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거룡 (5)
“회전(會戰)이라....”
장경은 약간 삐딱한 기색이었다.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까진 두 방회가 서로 비슷하게 주고받았다.
과연 전력이 한데 모여서 부딪친다면? 조천방이 거룡방을 이길 수 있을까?
목구멍에 독한 화주를 털어넣은 강엽이 말했다.
“당연히 어렵겠지.”
“병력은 비슷해도 저쪽엔 구양세가가 있어. 대놓고 나서지 못해도 힘을 실어주는 방법은 쌔고 쌨어.”
“조천방주도 알고 있을 거다.”
“당연히 알고 있겠지. 알고도 방법이 없으니까 그 선택밖에 할 수 없었을 테고.”
장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장기전으로 가면 조천방이 불리해.”
전쟁이 길어지면 부담되는 것은 조천방이나 거룡방이나 똑같지만, 조천방의 타격이 더 컸다.
전쟁을 하는 동안엔 조운을 멈출 수밖에 없으니 그 기간이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오는 것이다.
반면 거룡방은 구양세가가 뒷배로 있으니 당장 사업을 못해도 어떻게든 버틸 순 있을 터.
“쌓아둔 돈이 있으니 당장 무너지진 않겠지만... 기반이 날아간 건 심각한 문제야.”
분타와 창고 등의 거점, 조운에 필요한 비조선, 뱃일에 익숙한 방도들, 거래처의 신용.
전쟁이 길어질수록 조천방은 많은 것을 잃으리라.
“조천방이 잃어버린 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건물이 다가 아니라고. 이번 전쟁을 이기더라도 예전같은 성세를 되찾기까진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시운이 따르지 않으면 영영 되찾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니 더 잃어버리기 전에 모든 것을 걸고 일대결전을 치르는 것은 이해가 된다. 다만....
“이길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거든.”
이기면 살아남지만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차라리 비무 같은 온건한 방식이면 모르겠는데....”
“힘들겠지.”
서로에 대한 악감정이 너무 쌓였다.
비무 따위로 승패를 가려도 진 쪽은 납득하지 못하고 꼬투리를 잡아서 다시 전쟁하려고 들 터.
‘차라리 시원하게 한판 대거라하는 게 나을 수도.’
어떤 선택을 하든 장단점이 있다.
그럼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할 수밖에.
“실례합니다.”
때마침 조천방의 총관인 문자경이 호위무사들과 함께 객잔 주렴을 헤치며 들어왔다.
전쟁이 격화되다 보니 중경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호위를 늘린 것이다.
장경이 능글맞게 웃었다.
“아이고, 문 총관님! 공사도 다망하신데 이 누추한 곳엔 또 어쩐 일로... 흐흐, 날도 더운데 시원한 냉수 한 그릇 드시죠. 빙고(氷庫)에 넣은 물이라 시원합니다.”
방금까지 조천방과 거룡방의 전쟁을 비관적으로 본 주제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다.
강엽은 그 빠른 태세 전환에 내심 혀를 내둘렀지만, 조천방 덕에 큰돈을 번 장경은 간이며 쓸개며 다 빼줄 것처럼 굴었다.
조천방과 거룡방의 전쟁이 커지면서 조천방이 중경 분타의 낭인들을 대거 고용한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목이 탔거든요.”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킨 문자경이 그제야 살았다는 듯 구슬땀이 난 이마를 쓸어올리며 강엽을 돌아봤다.
“귀백량을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강 무사님. 진작 찾아뵙고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일이 바빴겠지. 거룡방과 일정도 조율하고, 회전을 벌일 장소도 찾아야 했으니까.”
문자경의 입가에 쓴웃음이 어렸다.
강엽의 말마따나 최근에 언제 쉬어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던 것이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한 그가 과로까지 했으니 뺨은 홀쭉해졌고, 눈밑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원래도 바쁘긴 했지만 요즘은 일지옥에 빠진 기분입니다. 좀 됐다 싶으면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회의도 준비해야 하고, 태화문에 구걸하자는 사람들도 달래야 하고....”
“.......”
문자경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음습한 동태 눈깔마냥 꿈도 희망도 없이 썩어문드러졌다.
잠시 장경과 떨떠름한 시선을 나눈 강엽이 물었다.
“일을 분담하면 되지 않소? 문 총관의 밑에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도 같이 갈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 혼자 갈리는 게 아니라서 덜 억울하지요. 저 혼자 갈렸으면 죽어서도 눈도 못 감았을 텐데. 원귀가 되어서 우리 방주... 아니, 거룡방주를 저주했을 겁니다.”
