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91화 (91/450)
  • 14화. 멸문 (6)

    “총관이 적들을 막고 있습니다. 일부가 교룡전으로 오고 있사오나, 접주님께 닿지는 못할 것입니다.”

    장로가 납작 엎드린 채 고하는 말에도 흑접주는 요지부동이었다.

    문득 그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세월이 참 무상하군.”

    “접주님...!”

    “눈을 감으면 본교가 무너진 날이 떠오른다. 오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눈에 선연하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흑룡교의 멸망을 겪은 교도들이었다.

    그날의 치욕과 슬픔, 강호 무림에 대한 증오를 잊지 못하여 흑룡교의 부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흑룡교의 부활을 획책해봤자 또 다시 짓밟힐 뿐.

    그렇기에 지옥의 밑바닥을 핥는 심정으로 훗날을 기약하며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적당한 살문 하나를 골라 내부에서 장악하여 흑룡교 부활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었지.”

    당시엔 흑접주도 어린 소년이었기에 흑접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우연을 가장하여 들어간 흑접에서 힘을 기르면서 기회를 엿봤고, 때가 됐다고 판단했을 때 두 노괴와 합심하여 전대 흑접주를 제거하고 흑접을 장악했다.

    이후 수십 년간 흑룡교의 비술을 살수들에게 가르쳐서 흑접을 사천제일의 살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후후, 쌓는 건 어려워도 잃는 건 한순간이라더니... 내 꼴이 딱 그렇지 않은가?”

    “마음을 굳게 잡수셔야 합니다.”

    끝날 때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 적들을 싹 밀어버린 뒤에 살수들을 추스르면 기회는 남아 있었다.

    총단의 위치가 노출됐으니 본거지를 옮겨야겠지만, 그곳에서 재기를 노려볼 수 있으리라.

    “걱정하지 마라.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니니까.”

    흑접주의 전의를 대변하듯 그를 둘러싼 금지의 어둠이 강하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오히려 난 싸움을 바란다.”

    “접주님, 그것은...!”

    “안다. 흑접의 주인인 내가 칼을 맞댄다는 것은, 마지막까지 몰렸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원래 가끔씩은 칼을 써줘야 녹슬지 않는 법이다.”

    흑접주의 입술이 말려올라가며 하얀 이가 드러났다.

    “자잘한 놈들은 그대가 막아라. 하지만 가장 맛있는 먹잇감은 내가 갖고 싶군.”

    “.......”

    “왜 대답이 없나?”

    “...삼가 명을 받듭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부할까. 장로는 주군의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명령을 따를 뿐이었다.

    * * *

    일행은 파죽지세로 앞길을 열어젖혔다.

    상위 서열들이 빠진 지금 흑접에 세 사람을 막을 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암기를 뿌리거나 함정을 파는 등 산발적인 저항이 잇따랐지만, 그런 걸로 막기엔 일행이 너무 강했다.

    당장 하후진이 염도를 휘두르면 어지간한 암기나 함정은 죄다 날아가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일행은 교룡전의 앞에 당도했다.

    교룡전을 둘러싼 검은 안개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면서 그들을 막아섰다.

    “허, 엄청나게 지독한데? 공격해볼까?”

    “제가 해보겠습니다.”

    “엥, 여스님이 하시려우?”

    “불문의 공력은 마기와 상극. 이런 부분에선 제가 두 분보다 나을 겁니다.”

    하후진이 괜찮겠냐는 눈짓을 보내자 강엽이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겠지.”

    “그럼.”

    소창후가 창날에 공력을 담자 희미한 금광이 연꽃처럼 피어오르면서 안개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불문의 힘이야. 성능 확실하구만.”

    “만약을 대비해서 공력을 아끼시오.”

    강엽이 말했다. 소창후는 아미 제일의 기재답게 축기량은 상당했지만, 싸우는 동안 공력을 많이 소모했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일행은 천천히 교룡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살수들이 옥쇄할 각오로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살수가 없었다.

    대신 또 다른 저항이 일행을 맞이했다.

    -쉬쉬쉭!

