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사냥 (4)
늦은 밤에 호연장의 담을 넘은 밤손님들.
비록 강엽과 백서희는 방 안에서도 그들의 존재를 포착했지만, 어지간히 기감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차리기 힘든 뛰어난 은신술이었다.
‘흑접이나 백환곡과 비견할 만한 살수들이다.’
그 사실을 파악한 강엽은 백서희와 손을 맞잡고는 암신을 전개했다.
이미 대황촉은 꺼진 지 오래.
시커먼 어둠밖에 남지 않은 방에 불청객이 찾아든 것은 반 각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소리없이 열린 방 틈으로 야행복을 입은 두 명의 복면인이 조심스럽게 걸어들어온다.
“.......”
방 안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
시선을 주고받은 살수들은 조금 전 백서희가 누웠던 침상을 더듬었다.
이불 위의 온기가 조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음을 방증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파악한 살수들이 시커멓게 옻칠을 한 소검을 구석진 곳으로 겨눈 그 순간.
배후에서 쏘아진 가느다란 비침이 그중 한 명의 뇌호혈(腦戶穴)을 인정사정없이 꿰뚫었다.
푸욱!
“...!”
소리없이 경악한 살수가 입을 쩍 벌리고,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다른 살수가 몸을 돌리는 찰나.
우드드득!
우악스러운 힘이 살수의 목을 한 바퀴 돌렸다.
한 사람은 암기에 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목뼈가 부러진 은밀한 죽음.
살수들의 목숨을 수확한 두 사람은 시신이 바닥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용히 눕혀놨다.
소속을 증명할 만한 물건이나 표식은 보이지 않았지만, 누가 이들을 보냈을지는 뻔했다.
시신을 내려다보는 강엽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너무 빨리 찾아왔군.]
[유이강도 바보가 아닐 텐데 흑상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래서 선수친 거 아냐?]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이놈들이 우리 방을 너무 빨리 찾아왔다고.]
[아하.]
두 사람의 방이 객당에서도 제법 깊숙한 곳에 있다는 걸 감안하면 살수들이 반 각 만에 찾아오는 것은 사전에 알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
[세작을 심었다는 거구나.]
[그래, 먼저 기습한 것도 그렇고... 어쩌면 유이강 측도 물밑에서 전쟁을 준비했을지도 모르겠어.]
[그 장주놈을 지켜야 하나?]
설령 호연 장주가 죽는다고 해도 의뢰를 끝마친다는 구실로 다른 흑상에 가담할 수도 있으리라.
흑상들도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는다면 고수들의 합류를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겠지. 만약 그놈이 죽는다면 그건 그놈 시운이 여기까지인 거고.]
그렇게 강엽이 어깨를 으쓱이는 때였다.
쾅! 콰아아아앙......!
멀리서 아스라한 폭음이 터지면서 두 사람의 방이 일순간 흔들렸다.
방문 사이로 스며든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끝을 찌르자 두 사람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거 설마...?]
[...암시장엔 없는 게 없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나라에서 금지한 벽력탄을 터뜨릴 줄이야?
심지어 한 발로 끝나지도 않았다.
쾅! 콰앙! 콰아앙!
연속적으로 귓전에 꽂히는 폭발음.
그때마다 바닥이 흔들리며 은밀히 내려놓은 살수들의 시체도 박자에 맞춰 들썩이고 있었다.
‘이쪽에서도 대응하는군.’
폭발음에 묻힌 바람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강엽은 곳곳에서 들리는 욕설과 악다구니를 포착했다.
쿠우우우웅......!
그리고 두 사람이 기거하는 방 가까이에서도 기어이 벽력탄이 터지면서 귀퉁이가 와르르 무너졌다.
자연히 귓전에 꽂히는 소리도 한층 커졌다.
“아하하하하하하!”
“...이거 그 소마동인지 뭔지 하는 땅꼬마 노친네 목소리 아냐? 왜 처웃고 지랄이야?”
백서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하자 강엽도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시 암신을 쓴 채 지붕으로 올라가니 살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격전을 벌이는 소마동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벽력탄의 매운맛을 봤는지 온몸 가득 검댕이를 묻히고 옷은 여기저기 찢겨나간 몰골.