방금 우리 방주라고 하지 않았나?
문자경이 원귀가 되어 조천방주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떠올린 강엽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몸 돌보면서 하시오.”
“하하, 탕약 먹으면서 일해서 괜찮습니다.”
그 순간, 흡혈귀와 돈에 미친 분타주는 차마 문자경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입을 꽉 틀어막았다.
‘너무 짠해서 뭐라고 못하겠다....’
‘예전에 한림원에 갔던 선배가 저랬는데....’
강엽에게는 오래전 과거에 최종 합격하여 한림원으로 배속된 동문 서원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도 거죽만 남은 몰골로 고향에 내려와서 권세고 뭐고 이러다 죽겠다며 투덜댔더랬다.
그 선배와 문자경이 겹쳐 보이는 것이 과연 착각일까....
“조금만 더 고생하시오. 그래도 전쟁이 끝나면 좀 쉴 수 있을 것 아니오.”
“전쟁보다 전후 처리가 더 바쁩니다.”
“....”
“그래도... 말씀하신 대로 조금만 더 고생해야죠. 제가 고생하는 만큼 방도들이 덜 죽을 테니까요.”
이미 양 방회의 정면 충돌은 예정된 일.
문자경은 후방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보다 철저하게 준비할수록, 더 많은 것을 준비할수록 방도들이 흘릴 피가 적어지리라.
“결전 장소는 운양현 비봉산(飛鳳山)이 될 겁니다.”
운양현의 땅을 동서로 관통하는 장강의 남안엔 삼국지의 장비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비봉산 아래 장비 사당 앞에 있는 강변이 전장이 될 겁니다. 두 방회의 중간지점이고, 다른 장소는 두 방회가 반대하는 바람에 그쪽으로 결정됐지요.”
“향화객은 어찌하고?”
“밤에 싸우니 괜찮을 겁니다.”
어쨌든 민가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문자경도 마뜩찮았다.
하나 거룡방주가 중경에서 싸울 순 없다고 고집을 부렸기에 중간지점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조천방이 의창에 갈 수도 없지 않은가?
“어둠 속인 만큼 피아구별이 쉽지 않을 테니 본방은 백의를 입고 싸우기로 했습니다.”
“나도 똑같이 입으라는 거군.”
모든 것을 건 한판 승부였다.
누가 이기든 진 쪽은 살아남지 못하리라.
* * *
“조천방주, 이 시점에서 이런 무리한 선택을 하다니... 정말 완고한 늙은이야.”
조영옥이 쓴웃음을 흘리며 차를 홀짝였다.
황실에 진상되는 최상품의 몽정감로는 감미롭고 부드러웠다.
평소였다면 조영옥 역시 기분 좋게 즐겼겠지만, 어쩐지 지금은 탕약처럼 쓰게만 느껴졌다.
“원래 내가 짠 계획은 전쟁이 길어져서 조천방이 너덜너덜해졌을 때쯤 혜성처럼 등장해서 상황 정리하고 조천방을 거두는 거였는데 말이야.”
그걸 위해 바람잡이까지 심었거늘, 조천방주가 일대결전 운운하며 거룡방주의 심기를 도발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하, 진짜... 강호인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거룡방주는 거절할 수 없지. 거절하면 삼대가 내시라고 놀림당해도 할 말이 없는데.”
“저, 누님. 내시는 자식을 못 봅니다만.”
“발상을 전환하렴, 동생아.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확 떼버리면 된단다.”
“....”
이게 과연 태화문 공녀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조영빈은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없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당장 그 자신부터가 조영옥의 발언에 식은땀을 흘렸으니.
“한데 이렇게 되면 누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닙니까?”
“그건 두고 봐야지.”
“예?”
“거룡방주가 바보도 아니고 조천방주의 의도대로 끌려다닐 리가 없잖니? 구양세가에 도움을 청하든 뭔 수를 쓰든 이길 만한 고수들을 충원할 텐데.”
물론 조천방주 역시 바보가 아니니 이길 만한 사람을 내세울 것이다. 예를 들면....
“강엽, 그 사람을 내보내든가.”
강엽을 떠올린 그녀는 입맛이 썼다.
“흐음, 역시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사람으로 만들었어야 했나?”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다고, 강엽이 조천방의 의뢰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누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지.”
