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66화 (366/366)

366화 대륙의 중심으로 (3)

약 2년 전, 여전히 상세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동력원의 폭주로 인해 보헤미른 마탑은 빛을 잃었다.

당시 열린 마도 축제 덕분에 큰 화를 면하긴 했지만…… 마탑의 중층에 남아 있던 마법사들은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마력에 노출되어 시체마저 증발했다.

뿐만 아니라 감히 가치를 짐작할 수 없는, 수많은 기밀 연구 자료들이 소실되었고, 인공 아티팩트 [두 번째 회로]마저 소멸하는 등 보물고 또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아무리 피해가 심하다고 할지언정, 보헤미른 마탑은 한낱 사고 따위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를 반증하듯, 블랙 아워와 전쟁을 벌이면서도, 모든 여력을 총동원하여 점차 마탑의 기능을 회복해 갔다.

탑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는,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회로는 가히 초월적.

기존 동력원이 가진 무한한 마력이 없기에 무지막지한 양의 마석을 소모해야만 하나, 잃어버린 마탑의 빛을 일부나마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마법진의 정점.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가 지닌 만능(萬能)이란 이름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찾은 한시적인 안정 속에서 발로크가 자신의 네 번째 제자와 독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보고 중앙 대륙에 다녀오란 말씀이신가요?”

붉은 머리의 여인, 로벨린이 미간을 구겼다.

“아직 블랙 아워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걸로 아는데요. 그런 상황에 제가 전선에서 빠질 수는 없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다른 마탑들이 본격적으로 참전하면서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블랙 아워만의 힘으로는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네 빈자리는 충분히 대체할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딴 것보다 드래곤의 소재가 더 중요하다.”

발로크의 시선에 위압적인 기운이 깃들었다.

“어떠한 가공도 거치지 않은 용의 뼈가 나타난 건 수십 년 만의 일이다. 그것도 루아스교에서 ‘리켄티아’라는 상단을 대리로 삼아, 소재의 일부를 판매한다고 하지? 이런 기회는 절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겠죠. 장담하건대 제가 가진 힘만으로는, 그 전부를 감당할 수 없어요.”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 중앙 대륙에 있는 레이셴과 협력하도록 하거라.”

로벨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발로크의 제자가 된 이후, 레이셴과는 마탑의 상층에서 몇 번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탑을 벗어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는 바.

‘그런데 중앙 대륙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다름 아닌 레이셴 테일로드가 직접 파견된 걸까.

로벨린은 내심 의문을 품었지만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첫 번째 제자인 ‘에버렉’은 할 일이 있고, 두 번째 제자인 ‘레이셴’은 기밀 임무로 정체를 감추고 있다. 세 번째 제자인 ‘루커드’는 부적합하지. 당장 보헤미른 마탑의 이름을 대표할 수 있는 건, 내 제자 중엔 하나밖에 없다.”

발로크가 로벨린을 직시했다.

“너는 레이셴의 지시를 따르되, 표면적으로는 리켄티아 상단의 행방을 찾게 될 거다. 가능한 아무 일 없이 끝내는 게 좋겠지만……아니다 싶으면, 수단과 방법 상관하지 말고 드래곤의 소재를 거머쥐는 데 전념하도록.”

“여의치 않으면 강탈이라도 하라는───”

“상황이 강요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겠지. 물론 보헤미른 마탑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그가 다가와, 로벨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로벨린, 너는 보헤미른 마탑의 후계자 중 하나다. 네가 입고 있는 옷, 네가 이룩한 경지…… 전부 마탑이, 이 내가 제공해 주고, 조력해 주었지. 그리고 네가 가진 특별한 재능 덕분에, 너는 남들을 한참이나 앞지르고 마도를 개척할 수 있었다.”

“…….”

“네 마음은 안다. 같은 고아원 출신인, 동력원 폭주 희생자인 베르덴의 복수를 원한다는 거. 하지만 결국 블랙 아워는 종착지가 아닌 과정에 불과해.”

발로크가 초월자의 격을 드러내며, 작게 속삭였다.