그럼에도 귀밑까지 찢어진 입매는 소름끼친 살기로 점철되어 광기 어린 웃음을 내뱉고 있었다.
“이게 전부냐, 버러지들? 기껏 가져온 게 벽력탄이라고?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살수들이 뿌리는 암기와 날붙이를 신출귀몰한 보신경으로 회피, 고사리처럼 작은 손으로 금나수를 펼치는데 그때마다 살수들이 산 채로 찢겨지고 있었다.
마치 늑대가 양떼를 덮친 듯한 광경에 강엽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단순무식하게 보이지만 상승의 무리가 녹아있다. 금나수의 수준만 보면 나 이상이야.’
작은 동작에 수십 가지의 변화가 들어 있다. 그 변화들이 초식과 투로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공력의 운용이 불완전해. 일정 이상으로는 힘을 내지 못하는 것 같은데....’
초음으로 관찰한 소마동의 진기는 마치 주화입마를 입은 것마냥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껏 중단전을 개방한 고수는 많이 봤지만 진기 운용이 이토록 불완전한 자는 처음이다.
‘상단전의 연결이 꼬였기 때문인가?’
머리 안의 상단전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으나, 진기가 면면부절 이어지지 않고 꼬이고 있었다. 원래라면 폐인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소마동의 진기 운용을 더 자세히 관찰한 강엽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정기신 합일이 깨진 거야. 그래서....’
흔히 하단전과 중단전, 상단전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을 정기신 합일이라 하여 삼화취정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합일은 항상성을 유지하지 않는다. 주화입마에 빠지면 정기신 합일이 깨져나가면서 원래 경지에서 한 단계 밑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소마동의 경우는 삼화취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무언가 착오가 일어난 것이리라.
‘삼화취정에 올라도 저런 식으로 꼬일 수 있군.’
아쉽게도 속 편하게 소마동을 관찰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소마동이 쳐낸 벽력탄이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과 동선이 겹쳤다.
끄트머리까지 심지가 타들어간 벽력탄이 터지기 전에 백서희가 먼저 암기를 던졌다.
꽈아아아앙!
“컥.”
졸지에 폭발을 뒤집어쓴 살수들이 고꾸라졌다. 가까운 곳에서 폭발을 감당한 자들은 머리와 등이 불타고 두개골이 움푹 함몰된 참혹한 몰골로 목숨을 잃었다.
그때부터 강엽과 백서희가 본격적으로 끼어들었다.
‘호연 장주가 죽어서 다른 흑상에 합류해도 도망친 패잔병을 받아줄 자는 없다.’
살수들을 물리친 공로가 있어야 비벼볼 수 있으리라.
촤악!
“아니...!?”
등에서 핏물을 뿌리며 쓰러진 동료의 모습에 복면 위쪽으로 드러난 살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하지만 그들이 상황을 알아챌 새도 없이 한 줄기 궤적이 그들을 일직선으로 베고 지나갔다.
눈처럼 새하얀 장삼을 입은 백의청년의 등장에 그제서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달았지만,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쌍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신들린 듯한 검무(劍舞)를 따라서 동백꽃처럼 피어나는 붉은 혈화.
“너희들...!”
그제서야 두 사람을 알아본 소마동이 무어라 외치는 찰나, 강엽의 검격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미친 검세. 마치 천수관음이 검을 들고 찌르는 듯하자 살수들도 무엇을 피하고 막아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그나마 소마동은 허초와 실초를 구분할 수 있었지만, 그도 폭발적인 환검의 폭풍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환야마검(幻夜魔劍)을 익혀두길 잘했지.’
아무래도 자성검법은 사천에 두루 알려진 검공이다 보니 쓰는 게 꺼려졌다. 지리상 가까운 한중의 암시장에선 알아보는 사람이 나올지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지난날 흑룡교의 비밀 분타에서 수거한 비급 중에 적당한 걸 골라서 속성으로 익혔다.
비록 손에 익은 자성검법에 비할 순 없으나, 환야마검 역시 흑룡교주가 고른 상승의 절학.
파파파파파팟!
타점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난무하는 검세가 살수들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살수들의 공세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하고 있는데,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배후의 기습도 매끄럽게 피하고 있었다.
그때 백서희가 경고했다.
“조심해!”
