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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왕-278화 (275/450)
  • 53화. 매듭 (3)

    무당이 곧 태극이다.

    이는 무당파에 입문한 제자들이 사문의 존장들로부터 가장 먼저 배우는 구절이었다.

    -무당의 절학은 태극에서 시작되어 태극에서 끝난다.

    “물극필반, 유능제강.”

    -만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쇠하니,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라.

    “무당무공부주진공, 연이역불가경이침범.”

    -설령 공격적이지 않더라도, 그 무엇도 감히 무당의 무공을 침범할 수 없을지어니.

    후우우우우웅......!

    나선처럼 휘몰아치는 바람.

    고수들의 공력이 면면부절 유장한 흐름을 이어가니, 대자연의 호연지기가 이에 호응했다.

    “귀에 피딱지가 앉도록 배운 가르침이지. 어디 당대의 무당제일검께선 삼봉 진인의 가르침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셨는지 궁금하군.”

    혈음마군의 손길을 따라 핏빛의 태극이 덩치를 불린다.

    무위자연에 녹아들어야 할 태극의 의념이 패도를 지향하는 모순을 품은 것이다.

    하지만 무당의 파문제자는 그 모순에 자신의 의념을 담아 보검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만약 위쪽에서 누군가 그 모습을 관찰했다면 두 개의 팽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로 보였을 터.

    혈음마군을 응시한 현운 도장은 조금씩 자신을 밀어내는 바람을 감지하고 표정을 굳혔다.

    “여긴 사형제 간의 해후를 나누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지? 좀 더 넓은 무대가 필요할 것 같구나.”

    직후 혈음마군을 감싼 바람이 숫제 용오름마냥 거대해지는가 싶더니 현운 도장을 완전히 밀어내버렸다.

    현운 도장은 천근추의 묘용으로 하체의 무게중심을 잡았지만, 그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쭉 밀려났다.

    물론 억지로 버티자면 못할 것도 없긴 했다. 하나 상대가 공격 의사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현운 도장은 몸을 밀어내는 흐름에 저항하지 않았다.

    쿠콰콰콰콰콰콰쾅-!

    천장까지 치솟은 용오름이 단단한 석벽을 부수었다.

    떨어지는 낙석들을 피하면서 용오름을 쫓아간 현운 도장은 공중으로 부유하는 혈음마군을 발견하고 무어라 외치려고 했다.

    “사형...!”

    “도망치진 않을 거다.”

    대충 구멍 너머 위쪽에서 싸우자는 턱짓을 해보인다.

    대답도 듣지 않고 올라가버렸기에, 현운 도장도 뒤를 따르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제멋대로 하시는군요.”

    위로 올라오고 나서야, 현운 도장은 방금까지 그들이 있던 곳이 폐사찰의 대웅전 아래의 지하였음을 깨달았다.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정경 속, 낡아빠진 지붕 위에서 두 사형제가 서로를 노려봤다.

    “노을진 하늘이었으면 분위기가 비장했을 것을. 기왕이면 더 늦게 쳐들어오지 그랬느냐.”

    “여기까지 와서도 말장난입니까?”

    “그렇게 보이나?”

    턱을 만지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태도.

    빈손이 자아내는 위화감을 알아채기도 전에, 솜털이 쭈뼛 돋은 현운 도장이 하늘을 밟으며 빙글 돌았다.

    간발의 차로 그가 있던 곳을 교차하듯 지나친 한 쌍의 혈륜들이 주인의 손에 안착한다.

    이기어륜을 회수한 혈음마군이 혀를 쯧쯧 찼다.

    “바로 알아챘어야지. 이딴 걸로 죽었다면 실망했을 거다.”

    “.......”

    대화를 시도한 것은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였나.

    현운 도장 같은 고수가 지척에 오기 전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만 봐도, 혈음마군의 어륜술이 얼마나 은밀했는지 알 만했다.

    “최선을 다하거라, 사제야. 그렇지 않으면....”

    한쪽 입꼬리만 비뚜름히 올라가는 비소.

    섬뜩한 살의를 품은 눈동자는 복잡한 기색을 띠고 있는 현운 도장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뭘 해보기도 전에 죽을 테니까 말이다.”

    강철의 의수가 혈륜을 들어올린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진짜 손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

    현운 도장은 어떠한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

    혈음마군은, 그의 사형은 팔을 잃은 후유증마저 극복하고 전장에 나선 것이다.

