산조각 박살났다.

* * *

“보고하라.”

밤공기 위로 내려앉은 서늘한 어조. 별 감정이 담기지 않았으나, 자리에 앉아있는 누구 하나 감히 대답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좌중의 눈길은 필연적으로 몽둥이를 대신 맞아줄 누군가를 찾았고, 곧 한 군데에 머물렀다.

“.......”

등에 붉은 단창을 멘 장년인.

적룡마창 역시 입이 떨어지지 않기는 매한가지였으나, 때마침 맹월림주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할 말이 있나, 적룡?”

“...저의 불찰입니다.”

적룡마창은 변명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그럴듯한 말을 주워 섬긴다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자초할 터.

“십팔계를 낀 진입로 모두 실패. 이번 전투로 아군 병력은 이백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또한 행방이 묘연한 자들이 오십여 명을 헤아리며, 중상을 입은 자들은 이백여 명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하면 적들의 피해는?”

“아군 사망자의 절반에 못 미치는 걸로 추정됩니다.”

“.......”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이 뭇 고수들의 입가를 타고 싸늘하게 퍼져나갔다. 자유롭게 입을 놀릴 수 있는 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래, 완전히 공쳤다는 얘기군.”

“교왕이시여.”

계속 말해보라는 듯한 시선.

속으로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인 적룡마창이 어렵사리 심중에 담긴 말을 꺼냈다.

“감히 목숨을 걸고 청하겠습니다. 부디 말미를 주십시오.”

작전은 틀리지 않았다. 적들의 저항이 예상보다 강해서 전력의 교환비가 완전히 어그러졌지만, 그럼에도 쌍방의 전력은 아득한 차이가 났다.

“첩자가 교전 도중 정보를 건넸습니다. 적들의 식량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굶주릴 터. 식수를 얻지 못하도록 막기만 해도...!”

굶주림과 갈증. 무위가 하늘에 닿은 절세고수도 생존과 직결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이대로 밤낮으로 적들을 몰아치면서, 시간을 잡아먹는 것만으로도 자멸로 인도할 수 있을 터.

“하나를 고려하지 못했다.”

맹월림주의 목소리가 나직이 이어진다.

“내 자존심은 어쩔 거냐.”

“....”

적룡마창은 대답하지 못했다.

최선의 계책이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듯 때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놈들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자멸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럴 수도 있겠지. 어찌 보면 그것이야말로 희생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일 거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완벽한 승리인가?”

“멀리 보셔야 합니다. 점창파는 지나가는 구름일 뿐입니다. 사천으로 진출하려면...!”

사실상 운남을 장악한 것과 진배없는데도 점창파에 집착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고 후방을 안정시키려는 것뿐.

하지만 맹월림주는 편리한 승리를 거부했다.

“난 완벽한 승리를 원한다. 그건 희생이 적은 승리가 아니라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르는 승리지. 누구도 감히 저항할 엄두도 못 하도록, 점창파를 힘으로 짓눌러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뭉개버린다.”

“하오나....”

“적룡, 난 네가 좋다. 다른 머저리들이 눈치만 보면서 전전긍긍할 때도 넌 직언을 서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네 의견엔 언제나 귀를 기울였지.”

“....”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설사 이후의 계획에 문제가 생겨도 감수하겠다는 선포.

적룡마창은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명령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알겠습니....”

그렇게 애써 목구멍을 쥐어짜는 때였다. 적룡마창이 돌연 말꼬리를 흐렸고, 자리에 있던 다른 고수들은 벌떡 일어나서 안력을 끌어올린 채 시선을 멀리 향했다.

맹월림주의 입가에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손님이 온 것 같군.”

* * *

곳곳에 자리한 수백 개의 횃불이 밤 사위를 밝히는 군영.

갑작스런 불청객의 등장에, 한데 몰려나온 맹월림의 전사들은 살기등등한 기세를 내뿜었다.