지척에 있던 살수가 동귀어진을 감수하고 벽력탄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엽이 태극반의 경파로 벽력탄의 궤도를 바꿀 준비를 하던 찰나였다.
콰직!
투아아아앙......!
투명한 경파가 살수를 저 멀리 날려보냈다. 벽력탄을 꽉 쥐고 있던 살수는 그렇게 자기 손 안에서 터진 폭발에 휘말려 절명했다.
“누가 내 싸움에 끼어들라고 했느냐, 애송이들?”
손바닥을 내민 소마동이 사납게 으르렁거리면서 노려보자 백서희가 코웃음을 쳤다.
“죽어가는 거 살려줬더니 큰소리는.”
“뭐라고?”
같은 편이긴 해도 살육의 희열에 사로잡힌 소마동은 광기 자체나 다름없는 상태.
한껏 충혈된 눈으로 백서희를 노려본 소마동은 살수들이 있든 말든 욱해서 그녀를 향해 쏘아지려고 했다.
별안간 옆에서 튀어나온 강엽이 차가운 검날을 겨누지만 않았어도 틀림없이 튀어나갔으리라.
“이제 보니 미치기 직전이었군.”
* * *
북해의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
소마동을 응시한 강엽은 처음 만났을 때 보여줬던 예의 바른 태도는 집어치웠다.
이미 주변에 있던 살수들은 몸에 구멍 하나씩을 뚫린 채 선지피를 게워내고 있었다.
“하긴 그런 꼬락서니가 됐는데 제대로 싸우는 게 더 이상하지. 뇌에 이상이 생긴 건가?”
“네놈...!”
“일정량 이상의 진기를 운용하면 대뇌의 특정 부위에 영향을 주는 것 같군. 그래서 약간의 자극에도 화를 못 참고 눈깔이 뒤집어지는 거지.”
단순히 소마동이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애매하게 발달한 상단전으로 인해 머릿속의 독맥을 지나는 진기가 엉뚱한 곳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삼화취정에 오르는 게 등용문에 비견될 만큼 위험해도, 오르는 중에 주화입마에 빠지는 건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야. 편법을 시도한 건가?”
“.......”
단숨에 핵심을 찌른 강엽의 말에 소마동의 얼굴에 아연실색한 경악이 떠올랐다.
억지로 삼화취정을 이루기 위해 편법을 동원해서 벽을 넘으려고 했고,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상단전을 개방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혈도가 꼬이는 바람에 합일을 이루는 것은 실패한 것이겠지.
하지만 속만 늙은 노마두는 자신의 착오를 순순히 인정하지 못했다.
“애송이놈이 뭘 안다고....”
“중단전에 새긴 심상을 백회를 통해 천지자연의 기운과 동조하는 것. 그로써 물아(物我)가 균형을 이루어 정기신이 천지와 소통하는 것이 삼화취정의 본질이지.”
“.......”
강엽의 입에서 나온 말에 소마동이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 알려준 것을 적당히 주워 섬기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의 깨달음이 녹아든 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지껄이는 걸 보니 네놈도 삼화취정을 목전에 뒀군. 하지만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좌절하는 자들이 부지기수인 건 모르는 모양이야.”
삼화취정에 오르는 자는 구파나 팔가 같은 대문파에서도 세 명을 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오래전에 은거한 전대 기인들까지 나오면 더 많아지겠지만, 그들을 다 합해도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구파나 팔가가 그럴진대 다른 문파는 어떻겠나.
“섬영문이라고 했던가? 어디에 처박힌 문파인지는 몰라도 제자 하난 제대로 길렀구나. 하지만 애송이답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강엽이 입을 놀려보라는 듯이 검을 겨눈 채 바라보기만 하자 소마동이 이죽거렸다.
“삼화취정의 본질을 알았어도 거기에 이르는 길을 모르면 탁상공론에 불과하지. 심상을 완성한다고 끝이 아니야. 삼화취정은 그 너머에 있다.”
심상을 완성하는 것은 단지 밑준비일 뿐.
“완성된 심상을 바탕으로 천지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건 또다른 과제다. 몇몇 말도 안 되는 천재들은 타고난 감각만으로 깨달음을 상쇄하지만... 네놈이 그런 괴물이 아닌 이상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을 거다.”
그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편법을 시도한 결과물이 지금의 소마동이었다.