“미래를 보거라. 너를 위해서, 그리고 보헤미른 마탑을 위해서.”

“……네.”

항거할 수 없는 존재감이다.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던 로벨린은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철컥.

문이 닫히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발로크는 턱을 쓸며, 유심히 로벨린의 빈자리를 바라봤다.

“대외적인 사냥개로는 더할 나위 없다만. 그 외의 용도로는 크게 쓸모가 보이지 않는군.”

* * *

발로크와의 면담을 끝낸 로벨린이 말없이 복도를 거닐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남아 맴돌았다.

‘그딴 블랙 아워와의 전쟁은 집어 치우고……드래곤의 뼈나 찾으라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꺼이 전쟁의 최전선에 섰다.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게 로벨린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동안 그녀가 불태워 죽인 숫자만 해도 두 자릿수를 아득하게 넘는다.

그런데 더 이상 보헤미른 마탑은 처절한 보복을 이야기하지 않고, 앞날을 꿈꾸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마법사들의 집단인 마탑답게.

이곳에서는, 아직도 강렬한 복수심을 품고 있는 것 자체가 오히려 정신적인 문제로 보여진다.

우득.

로벨린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들끓는 분노에 특이형질과 마도가 동시에 반응하며 고열이 치솟았다.

실제로 그녀의 몸에서 붉은 화염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깊은 한숨과 함께 감정을 갈무리한 로벨린이 마력을 가라앉혔다.

화르륵…….

불길이 차분히 잦아들고 나서야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출입 제한이 걸린 공간에 들어서자, 그녀의 최측근이 시야에 들어왔다.

“헤젠, 아르릴.”

“아, 넵! 로벨린 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이 당장 기립했다.

“지금부터 중앙 대륙으로 갈 예정이니 채비를 갖춰.”

“예? 갑자기 중앙 대륙이요? 블랙 아워는요?”

“드래곤의 소재를 확보해라. 마탑주님의 명령이야.”

초월자가 직접 지시한 사항.

아르릴이 크게 숨을 들이쉬며 어깨를 떨었다.

새까만 단발이 찰랑거렸다.

“저, 저희가 그런 막중한 임무를……! 그럼 리켄티아만 추적하는 건가요? 아니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용살자들에게 먼저 접촉이라도……?”

아르릴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은근히 기대를 품었다.

그녀는 유명인을 열광적으로 동경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진 이름이라면 더더욱.

‘이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애셔라고 했던가?”

동대륙의 신성, 애셔.

잿빛 머리칼과 벽안을 지닌 젊은 사내이며, 마도의 도달자라고 들은 바 있었다.

예고도 없이 나타난 천재.

마법계를 들썩이게 하는 존재의 등장이지만 로벨린은 무관심했다.

“자세한 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현지에서 레이셴이 지휘할 예정이라고 하니.”

“레이셴 님이요? 아, 역시 저희만 가는 게 아니군요……. 하긴 그게 당연한 거긴 하겠죠?”

“알았으면 준비해. 내일 새벽에 출발할 거니까. 기밀이니 발설은 금지하도록.”

“알겠습니다, 로벨린 님.”

잡담 없이 지시만 내린 로벨린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차가운 태도.

아르릴과 헤젠이 긴장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늘따라 더 저기압이신 것 같군. 대체 무슨 일이시지?”

“그야 중앙 대륙 건 때문이시겠지. 오랜 친구를 죽인 블랙 아워한테 복수를 못하니까.”

“베르덴을 말하는 건가? 죽은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그걸로 화를 낸다고? 하, 그 이론 도둑이 대체 뭐가 좋다고.”

루커드에게서 다중 연속성 이론을 대놓고 강탈하려 했던 범죄자.

한계 위계가 1위계밖에 되지 않는, 그야말로 마탑의 최약체.

그것이 마탑이 기억하는 베르덴이란 사내였다.

아르릴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말 하지 마, 헤젠. 로벨린 님이 들으셨다간 널 산 채로 태워 버리실 테니까. 진심으로. 그리고 나도 요즘은, 로벨린 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론을 훔친 건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뭐?”

