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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왕-90화 (90/450)

14화. 멸문 (5)

졸지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흑접의 살수들은 열심히 싸웠다.

아니, 열심히 싸우는 것을 넘어 광신도처럼 같이 죽자는 기세로 덤벼들고 있었다.

“아, 쓰벌 독한 새끼들.”

쌍욕을 뱉은 하후진은 창염을 광범위하게 흩뿌렸다. 민간의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만큼 위력을 조절하지 않고 막 퍼부었다.

“흑룡교 술법을 익혀서 그런가? 하는 짓도 마교랑 판박이네, 판박이야.”

섬서에서 일월신교랑 치고받은 경험이 많은 하후진이었다.

광신에 빠진 마교도들은 내일 따위 없다는 것처럼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는데, 흑접의 살수들도 하는 짓거리가 비슷했다.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동귀어진을 감행했다.

마치 일행의 몸에 상처 하나만 내면 자기 목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청수도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금제가 무서워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하다니....”

“그건 아니야.”

뒤에 있던 칠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살수들의 시체에서 회수한 암기를 틈틈이 던져서 두 사람을 지원하고 있었다.

적의 암기를 쳐낸 청수가 쥐어짜듯 외쳤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금제 때문에 죽자 살자 싸우는 게 아니라고. 세 자릿수들은 세뇌도 걸려 있어. 두 자릿수도 서열 낮은 애들은 세뇌가 남아 있고.”

세뇌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풀린다.

정확히 말하면 무영환살공의 경지가 올라가면 세뇌가 풀리게끔 되어 있었다.

“세뇌가 빡세면 수동적으로 변해서 발전이 더디거든. 스스로 한계에 갇히고 말아. 그래서 상위 서열쯤 되면 세뇌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하위 서열들은 안 그래.”

사원루에 잠입하는 데 도움을 준 백팔십이호도 알게 모르게 세뇌의 영향을 받았었다.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조직의 명령이 떨어지면 자신의 목숨보다도 우선시하는 것이다.

“이것들아! 수다 떨 시간 있으면 닥치고 좀 거들어!”

하후진이 빽 소리치자 청수가 쓴웃음을 흘리며 얼른 옆에서 보조하며 길을 텄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크악!”

“뒤다! 뒤에서 기습이...!”

거센 피바람이 살수들을 덮쳤다.

세 자릿수의 살수들이 감당할 수 있는 위협이 아니었다.

촤아악!

손톱에서 일어난 빛살이 살수들의 병장기를 부수고 그들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강맹한 경력을 머금은 일권이 육신을 부수고 날카로운 각법이 병장기를 쪼개버린다.

쐐애애액!

뒤이어 따라온 소창후가 섬전처럼 창격을 뻗어 살수들의 어깻죽지나 허벅지를 꿰뚫었다.

살수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것과 별개로 그들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진격.

그렇게 일행은 다시 합류했다.

“이제 어떡합니까?”

“본대와 합류해서 교룡전(蛟龍殿)을 쳐야지.”

교룡전은 흑접주의 거처이자 흑접의 중심이었다.

현 흑접주가 흑접의 정상에 오른 뒤에 직접 이름을 붙인 전각.

“목표는 단순하다. 최단 시간에 흑접주와 두 노친네를 죽이는 것. 특히 장로라는 자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칠호의 말에 의하면 흑접의 살수들은 금제로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반대로 말하면 장로만 없어지면 금제가 풀려서 살수들의 동요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물론 금제를 풀자마자 항복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살수들이 동요하면 아군에게도 유리할 터.

‘정말 운이 좋다면 그 틈을 노려서 큰 타격을 줄 수도 있고.’

그때 칠호가 긴장하며 말했다.

“문제는 상위 서열이야. 날 빼도 아직 다섯이나 남았어.”

그 말에 강엽과 소창후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한 명은 우리가 죽였다.”

“방금 막 구호라는 자를 처리하고 오는 길입니다.”

강엽이 구호를 처리한 과정을 설명하자 칠호가 혀를 내둘렀다.

“그 새끼는 왜 하필이면 거길 가서... 운도 지지리 없는 새끼.”