    필시 양팔의 무게가 달라서 균형감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태극회륜강(太極回輪罡).

    진마혈륜. 혈교가 자랑하는 천고의 마병이 음울한 광채를 쏟아낸다.

    제 꼬리를 문 뱀처럼 끝없이 원을 그리며 광채를 토해내는 강기의 고리.

    지난날 강엽과 손속을 겨룰 땐 미처 꺼내지 못했던 비전이었다.

    쭈아아아아아악!

    한 손으로 휘두른 혈륜. 부드럽지만 질긴 흐름을 이어가고 있던 현운 도장의 태극이 한 방에 찢어진다.

    찰나 전권을 뚫고 들어온 혈음마군과 화등잔 만하게 커진 현운 도장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슈악! 스와아아악!

    병장기의 부딪침 따위는 없다.

    현운 도장을 스쳐지나간 혈음마군이 헛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살짝 베인 뺨에서 점점히 맺힌 핏물이 흘러내렸다.

    “제법이군. 훌륭한 이정제동(以靜制動)이다. 그 상황에서 면장의 흐름을 스스로에게 적용시키다니. 내 호신강기를 베어내는 솜씨도 기가 막혔어. 다른 놈들이었으면 맥을 읽지 못하고 자멸했을 거다.”

    “...요행이었습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반격을 준비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역습을 가했으나, 유감스럽게도 혈음마군에겐 닿지 않았다.

    오히려....

    푸확!

    팔뚝과 허벅지에서 터져나온 선혈.

    넝마가 된 소맷자락 사이로 핏방울을 흩날린 현운 도장이 움직였다.

    구름을 밟고 선계로 오르듯 표홀한 몸놀림으로 혈음마군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간 것.

    하지만 혈음마군은 그조차 예상했다는 듯 태극의 기파를 역으로 거스르며 송문고검을 흘려냈다.

    그야말로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비껴내는 신기에 현운 도장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록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하나 무당 절학의 정수를 깊이 이해한 움직임이었으니까.

    이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지 짐작되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그들의 길이 엇갈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슈아아아아앙!

    같은 스승 아래에서 배운 사형제는 서로의 목숨을 노릴지언정, 그들의 병장기는 결코 충돌하지 않았다.

    제삼자가 봤다면 사전에 짜맞췄다고 오해했을 정도로 상대의 간합을 물흐르듯 빠져나가는 솜씨.

    그러면서도 상대의 호신강기를 차근차근 깎아내며 피해를 누적시킨다.

    촤악! 촤아악!

    점점이 떨어진 혈화가 대지를 수놓는다.

    일 각도 지나기 전에 수백여 합을 나눈 두 사형제는 혈인이 되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더 강해졌구나, 사제. 내 지난 이십 년간 무당의 무공을 파훼하기 위해 노력했건만. 과연 무당제일검이라고 칭송받을 만하다.”

    “사부님께서 건재하신데 그런 호칭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지만 사형의 말씀도 틀리진 않습니다.”

    “음?”

    “무당제일검이란 호칭을 골패로 따진 않았으니까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끔뻑거린 혈음마군이 뒤늦게 이해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네 녀석이 은근히 도박에 강했었지. 골패로 이긴 적이 몇 번이나 있더라?”

    “마도로 전향하시더니 기억력도 안 좋아지셨군요. 절 한 번도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현각에게만 몇 번 신승을 거두셨지요.”

    “현각이라고?”

    “사형의 검에 고혼이 된 사제 말입니다. 허윤 사숙의 제자였습니다.”

    “아, 그래...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런 녀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군. 친하진 않았는데.”

    “도원결의한 것처럼 막역했습니다.”

    “....”

    “슬프군요. 그런 기억조차 잊어먹을 정도로 저희를 하찮게 여기셨던 겁니까?”

    “...시끄럽다.”

    혈음마군이 처음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비웃음이나 경멸이 아닌, 마치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격노가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스멀거린다.

    동시에 그들의 병장기가 처음으로 거친 파찰음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앙!

    “윽...!”

    현운 도장이 한순간 밀려날 만큼 묵직한 충격.

    양손의 혈륜을 교차한 혈음마군의 악다문 입에서 빠드득 분기를 곱씹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추억놀이는 끝이다. 마음 같아선 더 놀아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너만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니라서. 이쯤에서 매듭을 지어야 할 것 같군.”

