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거룡 (7)
양측의 세력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대치했다.
강엽이 문득 입을 열었다.
“거산중권과 동문이었다고?”
장경이 준 서책엔 나와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몰랐을 땐 그냥 지나쳤지만, 진실을 알고 보니 철권긍룡과 거산중권 사이엔 공통점이 꽤 있었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칠척이 넘는 근육질의 거구인 데다 권각술의 고수란 점이 그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드넓은 강호무림에서 그 정도 특징이 겹치는 무인들은 얼마든지 있을 터.
강엽이 철권긍룡을 골랐던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이놈이 제일 집요하게 쳐다봐서 고른 건데....’
거룡방주를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강엽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약간의 호기심 정도.
하지만 철권긍룡만은 집요하리만치 강렬한 살기를 흘렸던 것이다.
저만한 자라면 난전 중에도 자신을 쫓아올 테니 미리 처리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건데, 설마 거산중권과 동문이었을 줄이야.
“거산중권이 실패작이라는 말은 뭐냐?”
“그 양반은 온전히 무맥을 담을 그릇이 못 되었거든. 범부의 자질에 불과했다. 결국 사제인 나한테 따라잡혀 사부에게 버림받자 실의에 빠져서 도망쳤지.”
“사승 관계가 꽤나 삭막하시군.”
“큭큭, 좀 그런 편이었지.”
“대신 치워줘서 고맙다는 건, 언젠가는 당신의 손으로 죽일 생각이었다는 건가.”
“음. 귀찮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지. 사부가 죽기 전에 내린 명이었거든. 다만 그놈이 이름을 바꾸는 바람에 찾는 게 늦었다. 찾았을 땐 중경에서 도망친 뒤였고. 할 수 없이 나중으로 미뤘는데, 몇 년 만에 웬 낭인 나부랭이에게 객사했다는 말이 들리더군. 나로선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격이라 고맙긴 한데... 한편으로는 괘씸해서 말이야. 감히 내 먹잇감에 손을 대다니.”
‘이건 뭔 병신 같은 논리야.’
강엽은 한숨이 나왔다.
사형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기 손으로 죽일 사람을 대신 죽였다는 이유로 죽이겠다니?
그러면서도 말로는 고맙다고 하니 빈말로라도 제정신이라고 하기 힘든 작자였다.
“자, 덤벼라! 귀영! 네놈을 죽여 멍청한 사형이 떨어트린 권영문(拳榮門)의 명예를 다시...!”
강엽은 들어주지 않았다.
암신을 펼쳐 창졸간에 철권긍룡의 앞에 출현, 발경을 담은 일권으로 놈의 오른쪽 옆구리를 후려쳤다.
본래라면 경력이 콩팥을 타고 간장까지 닿아야 했지만, 강엽은 철권긍룡의 몸과 닿은 주먹의 표면에서 욱씬거리는 반발감을 느끼고 표정을 굳혔다.
‘이건 설마...!’
철권긍룡이 입꼬리를 올렸다.
“크흐, 꽤 짜릿한걸? 호신기(護身氣)를 뚫다니.”
체외에 내공을 둘러 몸을 지키는 기예.
강엽의 일권은 철권긍룡의 호신기를 뚫는 데는 성공했으나,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투학!
“크헉!”
강엽의 주먹이 몸과 닿은 상태에서 다시 한번 경력이 들어와서 내부를 헤집기 전까지는.
철권긍룡이 경악했다.
‘맙소사! 이중경파(二重勁波)라니...!’
경력을 두 번 겹쳐서 내쏜 것이다.
대체 내공을 운행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르길래 이런 묘기를 부린단 말인가?
빠악!
강엽의 장저가 허리를 굽혀 자세가 낮아진 철권긍룡의 턱뼈를 올려쳤다.
급박한 순간에도 철권긍룡은 이를 악물어 혀가 깨물리는 사태를 피했다. 동시에 호신기를 집중해서 위력을 줄였지만, 그럼에도 충격을 받고 주춤거렸다.
강엽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오금을 후려쳐서 철권긍룡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놈의 안면에 좌우 연타를 먹였다. 이후 손톱을 뽑아내서 놈의 호신기를 조각조각 잘라먹었고....
“크흐, 꽤 묵직한데!”
손을 채찍처럼 후려치는 철권긍룡의 견제초를 여유롭게 피하고, 놈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투아아아앙!
철권긍룡의 거구가 물제비를 하듯 강변의 땅바닥을 튕기더니, 정말로 장강의 강물 속에 빠져버렸다.