여하튼 구호를 제외해도 아직 상위 서열이 넷이나 남았다. 십번대의 살수들도 만만치 않은 만큼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그때 강엽이 칠호를 돌아봤다.

“넌 이제 가라.”

“뭐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모두가 놀랐다.

특히 칠호가 도망치는 것을 우려했던 소창후는 눈썹을 역팔자로 치뜨며 강엽을 노려봤다.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칠호 자신이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술법진이 깨졌으니 나가는 건 문제 없을 텐데?”

“그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려는 거다.”

술법진이 깨져서 아군이 들어온 시점에서 그녀를 더 이상 억지로 묶어둘 필요는 없다.

칠호 역시 자유롭기를 원한 만큼 이 시점에서 헤어지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겠지.

하지만 정작 칠호는 머뭇거리면서 일행을 둘러보고 있었다.

“.......”

칠호의 이탈을 반대하는 의견은 없다.

유일하게 소창후만 눈을 부릅뜬 채 절대 안 된다는 시선을 보냈으나, 다른 이들은 그러려니 하는 기색이었다.

“음, 뭐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나서 반가웠다. 나중에 볼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잘 살라고.”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앞날은 도우에게 달렸습니다. 부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시기를.”

소창후는 청수를 향해 배신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하후진은 그렇다 쳐도 설마 청정도량 도문의 수행자인 그까지 흔쾌히 보내줄 줄이야?

“청수 도장, 어찌 그런...!”

“공으로 과를 갈음한다지요. 그녀가 죄를 저질렀다 하나 우리 또한 그녀 덕분에 흑접을 쳤으니, 적어도 이 자리에서 그녀를 붙잡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청수가 원시천존을 읊으며 눈을 감자 소창후는 말문이 막혔다.

반박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 맴돌았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래, 뭐 여기에 남을 이유는 없지. 너희랑 끝까지 함께할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일행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칠호가 볼을 긁적이며 몸을 돌렸다.

떠나기 전에 잠시 강엽을 본 그녀는 복잡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적으로 만났으니 좋은 인연이라고 할 순 없으리라. 하나 사정이 어쨌든 강엽으로 인해 그녀는 자유를 얻은 셈이었다.

그것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흑접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지, 아니면 미망에 사로잡혀 그릇된 선택을 할 것인지. 무엇을 선택하든 그녀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삶.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칠호라는 이름은 더 이상 못 쓰겠지.’

그것은 흑접이 준 이름이었다.

그녀 스스로 흑접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이상 조직에게 받은 이름을 고집할 순 없었다.

그 사실이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시원하고, 한편으로는 사무치도록 서글퍼서.

그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을 준 남자를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 진짜 이름은... 백서희야.]

어릴 적에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스스로도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그녀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구나. 처음이었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본명을 말해준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 * *

“쩝, 아쉽게 됐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하후진이 입맛을 다셨고 청수도 동의했다.

두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은 소창후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혀를 찼다.

“하여튼 사내들이란....”

할 말이 궁해진 두 남자는 낮게 헛기침을 뱉었다.

소창후가 강엽을 돌아보며 물었다.

“정말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전에 객잔에서 벌였던 말다툼의 연장선이었다.

아무리 공을 과로 갈음한다지만 흑접의 살수를 놔주는 게 과연 옳은 길일까?

“옳은지 그른지는 나중에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녀가 살수로 살진 않을 거라 생각하오.”

“어떻게 확신하시지요?”

“감으로.”

소창후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강엽을 바라봤지만, 강엽은 구구절절 해명하지 않았다.

다만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은 사람이 스스로 그 이름을 버리는 선택을 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선 잊으시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소창후도 그 점을 알기에 감정을 추슬렀다.

“...그러지요. 대신 강 시주의 선택이 틀렸다면, 그땐 저를 말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좋을 대로.”

그 길로 일행은 교룡전을 향해 나아갔다.

흑접의 살수들이 일행이 가는 길을 순순히 비켜줄 리 만무. 일행의 앞길은 험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살수들도 일행에게만 집중하진 못했다.

“전대 국주님의 원수를 갚아라!”

“아미의 제자들은 사마외도를 일벌백계하라!”

일백 필의 준마를 타고 온 금정표국의 표사들과 아미의 제자들이 노도처럼 쏟아졌다.