    “강 도우에게 가려면 저부터 넘어야 할 겁니다!”

    “그럴 생각이다.”

    한 쌍의 혈륜이 철컥 맞물리면서 하나로 합쳐지고, 강철의 의수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사제, ‘심극(心極)’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느냐?”

    “사부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역시 그 늙은이는 알고 있었군. 심극은 심상절예로 가기 전에 지나쳐야 하는 관문이지. 일종의 등용문이라고 할까. 심상절예는 아니지만, 심상절예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필히 거쳐야 한다.”

    “...!”

    “이것이 나의 심극이다.”

    -태극혈해(太極血海).

    우우우우웅......!

    의념을 타고 울려 퍼지는 절세고수의 심상.

    현운 도장은 혈음마군의 전신에서 압도적인 심상의 격류가 쏟아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핏빛의 바다. 사방 천지가 붉게 물든 대해가 태극의 나선을 그리며 뿔처럼 치솟는다.

    환상으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현실감이 넘치는 정경.

    [사부를 쓰러트리기 위해 연마한 필살의 구명절초다. 천하팔존에 가장 가깝다는 무당제일검을 시금석으로 삼는다면 알 수 있겠지. 나의 심극이 천하팔존에게 닿을지 말이다.]

    대기를 떨쳐울리는 의념의 전성.

    현운 도장이 심호흡을 하며 송문고검을 늘어뜨렸다.

    “피차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의 손을 따라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검파.

    사형제의 피를 머금은 소나무 문양의 검신이, 일순 투명한 바람을 자아내며 핏빛 바다를 밀어낸다.

    심상치 않은 기척을 감지했는지 놀란 전성이 흘러나왔다.

    [태극혜검?]

    “아닙니다.”

    단번에 부정한다.

    눈을 반개한 현운 도장이 말했다.

    “태극혜검을 배우긴 했지만, 아직은 그 성취가 깊지 않습니다. 제가 근본으로 삼은 건 태극혜검이 아닙니다. 저의 제자와 마찬가지로....”

    말꼬리를 흐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머리 위까지 에워싼 핏빛의 바다로 인해 보이진 않지만, 저 하늘 너머에도 구름이 흘러가고 있겠지.

    정처없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허허로운 기운을 두른 송문고검이 별안간 검무를 추시 시작한다.

    [...유운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노성이 대기를 흔들었다.

    [이런 건방진! 태극혜검, 하다못해 태청검법도 아니고! 고작 유운검법으로 날 이기겠다고...!]

    현운 도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난 무당을 극복했다! 태극혜검을 능가했어! 그런 내게 최고의 절기도 아닌, 잡스러운 유운검으로 맞서다니! 그 멍청한 선택이 네 명줄을 끊을 거다, 현운!]

    사방에서 옥죄여오는 핏빛의 바다를 보지도 않고 검을 치켜세운다.

    전신으로 태극의 흐름을 가져간 몸은 한시도 멈추는 법이 없이 춤추듯 너울졌다.

    그렇게 핏빛의 바다가 빈틈 없이 에워쌌을 때.

    사아아아아아악!

    투명한 바람이 핏빛의 바다를 갈랐다.

    * * *

    “...내가 패한 건가?”

    핏빛의 바다도, 허허로운 구름도 보이지 않는다.

    혈음마군은 자신이 무너진 지붕 아래에 널브러졌다는 걸 깨닫고 실성한 것마냥 낄낄거렸다.

    그러다 목이 막힌 듯 숨을 가쁘게 몰아쉬더니, 한 됫박이나 되는 피를 웩 토해냈다.

    “쿨럭! 크흡, 멍청한 건... 나였군. 네 유운검은 사부가 언젠가 자신을 뛰어넘을 거라 칭찬했었거늘... 중요한 걸 깜빡하고 있었어....”

    “그 마병의 부작용이겠지요.”

    발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든 혈음마군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현운 도장을 보고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호흡기를 다친 건지 색색거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기량을 되찾으려면....”

    무인에게 팔을 잃는 것은 보검을 잃는 것보다 큰 고통이다.

    혹자는 고된 수련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기도 하지만, 혈음마군은 편한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철갑, 마수는... 그냥 의수가 아니야. 살아있는, 귀물이나... 다름없지. 잃어버린 팔을 대체할 수 있는 대신... 뇌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기억을 잃어... 쿨럭!”

