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65화 (365/366)
  • 365화 대륙의 중심으로 (2)

    에스티리아 왕국의 수도, 레티아.

    외부의 시선이 아예 닿지 않는 왕성, 에스노렌의 심부에서는 비밀스러운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참석자는 총 세 명이었다.

    한 명은 왕가를 조종하는 실권자이며, 한 명은 그에 충성을 바친 신하이고, 한 명은 왕국과 암흑가를 잇는 중재자였다.

    왕녀이자 마녀인 실리스가 툭, 신문을 내려놓았다.

    거기에는 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는 소식, 벨디른 공화국의 세크리드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내용이 가득했다.

    “대규모 습격, 스탬피드에다가 갑작스러운 언데드 드래곤의 출현…… 루아스교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거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믿기가 어려운 소식이네요.”

    스탬피드는 그렇다 칠 수 있다.

    드물기는 해도, 아예 발생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공화국의 인근 국가인 카일리언스에서 수개월째 아인종 급증 사태가 이어졌으니…… 위치가 조금 다르기는 해도 징조 자체는 있었기에 납득은 갔다.

    하나 유골룡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언데드라고는 해도, 드래곤은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 몇 기록되지 않은 강대한 초월종.

    현시대에서는 아예 전설로 치부되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고대 혈통을 물려받은 실리스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만약 유골룡이 나타난 게 왕국이었다면───’

    작년 주검의 영광이란 집단에 의해 발생한 언데드 사태와는, 감히 비교조차 안 되는 피해가 일었을 터.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왕국의 명예 백작이 시장을 암살했다며, 카일리언스에서 연락을 보낸 게 얼마 전인데……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애셔가 그런 일을 벌인 데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아니, 나는 애셔가 잘못을 저질렀을 거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만.”

    “아무튼요.”

    칼리아가 살짝 턱을 치켜들었다.

    검붉은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사르르 내려왔다.

    “안 그래도 로아프라에 유입이 많아지고 있는 터라 빈테르트만으로는 전부 관리하기 벅찼는데, 마침 잘됐습니다. 용살자인, 암흑가의 왕이 비워 둔 자리를 감히 넘보려는 자는 없을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문제이기도 하지. 애셔가 가진 명예 백작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우리 왕국이 주목받게 생겼으니. 그간 숨겨 두었던 레오닐의 부재에 대해서도 곧 밝혀야 될 거다.”

    왕국 마법사 단장, 레오닐의 사망은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실리스가 지닌 마녀의 혈통 덕분이었다. 현재 왕성에, 그녀의 정신 간섭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뭐, 언젠가 밝혀지게 될 일이 다가온 것뿐이니 괜찮을 거예요. 애초에 레오닐의 죽음을 숨긴 건, 그 부재를 노린 외부의 간섭을 막기 위함이니까.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애셔의 존재는, 왕국을 지키는 거대한 억제력이 되겠죠. 적어도 바깥에서 보기에는요.”

    실리스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한때 인형 왕녀로 살아갔던 그녀는, 어느새 일국을 다스리는 지배자의 면모를 띠고 있었다.

    비선 실세이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저희는 뒷수습에 집중해야 한다고 봐요. 카일리언스에 걸린 애셔의 현상금은 곧 알아서 해명이 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실리스가 백금의 눈동자를 번뜩였다.

    “만약 애셔에게 불순한 목적을 가진 자들이 있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차단하도록 하죠. 놔둔다고 해도 애셔에게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고 해도, 그런 귀찮은 일을 처리해 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도리니까요.”

    “물론입니다, 폐하.”

    에스퍼렌사 가문의 부녀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사건이 사건인 만큼 후폭풍이 아주 거셀 겁니다. 그러니, 제가 왕국을 대표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직접이요?”

    “그래, 어지간한 귀족은 감당키 어려울 테니까. 그리고…….”

    에스퍼렌사 공작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김에, 타국과의 교류도 재개할 생각이다.”

    벨디른 공화국과 리비안트 공국.

    약 30여 년 전의 전쟁으로 인해 반쯤 끊어졌었던 그들과의 외교를 다시 이을 때가 왔다.

    변화와 미래.

    그것이 어머니의 복수를 마친 실리스가 새로이 추구하는 꿈이었다.

    이렇듯 에스티리아 왕국은 부정과 부패의 늪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바라 마지않던 나날에 칼리아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훗날 애셔와의 재회를 마음속으로 고대하며,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 * *

    중앙 대륙에 세워진 가장 거대한 도시, 가르간트.