환야미로진이 깨지면서 마차가 다닐 만큼 큰 길이 드러난 덕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것.

“우리도 질 수 없지. 밥값할 시간이다, 자식들아!”

“상위 서열은 내 몫이다!”

낭인전의 낭인들 역시 눈이 벌게져서 달려들었다.

흑접에 진입하기 직전 남인옥이 상위 서열을 잡으면 포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했기 때문.

당연히 흑접 역시 전력으로 응수했다.

“이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마름모 모양의 철질려(鐵蒺藜)가 말발굽을 뚫고, 화살과 암기가 하늘에서 빗발친다.

연막탄과 독탄이 터지면서 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아군과 적군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죽음이 난무했다. 악다구니와 비명, 병장기가 부딪치는 굉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가운데 일행은 각자 절기를 쏟아내며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혈광이 살수들의 몸통을 가르고, 시리도록 푸른 창염이 대로 전각들을 집어삼킨다. 태극의 선풍과 항마의 공력이 살수들을 날려버린다.

“뭐냐, 이 괴물들은... 커억!”

“술법! 술법으로 막아!”

그 누구도 일행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그러기엔 일행의 화력이 너무 막강했다. 특히 하후진이 작정하고 창염의 도격을 휘두르자 술법이고 뭐고 새카맣게 불타버렸다.

뒤에서 따라오는 아군도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위용.

“사자염도 하후진이라고 했었나. 섬서에서 활약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기대 이상인걸.”

“귀영도 놀랍군. 풍문 이상의 무위가 아닌가?”

같은 은천패인 창비도 이후명과 소살관철 진린 역시 일행의 무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흑접의 살수들도 호락호락 당해주진 않았다.

“커억!”

“빌어먹을! 독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독안개가 본대의 허리를 덮치자 금정표국의 표사들이 싸우다 말고 고꾸라졌다.

새파랗게 질린 채 목을 잡은 이들은 눈이 뒤집어져서 절명했다.

“모두 숨을 참고 물러나라!”

표사들을 뒤로 물린 남인국은 본인도 소매로 입과 코를 막은 채 어딘가를 노려봤다.

전신을 붕대로 감은 괴인이 전각 지붕에 쪼그려앉은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위 서열들의 특징은 모두에게 알려졌기에 상대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왔군! 네놈을 만날 날을 손 꼽아 기다렸다!”

“흠, 우리가 아는 사이던가?”

“금정표국을 기억하느냐?”

“글쎄, 하찮은 놈들은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 주의라서.”

“뭐라고?”

“뭐, 금정표국은 그럭저럭 기억나는군. 비교적 최근에 나선 살행이었지. 국주의 아들놈인가?”

“역시 네놈이 그분들을...!”

남인옥이 노성을 토할 때였다.

“국주님!”

황인검이 어깨에 손을 짚자 남인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물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금정표국의 국주였다. 원수를 갚더라도 무모하게 나설 순 없었다.

이호가 그런 남인옥을 굽어보며 조소했다.

“후후,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여기까지 왔나. 참으로 갸륵한 효성이군그래.”

그가 전각에서 내려서는 것과 동시에 살수들이 하위 서열들을 향해 외쳤다.

“이호님께서 싸우신다! 절대 접근하지 마!”

“국주님을 엄호하라!”

황인검을 비롯한 표사들은 반대로 남인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이호를 노려봤다.

이호가 들숨을 뱉을 때마다 붕대로 감은 입새 사이로 황색의 독연이 흘러나왔다. 이호는 독공을 익힌 독인이었던 것이다.

“미리 듣지 못했다면 곤경을 겪었겠어.”

전원이 피독주를 입에 물자 이호가 다가오다 말고 멈칫했다.

“흐음,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네놈들은 본접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구나. 어떻게 알아낸 거지?”

다른 살수들이 그렇듯 이호 역시 흑접의 금제가 풀렸을 가능성은 떠올리지 못했다.

“궁금하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물어보든지.”

서로를 노려본 두 세력이 충돌했다.

* * *

강엽 일행도 더는 전진하지 못했다.