“와아아아아아!”
조천방도들이 함성을 질렀다.
반면 방금 전까지 강엽을 헐뜯고 욕지거리를 퍼붓던 거룡방도들은 합죽이가 됐다.
“저 신법은 뭐지?”
거룡방주가 중얼거렸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혼잣말이었지만, 청수한 인상의 중년 학사가 미간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세간에서 학검수사라고 불리는 판관필(判官筆)의 달인이었다.
“축지법처럼 느껴지는군. 아마 은신을 겸한 경신술 같은데... 이건 전문가의 고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소만.”
그 전문가가 누군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없는 암검주를 일컫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암검주 역시 방도들 사이에 숨어서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터. 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은 그도 신법의 정체를 모른다는 뜻이리라.
조천방주가 내공을 담아 외쳤다.
“거룡방주, 이 생사결은 우리가 가져가겠네!”
“조천방주께서는 성급하시군요.”
“뭐?”
“그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어두운 강물에 물거품이 부글부글 끓더니 철권긍룡이 자맥질을 하며 강변까지 올라왔다.
그를 향해 강엽이 조풍을 날렸지만, 철권긍룡 역시 권력을 내질러서 상쇄시켰다.
‘역시....’
강엽이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철권긍룡을 단숨에 죽일 수 있었다면 이후가 편했으리라. 하지만 철권긍룡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호신기가 잘려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 짧은 순간에 상체를 비틀어 충격을 흘렸던 것이다.
물론 완전히 흘리지는 못했기에 철권긍룡의 입엔 피를 흘린 자국이 역력하게 남아 있었다.
입가를 훔친 철권긍룡이 이죽거렸다.
“크흐, 허수아비처럼 생겨먹은 놈이 천하장사구만. 거산중권, 그 반편이였다면 한 방에 끝났겠어.”
물 속에서 나온 그가 지(之) 자를 그리며 돌진했다.
강변의 흙바닥이 단단하지 못해 발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움푹 파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비교적 단단한 지대를 밟고 훌쩍 뛰어올랐다. 칠척이 넘는 거구답지 않은 표홀한 경신술이었다.
“흐아압!”
두 발을 모아 도장을 찍듯 지면을 내려찍는다.
터어엉!
폭음이 울리고 흙먼지가 튀었지만 강엽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암신을 펼쳐 어둠 속에 숨은 것이다.
“또 그 신법이군! 이번엔 속지 않는다!”
그렇다고 철권긍룡이 강엽의 위치를 파악한 건 아니었다. 암신을 펼친 순간부터 강엽의 존재감은 흐릿해져서 그의 기감에도 잡히지 않았으니까.
철권긍룡이 찾은 해법은 단순무식했다.
강변에 널린 돌무더기를 진각으로 부순 다음 경파에 실어 사방팔방에 내쏜 것이다.
그렇게 쏘아낸 돌멩이 일부가 강엽의 몸과 부딪친 순간, 그는 주저없이 몸을 날렸다.
“거기냐!”
‘이런...!’
생긴 것 답지 않게 꾀가 많은 놈이었다.
강엽은 급히 몸을 꺾어 발길질을 피하자 공기가 찢겨지듯 터져나갔다.
‘맞았으면 뼈도 못 추렸겠군.’
강엽도 혈공진기를 몸 바깥에 둘러 호신기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의 일격을 맞았다면 호신기고 나발이고 치명타를 입었으리라.
재생력이 있으니 죽진 않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순 없었다.
“죽어라!”
승기를 잡았다고 여겼는지 철권긍룡이 공세를 퍼부었다.
당연히 강엽도 가만히 당해주진 않았다.
철권긍룡의 어깨가 뒤로 당겨지는 순간, 반 박자 빨리 뛰어들며 그의 가슴팍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충격을 받은 철권긍룡이 잰걸음으로 물러나면서도 검지와 중지를 세웠다.
강엽이 다시 달려들면 눈을 찌를 작정이었던 것.
그러나 강엽은 조풍으로 전방을 휩쓸어버렸다.
촤아악!
두꺼운 대흉근이 베이면서 선혈이 튀었다.
심장에 닿지는 못했다. 철권긍룡의 호신기가 조풍의 위력을 줄였기 때문이다.
타앙! 파파파파팟!
두 사람의 위치가 끊임없이 바뀌면서 수십여 합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몸이 겹치면서 투로가 끊기고, 금나수로 바꿔 상대의 관절을 잡고 부러뜨리려고 한다.