    안개 사이로 장정 허리만한 굵기를 자랑하는 구렁이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기어나온 것이다. 지난날 겪은 흑암영사술보다 한층 강한 술법.

    불문의 공력 때문에 좀처럼 다가오지 못하고 기회만 엿봤지만, 틈이 보이면 언제든 덮칠 기세였다.

    소창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좋지 않군요.”

    저 구렁이들이 공격하면 싸울 수밖에 없는데, 공력이 바닥나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위험해지기 전에 치워야겠어.”

    “뭐? 어떡하려고?”

    하후진이 놀라서 물었다.

    구렁이들뿐 아니라 안개도 문제였다. 소창후의 기파를 벗어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 않은가?

    “꼭 불문의 공력만 먹히는 건 아닐 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면 되는 법.

    -휘리릭!

    망혼소의 주력이 쏘아지자 구렁이들이 놀란 것처럼 동공이 커지더니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그 틈을 타서 조풍을 뿌리자 구렁이들의 몸뚱이가 썩둑썩둑 잘려나가며 검은 덩어리를 토해냈다.

    살아남은 구렁이들이 비늘을 일으키며 반항했지만, 망혼소와 조풍의 연계에 허망하게 퇴치당했다.

    “뭐여. 별것 아니잖아?”

    “아니,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면 쉽지 않았을 거다.”

    일행이 비교적 수월하게 길을 돌파한 것은 불문의 공력을 익힌 소창후와 술법과 무공의 연계로 대응할 수 있는 강엽 덕분이었다.

    평범한 무인들이 들어왔다면 몇 배로 고생하거나,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 말도 틀린 건 아니야. 우리한텐 너무 쉽지. 아무래도 시간을 벌려고 수를 쓴 것 같은데....”

    “강 시주의 말씀대로 정말 노골적으로 시간을 끌려는 의도가 보이는군요.”

    소창후가 짜증이 밴 어조로 강엽의 말에 동조했다.

    토막난 구렁이 시체들이 수백 마리의 작은 흑사로 변해서 일행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이젠 불문의 공력이든 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오는 족족 불문의 공력을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렸지만, 독기를 쏟아내며 일행을 방해했다.

    똑같은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소창후 역시 공력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안쪽으로 갈수록 마기가 짙어지며 불문의 공력까지 잠식할 조짐을 보였다.

    소창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제기랄, 어떻게 좀 해봐! 그 장로라는 할망구 면상을 보기도 전에 우리가 뒈질 판이라고!”

    하후진이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는 그때였다.

    [역시 본접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었구나.]

    안개가 뭉쳐 늙수그레한 노파의 얼굴을 만들더니, 우렛소리마냥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냈다.

    일행의 속도가 느려지는 찰나 강엽이 일갈했다.

    “멈추지 마!”

    하후진과 소창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노파를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말을 섞을 뻔했다.

    [괘씸한 놈들 같으니. 바른 대로 고하지 못할까? 어찌 본접의 사정을 알았느냐고 물었다-!]

    강엽이 눈살을 찌푸렸다.

    ‘망혼소와 비슷한 효과 같은데....’

    주력이 작용하는 형태는 다르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소리를 이용하여 심령을 뒤흔드는 술법.

    일행이 전원 고수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소창후가 불문의 공력으로 위력을 상쇄하지 않았다면 목소리를 들은 시점에서 홀렸겠지.

    “이봐, 주제 파악 못하는 늙은이.”

    생각지도 못한 폭언에 장로는 말문이 막혔는지 강엽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강엽이 피식 웃었다.

    “너무 오래 살아서 뇌가 녹슨 모양이군. 그딴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걸 보니 말이야.”

    장로가 노호성을 터뜨리려는 찰나, 강엽이 한발 앞서 그녀의 목소리를 끊고 말을 이었다.

    “똑똑이 알려주마. 흑접은 멸망한다. 거기서 목 씻고 기다려라.”

    직후 그의 주먹에 어린 권기가 장로의 얼굴을 짓뭉개버렸다. 마기가 폭발하며 강엽을 덮치자 뒤를 따르던 소창후가 경호성을 질렀다.

    “강 시주, 조심하십...!”