그저 실낱같은 아쉬움이었다. 돌이켜봐도 그땐 적당히 끈을 만들어두는 게 최선이었다.
“거룡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봐야겠다. 구양세가가 직접 움직이진 못해도 자신들 영향력이 닿는 고수들을 보냈을 거야.”
“하오문에 연통하겠습니다.”
“나도 전장에 가봐야겠다.”
“누님께서요?”
“그래. 거룡방주가 뭘 준비했는지, 조천방주가 어떻게 위기를 넘어갈지 궁금해졌거든.”
조영옥의 눈동자에 서릿발 같은 한기가 맺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 * *
눈처럼 새하얀 백색 장삼을 입은 청년이 경내를 거닐었다.
마른 인상 때문에 약간 무뚝뚝해보였으나 이목구비는 또렷했다.
누가 봐도 유생이나 시인묵객이라고 생각될 행색을 한 그는 온통 어둠뿐인 사당의 향로에 향을 꽂고 안쪽에 있는 장비의 동상을 향해 살짝 묵례했다.
그리고 적당한 계단 위에 걸터앉아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풀벌레들이 낮게 우는 가운데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사박사박 이어졌다.
그때였다.
“어두운데 그게 보이나요?”
흑색궁장을 입은 여인이 걸어왔다.
강엽은 놀라지 않았다. 조영옥이 딱히 기척을 죽이지 않고 평범하게 걸어왔기 때문이다.
“올 줄은 몰랐소.”
“전에 만났을 때와는 말투가 달라졌군요. 뭐, 좋아요. 지금 말투가 더 듣기 좋으니까.”
“...그때 말투가 어땠길래?”
“흠, 뭐라고 할까요.”
조영옥이 입술에 은어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을 살짝 올린 채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괜히 문제 일으키기 싫어서 그냥 존대해주는 느낌? 굳이 설명하자면 그런 것 같네요.”
“그렇군.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소.”
강엽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나, 두 번째로 만났을 때나 심기를 거슬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그가 어떻게 나올지는 조영옥의 입장에 달려 있었다.
“여긴 왜 온 것이오?”
“대답을 듣고 나서 말해줄게요.”
“무슨 대답?”
“어두운데 잘 보이냐고요.”
“...달빛이 밝아서 잘 보이오. 원체 밤눈이 밝은 편이기도 하고. 대답이 됐소?”
“어떤 책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설마 제가 준 비급을 갖고 다니면서 읽는 건 아니죠?”
“설마.”
아무리 강엽이라고 해도 그런 짓은 안 한다.
헛웃음을 흘리며 책을 던졌다.
“궁금하면 직접 보시든가.”
내공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조영옥은 손쉽게 서책을 낚아챘다.
“이건....”
서책의 내용을 확인한 조영옥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구양세가에 대한 조사서였다.
“구양세가 주요 고수들의 인명록이오. 낭인전 중경 분타주가 하오문을 통해서 구한 책이오.”
단지 이름이나 나이뿐만 아니라 구양세가 내의 직책, 강호 행적 등이 상세하게 망라되어 있었다.
조영옥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거 참....”
좀 어처구니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납득하는 것 같기도 한 신색이었다.
“하필이면 저랑 같은 책을 보고 있었군요.”
“음?”
“보세요.”
강엽이 눈을 껌뻑였다.
조영옥의 손엔 그가 던진 것 말고 다른 책이 있었다.
장경이 하오문에서 사들인 책과 같은 것이.
“강호에 널리 퍼진 구양세가에 대한 풍문을 한 권의 서책으로 엮어낸 거죠. 그래서 널리 퍼뜨려도 해당 문파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거예요. 언짡기는 한데 문제를 제기할 명분이 없달까.”
“당신도 갖고 있었던 건가.”
“구양세가의 동태를 감시하려면 구성원에 대해 알아야죠. 물론 저는 태화문의 정보망을 이용하지만, 하오문도 종종 이용하거든요. 사실 이 책은 조금 큰 분타에 가서 은전 스무 냥만 주면 쉽게 살 수 있어요.”
“...그렇군.”
같은 판본이 수도 없이 돌아다니는 건 좀 어처구니가 없긴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구양세가의 정보를 원하는 게 자신만은 아닐 테니까. 구양세가와 얽힌 수많은 무림 방파들이 구양세가의 정보를 얻기 위해 하오문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하오문엔 이보다 더 상세히 기록한 책도 있다고 하더군요. 한데 어디까지나 소문이라서 진위는 확실치 않아요.”