“너, 침입자! 검을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누군가가 발악하듯 그렇게 외쳤지만, 허락받지 않고 들어온 불청객은 들은 시늉도 하지 않았다.

검 위에서 오연히 뒷짐을 선 자세로 이를 가는 전사들을 차갑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십인장님, 화살이라도 쏘면....”

“아가리 여물어. 뒈지고 싶어?”

백인장 휘하에서 열 명을 이끄는 십인장은 부하를 타박하면서도 손에 배인 땀 때문에 미끄러지는 도파를 억지로 고쳐 잡았다.

오늘 저 괴물로 인해 몇 명이나 죽었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가 모시는 백인장도 일합을 못 버티고 목이 달아나지 않았던가.

“그냥 병장기만 내밀어. 절대 덤비지 말고. 저 괴물한테 덤비면 우리 다 뒈지는 거야. 알겠어?”

십인장 말고도 강엽의 신위를 본 자들이 많았기에 적어도 주변에 있던 전사들은 감히 항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강엽을 본 것은 아니었고, 십인장의 목소리가 작았기에 유감스럽게도 멀리 있는 자들은 그의 경고를 듣지 못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강엽을 향해 화살을 썬 것이다.

쐐애애애애액!

밤하늘을 가르는 작은 파공음.

뒤늦게 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자들이 눈을 홉뜨는 찰나, 화살은 보이지 않는 손에 잡힌 것처럼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

곳곳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나는 가운데 날선 눈길이 전사들의 면면을 훑어보자 그들 대다수가 작살을 맞은 물고기처럼 파르르 경련했다.

그들 중 일부가 발작하듯 덤비려는 순간이었다.

“간덩이가 비대한 놈이구나!”

강엽의 앞에 뚝 떨어져내리는 거구의 사내.

바위같은 근육으로 중무장한 역발산이 골타로 어깨를 툭툭 치면서 두꺼운 입술을 이죽거렸다.

“감히 본림의 군영에 쳐들어오다니 보통 간담이 아니군. 이 몸은 대 맹월림의 천인장 역발산이다! 이름을 대라, 침입자!”

“역발산이라....”

“그렇다. 맹월림 제일의 장사가 이 몸이지!”

“현운 도장에게 처맞았다는 놈 말이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서 도망친 놈이 입만 살았군.”

“뭐, 뭣이...!”

빈정거리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늘어놓는 말에 역발산의 이마에 굵은 핏대가 솟아올랐다.

“웃기지 마라! 처맞기는 누가 처맞았다고!”

“교성이랑 합공했는데도 현운 도장에게 밀리지 않았나? 심지어 발목이 잡힌 사이 종 노사에게 부하들을 잃는 바람에 눈물을 뿌리며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이 빌어먹을 새끼가....”

“졸자하고는 할 말 없다.”

무심한 한 마디로 역발산의 말을 끊은 강엽이 천천히 다가오는 무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맹월림주, 혹은 혈산패군. 뭐라고 부르면 되나?”

강엽과 허공에서 시선이 얽힌 구릿빛 피부의 사내.

목줄을 찬 반라의 미녀를 대동한 맹월림주가 어이없다는 듯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이거야 원. 보고 싶긴 했는데 이렇게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군. 근데 처음 봤는데도 누군지 알겠어. 편한 대로 불러라, 귀영.”

“그럼 맹월림주라고 부르지.”

“좋을대로. 근데 좀 내려오면 안 되나? 그래도 나름 운남 무림의 절대자로 불리는 몸인데, 남을 올려다보는 건 영 익숙지 않아서 말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텐데?”

“뭐?”

“혈교주한테는 많이 숙였을 거 아니냐.”

“....”

싸늘히 가라앉은 안색. 팔대교왕의 일좌인데도 혈교주를 언급하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맹월림주, 넌 왕이 아니다. 혈교주에게 봉토를 하사받은 제후일 뿐이지. 오합지졸들의 수괴 노릇을 하더니 제 처지를 깜빡한 모양이군.”