“그야…… 그렇잖아? 다중 연속성의 저자인 루커드 매니악스 님이 저번에 발표하신 이론을 보면.”

“마법계에서 평가는 나쁘지 않잖아?”

“그래, 적당하긴 한데…… 뭔가 파악 오는 게 없단 말이야. 솔직히 다중 연속성 이론에 비하면 급이 많이 떨어져, 동일 저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잠시 고민한 헤젠은 당당히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부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고작 1위계 따위가 그런 이론을 만들었다는 건 아예 말이 안 되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이론 도둑이 누구인가 토론하는 건 여기까지 하지. 어차피 제대로 된 실상을 모르는 이상 영원히 정확한 결론이 안 날 테니까.”

헤젠이 뒷목을 꾹꾹 누르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럼 슬슬 준비나 하자고. 거리가 먼 만큼 챙길 게 많아.”

“아, 응!”

* * *

도시의 최고급 여관.

1박에 무려 40만 엘크나 하는, 꼭대기 층을 전부 사용하며 각종 마법 물품으로 보호되어 있는 특실에 식욕을 자극하는 각종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아드리안과 함께 여유롭게 식사를 하며, 베르덴이 보다 자세한 계획의 설명을 이어 나갔다,

“기본적으로 레이셴은 특히 자신의 안위에 관해서 무척이나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마탑에서 잘 벗어나려 하지 않는 거고.”

“초월자의 제자가 겁이 많다라. 역설적이군요.”

“그래서 까다롭지.”

베르덴이 노릇노릇하게 익은 생선살을 씹어 삼켰다.

“관건은 드래곤의 소재를 판매하는 장소다. 레이셴조차 의심없이 접근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신뢰 있고 거대한 무대가 필요해. 아드리안, 네 자문이 필요하다.”

아드리안은 거의 평생을 중앙 대륙에 살아왔다.

그렇게 쌓인 경험과 지식은 가히 전문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애당초 모험가 권한을 통해 공간 이동진을 이용하는 방법도 아드리안이 알려 주었다.

“무대라…….”

포도주를 한 입 머금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드리안이 물었다.

“혹시 주군께서는 은밀하게 활동하실 예정이십니까?”

“제한적으로 정체는 감출 거다. 그게 여러모로 편리하니까. 하지만 힘까지 숨길 필요는 없지.”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바로 무력.

그걸 배제하고 조심스레 움직이는 건, 멀쩡한 길을 내버려 두고 크게 돌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요하다면 제대로 날뛸 생각이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졌군요.”

아드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여관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중앙 대륙의 전도(全圖)의 중심부에 시선을 던졌다.

“주군께서 원하시는 무대는 바로 가르간트에 있습니다.”

“가르간트라면…… 초거대 도시를 말하는 건가.”

“예, 그곳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매장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건, 그 주관자가 무려 초월자라는 겁니다.”

“초월자?”

베르덴이 강한 흥미를 보였다.

“세계에 군림하는 자가 물건을 관리하고 보안을 담당한다라……. 그렇다면 신뢰적인 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겠어.”

“다만 누구나 경매에 물건을 등록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르간트에 적잖은 투자를 했거나, 과거 초월자를 도운 적이 있는 가문이나 개인이 아니면 불가능하죠. 그리고 어느 정도 귀한 물건이 아니라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드래곤의 뼈니 대가를 치를 일은 없겠지만 나머지 조건은 거슬리는군. 하지만 이런 얘기를 꺼냈다는 건 방법이 있다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아드리안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옛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가능합니다.”

“지인이라면 네 정체를 밝혀야 될 텐데. 신뢰할 수 있는 자인가?”

“다소 계산적이긴 하지만 배신과는 거리가 멉니다.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믿지. 그래서 그 지인을 찾아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자리에서 일어선 아드리안이 중앙 대륙의 남쪽을 가리켰다.

엘프가 사는 대수림의 위쪽에 자리한 지역.

딱 붙어 있지는 않고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지도상으로 어둡게 칠해져 있는 부분이었다.

“일명 ‘주인 없는 땅’. 수백 년째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입니다.”

목적지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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