    하지만 강엽은 태극반의 묘리로 간단하게 마기를 경파 안에 가둔 뒤에 앞으로 내쏘았다.

    마기와 마기가 충돌, 무지막지한 굉음을 내며 폭발하자 멍해졌던 그녀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바, 방금 그건....”

    “별거 아니오.”

    “아니, 별거 아닌 게 아닌데....”

    “그보단 길을 찾는 게 먼저요.”

    계속 이렇게 헤매면 장로나 흑접주를 찾기 전에 그들이 먼저 지칠 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렁이나 흑사 등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훼방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찾고 있는 거잖냐. 이 망할 놈의 안개만 아니었으면 애저녁에 찾았을 텐데.”

    “찾았다.”

    “뭐어? 어떻게?”

    하후진뿐만 아니라 소창후도 놀란 눈이 되어서 강엽을 바라봤다.

    “소창후가 도움을 줬지.”

    “제가 말입니까?”

    소창후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강엽은 자세히 대답하지 않았다.

    불문의 공력이 안개를 밀어낼 때마다 벽에 대고 초음의 파동을 써먹었던 것이다.

    교룡전의 구조가 워낙 복잡한 데다 안개가 기감까지 방해하는 탓에 알아내는 게 늦었다.

    그래도 발바닥에 땀띠 나면서 돌아다니면서 초음을 쓴 덕에 대강은 알아낼 수 있었다.

    “우리가 여기 들어온 지 일 각은 됐을 거다. 근데 아무리 안개가 가려도 헤매는 건 말이 안 돼.”

    “그야 길이 겁나게 복잡하니까 그런 거 아녀?”

    “벽이 움직이고 있어.”

    “엥?”

    하후진은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껌뻑였다.

    그러나 소창후는 뭔가 깨달았는지 신음처럼 목구멍을 쥐어짜냈다.

    “기관진식...!”

    “어어, 자, 잠깐! 기관진식이라는 거 그거 아녀? 갑자기 벽에서 화살 날아오고 땅바닥이 푹 꺼지고.”

    “나도 기관진식은 책으로만 접해서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벽이 움직인 건 확실해.”

    “그럼 소리가 들려야 하는 거 아닌가? 암만 우리가 싸움에 정신 팔렸어도 벽이 움직였다면 작게라도 들렸을 텐데.”

    소창후가 심각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안개가 기감을 방해하는데 오감까지 방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요.”

    강엽이 그 말이 맞다는 뜻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안개가 조금씩 오감을 좀먹고 있었다. 안개가 시야를 좁히고 뱀들이 쏟아져나오는 바람에 늦게 알아차렸다.

    “사실은 같은 곳을 빙빙 돌았던 거지.”

    “이런 씨발 좆 같은...!”

    열불이 터지는 게 당연했다. 강엽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계속 헛심만 뺐을 게 아닌가?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야. 몇 번이나 확인해서 그 늙은이가 있는 곳은 확실히 찾았으니까.”

    그때부턴 강엽이 앞장을 서고, 하후진과 소창후가 뒤를 따르는 형국이었다.

    안개과 뱀들이 앞길을 막아섰지만 잠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하후진과 소창후가 폭발적으로 공세를 퍼부어 물리치는 동안, 강엽은 초음의 파동을 내쏘았다.

    정교한 기관진식에 의해 벽이 움직이면서 일행의 동선을 유도하려고 했다.

    “이제 그 수작은 안 통해.”

    안개가 물러난 벽을 향해 일권을 때려박았다.

    안에 철판을 박아서 단단하기 그지없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일권을 퍼부었다.

    어느새 다시 마기로 얼굴을 만든 장로가 그 행태를 비웃었다.

    [흥, 무식하게 때리면 교룡전의 벽을 부술 수 있을 것 같더냐? 헛짓거리 하지 마라! 그게 얼마나 두꺼운데...!]

    장로의 말을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아아앙!

    권기를 감싼 주먹이 벽을 부순 것도 모자라 철판을 잡아서 좌우로 뜯어버렸기 때문.

    [마, 말도 안 된다. 이런 바보 같은.... 평범한 철판도 아니고 한철(寒鐵)로 만들었거늘...!]