“격장지계를 노리나 본데 소용없는 짓이다.”

암만 속을 긁는다 해도 혈교에서 온갖 암중모략을 겪으며 잔뼈가 굵은 맹월림주가 넘어갈 리 만무.

시원하게 웃은 맹월림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건장한 전사들이 백호 가죽을 씌운 태사의를 대령했다.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은 맹월림주는 시비들이 가져온 엽초를 입에 물고 연기를 빨아들였다.

“환마연(幻魔煙)이라는 거다. 피워보겠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엽초를 던진다.

허공섭물의 기운에 떠받쳤기에 엽초는 땅에 떨어지는 일 없이 강엽의 앞에 두둥실 떠올랐다.

잠시 엽초의 냄새를 맡은 강엽이 말했다.

“앵속과 대마인가. 그것 말고도 여러 약재가 들어간 것 같고. 함부로 피워도 되는 게 아닌데?”

“원래는 죽을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나 깊은 부상을 입은 사람이 고통 속에 죽지 않도록 만든 물건이지. 한데 피우면 나른해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중독되는 자들이 제법 많아진다고 하는 모양이야.”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중독되지 않았고?”

“중독됐지. 하지만 해독할 수 있거든. 내가 사정이 있어서 술을 동이째 퍼마셔도 취할 수 없는데, 그래도 이걸 피우고 술을 마시면 취기가 살짝 돌더군.”

술을 마셔도 취할 수 없다는 건 재생력 때문이겠지.

한데 이런 환각제의 효능으로 재생력을 억누를 수 있다는 걸까.

재생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강엽은 이런 약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기에, 맹월림주가 건넨 선물이 흥미로울지언정 피우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강엽이 심드렁해하자 맹월림주가 뚱한 얼굴로 인상을 썼다.

“이 친구야. 그래도 불청객도 손님이랍시고 대접까지 해주는데 무시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나? 수하들 보는 데서 망신을 줄 셈이냐?”

픽 웃은 강엽이 검 위에서 내려오자 전사들이 태사의를 가져왔다.

강엽은 태사의에 앉았지만 엽초를 물진 않았다. 대신 맹월림주 옆에 시립한 반라의 미녀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목줄을 찼음에도 지극히 무표정한 낯빛이었다.

개 취급을 받는데도 불만이 없는 걸까, 아니면 깎여나갈 반항심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걸까.

더 자세히 들여다본 강엽은 그녀가 감정을 거세당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엽이 엽초를 피울 생각은 안 하고 미녀만 바라보자 맹월림주가 씩 웃었다.

“귀영, 네놈도 사내로구나. 미녀를 보니 눈이 돌아가나? 원한다면 하룻밤 빌려주마.”

“사양하지.”

“왜, 남이 먹은 건 불결해서?”

“불괴강시잖나.”

“...그걸 한눈에 알아봐? 대단한데. 아, 그러고 보니 네놈은 불괴강시와 싸운 적이 있었군. 여강에선 흡혈괴마들을 전멸시켰고 말이다.”

“그랬지.”

“혈음과 금마도 죽였고?”

“혈음마군은 현운 도장에게 패사했다.”

엄밀히 말하면 금마의 손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금마가 손을 쓰지 않았어도 숨이 끊겼을 테니 현운 도장의 손에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럼 금마는 네 손에 죽었다는 거군. 사대악인을 죽이다니 놀라운 일이다. 유사시엔 팔대교왕의 자리를 채울 자였거늘.”

“인랑이 죽은 건 얘기 안 하나?”

“다 아는 사실을 물어서 뭐 하려고. 아끼는 녀석이긴 한데, 강자에게 죽은 건 어쩔 수 없지. 대신 널 죽여서 녀석의 넋을 달래줄 생각이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비스듬하게 턱을 괸 맹월림주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서 여긴 왜 온 거냐? 설마 백기 투항을 하러 온 건 아닐 테고.”

“장문인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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