“당신도 못 봤소?”
“구경도 못해봤죠. 삼십만 냥을 불렀는데도 그런 건 없다는 말만 들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구경도 못해볼 천금이다. 태화문의 공녀이기에 건넬 수 있는 제안이리라.
“이번엔 당신이 내 질문에 답할 차례인 것 같은데.”
“왜 여기 왔냐는 질문이었죠?”
“그렇소.”
“저기 계신 장환후(張桓侯)께 조천방이 지게 해달라고 고사 좀 지내려고요.”
환후는 장비의 사후 유비가 죽은 의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내린 시호였다.
“....”
참으로 노골적인 대답에 강엽은 할 말을 잃었다.
조영옥이 조천방을 태화문의 품에 안으려는 정황은 있었지만, 남의 방파 지게 해달라고 빌겠다니.
“아, 정확히는 패배하기 직전까지만 해달라고 빌려고요. 그래야 제게 살려달라고 하지 않겠어요?”
“위급해지면 조천방주가 태화문에 도움을 청할 거다?”
“그럴 수밖에 없죠. 거룡방주도 독기가 단단히 올랐으니 이 전쟁에서 이기면 조천방을 짓밟으려고 할 텐데... 멸문당하는 것보단 복속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론적으로는 옳은 말이오.”
“역시 강 무사의 생각도 그렇지요?”
“하지만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얘긴 다르지.”
“이것 보라지. 강 무사도 고집 참 세군요. 하지만 전 관대하니 친절히 알려줄게요. 학검수사(鶴劍修士).”
그건 서책에 적힌 구양세가의 고수의 이름이었다.
한때 거룡방주가 그랬듯 구양세가의 빈객으로 신세를 지내는 절정고수.
“철권긍룡(鐵拳䱍龍), 사월유성(斜月流星), 오선자(五善子). 불과 며칠 전까지는 다들 구양세가에 의탁했던 빈객들이죠. 지금은 모종의 이유로 구양세가를 나와서 거룡방에 들어갔지만요.”
“....”
“여기에 태화문이 심어놓은 간자가 이르기를, 세간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구양세가의 암검주(暗劍主)가 움직였다고 하더군요. 이제 제가 왜 조천방이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지 아시겠어요?”
“....”
“교룡방주를 포함하면 은천패급 고수가 여섯 명이나 있는 거예요. 아니, 암검주의 무위는 알려진 적이 없으니 어쩌면 나머지 다섯보다 강할지도 몰라요. 한데 조천방이 이길 수 있으리라 장담하시나요?”
암담한 전력 차이였다.
도저히 승리를 자신하지 못할 정도로.
한데 강엽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시큰둥했다.
“그게 전부요?”
“예?”
“예상보다 적군. 난 구양세가의 정예들이 위장을 해서라도 끼어들 줄 알았소. 구양세가가 아직 매운 맛을 덜 본 모양이오.”
“그... 강 무사,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런데.”
“말하시오.”
“혹시 미치셨어요?”
세가의 빈객들과 암검주가 합류한 것만으로도 조천방은 승산이 전무하다.
한데 구양세가의 고수들까지 올 줄 알았다니....
강엽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미친 것처럼 보이시오?”
“예.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안 미쳤소.”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친 줄 모르죠. 전장이 아니라 의원을 찾아가보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내가 미쳤다면 조천방주를 포함해서 조천방과 함께 싸우는 사람들 모두가 미친 거겠군.”
“그건....”
“조천방주에게 복안이 있는 걸로 알고 있소.”
“뭐죠?”
“비밀이오.”
“뭐라고요?”
“그렇게 노려봐도 소용없소. 당신이 듣고 무슨 짓을 할지 안단 말이오?”
“....”
조영옥은 불만이 한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강엽이 매정하게 선을 긋자 내심 혀를 찼다.
강엽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당신의 말은 틀렸소.”
“뭐가요?”
“구양세가의 빈객들 말이오. 교룡방주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나 되는 양반들.”
“네. 그게 왜요?”
“무공만 보면 당신의 말이 맞을 것이오. 어쩌면 내가 그치들보다 약할 수도 있고. 하지만 승부는 무공만으로 결정되지 않소. 당신도 알겠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것이다.
강엽은 언제나 살아남았다. 재생력을 쓰든, 술법을 쓰든, 혹은 다른 수단을 쓰든.
“그러니 누가 살아남을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