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1화 (1/450)

서(序)

강엽은 황촉의 불을 껐다.

끄트머리만 간신히 남은 황촉을 내려다보는 강엽의 심정은 편치 않았다.

주야에 상관없이 과거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황촉을 샀지만 없는 살림에 황촉은 사치였다.

달빛이 밝다면 달빛에 의지해보겠지만, 오늘은 달빛도 먹구름에 숨어 어둡기만 했다.

‘반드시 회시(會試)에 합격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지라 배움이 늦었지만 부모님은 아들을 지원해주셨다.

없는 살림에도 서당에 보냈다. 일찌감치 배움의 즐거움을 깨달은 강엽은 재능을 증명했다.

그리고 약관에 이르자마자 향시(鄕試)에 합격했다.

부모님이 역병으로 인해 돌아가신 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회시, 나아가 전시(殿試)까지 합격하여 입신양명해서 증명할 것이다.

그분들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시험이 가까워져서 그럴까, 최근 들어 부쩍이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중원 전역에서 모인 인재들 중에서도 합격 인원은 한줌도 되지 않는 것이 회시다.

강엽이 고장에서 제법 이름난 신동이었어도 회시에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후... 잠깐 바람이나 쐴까.’

답답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밖에 나왔다.

삼경(三更)이 넘은 밤은 조용하다.

그랬어야 했다.

“살려주세... 흡!”

“조용히 해!”

괴로움에 가득한 신음소리.

하필이면 바로 옆에 있는 골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엽의 미간이 절로 굳어졌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봐, 여기도 사람이 있는데?”

어느새 담벼락을 딛고 선 사내가 강엽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히죽거렸다.

사내의 허리춤에 매달린 박도(朴刀)가 강엽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박도는 먼 길을 다니는 나그네라면 누구나 하나쯤 패용하고 다니는 물건이지만, 이 야심한 시각에 삿된 짓을 벌이는 인간이 평범한 나그네일 리가 없다.

‘무림인!’

하필이면 무림인을 맞닥뜨릴 줄이야.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냥 밤산책이나 나왔는데, 그것도 집 안에만 있었는데 무림인을 만나다니.

웬 여인을 포대에 넣으려고 한 것만 봐도 이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명확했다.

“집이 작네. 형씨 혼자 사나봐?”

“...당신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가주시오. 기왕이면 거기 있는 여인도 놓아주시고. 지금 당장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부를 수도 있소.”

“크하하! 꽤 강단이 있는걸. 먹냄새가 나는 걸 보니 붓쟁이 나부랭이인 것 같은데.”

“거기서 뭐 혀? 안 갈 거여?”

다른 한 사람까지 관심을 보였다.

얼굴 옆쪽에 흉터를 매달았고, 수염을 고슴도치처럼 기른 텁석부리 장한이었다.

“가야지. 그런데 단주가 남녀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납치하라고 하지 않았나?”

“...참말이여? 이 화상, 뼈다귀밖에 없는 거시 가다가 뒈질 거 같은디?”

“그건 이놈의 불운이지.”

“....”

강엽은 서서히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치는 척하면서 소리를 질러 이웃들을 부를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튀어나오면 이놈들이 뭘 하겠나.

하지만 목구멍을 쥐어짜기도 전에 두터운 손이 그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읍읍!”

“안 되지. 함부로 떠벌리면.”

뻐억!

사내의 주먹이 복부를 치자 강엽의 몸이 새우등처럼 꺾였다. 너무 아파서 눈알이 빠질 뻔했다.

‘시발, 이게 무슨...!’

아닌 밤중의 홍두깨도 정도가 있지.

불과 일각 전까지만 해도 과거에 합격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거늘, 이제는 과연 이자들로부터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팔자로 바뀌었다.

“이 새끼도 들고 튀자고. 단주 그 인간도 물건이 많을수록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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