    그 한편에 위치하고 있는 아카데미에 앳된 얼굴의 사내가 있었다.

    천재 학생, 테오도르.

    새로운 마법 계열인 소환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

    그리고 방주의 신입이었다.

    “…….”

    방주의 교류전이 끝난 이후, 아크에서 돌아온 테오도르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생각에 잠긴 채로 보냈다.

    물론 수업이나 연구는 빼먹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 정신이 나가 있는 모습 때문에, 그리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었다.

    벌컥.

    “아이고…….”

    그때, 누군가가 피곤한 한숨을 내쉬며 연구실에 들어왔다.

    종합 이론학 교수, 데일.

    소환 마법의 틀과 구성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의 뒤로, 하늘색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따라 들어왔다.

    <염력>과 양손으로 각종 마법 도구와 연구 자료가 실린 상자들을 든 채로.

    “여기 내려놓으면 될까요, 교수님?”

    “아…… 그래. 고맙다, 이리스.”

    “뭘요. 다음에 또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 주세요.”

    이리스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복도로 나섰다.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데일 교수가 중얼거렸다.

    “졸업하고 모험가 하겠다고 나가더니…… 태도도 그렇지만, 특히 마법 실력이 많이 좋아졌어. 그런데도 결국 모험가를 그만두고, 다시 아카데미에 돌아온 걸 보면 현실을 깨달은 거겠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쉰 그가 테오도르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래서, 너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 거냐? 어떻게 도와주고 싶어도, 말해 주지를 않으니 원.”

    “…….”

    테오도르가 눈동자를 슬쩍 돌렸다.

    방주에 관련된 정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발설 금지였다.

    “뭐, 곤란하다면 됐다. 그보다 신문은 봤냐?”

    데일 교수가 품속에 있던 신문을 책상 위에 올렸다.

    “아, 네. 그건 봤어요. 학생부터 교수님들까지, 아카데미 전체가 그 소식으로 떠들썩하더라고요.”

    “그래, 무려 드래곤이 나타났으니까. 심지어 ‘리켄티아’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상단이 토벌된 용의 소재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하니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지.”

    그가 지저분한, 짧은 턱수염을 거칠게 쓸었다.

    “용골(龍骨)이라…… 분명 많은 사람이 손에 넣으려고 할 거다. 피바람도 불겠지. 흠, 아카데미에서 구입해 연구할 기회가 온다면 좋겠건만.”

    “예산이 될까요?”

    “당연히 안 되지. 설령 기적적으로 구한다고 해도, 마탑이나 제국 등 엄청난 외부 압력이 뒤따를 거다. 아카데미는 혼돈의 도가니가 되겠지. 그리고 그런 위험을 부담하는 건, 교장님께서 절대 용납하지 않으실 테고.”

    한마디로 드래곤의 뼈는 지독한 맹독과도 같다.

    손에 쥐면 중독될 것이다.

    아예 관심을 끊거나, 구경하는 선에서 물러나는 게 최선이었다.

    그때, 테오도르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데일 교수님. 하나 질문이 있는데요.”

    “말해라.”

    “혹시 초월자가 아닌 사람이, <마력 위압>으로 다수의 강자를 완전히 제압하는 게 가능한가요?”

    “흠, 예를 들면?”

    “그러니까 5위계에 도달한 마법사나, 기를 깨우친 전사들이요.”

    “후자도 5위계급 마법사와 비슷한 경지라는 가정이겠지? 어디 보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데일 교수가 곧 대답을 내놓았다.

    “어느 정도의 파문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는 불가능하다. 애초에 <마력 위압>은 그런 용도가 아니니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사람들에겐 단순한 마력 낭비에 불과하지.”

    “역시 그렇죠……?”

    “갑자기 상식적인 걸 묻는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실없기는. 아무튼 생각 정리가 끝났으면 소환 마법 연구에 집중해라. 발표 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나는 잠시 제3연구실에 다녀오마.”

    데일 교수가 기지개를 켜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홀로 남겨진 테오도르가 교수가 두고 간 신문을 집었다.

    ‘<마력 위압>으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기절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면…….’

    신문에 실린 여러 이름이 시야에 들어왔다.

    “애셔, 이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방주의 교류전을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든, 테오도르와 같은 방주의 신입.

    당시 테오도르는 가장 먼저 정신을 잃었기에, 이후의 상황을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일순간 느꼈던 압도적인 마력만큼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광할한 바다.

    굽이치는, 거대한 파도.

    그건 어린 마법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전율이었다.

    * * *

    화아아아악……!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마력이 점차 가라앉는다.

    느긋하게 시야를 회복했다.