    흔히 신병이기의 재료로 쓰인다는 만년한철에 비견하지는 못할지라도 어지간한 백련정강보다는 훨씬 단단했다.

    절정고수가 전력을 다해도 우그러들까 말까인데, 그걸 종잇장처럼 뜯어버리다니?

    한철이라는 말에 하후진과 소창후도 황당해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정작 강엽은 심드렁했다.

    “사기당했나 보군. 그러게 잘 알아보고 샀어야지.”

    * * *

    “.......”

    부순 벽 너머엔 허리가 굽고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난 추레한 노파가 경악한 채 굳어 있었다.

    그녀를 호위하던 살수들이 달려들었지만, 강엽이 손을 휘젓자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방 안이 피로 더럽혀지자 장로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래,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교주님을 죽인 염왕의 후예와 가증스러운 구파의 악적, 그리고....”

    그녀가 강엽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네놈, 모산혈조 그 늙은이와 무슨 관계냐?”

    모산혈조라는 말에 소창후가 놀란 얼굴로 강엽을 돌아봤다. 그가 사마외도가 아닐지 의심하긴 했지만, 설마 모산혈조와 관계가 있었을 줄은 몰랐다.

    강엽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모산혈조를 알고 있나?”

    “젊은 시절에 교류한 적이 있었지.”

    장로가 모산파의 술법을 알고 있다면 망혼소를 알아본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과연. 젊은 시절에 교류했다... 그럼 지금은 어딨는지 모른다는 말이군. 아쉬운걸.”

    “무어라?”

    “원래 지금쯤이면 뒈졌어야 하는데, 그 늙은이라면 왠지 살아있을 것 같거든. 당신이 그 작자 행방을 알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

    장로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하후진과 소창후도 강엽의 목소리에 배어있는 지독한 원한과 집념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모른다면 됐다. 당신에게는 볼일 없어.”

    흑무암쇄진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지 물어봐야 하지만, 뒤에 있는 소창후가 마음에 걸렸다.

    모산혈조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까지 들통 났는데 흑룡교의 술법진에 대해서까지 물어보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 아닌가?

    ‘흑접주에게 물어볼 수밖에.’

    물론 그땐 소창후가 없어야 하리라.

    그때 장로가 벌레 씹은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모산혈조에게 원한을 품은 놈이라... 모산파의 술법을 익힌 놈이 모산혈조에게 원한을 품다니 괴이한 일이로고.”

    명아주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치자 바닥 일부가 열리며 아래로 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선택하거라.”

    “뭐?”

    “네놈들 중 한 명만이 저 계단을 내려가서 접주님을 배알할 수 있느니라.”

    “....”

    일행이 서로를 곁눈질했다. 본능적으로 이게 장로의 함정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문득 하후진이 툭 내뱉었다.

    “강엽, 가라.”

    “하후 시주, 그건...!”

    “암만 생각해도 이게 맞아. 나 혼자선 저 할망구를 못 이겨. 스님은 지쳤고. 흑접주인지 나발인지를 쳐죽일 놈이 너밖에 더 있냐?”

    “셋이 다 같이 저 노마두를 쓰러트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 뒤에 흑접주를 도모하면....”

    하지만 소창후의 항변은 장로에 의해 막혔다.

    “정확히 일 각이 남았느니라. 일 각이 지나면 교룡전을 감싼 안개가 총단 전체로 퍼질 게다.”

    “뭐라고요?”

    “혹여나 총단이 함락당할 것을 대비해서 수십 년간 준비한 한 수다. 똑똑한 아해라면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 게다. 아미파 땡중년들은 잠시간은 버틸지도 모르지만, 다른 놈들은 어떨까?”

    “...!”

    소창후의 안색이 하얗게 굳어졌다.

    장로가 다시 말했다.

    “이 늙은이를 죽인다고 술법이 풀리진 않을 게다. 술법진의 중심은 접주님이니까.”

    “어, 어찌 그런 짓을...!”

    “그저 접주님이 바라시는 것을 들어드릴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장로의 얼굴엔 씁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행과 시선을 마주친 강엽은 마지막으로 장로를 힐끔 돌아본 뒤에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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