다리와 무릎이 연달아 부딪치고 크고 작은 경파가 비좁은 간격을 비집고 상대의 빈틈을 노린다.
두 사람 모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장강에 처박히는 수모를 당한 철권긍룡은 말할 것도 없고, 강엽 역시 머리가 산발이 되고 장삼 곳곳이 헤지고 찢겨졌다.
‘거산중권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히 강해.’
아무래도 같은 사문이다 보니 철권긍룡은 거산중권과 비슷한 무공을 구사했다.
하나 공방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중간중간 암신을 섞어 혼란을 주는데도 당황하지 않는다. 뭔가 촉이 이상하면 지체없이 전 방위를 휩쓸어 강엽을 견제했던 것이다.
그러던 순간 위기가 찾아왔다.
“끝이다.”
철권긍룡이 사납게 웃었다.
부지불식간에 강엽이 도저히 몸을 빼지 못할 만큼 운신의 각을 좁혀놓은 상태에서 전사경을 담은 필살의 일권을 내질렀던 것.
강엽은 태극의 심상을 담은 보법으로 왼발을 진괘(震卦)의 방향에 놓고 몸을 틀었다.
동시에 하중을 살짝 낮춘 채 발끝으로 반원을 그리면서 몸을 돌렸다. 몸을 꼿꼿이 세운 상태에서 두 손으로 태극을 그린다.
위기를 감지한 순간 반사적으로 행한 움직임이었다.
‘아.’
그 순간 강엽의 뇌리에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날 청수가 말해준 물극필반의 이치.
‘극점에 이르는 힘은 반드시 약해진다.’
하늘 높이 솟구쳤던 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것처럼.
경력도 마찬가지였다. 결코 무한하게 팽창하지 않는다.
마치 물고기가 그물에 갇히듯, 극점에 다다른 철권긍룡의 경력이 강엽이 그린 태극에 빨려들어갔다.
태극의 원에 갇혀 챗바퀴처럼 순환하는 경력.
등을 진 철권긍룡이 무언가 깨닫고 눈을 화등잔 만하게 떴지만, 그가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태극의 이치에 따라 순환했던 힘이 강엽의 손짓에 따라 주인에게 돌아가고....
“크악!”
철권긍룡이 제 경력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저, 저건...!”
거룡방주의 목소리에 경악이 실렸다.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화접목(移花接木)!”
“어찌 저자가 무당의 절기를...!”
각자가 호광 무림에서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활동했던 고수들이었다.
드물게 속세로 내려온 무당 도사들의 무공을 견식한 경험이 몇 번은 있었다.
“설마 귀영이 무당의 제자였다고?”
“말도 안 됩니다! 저자는 조법을 성명절기로 쓰지 않습니까? 게다가 아까 그 경신법은...!”
그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어졌다.
강엽의 기파가 변하고 있었다.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끈적거렸던 기파가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옆을 지나가고 있는 도도한 장강의 물결처럼. 아니, 그보다 더 어두운... 마치 암해(暗海)와도 같은 깊고 어두운 물결이었다.
강엽은 벼락같은 깨달음이 정수리를 강타하여 사지백해로 뻗어가는 것을 느꼈다.
각기 흩어져 있던 환희요오공의 구결과 혈공진기의 운기 경로, 물극필반의 이치가 정교한 톱니바퀴마냥 척척 맞물린다.
“그렇군. 내가 잘못 생각했어.”
바뀌어야 할 것은 혈공진기가 아니었다.
무공 그 자체.
휘리리릭!
혈공진기에 태극을 담아 새롭게 짜낸 무공이 장삼의 소맷자락을 부드럽게 감쌌다.
“고맙다, 철권긍룡.”
“뭐라고?”
철권긍룡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강엽이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자신의 경력을 되받아친 것도 놀랍지만, 강엽의 기파가 변하는 것을 느끼고 넋을 잃었던 것이다.
강엽의 입가가 작은 호선을 그렸다.
“네 덕에 쓸 만한 무공을 하나 만들었거든.”
“무슨 헛소리냐!”
철권긍룡이 격분하여 달려들었다.
강맹한 경파가 근육질의 하박을 덮었다.
그의 일권이 강엽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회오리치듯 팔뚝을 감싸고 돌았다.
“오냐! 나도 이제부턴 전력을 다하마!”
그의 별호에 포함된 긍(䱍)은 상어를 뜻한다.
마치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사냥감을 물어뜯는 상어처럼, 상대의 공세를 역으로 거슬러올라 숨통을 끊는 극강의 강권.