    그러자 가을의 낙엽처럼 화려함으로 얼룩진, 낯선 도시가 눈동자에 비쳤다.

    투박함과 거리가 먼 거리의 형태, 벨디른 공화국의 그것보다도 높게 쌓아 올린 건물들이 즐비하다.

    여기저기서 활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어딘가는 조화롭게 보이기도 하고, 또 어딘가는 부조화를 일으키는 색감.

    그야말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여기가 중앙 대륙인가.’

    심장이 두근거린다.

    분명 베르덴 자신은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렇게도 새롭게 느껴질 줄이야.

    비단 새로운 땅에 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읍.”

    옆에서 레이라가 작게 숨을 토했다.

    공간 이동에 의한 울렁임이었다.

    아드리안은 살짝 주춤하기는 했지만 금방 회복했으며, 베르덴은 아예 영향이 없었다.

    보다시피 사람마다 차이는 극명하다.

    세 사람이 대륙 간 공간 이동진에서 내려와, 거리의 구석에 자리했다.

    그사이 멀미를 그친 레이라가 말했다.

    “중앙 대륙에 도착했으니, 카일리언스에서부터 이어진 동행도 끝이네요. 설마 이렇게 복잡하게 일이 진행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루아스교에게 의뢰를 받은 레이라를 돕고, 그 대가로 대륙 간 이동진을 이용한다.

    이로써 거래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각자의 길을 걸을 때가 찾아왔다.

    레이라가 두꺼운 천에 둘러싸인 무언가를 꺼냈다.

    두께는 공간가방의 입구보다 작은 정도이고, 길이는 사람의 상반신보다도 길었다.

    “이건 특수 개체, 셉타 호른의 발톱이에요. 놈은 유골룡에게 산산조각이 났지만 다행히 몇몇 소재는 남았더라고요. 모험가 길드에서 처리하던 도중에 토벌 보수로 받았죠. 가져가요.”

    “이걸 왜 저한테……?”

    “악마에 대한 정보. 그 선불이에요.”

    베르덴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지만 레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주 짙고 어두운…… 너무도 낯익은 갈망이 느껴지는 기세였다.

    애써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베르덴이 셉타 호른의 발톱을 건네받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받아 두도록 하죠.”

    “고마워요. 연락,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제서야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한 레이라가 물러났다.

    “그럼 나중에 봐요, 애셔. 그리고…… 그쪽도요.”

    차례로 인사를 건넨 레이라가 그대로 여행길을 떠났다.

    화려한 금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이윽고 그녀의 뒷모습이 인파에 가려져 사라졌다.

    * * *

    베르덴이 아공간에 특수 개체의 소재를 수납했다.

    그러고는 동대륙에서 나누던 아드리안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전에 미들로스에서 그랬었지. 앞으로 나아가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레이셴을 찾아 제거하자고.”

    다만 요원한 일이기는 했다.

    왜냐하면 이 넓은 땅에서, 정체를 숨긴 레이셴과 마주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당연히 이러한 사실은 아드리안도 인지하고 있는 바였다.

    “예, 저희로선 추적할 수단이 전무하니까요. 한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혹시 단서를 잡으신 겁니까?”

    “아니, 단서는 없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수단도 없지. 직접 찾으러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라는 건 여전하다.”

    그러니.

    “놈이 직접 오도록 만들어야지. 드래곤의 뼈라면 충분히 미끼 역할을 하고도 남을 거다. 보헤미른 마탑에서 반드시 소재를 손에 넣으려 할 테니까.”

    “……!”

    “물론 우리의 목표가 세력 기반 형성이라는 건 변함없다. 단지 상황이 달라진 만큼, 계획을 조율할 뿐이지.”

    이내 베르덴이 단언했다.

    “앞으로 3개월 이내.”

    그의 시퍼런 눈동자가 강렬한 살의로 가득 찼다.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레이셴을 끌어내 죽인다.”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의 두 번째 제자.

    온갖 약물 실험을 통해, 베르덴이 지닌 마법적 이해력을 강제로 극한까지 쥐어짜 낸 비인(非人).

    베르덴의 삶을 대가로, 마탑에 지대한 성과를 올린 광기의 마도사.

    레이셴 테일로드.

    두 사람이 중앙 대륙에서 이룰 첫 번째 목표물이 정해졌다.

    그리고 베르덴의 예상대로, 보헤미른 마탑은 실로 오랜만에 나타난 용의 소재로 인해 술렁이고 있었다.

    또한 그 여파는 베르덴의 소꿉친구, 로벨린에게도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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