    “더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유운검의 한 수에 심맥이 끊겼다. 천만다행으로 폐부는 무사한 것 같지만 그조차 오래가지 못할 터.

    초월적인 내공으로 말미암아 진작 끊겼어야 할 목숨을 억지로 붙잡았을 뿐이다.

    “아까 전의, 수법... 이름이, 뭐냐.”

    “...없습니다.”

    “뭐?”

    “깨우친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 사부님께도 보여드리지 않았지요.”

    “하, 그렇군. 내가 처음이란 말이지...?”

    다시 기침을 하며 걸쭉한 피를 게워낸 혈음마군이 애써 웃었다.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주마.”

    눈밑에 그늘이 지고 뺨은 홀쭉해졌는데 목소리만큼은 또렷했다.

    회광반조에 접어들었다는 징조.

    “경청하겠습니다.”

    “운유(雲遊).”

    뜬구름처럼 널리 돌아다니는 삶이라는 뜻이었다.

    “너의 심극이자... 훗날 네가 완성할 심상절예의 이름이다. 무당산을 떠나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네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겠지....”

    마지막에 가서 급격히 힘을 잃는 목소리.

    초점을 잃어버린 눈으로 유유자적 흘러가는 구름을 쫓은 혈음마군은 얼마 없는 힘을 쥐어짰다.

    “후회는, 없어. 그래도... 미안했다, 사제. 사부에게도....”

    “예. 사부님께도 반드시....”

    콰직!

    “사형...!”

    어디선가 날아온 경파가 마지막 호흡을 내쉬던 혈음마군의 숨통을 강제로 끊어냈다.

    “크하하하하하! 혈음, 네놈도 패했구나! 하지만 걱정 마라! 그 팔은 내가 소중히 써줄 테니까!”

    전신에 칠흑의 금기를 두른 자. 한 줌의 체모도 나지 않은 칠흑의 마인이 노란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너...!”

    “꺼져라, 무당 말코!”

    투아아아아아앙!

    현운 도장을 날려버리는 일수.

    모든 공력을 쥐어짠 현운 도장은 피하지 못하고 벽을 부수었다.

    “흐흐, 철갑마수는 내가 잘 써주마! 이것만 있으면 그 괴물이라고 해도...!”

    혈음마군의 팔과 연결된 철갑마수를 강제로 떼어내자 신경 다발과 살점이 떨어져 나온다.

    아랑곳 않고 철갑마수를 끼운 금마가 감탄했다.

    “놀랍군! 의수인데 적응 과정도 필요없다니!”

    원래부터 한 몸인 것처럼 바로 움직인다. 금마는 왜 혈음마군이 승리를 자신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마병을 달고도 패하다니. 결국 그게 혈음 네놈의 한계였던 게지.”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익!

    지하의 무저갱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귀기 어린 곡성.

    광소를 퍼붓다 말고 입을 다문 금마가 좌우로 눈알을 굴리며 목울대를 꼴깍 움직였다.

    “기껏 팔을 잘랐더니.”

    “이 괴물이...!”

    무저갱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시커먼 안개.

    살광을 내뿜는 강엽의 오른손에선 창백한 뇌기가 꿈틀거리고, 왼손에선 모골이 송연해지는 음한지기가 뿜어져나와 사위를 얼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 위압감.

    “이... 어떻게 내 심극을 맞고도 살아있는 거냐! 아무리 불사라도...!”

    팔 한 짝을 내줄 각오로 퍼부은 필살의 절초.

    하지만 강엽은 멀쩡하기만 했다.

    “이제 끝내자.”

    “갈!”

    짐짓 대갈일성을 토해낸 금마가 뛰어들어갔다.

    그를 가만히 응시하던 강엽은 빈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찰나, 금마는 괴물의 아가리에 들어왔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강엽도, 돌무더기에 파묻힌 현운 도장도, 방금까지 있던 대웅전의 풍경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던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실존조차 의심하게 되는 끝없는 어둠.

    ‘이건 설마...!’

    심극.

    아니, 그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가 그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이놈이 그걸 완성했다고? 이 금마도 이루지 못한 것을?’

    서걱!

    잘려나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고, 시야가 기울어간다.

    ‘아, 안 돼... 난 아직...!’

    허우적거리는 감정은 목구멍에서만 맴돌 뿐. 금마는 자신의 존재가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것을 느끼며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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