“하지만 마교엔 삼화취정을 이룬 괴물들이 많지. 왜 그런지 아느냐? 놈들은 강호인들이 당연히 겪는 시행착오를 비술로 대체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일월신교로 가려고 했던 건가?”
“그래, 일월신교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혼자선 백날 머리를 쥐어뜯어도 안 됐었지만, 그놈들이라면 해결해줄 수 있을 테니까!”
“암시장에 온 건 돈 때문이 아니었군. 기회를 봐서 혈교에 투신할 생각이었던 건가?”
낮에는 남의 싸움에 끼어들기 싫다고 했지만, 진짜 속내는 달랐던 것이겠지. 소마동이 입에 자물쇠를 잠근 것처럼 대답을 거부하자 강엽이 피식 웃었다.
소마동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진정했으니 검은 내려놔라. 젊은 놈이 뭘 하면서 살았길래 살기가 이리 짙은 것이냐?”
강호에선 노마두로 불리는 소마동조차 강엽이 은연중 내뿜는 살기에 정신이 번쩍 든 걸까. 제 색을 되찾은 안구를 들여다본 강엽이 검을 내려놓았다.
“추태를 보였구나, 후배. 용서해라.”
담담히 사죄를 건네는 소마동의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휘어져서 단전을 향해 짓쳐들었고,
벼락처럼 솟구치는 일도양단의 검격에 사타구니부터 일직선까지 붉은 혈선이 그어졌다.
한참 늦게 비스듬히 갈라진 소마동의 육신이 핏덩이를 뿌려내며 미끄러지자 백서희가 어이없어했다.
“완전히 미친 새끼였네. 괜찮아진 척하면서 바로 공격하다니....”
“사마외도니까.”
방심한 틈을 노려서 의표를 찔러볼 셈이었을 것이다.
하나 줄곧 초음으로 놈을 관찰했던 강엽은 진기가 오히려 더욱 끓어오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온한 안색 뒤에 진짜 광기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아, 물러난다.”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던 벽력탄의 폭발음도 살수들이 썰물처럼 후퇴하면서 잦아들었다.
하지만 곳곳의 전각과 담벼락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시체가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승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집중 공세를 받았던 호연 장주의 거처는 고수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초토화됐다.
장주의 거처로 간 두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하반신이 뭉개진 채 화상을 입은 호연 장주였다.
“사, 살려줘....”
살아남은 게 신기한 몰골이었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호연 장주는 혈교가 준 비약의 공능으로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였다.
총관이 사색이 되어 급히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장주님. 바로 의원을 부르겠습니...!”
본래 호연장에 상주했던 의원도 난리통에 휘말려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일단은 시비들이 호연 장주를 돌보는 사이 의원을 불러와야 했다.
하지만 총관이 뭘 해보기도 전에 눈을 의심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푸욱!
“커억!”
장주를 보살펴야 할 시비가 단도를 들어 장주의 심장을 헤집은 것.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에 총관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할 말을 잃고 시비를 바라보았다.
강엽과 백서희만 그러려니 했다.
[역시 이렇게 되네.]
살수들의 살기도 감지한 두 사람이 시비들이 품은 살의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두 사람의 본의를 알고 있는 호연 장주가 퇴장하는 게 이득이라 판단해서 막지 않았을 뿐.
시비들이 치맛자락에 숨겨둔 칼이나 송곳 등을 가져와서 호연 장주를 찔렀다. 허공에 핏물이 튀고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죽어, 이 개자식아!”
“아아아아아아!”
악귀처럼 일그러진 시비들의 모습에 아연해진 호연장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이년들, 지금 뭘 하는 게야!”
“장주님을 지켜라!”
사람들이 시비들을 힘으로 치웠지만 이미 몇 번씩 찔린 호연 장주는 절명한 뒤였다.
총관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철푸덕 쓰러졌다.
“아아아... 어쩌다 이런 일이....”
지금껏 호연 장주의 횡포에 시달렸던 시비들이 그가 죽을 부상을 입자 폭주한 것이다. 정말 목숨을 잃기 전에 자기들의 손으로 죽이기 위해서.
하지만 강엽은 똑똑이 봤다. 호연 장주의 시신 앞에서 좌절한 늙은 총관의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을.
그것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자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