단단한 주먹이 강엽을 두들기고, 사나운 예기가 끊임없이 불어닥쳤다.
그 앞에 맞서는 강엽은 성난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조각배처럼 보일 뿐이었다. 한 방이라도 맞으면 산산조각 박살날 것만 같은 작고 연약한 배.
그러나 철권긍룡이 노도처럼 퍼붓는 연타는 이렇다 할 피해를 주지 못했다.
“저, 저놈, 저거...!”
“놀랍군.”
하후진이 놀라서 입을 뻐끔거렸고, 언젠가부터 그 옆에 자리한 유성홍도 나직이 경탄했다.
강엽의 양 손목을 감싼 경파가 태극을 그리면서 철권긍룡의 경파를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흡수된 경파는 이화접목의 이치에 따라 철권긍룡에게 되돌아갔다.
“허업!”
철권긍룡의 완맥을 잡은 강엽이 몸을 등지면서 가볍게 상체를 툭 치는 순간, 칠척의 거구가 부드러운 경파에 휘말려 오 장이나 치솟았다.
높이 뛰어오른 강엽이 한 바퀴 돌면서 칠권긍룡의 허리를 뒷꿈치로 때렸다.
극점을 찍은 철권긍룡의 신형이 떠올랐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아래로 처박힌다.
콰아앙!
“...!”
철권긍룡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언뜻 가볍게 때린 것 같은 강엽의 뒷꿈치엔 치명적인 암경이 실려 있었다. 그 힘이 척추로 스며들자 전신이 마비되었다.
하지만 입은 움직일 수 있었기에 고통을 참으며 물었다.
“그 무공은... 대체... 뭐냐.”
“태극반(太極反).”
극점에 이른 힘은 약해진다.
흐트러지는 경력의 끝자락을 물극필반의 이치로 잡아낸 다음, 환희요오공의 흡자결로 흡착해서 태극의 심상으로 순환하는 혈공진기에 수용하는 무공.
“대충 이화접목을 상시 유지하는 무공이랄까?”
“이런 미친! 그걸 말이라고...!”
“나도 얼결에 만든 거라서 말이야. 아직은 그렇게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는데.”
말도 안 되는 대답에 철권긍룡은 세상에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만든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죽여라.”
철권긍룡은 체념했다.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생사결에서 졌으니 그가 죽어야만 이 싸움이 끝날 것이다.
강엽은 그 말에 응하는 대신 주변을 쭉 둘러봤다.
조천방을 비롯한 아군은 환호성을 지를 것처럼 벅차올랐고, 반대로 거룡방도들은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좋아.”
강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퍽! 뻐억!
“어억...!”
철권긍룡이 비명을 삼켰다.
강엽이 그의 팔을 내리쳐서 뼈를 부러뜨린 것이다.
“이, 이놈! 날 모욕할 셈이냐! 아무리 적으로 만났어도 네놈도 무인이라면 상대를 존중...!”
“안 죽일 거니까 좀 닥쳐.”
“뭐?”
“운 좋은 줄 알아라. 이 무공을 쓰면 되도록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거든.”
“이놈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입 다물라고. 한 번만 더 지껄이면 턱뼈를 뽑아버릴 거다. 평생 죽만 처먹고 살고 싶나?”
“.......”
무덤덤한 말투로 던지는 폭언에 철권긍룡이 멈칫했다.
강엽이 중얼거렸다.
“생사결인지 뭔지 몰라도 내가 거기에 왜 따라야 하나. 어차피 명령을 들을 이유도 없는데.”
조천방의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권리를 얻었다. 그건 아군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권리였다.
“들어라! 난 철권긍룡을 살려주기로 했다!”
불가의 사자후(獅子吼)처럼 귓가를 강타하는 외침에 강변에 모인 양측의 무리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강엽이 철권긍룡을 참하리라 생각했지, 목숨을 붙여둘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조천방도들이 당황해서 방주를 돌아봤지만, 조천방주 또한 굳은 안색으로 강엽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 순간부로 철권긍룡의 목숨은 내게 귀속됐음을 알리는 바다! 내 허락 없이 이자를 죽이려 들면 그게 누구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인즉!”
어차피 철권긍룡은 골절된 두 팔을 비롯해서 여기저기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었다.
말문이 막힌 양측의 무리들을 쭉 둘러본 강엽이 쓰러진 철권궁룡을 오연하게 내려다봤다.
“도망치지 마라. 알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