일단의 무리가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이제까진 우격다짐으로 뚫었던 일행이지만, 이 앞을 막은 자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더 이상은 가지 못한다, 애송이들.”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두툼한 입술을 비틀었다.

천하를 오시하는 듯한 패도적인 기파가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울리자 청수와 소창후가 침음했다.

“마기...!”

“흑룡교의 마공입니다!”

강엽과 하후진도 느끼고 있었다.

초음의 능력으로 노인의 단전을 살핀 강엽은 상대의 내공이 이 갑자에 달했음을 알아차렸다.

‘축기량만 보면 혜정 사태보다 윗줄이다. 하지만 삼화취정에 이르지는 못했어.’

그렇다고 하여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노인이 데려온 이들 중엔 상위 서열들로 여겨지는 자들이 즐비했다.

채찍에 표창이 달린 승표(繩鏢)를 쥔 육호, 손에 쥐고 타격하는 전당괴(轉堂拐)를 쓰는 사호.

그리고....

‘철검을 쓰는 자가 일호겠지.’

아무런 특색 없이 평범한 사내.

저잣거리에서 만나면 등 돌리자마자 잊을 것 같은 흐릿한 인상의 사내였다.

초음으로 단전을 살피지 않았다면 그가 한 자릿수라는 것도 몰랐을 만큼 존재감이 옅었다.

하지만 칠호는 단언했다. 흑접의 상위 서열 중에선 일호가 가장 무시무시하다고. 평상시의 무공이 잠력을 격발한 삼호와 대등한 수준이라고 했었다.

대머리의 노인, 총관이 오연하게 선 채 일행을 쭉 둘러보았다.

“건방진 악적들 같으니. 감히 본접의 땅을 흙발로 더럽히고도 무사할 성싶더냐?”

“그건 빈니가 드려야 할 말씀 같습니다만.”

머리를 파르라니 깎은 중년의 비구니가 등장했다.

강엽이 혜정 사태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금정표국을 돕기로 하신 것 아닙니까?”

“제자들이 거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자를 내버려두면 결과적으로 금정표국이 큰 피해를 입을 터. 독인보단 마인이 더욱 위험합니다.”

총관도 혜정 사태를 알아보고 심각해졌다.

“난풍혜검...!”

“여러분께선 다른 마두를 막아주십시오. 여기보다는 저쪽이 더 급할 것 같습니다.”

혜정 사태가 교룡전이 있는 방향을 힐끔거렸다.

술법진이 무너지고 본대가 몰려온 이후부터 불길한 검은 안개가 교룡전을 휘어잡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리 요란법석을 떠는지는 몰라도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저자들은 빈니와 다른 분들이 맡겠습니다.”

어느덧 혜정 사태의 옆엔 이후명과 진린도 와 있었다. 강엽과 시선이 얽힌 그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청수가 말했다.

“저도 남겠습니다.”

그 말에 다들 놀란 얼굴로 돌아보자 청수가 일호를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한 명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남아서 부족한 수를 맞춰야지요.”

“음, 그럼 내가 남는 게 낫지 않나?”

“아뇨. 하후 도우의 무공은 자칫 아군마저 휩쓸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창후께서 남으실 것 같진 않군요.”

소창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청수의 말마따나 그녀는 강엽을 감시하는 임무 또한 맡고 있었다.

혜정 사태가 푸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청수 도장이 남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다들 들으셨죠?”

강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마라.”

“호승심은 도사의 소양이 아니지만, 이 말씀은 꼭 드려야겠군요. 반드시 이길 겁니다.”

총관을 비롯한 상위 서열들이 몽땅 나왔으니 교룡전엔 장로와 흑접주밖에 없었다.

총관이 이를 갈았지만 혜정 사태를 비롯한 절정고수들이 견제의 눈빛을 보낸 탓에 잡진 못했다.

이내 총관이 코웃음을 치며 일성을 터뜨렸다.

“흥, 저놈들이 간다고 네놈들이 이길 것 같더냐!”

“당연한 것 아닙니까?”

청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 떠난 일행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하군요. 앞으로 흑접의 이름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애송이 말코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군. 그 말을 후회하게 해주마!”

칠흑처럼 시커먼 마기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면서 청수와 혜정 사태를 덮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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